<화제의 인물> 소신 지킨 정의화 국회의장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강골 의장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강력히 거부했다. 여야는 눈치만 살폈다. 대통령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형국. 정의화 국회의장은 달랐다. 박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우선 처리하겠다고 결단했다.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청와대와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두고 헌정 사상 유례없는 충돌 사태가 벌어진 상태다. 정 의장은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에 따라 재의결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자신의 중재안으로 위헌 소지가 완전히 없어졌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역대 국회의장과 다르게 소신을 갖고 국회의장으로서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권위 있는 국회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부드럽고 강직
노련함 돋보여 
 
지난달 30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7월1일 예정된 본회의를 7월6일로 변경해 국회법 개정안 재의의 건을 우선 처리하고 인사안건 2건과 본회의에 부의 된 60건의 법안 전체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 재의 날짜가 잡히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사일정 보이콧을 풀어 국회가 이날부터 정상화됐다. 개정안 처리 문제가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 거취를 둘러싼 여권 논란도 당분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은 재의 날짜를 6일로 미룬 이유를 헌법 준수와 ‘경제·민생법안’에서 찾았다. “헌법 제53조 제4항에 따르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재의에 부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을 수호하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의장의 의무”라는 것이다. 6일 본회의에서는 크라우드펀딩법,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등 60여건이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정 의장의 중재는 새정치연합에 ‘명분’을, 새누리당에는 ‘실리’를 챙겨준 것으로 평가된다. “개정안 재의 날짜를 확정하면 상임위를 정상 가동하겠다”는 야당 주장을 수용해 국회 정상화 명분을 줬고 재의 뒤 민생법안을 처리하는 일정을 잡아 새누리당이 부담 없이 본회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정 의장의 중재로 국회 정상화를 이루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개정안 재의결은 국회가 청와대의 뜻대로만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미다. 정 의장은 과거 역대 의장들과는 다르게 소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거부권 정국을 거치면서 정 의장도 어느 정도 존재감을 키웠다.
 
정 의장의 정치적 노련함이 돋보였던 것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특별법 합의 과정 여야가 모두 참석한 국회 본회의를 여는 뚝심도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여야 양쪽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본회의가 열리면서 정 의장의 대화와 타협, 합의 정신이 성과를 냈다는 평가가 나왔다.
 
청와대-국회 ‘국회법’ 두고 정면충돌
원칙서 벗어나지 않는 카리스마 작렬
 
세월호 특별법을 두고 여야가 팽팽하게 맞서는 상황에서 국회 정상화가 이뤄지기까지 과정은 쉽지 않았다. 정 의장은 “타협의 정신으로 세월호 특별법 국면을 넘어야 할 것”이라며 국회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다.
 
새누리당이 단독 본회의 개회를 추진했지만 정 의장은 이를 저지하고 의장직권으로 본회의 일정을 잡았다. 정 의장은 “여야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시간을 벌었다.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은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았고 새누리당이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려고 했다. 이때도 정 의장은 또다시 의장직권으로 법안표결을 하지 않고 30일로 본회의를 연기했다.
 
당시 여당의 반발도 거셌다. 정 의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장우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정족수가 충족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의사진행을 포기한 것은 의원 개인의 발언권과 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정 의장이 사퇴하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체계를 유지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의원 10명 가량이 국회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에 서명했다.

비주류 계파 타파
책임형 리더 평가
 
본회의가 열릴 때도 정 의장은 의원총회를 이유로 오후 2시 본회의 개회를 연기해달라는 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본회의를 오후 7시로 미뤘다. 
 
정 의장은 여당의 비난에도 “야당이 본회의를 지연시키는 것으로 판단하면 예정대로 본회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내 이름이 부의화로 바뀌지 않는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며 합의가 이뤄지길 기다렸다.
 
그러는 사이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에 전격적으로 합의했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은 본회의에 참석했다. 정 의장의 인내가 성과를 거둔 순간이었다.
 
정 의장은 1948년 경남 창원군 웅동면 소사리(현재 창원시 진해구 편입), 웅동중학교 교장 사택에서 태어났다. 정 의장은 1955년 여름 부산 건국중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부산 중앙초등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부산 땅을 밟게 된다.
 
 
고교 2학년 때 형님의 권유로 시작한 사진은 한국일보 국제사진살롱전에 입선을 하는 등 각종 사진전에서 수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대학 시절 부산의 대학생으로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만큼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정 의장은 또 대학 시절 학보사 사진기자로 활동하면서 한국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는 안목을 키우기도 했다. 
 
지금도 차에 항상 카메라를 비치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해외출장을 가거나 지방에 갈 때는 전문가용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틈만 나면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그가 세계 각국을 돌며 직접 찍은 사진 12장으로 달력도 만들었다. 그래서 그의 별명은 ‘사진 찍는 정치인’이다.
 
