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⑥한국 법의학계 현실

과학수사? 꿈같은 얘기하고 있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한국 법의학계를 옭아매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20여년째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제도로 들어가면 ‘주변인’에 불과한 신세다. 과학수사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결국 ‘마이너’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법의학계의 딜레마, 인력 충원이냐 아니면 제도 개선이냐.

죽음의 순간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에 따라 후속 절차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대개 병사로 처리된다. 병사일 경우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 곧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반면 변사는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경찰이 개입하고 필요하면 검찰과 법원이, 더 나아가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등장한다. 

변사 처리
허점 있다

경찰청 훈령 ‘변사사건 처리규칙’에는 변사를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범죄와 관련됐거나 범죄가 의심되는 사망 ▲자연재해·교통사고·안전사고·산업재해·화재·익사 등 사고상 사망 ▲극단적 선택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망 ▲연행·구금·신문 등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보건·복지·요양 관련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사망 ▲마약·농약·알코올·가스·약물 등에 의한 급성 중독이 의심되는 사망 ▲그밖에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 등이다.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사체를 살핀다. 경찰 소속 검시조사관과 검안의가 사체의 외표를 살피는 검안을 진행하고 사인을 찾는다. 뚜렷한 사인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부검 여부에 대한 소견을 밝힌다. 경찰은 부검 진행을 위해 ‘변사사건 발생 보고 및 지휘 건의서’를 작성해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는 ‘변사사건 발생보고 및 지휘건의에 대한 지휘서’를 토대로 부검을 지휘한다. 이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 

수십년째 변사사건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실제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는 ‘변사체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檢視)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검시 권한을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검시는 변사자나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포함해 현장 상황 등 사건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과정이다. 검시를 통해 치명적 질병이 분명하게 밝혀지거나 범죄 의심점이 드러나면 오히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인이 뚜렷하면 병사로 처리해 장례를 치르면 되고, 범죄 피해라는 판단이 서면 부검을 하면 된다. 

문제는 사인이 아리송할 때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망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가 필요하다. 둘 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을 가진 자만 발급할 수 있다.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 달리 변사사건은 대체로 시체검안서로 갈음된다.

검사에 독점적 권한 부여
법의학자 아무 권한 없어

이때 검안의의 전문성에 따라 사인이 널을 뛰는 경우가 생긴다. 

법의학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시 과정에 ‘사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변사자를 한곳으로 모아 부검 여부를 기준으로 검시할 수 있는 공시소 같은 물적 시설이 필요하다”며 “변사체가 오면 전문가가 밤새 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해 1차 분류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현장을 수사한 자료를 공유해주면 우리는 변사체를 육안으로 검사한 뒤 피를 뽑고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거다. 이때 의무기록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시체검안서의 사망원인 부분을 진단명으로 채울 수 있다. 지금 이걸 못하니까 전부 부검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또 과부하가 걸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대한법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시제도 입법을 위해 수십년째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5년 윤호중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20여년 동안 검시제도와 관련해 7개 법안이 발의됐다. 

2005년 4월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검시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로 검시 대상을 두루뭉술하게 정해둔 것을 ‘범죄행위에 의한 사망, 교도소, 경찰서 유치장, 기타 국가기관에 의해 시설에 수용된 자의 사망, 그 밖에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의 경우’로 구체화했다.

검시전문가
양성 취지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2005년 10월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담았다. 검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검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검시 전문가가 아닌 수사기관이나 경찰공의 등의 단순한 검안을 거쳐 사건이 종결되면서 ‘억울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최규식 의원(민주당)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222조(변사자의 검시)에 4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사가 검시를 진행할 때 유가족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사전고지의 의무를 하도록 했다. 검사의 검시권 독점에 제동을 거는 시도로 풀이됐다. 

19대 국회에서는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사체 발견과 개인 식별 과정에서 미흡한 초동대처로 국민 불신과 사회 혼란이 크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에 법의학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법의관 법안은 법의관 양성과 검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검시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한다. 검시와 검안, 해부의 주체를 법의관으로 하고 위원장을 비롯해 7명으로 구성된 검시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범죄 예방과 검시 인력 양성을 위한 법이라고 명시했다. 

2017년 6월 정갑윤 의원(자유한국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변사체에 대한 검안, 부검 여부의 결정과 시행, 사망원인과 종류 결정 등에 있어서 수사기관을 지원할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과 시설이 필요한데 국과수만으로는 부족한 형편이니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정부 부처
얽혀 있어

2018년 3월에는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반의사가 검안을 담당하는 사례가 많아 시체검안서와 부검감정서의 일치율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검시관이 사망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망원인 등을 전문적으로 밝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진 의원은 지난해에도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시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의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7개 법안 중 지난해 발의한 진 의원 법안(계류 중)을 제외하고 모두 ‘임기만료 폐기’ 됐다. 17대부터 21대 국회까지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 의원 법안도 2번의 토론회를 거쳐 발의됐지만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동안 검시제도 관련 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됐다. 검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진영논리가 없었던 셈이다. 특히 검시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모두 일맥상통했다. 역으로 말하면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국민의 삶 특정 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장한 회장은 “검찰은 법무부, 경찰은 행정안전부, 군 사망사고는 국방부, 의무기록은 보건복지부 등 검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부처와의 협업이 필수”라며 “그런데 여러 부처가 관련돼있다 보니 추진 주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진행 과정에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번번이 무산되자 법의학계에서는 ‘희망고문’ ‘법안 발의 개수를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여기에 법의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이 부각되면서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

‘국민의 인권 보호’ 취지
법안 7개 중 6개 버려져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조교수는 “10년 넘게 제도에 대해 말해왔지만 아마 다 안 될 거다. 제도를 가지고 가면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뽑을 건데’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법의관 양성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만들면 사람이 충원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원이 늘었는데도 채우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2014년 유벙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 등을 거치면서 크게 늘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2015년 28명이었던 법의관 정원은 2016년 38명, 2017년 47명, 2018년 54명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후 2019년 55명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53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국과수 정원을 꽉 채운 적은 한 해도 없다. 올해 국과수에 근무 중인 법의관은 35명으로 충원율은 66%에 머물러 있다. 대학 법의학교실, 민간 법의의원 등으로 넓혀도 부검을 할 수 있는 인력은 60여명에 그친다.

대한법의학회가 2020년 국과수의 용역을 받아 내놓은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63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대학에 재직하거나 은퇴 후 촉탁부검을 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의사는 전국적으로 32명(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뿐이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6.2%가 ‘법의학자 수는 200명 이상이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100명 이상’으로 넓히면 73.8%에 이른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현재 법의학자 수와 비교해 2~3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국과수 원장(2012~2016년)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법의관을 양성하려면 기존 인력을 유지한 상태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보수도 열악하다 보니 기존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음지에서 양지로, 덜 힘든 곳으로, 더 명예스러운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과수가 더 명예스럽고, 더 인정받는 곳이라면 왜 그곳을 떠나겠나”고 자조했다. 

내부에서도
자조 목소리

이어 “사회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한 점 억울함도 없게 하려면 지금의 검시제도로는 무리다. 국과수에 있는 동안 ‘검시제도를 개선하고 인력을 키워서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내내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에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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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