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①설문조사 남녀 1016명에 물었다

생전 가난, 죽어서도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엄마 배속에 있던 기간을 인생의 예고편이라 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본편, 죽음 이후는 후일담 정도로 여기면 될까. 영화마다 주제와 구성, 그리고 배경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의 인생은 ‘나’라는 감독이자 주연의 의도에 따라 흘러간다. 다만 결말은 똑같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지난해 31만7680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870명이 세상을 떠났다. 사망자 수만큼 각기 다른 죽음이 있다. 누군가는 병원에서 가족의 애도를 마지막 자장가 삼아 세상을 떠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차디찬 집에서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스러져 간다.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다른 죽음
애도의 격차

죽음의 순간을 제외하면 모든 순간 ‘차이’는 존재한다. 특히 삶의 빈부격차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빈부격차로 이어진다. 한정란 한서대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살아 있을 때 월급 차이가 200만원 정도였다면 사망할 때쯤엔 그 격차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격차는 죽음 뒤에 오히려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삶의 빈부격차를 나타낼 때 ‘균등화 처분 가능 소득 5분위 배율’을 주로 사용한다. 소득 상위20%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값이 클수록 소득불평등 정도가 크다. 올해 2분기 균등화 처분 가능 소득 5분위 배율은 5.60배로 1년 전(5.59배)보다 0.01배 포인트 높아졌다.

소폭이지만 5분위 배율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한 것은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만이다.


소득 차이는 기대수명 차이로 이어진다. 삶의 격차가 죽음의 격차로 이어지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조사한 ‘보험료 분위별 기대수명 지표’에 따르면 2020년 평균 기대수명은 84.72세다. 기대수명은 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를 말한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기대수명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2020년 보험료 1분위(하위20%)에 해당하는 사람의 기대수명은 79.78세다. 반면 보험료 5분위(상위20%)의 기대수명은 87.8세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에 따라 수명이 8년 넘게 차이난다는 뜻이다. 지역별로는 제주도에서 8.71년으로 가장 컸고, 울산에서 5.96년으로 가장 작았다. 

“못 버는 사람이 수명도 짧다”
기대수명·건강수명 차이 커져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기대수명만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기대수명이 양적인 측면에서 건강수준을 보여준다면 건강수명은 질적인 측면에서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상위20%(73.3세)와 하위20%(65.2년)의 건강수명 격차는 8.1년이다. 

박진욱 계명대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소득수준에 따른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차이에 대해 “소득에 따라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건강 관련 자원의 양과 질이 다르다. 의식주 같은 삶의 필수적인 자원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운동 같은 건강 증진 행동, 건강검진 같은 의료서비스 이용에서도 소득이 높은 사람은 보다 쉽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차이가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5년 동안 기대수명 차이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가장 낮은 소득 분위 집단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기대수명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양상이 유지되면 기대수명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과 질
차이 보여

삶의 과정에서 벌어진 격차는 죽음의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사망을 확인하는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에는 사망의 종류가 ▲병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으로 구분돼있다. 병사는 병으로 사망한 경우, 외인사는 자연사 외의 모든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극단적 선택, 사고사 등으로 사망한 경우를 뜻한다. 기타 및 불상은 말 그대로 사인을 알 수 없는 경우다. 

사체를 통해 죽음을 보는 법의학자들은 부검대에 올라오는 사람 가운데 ‘사회적 약자’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한 법의학자는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부검은 범죄와의 연관성, 사인 규명을 위해 진행된다. 범죄에 노출되거나 혼자 혹은 갑자기 사망한 사람 등이 부검대 위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2015~2021년 서울 강서·구로·양천과 경기 부천 지역에서 현장검안 사업을 시행했다.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모든 변사사건(교통사고 제외)에 법의관이 직접 출동해 검안을 진행했다. 당시 현장검안에 참여했던 한 법의관은 “사회적 보살핌이 전혀 없는 이른바 복지의 사각지대를 봤다”고 말했다. 

변사자들은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죽어갔고 부패된 채 발견됐다. 목을 매거나 뛰어내려서 혹은 연탄을 피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해 첫날이나 명절, 크리스마스 등 대부분의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는 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통계에는 사망자 1명으로 기록되겠지만 그 죽음 안에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 이후는 더 암울하다. 한국은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3일장을 치른다. 유족과 주변인에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직장’의 형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애도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아예 애도인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로운 죽음’의 전형적인 형태다. 

외롭고
쓸쓸하게

서울시 어르신 복지과에 따르면 2020년 무연고 사망자는 665명이다. 이 수치는 지난해 858명으로 늘었고 올해 9월까지 796명에 이르렀다.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올해 무연고 사망자 수가 서울에서만 11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국적으로는 3000명이 넘는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물었다. ‘삶의 격차가 있듯 죽음에도 격차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7.6%는 ‘존재한다’고 답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과반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20~40대는 그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준비는 반비례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72.9%)은 죽음에 대해 ‘가끔 혹은 자주’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반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7.9%에 그쳤다. 특히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았다.


20대에서 93.6%로 가장 높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장례는 개인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본인의 장례는 본인이나 가정에서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스스로 직접 준비해야 한다’ 20.9%, ‘자녀가 준비해야 한다’ 30.5%, ‘배우자가 준비해야 한다’ 19.6% 등이다. 국가(10.3%)나 지방자치단체(6.0%)가 준비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16.3%에 머물렀다. 

무연고 사망자 국가서 챙겨야
허술한 안전망에 사람 죽는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장례비용이 비싸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2015년 기준 한국의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달한다. 응답자의 70.2%가 비싸다고 답했고 이 중 26.8%는 ‘너무 비싸다’고 했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한국은 죽음과 관련한 절차가 굉장히 불편하다. 하지만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바가지를 써도’ ‘뭘 해오라고 해도’ 대부분 꾹 참고 넘어간다”며 “그런데 1가구로 따지면 평생에 몇 번이지만 국가로 따지면 1년에 3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 고독사에 대해서는 ‘경제적 빈곤’을 원인으로 꼽는 응답자가 34.2%로 가장 많았다. ‘사회 안전망 미흡’(26.4%) ‘친구, 가족과의 단절’(14.0%) ‘1인 가구 증가’(12.9%) ‘개인 문제’(8.8%) 순으로 나타났다. 


무연고 사망자나 고독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개인이 본인의 장례를 장담할 수 없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죽음이 국가 즉 ‘사회보장’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출산 정책에 15년 동안 380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과 달리 죽음, 특히 장례 영역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도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대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크게 보는 응답자가 많았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54.8%로 과반에 달했다. 지자체라고 답한 응답자는 29.6%로 나타났다. 국가와 지자체, 즉 사회의 책임으로 본 응답자는 84.4%에 이르렀다.

본인의 장례는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연고자가 없는 사람의 죽음은 공공의 영역이라 답한 것이다. 

생각하지만
준비 안 해

2012~2016년 국과수 2대 원장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죽음의 현장은 냉혹하다. 현장에 있다 보면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죽음, 늦게 발견되는 죽음 등이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에 매달려 있다. 국가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런 죽음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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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