정 의장은 미세 뇌혈관수술의 대가이자 세계가 인정한 의학박사기도 하다. 또 의사로서뿐만 아니라 병원원장으로서 일자리 1200개를 창출해낸 성공한 CEO로 이름을 날렸다. 1974년 초대 병원장인 김원묵 박사가 별세하고, 1978년 2월 25일 정의화 의장이 4대 병원장으로 취임했으며, 1985년 3월 김원묵 기념 봉생병원을 종합병원으로 승격시켰다.
 
정 의장은 극도로 악화된 지역감정 해소를 위해 뜻 있는 의료계와 학계 인사들과 영호남민간인협의회를 만드는 등 NGO 활동에도 적극나섰다. 1996년 정 의장은 15대 총선을 앞두고 신한국당에서 단행한 공천에 발탁돼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초선시절부터 8년 연속 국감 베스트 의원에 선정될 만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지역감정 해소와 영호남 화합을 위해 1991년부터 헌신해온 정 의장은 2004년부터 한나라당 내 ‘지역화합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호남 예산확보, 현안 과제 해결 등 당내 ‘호남 창구’ 역할을 해왔다.
 
특히 여수세계박람회유치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여수엑스포 유치 성공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8년 1월 여수 명예시민증을 받았다. 이어 2008년 11월엔 영호남 화합과 교류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한나라당 의원 최초로 광주 명예시민으로 추대됐다. 2009년 2월엔 ‘영남 출신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호남 지역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일한 공적’으로 조선대학교에서 명예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야 안가르고
화합형 스타일
 
이와 함께 2015광주유니버시아드대회 유치위원장으로 2009년 5월 광주유치를 이뤄냈는데,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이끌어 낸 그의 노력이 유치 성공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0년 1월 대회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되면서 2015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성공개최의 토대 마련을 위해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정 의장은 평소 “조그마한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려있는 데다가 동서마저 간극이 있으면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다”는 소신으로 영호남 화합을 위해 노력해왔으며, 이러한 배경에는 영호남 화합이 남북통일의 선결과제라는 확고한 신념이 깔려있다.
 
그동안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창해온 정 의장은 2010년 6월, 한나라당 내 국회부의장 경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의장 후보로 선출됐으며, 다음날인 6월 8일 국회 본회의에서 참석의원 238명 중 231명의 지지로 국회부의장에 당선됐다.
 

당선인사에서 그는 “18대 국회는 정쟁의 국회를 정책과 상생의 국회로 변화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뒤 “헌정 60년이 넘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의회상을 정립할 때가 왔다”면서 “최소한 여야 간 상호 호혜의 원칙을 지키고, 국회의원 간 상호 존중의 원칙을 엄격히 지키는 불문율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2015월 4·27재보선 패배로 당이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정 의장은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당의 변화, 쇄신을 위해 역량을 쏟았으며, 성공적인 전당대회로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내는 등 화합과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경제·민생법안 우선시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
 
부의장 시절인 지난 2011년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한·미 FTA 국회 비준동의안 의결을 막기 위해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을 터뜨린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끝까지 의장석을 지키며 한미FTA 비준안과 14개의 부수 법안을 처리시킨 일화는 정 의장의 뚝심과 강인함을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이기도 하다. 
 
2012년 4월 국회의장 대행 시절에는 국회 선진화법에 대해 ‘식물국회’를 만들 수 있다며 기자회견까지 자처해 반대하기도 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부산 중·동구 국회의원으로 내리 5선에 성공한 정 의장은 ‘외교는 통일을 앞당기는 견인차' ‘국가의 위상은 외교적 역량이 결정한다’고 주창하며 국회 한미의원외교협의회 회장과 국회 외통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와 이기주의로 인해 예가 무너지고 각종 사회 병리 현상이 심화되는 상황을 인성교육 강화를 통해서 바로잡아보고자 국회 인성교육실천포럼을 창립했으며, 지난달 26일에는 1년 6개월간 활동과 노력을 담은 인성교육진흥법을 대표발의하기도 했다.
 
정 의장은 당내 비주류였다. 자신의 정치철학과 원칙에 부합되지 않으면 결코 타협하지 않는 탓에 계파 간 줄서기 풍토를 외면, 당내 비주류로 적잖은 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경선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열린 선출 투표에서 총투표수 147표 가운데 101표를 획득해 46표에 그친 황우여 전 새누리당 대표에 압승을 거뒀다.
 
지역감정 해소
영호화합 앞장
 
옛 친이(친이명박)계를 포함한 비주류 측과 초선 의원들로부터 몰표를 받아 친박 주류에서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황 의원을 상대로 예상 밖의 압승을 거뒀다. 정 의장은 이명박정부 시절 친이계 주류로 분류됐지만, 친박계와도 원만한 사이를 유지해 당내 온건파로 불린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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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