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②국과수 현장검안 2223일의 기록 최초 공개

가난한 죽음이 남긴 숙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변고로 사망한 고인의 첫 번째 조문객이자 마지막 관찰자였다. 현장 구석구석에 짙게 눌러 붙은 죽음의 흔적으로 고인의 마지막 숨을 살폈다. 6년1개월, 2223일의 기록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했다.

한국 법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뽑을 때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2014년) ▲충북 증평 사건(2016년)은 빠지지 않는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대외적으로 한국 법의학의 수준을 알렸다는 점에서, 뒤의 두 사건은 현행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손꼽힌다. 

병사 관행
화 불렀다

2014년 6월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반백골화된 변사체가 발견됐다. 사체는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은 사체 발견 직후 무연고자로 판단, 순천 지역의 촉탁의를 통해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을 진행해도 사인이 나오지 않자 경찰은 단순 노숙자 변사사건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사체의 대퇴부뼈와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감정을 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유 전 회장의 소재를 찾고 있던 경찰은 ‘유령을 쫓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동시에 변사사건 현장에 사체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2015년 3월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이하 서울연구소)를 중심으로 ‘현장검안’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서울경찰청 광역과학수사 8권역인 강서·양천·구로 지역에서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국과수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 출동하고 검안하는 업무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현장검안은 법의관 1명과 법의조사관 1명이 짝을 이뤄 24시간 대기하다가 변사사건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출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의관, 법의조사관, 법의학 교수 등이 휴일 없이 24시간 현업근무체제로 참여했다.

여기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에서 시행 중이던 ‘365부검’과 연계해 부검도 진행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거의 모든 법의학자가 이 사업에 동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5월 충북 증평에서 80대 노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에서 80대 여성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불에 덮인 채 발견된 사체는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경찰은 인근 병원 의사가 쓴 시체검안서를 참고해 ‘병사’로 결론내렸다.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현장에 ‘죽음 전문가’ 필요성 ↑
2014·2016년 사건 결정적 이유

유족이 사망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방안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노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유족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전달받았지만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변사사건 처리지침이 개정됐다. 변사 처리 기준을 강화하고 부검 권고 대상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실제 증평 사건을 계기로 국과수 부검 건수가 증가했다. 


변사사건 처리지침에는 ▲영아 및 아동 돌연사 ▲구금‧조사 등 법 집행 과정에서의 사망 ▲중독사 ▲탄화 ▲부패 ▲백골화 ▲익사나 추락사에서 목격자나 CCTV가 없는 경우 ▲기타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부검을 권고한다고 돼있다. 또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반드시 변사사건으로 처리하고 단순 병사 등으로 처리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변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담당 수사관은 먼저 현장과 변사자를 조사한다. 이후 변사자를 영안실로 옮기면 그곳에서 수사관의 진술을 토대로 검안의는 현장조사를 하지 않고 시체검안서를 작성하는 관행이 있다”며 “담당수사관은 사인이 무엇인지보다 범죄 연루 여부를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경향이 강해서 타살 혐의점이 보이지 않으면 내인사(병사)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변사자의 사인이 병사로 판명되면 그다음부터는 경찰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유족이 사체를 인수해 장례를 치르면 된다. 수사기관의 영역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외인사 혹은 기타 및 불상으로 처리되고 부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경찰→검찰(검사)→법원→국과수 등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변사 처리
업무 늘어

연 3만건 전후의 변사사건을 다루는 경찰로선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과 증평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를 계기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현장검안은 2016년 정식사업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국과수 서울연구소는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강서·양천·구로지역의 현장검안을 진행했다. 2018년 2월부터는 경기 부천까지로 지역이 확대됐다.

<일요시사>가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6년1개월, 2223일 동안 진행한 현장검안 출동장부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기간 동안 국과수 법의관은 총 1만279건의 현장에 출동했다. 하루 평균 4.6건 꼴이다. 지역별로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등의 변사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 평균 각각 42건, 32건, 34건이다.

부천은 원미‧소사‧오정으로 구분했고 2370건으로 집계됐다. 부천은 2016년 원미‧소사‧오정구 등 3개 일반구를 폐지하고 36개 일반동, 10개 책임동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10개 책임동은 원미1동·심곡2동·중동·중4동·상2동(이상 원미구), 심곡본동·소사본동·괴안동(이상 소사구), 성곡동·오정동(이상 오정구) 등이다. 

