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시교육청이 횡령 혐의로 고발한 ‘월드장학재단’의 이사장 황인오씨가 서울동부지검에 송치됐다. 황씨는 이사장 취임 2개월 만인 2020년 4월15일, 교육청 허가 없이 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을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아 경찰 조사를 받아왔다. 수사 과정에서 무자본 M&A를 일삼는 기업사냥꾼 일당도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월드장학재단은 월드건설산업 조규상 회장이 2002년 설립했다. 회사 자산 등 50억원을 출연해 재단을 설립하고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온 곳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이 별세하기 2년 전인 2020년 2월20일 사임하면서 이사진도 전격 교체됐다.
1990년대
최대 공안
이때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황인오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관련 인물이 중심이었던 재단에서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황씨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에서 연루됐던 인물이다. 이 사건은 1990년대 최대 공안 사건 중 하나였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2월 공익법인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단을 경찰에 고발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재단이 결산서 등을 제출하지 않자 확인에 나섰고, 재단 기본재산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보고 서울 성동경찰서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현행법상 공익법인은 기본재산을 처분·변경하고자 할 때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앞서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4월14일 황씨를 포함한 이사진 5명은 이사회를 열어 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을 A씨에게 대여했다. 황씨가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한 지 2개월여만이다.
대여금 50억2500만원에 대한 취득 담보는 A씨가 소유한 일본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그림(작품명 ‘호박’) 2점에 대한 평가액을 55억원으로 설정했다. 대여 금리는 2020년 4월14일부터 2021년 4월15일까지 연 2.4%를 적용했다고 ‘이사회 이사록’에 적혀 있다.
이어 2021년 4월15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사회 회의록에는 2022년 4월15일까지 자금 대여를 연장한 것으로 기록됐다. 기한 연장 시점에서 이사회는 ‘호박’ 2점에 대한 평가액을 65억원으로 계상하기도 했다.
제보자는 사건을 주도한 인물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으로 알려진 장영준이라고 지목했다. 제보자는 “현재 월드장학재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사들은 대부분 장씨의 지인”이라며 “장씨가 위작을 담보로 자금을 대여해준 것처럼 꾸며 재단의 자금을 횡령한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장씨가 지인과 통화한 녹취 파일에서 “내가 이사장과 이사들을 추천했다”는 언급을 확인할 수 있다. 장씨가 A씨에게 ‘호박’ 작품을 구매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포착됐다. 특히, A씨가 구매한 ‘호박’ 작품 2점 모두 위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쿠사마 야요이 ‘호박’ 원본의 영문 철자는 ‘Pumpkin’이지만, 이들이 담보로 제시한 작품 설명서에는 ‘Pumpukin’이라고 표기돼 위작임이 들통났다.
교육청 고발 50억 횡령사건 동부지검 송치
수사 과정서 무자본 M&A 일당 연루 드러나
제보자는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쿠사마 야요이 측으로부터 ‘진품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작품’이라는 답변을 받았고, 감정평가를 진행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말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시리즈는 미술 시장에서 환금성이 높은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월드장학재단 이사회 의사록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앞서 대여금 지출에 관한 의사록은 2020년도에 작성됐으나, 장씨가 A씨에게 ‘호박’을 구매하라고 지시한 시기는 2023년이었다는 것이다.
A씨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2023년에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장씨는 ‘월드장학재단 자금 인출에 대한 명분이 없다. 네가 빌린 것으로 해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수긍하자 재단은 A씨가 2020년 4월15일부터 2022년 4월15일까지 50억2500만원을 대여한 것처럼 꾸며 의사록을 작성했다.
월드장학재단 자금 50억2500만원의 행방은 묘연한 상태다. 실제로 A씨는 자금을 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는 “내가 50억이 넘는 돈을 받았으면 이렇게 태연하게 전화를 받겠느냐”며 “장씨가 부탁해서 대여자 명의만 빌려준 것이라 황당하고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재단 정기예금에 예치된 50억원 및 자산 대부분은 금융자산(단기금융상품, 현금 및 현금성 자산)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2023년 1월 재단이 공시한 공익법인 결산서류를 살펴보면, 50억2500만원이 공익목적 사업의 현금자산이 아닌 기타사업의 장기대여금으로 분류됐다. 이 밖에 금융자산은 약 7600만원으로 명시됐다. 2022년 재무제표에는 50억2500만원이 대여금으로 분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성동경찰서는 해당 사건을 서울동부지검에 송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경찰서 관계자는 “횡령 건으로 고발이 접수돼 수사 중이라 수사 대상, 자금 사용처 등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정부
8·15 특사
황씨를 도와 횡령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장씨는 2022년 민주당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 지지 단체인 ‘기본경제특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그는 라임펀드 사태에 연루돼 해외 도피 중인 김영홍 메트로폴리탄 회장으로부터 라임 자금 19억6000만원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다.
장씨는 지난해 3월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칭해 피해자를 속이고 자금을 편취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최근 업계에서는 그를 상장사 셀피글로벌, 디딤이엔에프, 메탈바인 자금 횡령 사건을 주도한 ‘기업사냥꾼’ 일당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장씨는 3개 회사의 총괄감사위원장 명함을 뿌리고 다녔다.
장씨와 함께 기업사냥꾼으로 지목된 안상현은 메탈바인의 실제 사주로 통한다. 메탈바인의 감사로 장씨가 이름이 올라있다. 코스닥 상장사 셀피글로벌에도 장씨의 측근이자 월드장학재단 이사인 이모씨가 2022년 8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장씨와 안씨의 연관성은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와 전 경영진 간의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도 제기됐다. 디딤이앤에프는 2023년 3월부터 주요주주가 된 슈퍼개미(거액의 돈을 굴리는 개인투자자) 김상훈씨의 독특한 공시로 개인투자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코스닥 상장사다.
