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많은 경찰의 그림자

두 배 더 걸리지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오랜 노력 끝에 공상추정제가 지난 2023년 도입됐다. 하지만 경찰의 암은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반 국민보다 암으로 사망한 경찰이 2배 넘게 있지만 업무 연관성이 없다며 불승인되고 있는 것이다.

질병으로 사망한 경찰관 절반이 암을 앓았지만 경찰의 암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는 사례는 없다시피 하다. 경찰청이 경찰의 암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위해 일부 암을 공무상 질병 추정 대상으로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공상추정제?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질병으로 사망한 경찰관을 분석한 결과 54%가 암 관련 사망이다. 연 평균 57명의 질병 사망 경찰관 중 31명이 암으로 숨졌다. 일반 국민은 2022년 기준 질병으로 사망한 24.1%가 암 관련이었는데, 이와 비교하면 2배 넘는 수치다.

경찰관에 흔히 나타나는 암은 방광암, 폐암, 백혈병, 비호지킨림프종(혈액암) 등이다.

2020년 경찰청 정책연구에 따르면 경찰은 같은 연령의 다른 근로자에 비해 해당 암 유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경찰의 폐암 유병률은 60.2%로 소방(30.7%)에 비해 2배 높았고, 방광암 유병률도 경찰이 28.4%로 소방(20.2%)에 비해 높았다.


경찰의 암 유발률이 높은 이유는 ▲야간 및 교대 근무 ▲라디오파 ▲자외선 ▲초미세먼지 ▲디젤엔진연소물질 ▲다환방향족탄화수소 등 다양한 발암 요인에 노출되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경찰 직무의 70%는 2급 발암물질을 유발하는 야간교대근무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교대근무는 생체리듬을 교란시키고 수면 부족, 호르몬 분비 변화, 스트레스 등을 유발한다며 2A급 발암물질(probably carcinogentic to humans)로 지정했다.

하지만 경찰의 암은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경찰의 직무가 다양하고 인사이동도 잦아 암과 직업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23년 공상추정제가 시행되면서 정해진 요건만 충족하면 공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하게 됐음에도 공무원 재해보상법 제정 이후 경찰의 악성종양으로 인한 공무상재해 승인 건은 0건이다.

질병 사망 절반 이상이 ‘암’
관련 법 제정 후 80건 신청

인사혁신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0월부터 지난해까지 총 80건의 악성종양으로 인한 공무상재해 신청이 있었지만 직무 연관성을 밝힐 수 없어 불승인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관이 직업성 암이 공무상재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공상추정제는 공무원이 공무 수행 과정에서 유해하거나 위험한 환경에 상당 기간 노출되어 질병에 걸리는 경우 공무상재해로 추정하는 제도다. 공상추정제로 인정되는 질병은 ▲근골격계 질병 ▲뇌혈관 또는 심장 질병 ▲직업성 암 ▲정신질환 ▲심의회의 심의를 거쳐 인사혁신처장이 정해 고시하는 질병이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심뇌혈관 질환과 PTSD 등 정신질환만 공상추정제 적용을 받고 있으며 직업성 암은 적용 대상에서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공상 신청자가 직접 직무로 인해 암이 발생했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이 있음은 물론, 경찰의 암이 공상으로 인정받는 사례가 드물게 나타나는 것이다.

이에 경찰청은 ‘경찰관 암 질환 발생과 직업적 요인 상관관계 등에 관한 연구’를 실시할 계획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연구는 전·현직 경찰관을 상대로 암 질환 발생 실태를 파악하고 직업적 요인과의 상관관계 등을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이를 위해 전문가들이 2002년부터 2023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 자료 등을 활용해 경찰관의 암 발생률을 분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경찰청은 ‘경찰관 직업성 암 질환 관련 순직 공상 입증지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경찰청은 실제 공상·순직을 신청할 예정이거나 신청 중인 경찰관 또는 기존에 불승인 판정을 받았으나 권리 구제 기간에 있는 재신청 희망자들에게서 해당 사업 지원자를 모집하고 있다.

추가적으로 경찰청은 대상자의 이력과 검진 결과 등을 바탕으로 순직이나 공상을 입증할 역학 보고서를 작성해 순직이나 공상 승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불승인 시에는 재심의 신청을 지원하고, 최종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공상 승인 입증 지원이나 승인율 제고 방안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경찰청, 연구와 지원 사업 진행
“서류 제출부터 미비하게 다뤄져”

암 이외에도 다른 부상과 질병 인정이 잘 안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22년 8.7%(152건)에 달했던 공무상 요양 불승인 비율은 2023년 10.4%(241건), 지난해 15.1%(348건)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부가 공무성 요양의 처리 절차를 최대한 단순화했는데 불승인 비율이 되려 높아진 셈이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한 관계자는 “불승인 비율이 높은 이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집회나 시위에 참여했다가 부상을 얻은 경찰관들의 신청이 불승인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난청의 경우 현재 기준법 상 ‘85dB 이상의 연속음에 3년 이상 노출된 경우로 청력 손실이 6분법으로 40㏈ 이상인 소음성 난청’으로 엄격하게 제한 중이지만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평소보다 많은 집회와 시위가 열렸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며 “법원에서 집회와 시위로 인한 경찰관의 난청이 공무상 질병으로 판단했음에도 이에 대해 불승인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2024년 서울행정법원 행정11단독 김주완 판사는 지난달 24일 경찰공무원 A씨가 인사혁신처를 대상으로 낸 장해급여부지급 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법원은 A씨의 공무상재해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과도한 소음 노출과 스트레스 등 공무상 요인이 주된 발생 원인과 겹쳐 상병을 유발 또는 악화시켰다”며 상당한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이어 “A씨는 특히 귀에 이어폰을 착용한 상태로 무전기 신호를 들으며 경호업무 및 집회·시위 관련 업무를 수행했고, 집회·시위 관련 업무 중 확성기 등에서 발생하는 상당한 소음에 노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사격훈련 교관 업무 수행 당시 고도의 총격 소음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단된다”며 “집회 관련 진압·채증 업무와 2018년 경호 업무는 A씨가 담당한 업무 중에서도 매우 긴박한 상황에서 이뤄지는 업무에 해당하므로, A씨로서는 상당한 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전담 직원 없어”

기본적인 공상 지원 절차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관기 전국경찰직장협의회 위원장은 “각 관서에 공상·순직 관련 급여 신청 전담 직원이 없어 서류 제출 단계부터 미비하게 다뤄지고 있다”며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좋지만 기본적인 절차부터 고쳐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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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