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①설문조사 남녀 1016명에 물었다

생전 가난, 죽어서도 간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엄마 배속에 있던 기간을 인생의 예고편이라 하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본편, 죽음 이후는 후일담 정도로 여기면 될까. 영화마다 주제와 구성, 그리고 배경이 모두 다르듯 저마다의 인생은 ‘나’라는 감독이자 주연의 의도에 따라 흘러간다. 다만 결말은 똑같다. 사람은 모두 죽는다.

지난해 31만7680명이 사망했다. 하루 평균 870명이 세상을 떠났다. 사망자 수만큼 각기 다른 죽음이 있다. 누군가는 병원에서 가족의 애도를 마지막 자장가 삼아 세상을 떠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차디찬 집에서 돌봐주는 사람 하나 없이 스러져 간다. 한참 뒤에야 발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다른 죽음
애도의 격차

죽음의 순간을 제외하면 모든 순간 ‘차이’는 존재한다. 특히 삶의 빈부격차는 필연적으로 죽음의 빈부격차로 이어진다. 한정란 한서대 보건상담복지학과 교수는 “살아 있을 때 월급 차이가 200만원 정도였다면 사망할 때쯤엔 그 격차가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격차는 죽음 뒤에 오히려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삶의 빈부격차를 나타낼 때 ‘균등화 처분 가능 소득 5분위 배율’을 주로 사용한다. 소득 상위20%의 평균소득을 소득 하위20%의 평균소득으로 나눈 값으로 값이 클수록 소득불평등 정도가 크다. 올해 2분기 균등화 처분 가능 소득 5분위 배율은 5.60배로 1년 전(5.59배)보다 0.01배 포인트 높아졌다.

소폭이지만 5분위 배율이 전년 동기 대비 상승한 것은 지난해 2분기 이후 4분기 만이다.


소득 차이는 기대수명 차이로 이어진다. 삶의 격차가 죽음의 격차로 이어지는 셈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조사한 ‘보험료 분위별 기대수명 지표’에 따르면 2020년 평균 기대수명은 84.72세다. 기대수명은 0세 출생자가 앞으로 생존할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생존 연수를 말한다. 사람이 평균적으로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기대수명은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2020년 보험료 1분위(하위20%)에 해당하는 사람의 기대수명은 79.78세다. 반면 보험료 5분위(상위20%)의 기대수명은 87.8세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에 따라 수명이 8년 넘게 차이난다는 뜻이다. 지역별로는 제주도에서 8.71년으로 가장 컸고, 울산에서 5.96년으로 가장 작았다. 

“못 버는 사람이 수명도 짧다”
기대수명·건강수명 차이 커져

소득수준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 것은 기대수명만이 아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특별한 이상 없이 생활하는 기간을 뜻하는 건강수명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기대수명이 양적인 측면에서 건강수준을 보여준다면 건강수명은 질적인 측면에서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상위20%(73.3세)와 하위20%(65.2년)의 건강수명 격차는 8.1년이다. 

박진욱 계명대 공중보건학과 교수는 소득수준에 따른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차이에 대해 “소득에 따라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건강 관련 자원의 양과 질이 다르다. 의식주 같은 삶의 필수적인 자원을 선택하는 과정부터 운동 같은 건강 증진 행동, 건강검진 같은 의료서비스 이용에서도 소득이 높은 사람은 보다 쉽게 건강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기대수명과 건강수명 차이가 당분간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보면 2016~2020년 5년 동안 기대수명 차이가 증가하는 추세를 보였다. 특히 가장 낮은 소득 분위 집단에서 우리 사회 전체의 기대수명 증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양상이 유지되면 기대수명 차이는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양과 질
차이 보여

삶의 과정에서 벌어진 격차는 죽음의 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람의 사망을 확인하는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에는 사망의 종류가 ▲병사 ▲외인사 ▲기타 및 불상으로 구분돼있다. 병사는 병으로 사망한 경우, 외인사는 자연사 외의 모든 죽음을 일컫는 말로 극단적 선택, 사고사 등으로 사망한 경우를 뜻한다. 기타 및 불상은 말 그대로 사인을 알 수 없는 경우다. 

사체를 통해 죽음을 보는 법의학자들은 부검대에 올라오는 사람 가운데 ‘사회적 약자’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대해 한 법의학자는 “당연하다”고 단언했다. 부검은 범죄와의 연관성, 사인 규명을 위해 진행된다. 범죄에 노출되거나 혼자 혹은 갑자기 사망한 사람 등이 부검대 위에 올라갈 확률이 높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2015~2021년 서울 강서·구로·양천과 경기 부천 지역에서 현장검안 사업을 시행했다. 해당 지역에서 발생한 모든 변사사건(교통사고 제외)에 법의관이 직접 출동해 검안을 진행했다. 당시 현장검안에 참여했던 한 법의관은 “사회적 보살핌이 전혀 없는 이른바 복지의 사각지대를 봤다”고 말했다. 

