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③외로운 선택 ‘1149’ 굴레

모두가 기쁜 날, 누군가는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망 장소·사망의 원인·사망의 종류. 한 사람의 삶이 종이 한 장으로 갈음된다. 이 종이에 적힌 내용으로 죽음 이후의 상황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으로, 누군가는 부검대로. 고인의 마지막 숨이 남은 현장에는 종이 너머의 삶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과 경찰청은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6년1개월 동안 서울 강서‧양천‧구로와 경기 부천 지역에서 현장검안 사업을 운영했다. 교통사고를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법의관이 직접 출동해 검안업무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일요시사>가 총 1만279건의 현장검안 출동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남녀노소
마감한 삶

#1. 새해 첫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날에 누군가는 스스로 생명의 빛을 꺼뜨렸다. 2018년 1월1일 서울 구로에서 50대 남성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다음해 1월1일에도 집에서 목을 매 사망한 50대 남성이 발견됐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고 자주 죽는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2. 추석 연휴. 2015년 추석 연휴(26~28일) 동안 남성 3명이 각각 양천(70대), 강서(60대, 70대)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2016년 추석 연휴(14~16일)에도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여성이 발견됐다. 2017년(10월3~5일), 2018년(9월23~25일)에도 추석을 전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3. 크리스마스. 온 도시가 불빛으로 가득한 이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죽어간 사람이 있다. 서울 양천에서 3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는 집 화장실에 번개탄을 피웠다. 같은 날 서울 소사에서 6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야산에서 목을 맸다.


#4. 청소년 극단적 선택. 2018년 5월 13세 아이가 멀티탭 전선으로 목을 매 사망했다. 아이의 휴대폰에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같은 달 14세 아이가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적이 나빠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뒤였다. 2015년~2021년 강서‧양천‧구로‧부천 지역에서 청소년(13~19세)이 극단적 선택(추정) 등 외인사로 사망한 사건은 71건이다. 

#5. 노인 극단적 선택.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 31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체로 주거지에서 목을 매는 방식으로 사망했다. OECD 회원국의 노인 극단적 선택률(인구 10만명 당) 평균은 17.2명이고 한국은 46.6명(2019년 기준)으로 OECD 평균과 비교해 2.7배 높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부패 때까지 방치되는 노인
사회복지사 있으면 발견 빨라

국과수는 2223일 동안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부천 2370건 등의 변사사건에 출동했다. 이 가운데 1149명이 극단적 선택(추정 포함)으로 사망했다. ‘목맴’ ‘추락’ 등은  CCTV로 확인되지 않거나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 ‘미상’으로 분류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극단적 선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변사사건 대비 극단적 선택(추정) 비율은 11.2%에 이른다. 강서 12.5%(386건), 양천 10.9%(257건), 구로 10.6%(260건), 부천 10.4%(246건) 등이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변사자 10명 가운데 1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전체 극단적 선택의 98%가 목맴(의사)·추락사·중독사 등 3가지 방법으로 이뤄졌다. 

극단적 선택자는 남성이 805건으로 여성(341건)과 비교해 2.3배 많았다. 연령별로는 10대 27명, 20대 103명, 30대 150명, 40대 177명, 50대 247명, 60대 184명, 70대 167명, 80대 76명 등으로 나타났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고, 연령별로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2020년 기준)에 따르면 2020년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5.7명이다. 남성이 35.5%(9093명)로 여성 15.9%(4102명)과 비교해 2.2배 많다.


집에서 사망
전체 3.4배

80세 이상이 가장 높지만 극단적 선택자 수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남성은 ▲11~30세 ‘정신적 어려움’ ▲31~60세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 ‘육체적 어려움’을 극단적 선택 동기로 꼽았다.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이 첫손에 꼽혔다. 

