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최근 경기도 소재의 한 우체국에서 업무 부담에 시달리던 집배원이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다행히 해당 집배원은 극단적 시도 전 경찰에 의해 발견됐고, 병원으로 긴급 입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3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엔 “집배원에 대해 관심 부탁드린다”는 제목으로 글이 게재됐다. 작성자 A씨는 “같은 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써 안타까워 글을 쓴다”며 우체국에 근무 중이라는 집배원의 사연을 공유했다.
A씨는 “얼마 전(지난 21일) 한 집배원분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사건이 있었다”며 “과도한 업무와 엄청난 폭우에 빈 사람 자리까지 채워야 하고, 상관은 현장 점검을 감시하듯 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우정사업본부는 ‘스트레스에 민감한 분인 것 같다’고 언급하는 등 집배원 개인의 문제로 몰아갔다. 사건을 축소하고 현안을 감추려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분개하며 해당 집배원이 작성한 유서 사진도 함께 첨부해 올렸다.
유서에는 ‘타인에게 피해를 줄 수 없어 근무를 마치고 (극단적 선택을) 하겠다. 민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내용의 친필로 추정되는 글씨가 적혀 있다.
그는 “동료의 장기 병가와 개인사로 심신이 매우 괴롭다. (또) 집배실장님이 저를 표적으로 삼아 계속 제 구역을 감사한다. (일 때문에) 시간적으로 쫓기고 있는 저로선 업무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해당 집배원은 업무과다로 인해 반송함을 챙기지 못하는 등 최근 실수를 연발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사연을 접한 보배 회원들은 “오죽 했으면 저런 결정을 내렸을까” “(직장 내 정치적) 찍어내기에 당한 듯” “집배원님들의 처우 개선을 응원한다” “그 와중에 피해를 주기 싫어서 본인의 하루 업무를 마친 후에 (극단적 선택을) 결행한다는 건 평소 책임감이 강하신 분이었을 듯” “아직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니 놀랍다” 등 해당 집배원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자신을 현직 집배원이라고 밝힌 한 회원은 “처음엔 믿기 힘들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지역마다 편차가 크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아마 이 건 말고 다른 사항도 많을 거라고 생각된다”고 의혹에 힘을 실었다.

우정사업본부 관계자는 25일,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폭염, 폭우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시던 집배원분이 (극단적 시도 등) 위험에 노출된 데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집배원 근황 및 그의 감시 주장 여부’를 묻는 질문엔 “입원 병원에서 퇴원해 현재 병가를 쓰고 휴무 중”이라며 “유서에 언급됐던 부분은 복귀 후 자세히 조사할 것”이라고 답했다.
‘업무량 조절 방안’에 대해선 “현재 해당 부서의 인력 채용을 진행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8월 중에라도 충원할 것”이라며 “다만 공무원 신분으로 채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다. 즉시 보충이 어려운 경우, 위탁 인력을 늘리거나 (해당 부서의) 물량을 조절하는 방안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집배원들 사이의 오랜 관례인 ‘겸배’가 문제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겸배란 휴직 등 결원이 생겼을 때 동료들이 해당 인원의 물량을 ‘대신 겸해서’ 배달하는 것을 말하며, 집배 업무 과중의 주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30일, 전국우정노동조합은 서울 광화문 지방우정청 앞에서 피켓을 들고 “우정직 공무원들의 노동 조건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우정청 승격보다 현장 공무원의 노동 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 4월,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장은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엔 우정사업본부의 역할을 확대해 ‘우정청’으로 승격시키는 내용도 포함됐다.
전국우정노조는 “현재 우정직 정원은 2만3600명이지만 실제 현원은 1000명가량 부족하다”며 “특히 집배원들은 겸배 체계 속에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안전사고와 순직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실제로 인사혁신처에서 지난해 발표한 ‘2022년 기준 공무원 재해 통계’ 분석에 따르면, 우정직 공무원의 재해 발생 약 700건 중 390여건(56%)이 ‘교통사고’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근골격계 질환’ 77건(11%)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에는 ‘우편 집배관 보건안전 및 복지 증진을 위한 법률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해당 법률안은 집배원들이 이륜차를 이용한 배달 과정에서 교통사고 위험에 상시 노출되고, 장시간 고강도 노동과 민원 대응에 따른 감정노동까지 겹치며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 의식이 골자로 들어가 있다.
주요 내용으로는 ▲천재지변 등 집배원 안전에 심각한 위험이 예측될 경우 우편물 이용을 제한하거나 집배 업무 일부 정지 조치 ▲5년마다 집배 업무 환경 측정·분석 ▲정기적인 특수 건강 진단 실시 등이 포함됐다. 다만 해당 법안은 상임위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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