변사자들은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죽어갔고 부패된 채 발견됐다. 목을 매거나 뛰어내려서 혹은 연탄을 피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해 첫날이나 명절, 크리스마스 등 대부분의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는 날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다. 통계에는 사망자 1명으로 기록되겠지만 그 죽음 안에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 도사리고 있다.

죽음 이후는 더 암울하다. 한국은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3일장을 치른다. 유족과 주변인에게 세상을 떠난 고인을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하지만 무연고 사망자는 ‘직장’의 형태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애도 시간이 없는 것은 물론 아예 애도인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외로운 죽음’의 전형적인 형태다. 

외롭고
쓸쓸하게

서울시 어르신 복지과에 따르면 2020년 무연고 사망자는 665명이다. 이 수치는 지난해 858명으로 늘었고 올해 9월까지 796명에 이르렀다. 서울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를 지원하는 사단법인 나눔과나눔은 올해 무연고 사망자 수가 서울에서만 11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관측했다. 전국적으로는 3000명이 넘는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죽음의 격차’에 대해 물었다. ‘삶의 격차가 있듯 죽음에도 격차가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7.6%는 ‘존재한다’고 답했다.

60세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과반이 ‘존재한다’고 답했고 20~40대는 그 비율이 60% 이상으로 높게 나타났다. 

죽음에 대한 생각과 준비는 반비례했다. 응답자 10명 중 7명(72.9%)은 죽음에 대해 ‘가끔 혹은 자주’ 생각해봤다고 답했다. 반면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7.9%에 그쳤다. 특히 죽음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응답은 모든 연령대에서 높았다.


20대에서 93.6%로 가장 높았고 연령이 높아질수록 낮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장례는 개인의 영역이라 생각하는 응답자가 많았다. 본인의 장례는 본인이나 가정에서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스스로 직접 준비해야 한다’ 20.9%, ‘자녀가 준비해야 한다’ 30.5%, ‘배우자가 준비해야 한다’ 19.6% 등이다. 국가(10.3%)나 지방자치단체(6.0%)가 준비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16.3%에 머물렀다. 

무연고 사망자 국가서 챙겨야
허술한 안전망에 사람 죽는다

응답자 10명 중 7명은 장례비용이 비싸다고 답했다. 한국소비자원 조사 결과 2015년 기준 한국의 평균 장례비용은 1380만원에 달한다. 응답자의 70.2%가 비싸다고 답했고 이 중 26.8%는 ‘너무 비싸다’고 했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한국은 죽음과 관련한 절차가 굉장히 불편하다. 하지만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바가지를 써도’ ‘뭘 해오라고 해도’ 대부분 꾹 참고 넘어간다”며 “그런데 1가구로 따지면 평생에 몇 번이지만 국가로 따지면 1년에 30만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청년 고독사에 대해서는 ‘경제적 빈곤’을 원인으로 꼽는 응답자가 34.2%로 가장 많았다. ‘사회 안전망 미흡’(26.4%) ‘친구, 가족과의 단절’(14.0%) ‘1인 가구 증가’(12.9%) ‘개인 문제’(8.8%) 순으로 나타났다. 


무연고 사망자나 고독사 사망자 수가 증가하면서 개인이 본인의 장례를 장담할 수 없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죽음이 국가 즉 ‘사회보장’의 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출산 정책에 15년 동안 380조원의 예산이 투입된 것과 달리 죽음, 특히 장례 영역은 여전히 시장에 맡겨져 있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그래도 무연고 사망자 장례에 대해서는 국가의 역할을 크게 보는 응답자가 많았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답한 비율이 54.8%로 과반에 달했다. 지자체라고 답한 응답자는 29.6%로 나타났다. 국가와 지자체, 즉 사회의 책임으로 본 응답자는 84.4%에 이르렀다.

본인의 장례는 개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연고자가 없는 사람의 죽음은 공공의 영역이라 답한 것이다. 

생각하지만
준비 안 해

2012~2016년 국과수 2대 원장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죽음의 현장은 냉혹하다. 현장에 있다 보면 많은 사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죽음, 늦게 발견되는 죽음 등이 사회의 허술한 안전망에 매달려 있다. 국가가 역할을 하지 못하면 이런 죽음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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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