연도별로는 2015년(3월부터) 803건, 2016년 1121건, 2017년 1197건, 2018년 1992건, 2019년 2122건, 2020년 2337건, 2020년(3월까지) 707건으로 나타났다. 2018년 2월부터 부천이 포함되면서 2018~2020년에 검안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하루 평균
5건 출동

현장검안을 진행한 전 지역에서 남성 사망자가 여성 사망자에 비해 많은 경향을 보였다. 전체 건수로 따지면 남성(6664건)이 여성(3605건)보다 1.8배 더 사망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31만7680명 가운데 남성은 17만1967명, 여성은 14만5713명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여성보다 1.1배 많다. 변사사건에서 남녀 간 차이가 전체 평균보다 크게 벌어진 것이다.


전체 변사자의 연령 평균은 65.8세로 나타났다. 사망자의 연령대는 전체 지역에서 50~80대에 두껍게 분포됐다. 50대 1699명, 60대 1706명, 70대 1961명, 80대 2122명 등이다. 생후 1년 미만 아동의 사망은 28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2명은 검안으로는 사인을 파악하지 못해 ‘기타 및 불상’으로 기재됐다.

사망의 종류별로는 전체 1만279건 중 병사가 4762건(46.3%)으로 가장 많았고, 외인사가 2699건(26.3%)으로 나타났다. 외인사는 극단적 선택·타살·사고사 등 자연사를 제외한 모든 죽음을 뜻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사인 불명’ 사망자 수다.

전체의 2818건(27.4%)은 사인이 판명되지 못했다. 강서 770건, 양천 626건, 구로 716건, 부천 706건 등이다. 비율로는 부천에서 29.8%, 구로에서 29.1%로 높았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 이른바 R코드에 잡힌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수 있다. R코드에는 ‘원인미상의 기타 돌연사’(R96) ‘증상의 발생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일어난 달리 설명되지 않는 사망’(R961)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망’(R98)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불명의 사망원인’(R99) 등이 포함된다.

24시간 근무체제 모든 변사사건 투입
강서·양천·구로·부천 네 지역 검안

2017년부터 지난 5년간 2만5497건, 2만8466건, 2만8176건, 3만1801건, 3만7833건 등으로 늘어났다. 


전체 사망자 수 대비 8.6%(2017년), 9.5%(2018년), 9.5%(2019년)의 비율이 2020년 10.4%, 지난해 11.9%로 증가했다. 변사사건의 원인불명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 수 대비 R코드 비율과 비교해 2.3배 이상 높다.

대한법의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2015년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에 따르면 사인불명인 경우에도 부검률은 40%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사인 규명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한국 사회는 사망자의 죽음 이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사인을 밝히려는 노력이 없다. 심지어 병사로 죽어도 무슨 병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범죄 혐의점에만 집중해 사망을 판단한다. 현장에 나가 변사사건을 마주하면서 당장 먹고사는 게 바쁜 사람은 사인에 관심을 가질 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외된 죽음을 위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한법의학회는 2018년 11월23일 ‘변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민의 건강, 안전, 범죄와 관련해 사망원인을 밝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는 죽음’을 변사로 정의했다. 형사소송법이나 의료법에는 변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대한법의학회는 변사를 정의하면서 ‘사인 규명’이라는 법의학의 사명과 ‘국가의 책임’을 담았다. 

국가 책임
어디까지?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했던 법의학자들은 “한 생명이 다할 때 그 생명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 그리고 남아있는 유가족에게 망인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 또한 국가의 의무이며 변사사건 현장에서 근무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과수 최민성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인터뷰

“송파 세모녀 또 나올 것”

최민성 법의관은 현장검안 사업 이후 가치관까지 바뀌었다고 말했다.

변사사건 현장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하면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국가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빈곤과 소외로 인한 죽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보호 부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 것.

지난달 2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최 법의관을 만났다. 

-현장에서 법의학자의 역할은 뭐였는지. 

▲변사체를 확인하고 경찰에 제출하는 서류(수사용 서류)의 부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내는 일을 했다. 이때 법의관이 내는 의견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결정은 경찰과 검찰이 한다. 일반적으로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부검을 해야 하지만 한국은 검찰과 경찰의 의견에 따라 ‘복불복’이다.

국가의 역할 필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부자가 살고 있던 집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들이 완전히 넋이 나가있어 사연이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장례 치를 돈이 없던 거였다. 심지어 그들이 살고 있던 임대주택은 아버지 명의로 돼있어 아들은 한 달 내로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또 한 번은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불을 들췄더니 결박된 상태였다. 할머니를 살해한 사람은 소주살 돈을 훔치기 위해 그 집에 침입했다고 했다. 

-현장검안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검찰과 경찰, 심지어 법의학자까지도 소외된 이들의 죽음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과거 ‘송파 세모녀 사건’이 있지 않았나. 또 다른 송파 세모녀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죽음에 국가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의학자는 죽음을 다루지만 국가는 소외된 죽음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면 애초에 죽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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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