공시에 자신의 직업을 ‘모험가’라고 소개한 김씨는 물타기(자신이 보유한 주식의 평균 매수단가가 현재의 주가보다 높을 때 손실을 줄일 목적으로 일정 기간을 두고 계속 매수하는 것)를 하다가 디딤이앤에프의 최대주주가 됐다.
2024년 초까지 이전 경영진과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다가 그해 5월 경영권 분쟁 종결에 합의했다.
사측(전 경영진)은 김씨와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지난 1월 ‘주주님들에게 드리는 호소문’이라는 제목의 입장문을 통해 김씨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면서 “기업사냥꾼 안씨 일당이 회사를 괴롭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대주주로 오른 김씨보다는 안씨 등에 대한 폭로가 강조됐다.
사측은 이들을 ‘멜파스, 유테크,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를 상폐(상장폐지)시킨 기업사냥꾼 안상현 일당’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빼돌리기
사측은 “‘안상현 일당’이 메탈바인 감사로 재직 중인 장씨에게 디딤이앤에프와 메탈바인, 셀피글로벌 등 3개 회사의 총괄 감사위원장 직위가 각인된 위조 명함을 제작해 메탈바인과 디딤이앤에프가 한 회사인 것처럼 보이게 한 후 이를 활용해 투자자들을 기망하는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국세청이 ‘공익법인 결산서류 공시제도’를 시행한 지난 2009년 월드장학재단의 최초 공시를 보면 월드건설산업이 현금 약 50억7000만원, 조 회장이 현금 약 1억3000만원을 출연한 것으로 명시됐다. 이후 장학재단은 51억~52억원 규모의 자산을 유지해 왔다.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는 ‘안상현 일당’은 무자본 M&A로 코스닥 상장사 셀피글로벌을 인수해 당사 상장 폐지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안씨는 셀피글로벌 경영권을 미끼로 복수 피해자들로부터 18억5000만원을 빌리고 갚지 않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아울러 또 다른 피해자에게 5억원을 투자하면 4개월 안에 15억원으로 불려주겠다고 속여 금원을 가로챈 혐의로도 서울동부지법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최근 안씨가 셀피글로벌 미국 자회사 취업을 대가로 피해자에게 2억원을 빌린 뒤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돈도 갚지 않았다는 내용의 진정이 경찰에 접수됐다. 취재를 종합하면 피해자 유모씨는 성동경찰서에 안씨를 고소한 상태다.
유씨는 지난해 11월 안씨로부터 미국법인 ICK International Inc.(ICK)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자리를 약속받고 2억원을 안씨 계좌로 송금했다고 밝혔다. ICK는 셀피글로벌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다.
안씨는 지인인 장병철을 통해서 유씨에게 접근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씨는 유씨에게 세후 연봉 15만달러와 LA 현지 숙소 제공 등의 조건을 제시했고 자신이 셀피글로벌의 실소유주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회사 내부 자료와 자금 흐름이 담긴 문서 등을 보여주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의 말로
상장사 폭파 전문가들과 공금 털이
그러나 정작 CFO 자리에는 제3자인 김모씨가 취임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씨 역시 ICK 대표 자리에 앉았다. 안씨와 장씨는 유씨로부터 빌린 2억원을 2억8000만원으로 증액해 상환하겠다고 했지만, 이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유씨는 이 같은 과정이 처음부터 2억원의 금원을 편취하기 위한 사기극이었다고 호소하고 있다.
안씨는 2022년 셀피글로벌을 인수해 경영권을 장악한 뒤 주가 부양을 시도했지만 실패해 채권자들로부터 반대매매를 당하며 지분을 정리했다. 주식이 1주도 없는 A씨의 측근들에 의한 회사 경영과 횡령·배임 의혹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주가도 거래정지를 거듭하다 상장 폐지 기로에 놓인 상태다.
한국거래소는 지난 6월 셀피글로벌 경영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상장 폐지를 결정한 바 있다. 또 A씨를 회사의 실질 지배자로 지목하기도 했다. 셀피글로벌 법인과 소액주주들은 같은 달 상장폐지 결정에 불복해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했다. 한국거래소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법원 결정 확인 시까지 정리매매 등 예정된 상폐 절차를 보류했다.
한편, 황씨는 과거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의 핵심 인물이다. 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제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둔 10월6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90여명을 간첩 혐의로 적발한 사건을 말한다.
당시 안기부는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씨 등 62명을 구속하고 300여명을 추적 중”이라고 발표했다.
황씨는 거물급 고정 간첩 이선실(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에게 포섭돼 1990년 입북했던 바 있다. 이후 북한 노동당에 가입, 간첩 교육을 받은 후 ‘중부 지역에서 당을 조직하라’는 지령을 받고 남파됐다. 국내에서 중부지역당 총책으로 활동하다 1992년 체포됐고, 대법원에서 간첩 및 반국가단체 결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후 김대중정부 시절인 1998년 8·15 특사로 형이 집행 정지되며 풀려났고 노무현정부 때인 2003년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취업 사기
연루 의혹
황씨의 간첩 혐의는 노무현정부의 과거사 진상조사 때 재확인되기도 했다. 국가정보원 과거사위원회는 2007년 보고서에서 “북한과 손잡고 남한 사회의 변혁을 이루고자 했던 국내 일부 운동 세력 및 인물들과 북한의 적극적인 대남 공작이 결합돼 발생한 사건”이라고 적었다.
황씨는 1980년 사북 사태 중심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같은 해 6월 미스 유니버스 대회장 폭파 미수 사건으로 체포돼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황씨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직접 만든 사제 폭약을 들고 대회장에 들어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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