변사사건 발생 장소는 주거지가 가장 많았다. 전체 변사사건의 과반(56.4%)인 5794건에 이르렀다. 출동장부에 명확하게 ‘주거지’ ‘주거지 내 사망’으로 기재된 사건만 산출한 수치로, ‘고시원’ ‘고시텔’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건수는 더 늘어난다. 강서 1734건(56.0%), 양천 1167건(49.6%), 구로 1276건(51.8%), 부천 1617건(68.2%) 등이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주택에서 사망한 비율은 16.5%로 나타났다. 사망 장소를 알 수 없는 사망자를 포함한 기타는 8.7%였다. 변사사건에서 주거지(주택) 내 사망 비율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변사사건의 10% 극단적 선택
50대 남성에서 가장 많았다

사체가 부패된 채 발견된 변사사건은 303건(3%)으로 확인됐다. 사체 발견이 늦어 부패가 진행되면 부검을 하더라도 사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14년 전남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장기가 다 부패돼 끝내 사인을 알 수 없었다.

즉 사체 발견까지 오래 걸릴수록 사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독거노인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등의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사망 후에도 발견이 빨라 사체의 상태가 온전한 경우가 많았다. 또 주변 사람을 통해 병력이나 평소 생활 등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반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은 부패된 상태로 발견돼 사인 규명을 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한 한 법의관은 “방 전체가 사체의 부패액으로 가득 차 있는 현장도 봤다”고 전했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는 67건이다. 병사가 18건, 외인사가 14건, 사인을 알 수 없는 ‘기타 및 불상’은 34건으로 파악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55명, 여성이 12명이다. 2019년 2월에 사망한 외국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였다. 새벽에 기침과 경련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개인의 죽음
사회의 책임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연구소 법의관은 “사회가 만든 병이 분명히 존재한다. 일자리를 잃고 술을 많이 마셔서 걸리는 간경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걸리는 결핵 등 이들은 병사지만 병을 만든 건 사회다. 사회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빈곤에 의한 극단적 선택도 사회의 책임이 있다. 결국 망자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장검안 사업 비하인드 스토리

“사람 없어서 끝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현장검안 사업을 바탕으로 2015~2017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국과수는 시체검안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변사사건에서 법의학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작성된 시체검안서·사망진단서에 의존해 수사가 진행되고 종결되는 현실을 바꿔보려 한 것. 


시체검안서는 사망진단서와 마찬가지로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서류다.

유족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가 발급한 사망진단서 혹은 시체검안서가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의사가 48시간 이내 치료한 환자의 사망에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는 달리 시체검안서는 직접 진료를 하지 않은 의사도 쓸 수 있다.

의사에 따라 사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검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2016년 충북 증평 사건의 경우 사망종류를 ‘병사’라고 기재한 시체검안서가 사건의 단초가 됐다.

경찰은 시체검안서를 믿고 사건을 종결했고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유족이 CCTV를 다시 보지 않았다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대한법의학회는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소 최종보고서>에서 “이 사업은 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현장검안을 통해 수사의 방향 제시에 도움을 줬다. 신속한 시체검안서 발급, 장례절차 진행, 저소득층 검안비 절감 등으로 유족의 편익이 증가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한국의 검시·검안제도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다음 기약 없어

문제는 현장검안 사업을 더 끌고 갈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검안 사업은 시범사업 때부터 법의학자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장검안 사업을 마칠 때쯤에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현재 인력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결국 6년1개월 만인 2021년 3월31일을 끝으로 현장검안 사업은 종료됐다. 재시작은 불투명한 상태다.

당초 국과수의 계획은 현장검안 사업을 중장기적으로 서울 전체 나아가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법의관에게 현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후 대학과 업무 협업을 진행해 보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결론적으로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대한법의학회는 “현행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법의관의 업무 피로도가 높다”며 “법의학자가 직접 현장에서 검안을 담당한다는 이상적인 형태로 고안된 사업임에도 근본적인 인력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많은 인력을 가진 기관 주변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는 제도라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국과수에서 서울 강서·양천·구로를 대상으로 현장검안 사업을 한 이유는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 법의관은 “보통 현장에서 검안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왔다갔다 이동시간이 2시간”이라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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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