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②국과수 현장검안 2223일의 기록 최초 공개

가난한 죽음이 남긴 숙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빠짐없이 현장으로 향했다. 이들은 변고로 사망한 고인의 첫 번째 조문객이자 마지막 관찰자였다. 현장 구석구석에 짙게 눌러 붙은 죽음의 흔적으로 고인의 마지막 숨을 살폈다. 6년1개월, 2223일의 기록을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했다.

한국 법의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사건을 뽑을 때 ▲대구 지하철 참사(2003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2014년) ▲충북 증평 사건(2016년)은 빠지지 않는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대외적으로 한국 법의학의 수준을 알렸다는 점에서, 뒤의 두 사건은 현행 검시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손꼽힌다. 

병사 관행
화 불렀다

2014년 6월12일 전남 순천의 한 매실밭에서 반백골화된 변사체가 발견됐다. 사체는 육안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였다. 경찰은 사체 발견 직후 무연고자로 판단, 순천 지역의 촉탁의를 통해 부검을 진행했다. 부검을 진행해도 사인이 나오지 않자 경찰은 단순 노숙자 변사사건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서 사체의 대퇴부뼈와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감정을 한 결과, 사체의 신원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졌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유 전 회장의 소재를 찾고 있던 경찰은 ‘유령을 쫓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동시에 변사사건 현장에 사체를 면밀히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2015년 3월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이하 서울연구소)를 중심으로 ‘현장검안’ 시범사업이 시작됐다. 서울경찰청 광역과학수사 8권역인 강서·양천·구로 지역에서 교통사고 사망사건을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국과수 법의관이 직접 현장에 출동하고 검안하는 업무를 진행하기로 한 것이다.

현장검안은 법의관 1명과 법의조사관 1명이 짝을 이뤄 24시간 대기하다가 변사사건이 발생했다는 연락을 받으면 출동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의관, 법의조사관, 법의학 교수 등이 휴일 없이 24시간 현업근무체제로 참여했다.

여기에 서울연구소 법의조사과에서 시행 중이던 ‘365부검’과 연계해 부검도 진행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에서 활동하던 거의 모든 법의학자가 이 사업에 동참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5월 충북 증평에서 80대 노인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충북 증평군 증평읍의 한 마을에서 80대 여성이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불에 덮인 채 발견된 사체는 부패가 진행된 상태였다. 경찰은 인근 병원 의사가 쓴 시체검안서를 참고해 ‘병사’로 결론내렸다.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현장에 ‘죽음 전문가’ 필요성 ↑
2014·2016년 사건 결정적 이유

유족이 사망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방안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면서 상황이 급반전됐다. 노인이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경찰은 유족으로부터 CCTV 영상을 전달받았지만 확인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변사사건 처리지침이 개정됐다. 변사 처리 기준을 강화하고 부검 권고 대상을 늘린다는 내용이다. 실제 증평 사건을 계기로 국과수 부검 건수가 증가했다. 


변사사건 처리지침에는 ▲영아 및 아동 돌연사 ▲구금‧조사 등 법 집행 과정에서의 사망 ▲중독사 ▲탄화 ▲부패 ▲백골화 ▲익사나 추락사에서 목격자나 CCTV가 없는 경우 ▲기타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해 필요한 경우 부검을 권고한다고 돼있다. 또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 반드시 변사사건으로 처리하고 단순 병사 등으로 처리를 금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법의학계 관계자는 “변사사건이 발생했을 때 담당 수사관은 먼저 현장과 변사자를 조사한다. 이후 변사자를 영안실로 옮기면 그곳에서 수사관의 진술을 토대로 검안의는 현장조사를 하지 않고 시체검안서를 작성하는 관행이 있다”며 “담당수사관은 사인이 무엇인지보다 범죄 연루 여부를 중심으로 사건을 보는 경향이 강해서 타살 혐의점이 보이지 않으면 내인사(병사)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변사자의 사인이 병사로 판명되면 그다음부터는 경찰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 유족이 사체를 인수해 장례를 치르면 된다. 수사기관의 영역에서 개인의 영역으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외인사 혹은 기타 및 불상으로 처리되고 부검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그때부터는 경찰→검찰(검사)→법원→국과수 등 복잡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변사 처리
업무 늘어

연 3만건 전후의 변사사건을 다루는 경찰로선 까다롭게 느낄 수 있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과 증평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이를 계기로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현장검안은 2016년 정식사업으로 본궤도에 올랐다. 국과수 서울연구소는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강서·양천·구로지역의 현장검안을 진행했다. 2018년 2월부터는 경기 부천까지로 지역이 확대됐다.

<일요시사>가 국과수 서울연구소에서 6년1개월, 2223일 동안 진행한 현장검안 출동장부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기간 동안 국과수 법의관은 총 1만279건의 현장에 출동했다. 하루 평균 4.6건 꼴이다. 지역별로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등의 변사사건이 일어났다. 한 달 평균 각각 42건, 32건, 34건이다.

부천은 원미‧소사‧오정으로 구분했고 2370건으로 집계됐다. 부천은 2016년 원미‧소사‧오정구 등 3개 일반구를 폐지하고 36개 일반동, 10개 책임동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했다. 10개 책임동은 원미1동·심곡2동·중동·중4동·상2동(이상 원미구), 심곡본동·소사본동·괴안동(이상 소사구), 성곡동·오정동(이상 오정구) 등이다. 

