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⑦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 인터뷰

“이태원 사건에 법의관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그 사이 사회는 빠른 속도로 변했다. 사실상 퇴보한 셈이다. 거듭된 희망고문은 조직 구성원의 사기를 꺾는 데 일조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않는 제도는 사회적 비용으로 치환돼 국민에게 전가될 예정이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법의학이 망하나요, 국가 기능이 문제죠”라고 한탄했다.

사실 지칠 법도 했다. 2005년에 이르러서야 검시제도와 관련된 법안이 처음 발의됐다.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수습 과정에서 법의학의 중요성이 부각된 이후 시작된 ‘희망고문’이다. 20여년 가까이 지났지만 상황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변화는 요원하고 현실은 열악해졌다. 지난 7월26일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에서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을 만났다. 

중심 못 되고

김 회장은 시종일관 ‘제도와 권한’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국의 검시제도가 표면상으로는 존재하지만 정확하게 기능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법의학자가 해야 할 역할이 100이라면 현재 주어진 권한이 50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계속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권한과 의무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

“먹고사는 문제가 정리되면 죽음에 관한 문제가 나오기 시작해요. 그 논의에 대한 필요성, 사회적 니즈가 굉장히 커졌어요. 그 필요성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법의학이 발전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제도는 법의학자에게 권한을 주지 않고 있어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겠어요? 법의학이 중심이 되지 못하고 위촉, 위원 형태로만 참여하는 거죠.”

문제는 법의학계 내부에서도 변화의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김 회장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반발이 있을 수도 있지만 법의학 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종의 패배주의가 있다”며 “지금의 시스템에 오랫동안 익숙해져왔기 때문에 ‘뭐 적당히 하고 말지’라는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검감정서를 쓸 때 알고 있는 정보를 다 적지 않는다. 그 내용을 다 적었다가는 책임질 일이 생길 수 있어 확실한 부분만 담는다”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정보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고 언급했다. 권한의 부재가 정보의 부족을 낳고 결국 사회적 피해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예로 들었다. 백남기 농민이 2015년 11월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1년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2016년 9월25일 사망한 사건이다. 당시 서울대병원 측은 ‘병사’를, 유족은 ‘외인사’를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부검 여부를 두고 검찰과 경찰, 유족 간의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진행되지 않았다. 

권한 없고 책임만 있다
사회적 신뢰도 못 받아

당시 대한법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던 김 회장은 방송에 나가 “부검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당시 부검을 반대한 사람 중에 한 명이 조국 당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였다. 모든 사람이 반대해도 그분만큼은 ‘부검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 생각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조 교수는)형법과 형사소송법을 가르치는 학자다. 피고인의 중요한 방어권을 구성하는 증거수집 방법인 부검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정말 실망했다. 그날 이후로 조 교수를 학자로 보지 않는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버린 정치인이라 생각한다”고 맹비난했다. 

김 회장은 법의학자에게 권한이 있었다면 두말할 것도 없이 부검을 진행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연예인 최진실씨의 부검 여부가 엇갈린 점도 지적했다. 그는 “두 사람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했다. 그런데 박원순 전 시장은 부검을 안 했고 최진실씨는 했다.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하고. 그걸 누가 정하느냐”고 반문했다. 

법의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감정 업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감정은 감정인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다시 말해 법의학을 하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신뢰 정도에 따라 그들이 내놓는 감정의 신뢰도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김 회장은 “감정을 아무나 하기 시작하면 신뢰가 깨지고 체계가 망가지게 된다”며 “법의학이 사회적으로 자리 잡지 못하면 감정 업무가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결국 검시제도의 개선 즉 입법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검시제도의 확립’은 대한법의학회의 최대 현안이자 숙원이다. 법의학계는 이미 내부적으로 ‘완성된 안’을 가지고 있다. 먼저 법의관이 반드시 다뤄야 하는 사건의 종류를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현행법에는 ‘변사나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 검사가 검시해야 한다’고만 돼있다. 

검시제도 개선 외쳐도
법안 7건 중 6건 폐기

변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법의학자가 사체를 검안할 수 있는 시설과 절차도 필요하다. 법의학자가 검안한 뒤 범죄 의심점이 발견되면 경찰과 검찰에 통보해 부검 영장을 청구하는 방식이다. 현재는 검사가 법원에 부검 영장을 청구할 때 법의학자의 의견은 반영되지 않는다. 현장에서 사체를 보는 경찰과 검안의의 의견이 절대적이다.

여기에 일종의 공시소를 만들어 법의학자가 상주하면서 변사체에 대한 영상·CT·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한 뒤 부검 여부를 기준으로 분류작업을 하면 시체검안서 사망원인에 ‘불상’ 대신 진단명을 써넣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회장은 현재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확인이 어려운 의무기록 자료까지 볼 수 있다면 50% 이상의 사체를 분류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문제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2005년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의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같은 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총 7건의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6건이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아주 오랫동안 희망고문을 받았어요. 유시민 전 의원이 보건복지부 장관을 할 때 공청회도 하고 토론회도 했지만 아무것도 진행된 건 없어요. 매년 비슷한 법안이 나오고 폐기되고를 반복했죠. 이제는 국회의원의 진정성도 의심스러워요. 법안 발의 건수 때문에 법의학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변두리 신세

김 회장은 지난달 29일 일어난 ‘이태원 참사’ 관련 추가 인터뷰에서 “156명이나 사망한 대형 참사인데 여기서도 법의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대검은 검시를 했다는데 법의학자는 이런 현장에서조차 주변인에 머물고 있다. 사건을 제대로 수습하기 위해서는 사체를 한곳에 모아 사망원인을 살피고 검사 후 부검 여부를 가린 뒤 유족에게 돌려드리는 작업을 했어야 하는데 지금 현실은 어떤가”라고 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김장한 회장은?]

▲서울대 의과대학 의학과
▲서울대 법과대학 법학과
▲대한법의학회 회장
▲대한의료법학회 회장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 회장
▲대한의료윤리학회 부회장
▲한국생명윤리학회 이사
▲서울아산병원 임상시험심사위원회 위원
▲울산의대 인문사회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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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