연도별로는 2015년(3월부터) 803건, 2016년 1121건, 2017년 1197건, 2018년 1992건, 2019년 2122건, 2020년 2337건, 2020년(3월까지) 707건으로 나타났다. 2018년 2월부터 부천이 포함되면서 2018~2020년에 검안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하루 평균
5건 출동

현장검안을 진행한 전 지역에서 남성 사망자가 여성 사망자에 비해 많은 경향을 보였다. 전체 건수로 따지면 남성(6664건)이 여성(3605건)보다 1.8배 더 사망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사망자 31만7680명 가운데 남성은 17만1967명, 여성은 14만5713명으로 나타났다.

남성이 여성보다 1.1배 많다. 변사사건에서 남녀 간 차이가 전체 평균보다 크게 벌어진 것이다.


전체 변사자의 연령 평균은 65.8세로 나타났다. 사망자의 연령대는 전체 지역에서 50~80대에 두껍게 분포됐다. 50대 1699명, 60대 1706명, 70대 1961명, 80대 2122명 등이다. 생후 1년 미만 아동의 사망은 28건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22명은 검안으로는 사인을 파악하지 못해 ‘기타 및 불상’으로 기재됐다.

사망의 종류별로는 전체 1만279건 중 병사가 4762건(46.3%)으로 가장 많았고, 외인사가 2699건(26.3%)으로 나타났다. 외인사는 극단적 선택·타살·사고사 등 자연사를 제외한 모든 죽음을 뜻한다. 눈여겨볼 부분은 ‘사인 불명’ 사망자 수다.

전체의 2818건(27.4%)은 사인이 판명되지 못했다. 강서 770건, 양천 626건, 구로 716건, 부천 706건 등이다. 비율로는 부천에서 29.8%, 구로에서 29.1%로 높았다. 

통계청 사망원인 통계를 보면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 이른바 R코드에 잡힌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수 있다. R코드에는 ‘원인미상의 기타 돌연사’(R96) ‘증상의 발생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일어난 달리 설명되지 않는 사망’(R961)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망’(R98)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불명의 사망원인’(R99) 등이 포함된다.

24시간 근무체제 모든 변사사건 투입
강서·양천·구로·부천 네 지역 검안

2017년부터 지난 5년간 2만5497건, 2만8466건, 2만8176건, 3만1801건, 3만7833건 등으로 늘어났다. 


전체 사망자 수 대비 8.6%(2017년), 9.5%(2018년), 9.5%(2019년)의 비율이 2020년 10.4%, 지난해 11.9%로 증가했다. 변사사건의 원인불명 사망자 비율은 전체 사망자 수 대비 R코드 비율과 비교해 2.3배 이상 높다.

대한법의학회 학회지에 게재된 <2015년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에 따르면 사인불명인 경우에도 부검률은 40%로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사인 규명을 위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은 “한국 사회는 사망자의 죽음 이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특히 사인을 밝히려는 노력이 없다. 심지어 병사로 죽어도 무슨 병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범죄 혐의점에만 집중해 사망을 판단한다. 현장에 나가 변사사건을 마주하면서 당장 먹고사는 게 바쁜 사람은 사인에 관심을 가질 새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소외된 죽음을 위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대한법의학회는 2018년 11월23일 ‘변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국민의 건강, 안전, 범죄와 관련해 사망원인을 밝히고 국가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는 죽음’을 변사로 정의했다. 형사소송법이나 의료법에는 변사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다.

대한법의학회는 변사를 정의하면서 ‘사인 규명’이라는 법의학의 사명과 ‘국가의 책임’을 담았다. 

국가 책임
어디까지?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했던 법의학자들은 “한 생명이 다할 때 그 생명의 사망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혀주는 것, 그리고 남아있는 유가족에게 망인의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주는 것 또한 국가의 의무이며 변사사건 현장에서 근무하는 모든 이들이 가져야 할 책임과 의무”라고 강조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과수 최민성 서울과학수사연구소 법의관 인터뷰

“송파 세모녀 또 나올 것”

최민성 법의관은 현장검안 사업 이후 가치관까지 바뀌었다고 말했다.

변사사건 현장에서 가난한 죽음을 숱하게 목격하면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국가적 복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했다.

빈곤과 소외로 인한 죽음이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보호 부재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된 것.

지난달 2일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최 법의관을 만났다. 

-현장에서 법의학자의 역할은 뭐였는지. 

▲변사체를 확인하고 경찰에 제출하는 서류(수사용 서류)의 부검 여부에 대한 의견을 내는 일을 했다. 이때 법의관이 내는 의견은 ‘참고사항’에 불과하다. 결정은 경찰과 검찰이 한다. 일반적으로 사인이 불명확한 경우에는 부검을 해야 하지만 한국은 검찰과 경찰의 의견에 따라 ‘복불복’이다.

국가의 역할 필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는지.

▲부자가 살고 있던 집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 아들이 완전히 넋이 나가있어 사연이 궁금했는데 알고 봤더니 장례 치를 돈이 없던 거였다. 심지어 그들이 살고 있던 임대주택은 아버지 명의로 돼있어 아들은 한 달 내로 집을 비워줘야 할 상황이었다. 또 한 번은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신고를 받았다. 이불을 들췄더니 결박된 상태였다. 할머니를 살해한 사람은 소주살 돈을 훔치기 위해 그 집에 침입했다고 했다. 

-현장검안 과정에서 느낀 바가 있다면.

▲검찰과 경찰, 심지어 법의학자까지도 소외된 이들의 죽음에는 큰 관심이 없다. 과거 ‘송파 세모녀 사건’이 있지 않았나. 또 다른 송파 세모녀가 계속해서 나타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의 죽음에 국가가 좀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법의학자는 죽음을 다루지만 국가는 소외된 죽음 자체를 줄일 수 있다. 국가가 관심을 기울이면 애초에 죽지 않도록 만들 수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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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