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③외로운 선택 ‘1149’ 굴레

모두가 기쁜 날, 누군가는 죽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망 장소·사망의 원인·사망의 종류. 한 사람의 삶이 종이 한 장으로 갈음된다. 이 종이에 적힌 내용으로 죽음 이후의 상황이 엇갈린다. 누군가는 장례식장으로, 누군가는 부검대로. 고인의 마지막 숨이 남은 현장에는 종이 너머의 삶이 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과 경찰청은 2015년 3월1일부터 2021년 3월31일까지 6년1개월 동안 서울 강서‧양천‧구로와 경기 부천 지역에서 현장검안 사업을 운영했다. 교통사고를 제외한 모든 변사사건에 법의관이 직접 출동해 검안업무를 진행한다는 내용이다. <일요시사>가 총 1만279건의 현장검안 출동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했다. 

남녀노소
마감한 삶

#1. 새해 첫날. 많은 사람이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날에 누군가는 스스로 생명의 빛을 꺼뜨렸다. 2018년 1월1일 서울 구로에서 50대 남성이 화장실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다음해 1월1일에도 집에서 목을 매 사망한 50대 남성이 발견됐다. 그는 평소 술을 마시고 자주 죽는다는 소리를 했다고 한다. 

#2. 추석 연휴. 2015년 추석 연휴(26~28일) 동안 남성 3명이 각각 양천(70대), 강서(60대, 70대)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 2016년 추석 연휴(14~16일)에도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끊은 여성이 발견됐다. 2017년(10월3~5일), 2018년(9월23~25일)에도 추석을 전후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3. 크리스마스. 온 도시가 불빛으로 가득한 이날 어둠 속에서 조용히 죽어간 사람이 있다. 서울 양천에서 3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는 집 화장실에 번개탄을 피웠다. 같은 날 서울 소사에서 60대 남성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야산에서 목을 맸다.


#4. 청소년 극단적 선택. 2018년 5월 13세 아이가 멀티탭 전선으로 목을 매 사망했다. 아이의 휴대폰에는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는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같은 달 14세 아이가 방 안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적이 나빠 부모님께 꾸중을 들은 뒤였다. 2015년~2021년 강서‧양천‧구로‧부천 지역에서 청소년(13~19세)이 극단적 선택(추정) 등 외인사로 사망한 사건은 71건이다. 

#5. 노인 극단적 선택. 같은 기간 65세 이상 노인 316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대체로 주거지에서 목을 매는 방식으로 사망했다. OECD 회원국의 노인 극단적 선택률(인구 10만명 당) 평균은 17.2명이고 한국은 46.6명(2019년 기준)으로 OECD 평균과 비교해 2.7배 높다. OECD 국가 중 압도적 1위다. 

부패 때까지 방치되는 노인
사회복지사 있으면 발견 빨라

국과수는 2223일 동안 강서 3094건, 양천 2352건, 구로 2463건, 부천 2370건 등의 변사사건에 출동했다. 이 가운데 1149명이 극단적 선택(추정 포함)으로 사망했다. ‘목맴’ ‘추락’ 등은  CCTV로 확인되지 않거나 유서가 발견되지 않은 경우 ‘미상’으로 분류했다. 이들까지 포함하면 극단적 선택자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변사사건 대비 극단적 선택(추정) 비율은 11.2%에 이른다. 강서 12.5%(386건), 양천 10.9%(257건), 구로 10.6%(260건), 부천 10.4%(246건) 등이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변사자 10명 가운데 1명은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셈이다. 전체 극단적 선택의 98%가 목맴(의사)·추락사·중독사 등 3가지 방법으로 이뤄졌다. 

극단적 선택자는 남성이 805건으로 여성(341건)과 비교해 2.3배 많았다. 연령별로는 10대 27명, 20대 103명, 30대 150명, 40대 177명, 50대 247명, 60대 184명, 70대 167명, 80대 76명 등으로 나타났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고, 연령별로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발간한 <2022 자살예방백서>(2020년 기준)에 따르면 2020년 극단적 선택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인구 10만명당 25.7명이다. 남성이 35.5%(9093명)로 여성 15.9%(4102명)과 비교해 2.2배 많다.


집에서 사망
전체 3.4배

80세 이상이 가장 높지만 극단적 선택자 수는 50대에서 가장 많았다. 남성은 ▲11~30세 ‘정신적 어려움’ ▲31~60세 ‘경제적 어려움’ ▲61세 이상 ‘육체적 어려움’을 극단적 선택 동기로 꼽았다. 여성은 전 연령대에서 ‘정신적 어려움’이 첫손에 꼽혔다. 

변사사건 발생 장소는 주거지가 가장 많았다. 전체 변사사건의 과반(56.4%)인 5794건에 이르렀다. 출동장부에 명확하게 ‘주거지’ ‘주거지 내 사망’으로 기재된 사건만 산출한 수치로, ‘고시원’ ‘고시텔’ 등으로 범위를 넓히면 건수는 더 늘어난다. 강서 1734건(56.0%), 양천 1167건(49.6%), 구로 1276건(51.8%), 부천 1617건(68.2%) 등이다. 

지난 2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출생·사망통계(잠정)’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의 74.8%가 의료기관에서 사망했다. 주택에서 사망한 비율은 16.5%로 나타났다. 사망 장소를 알 수 없는 사망자를 포함한 기타는 8.7%였다. 변사사건에서 주거지(주택) 내 사망 비율과 비교했을 때 3분의 1 수준이다. 

변사사건의 10% 극단적 선택
50대 남성에서 가장 많았다

사체가 부패된 채 발견된 변사사건은 303건(3%)으로 확인됐다. 사체 발견이 늦어 부패가 진행되면 부검을 하더라도 사인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실제 2014년 전남 순천의 매실밭에서 발견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은 장기가 다 부패돼 끝내 사인을 알 수 없었다.

즉 사체 발견까지 오래 걸릴수록 사인 규명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특히 독거노인 가운데서도 사회복지사나 요양보호사 등의 관리를 받고 있는 이들은 사망 후에도 발견이 빨라 사체의 상태가 온전한 경우가 많았다. 또 주변 사람을 통해 병력이나 평소 생활 등에 대해서도 정보 수집이 가능했다.

반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독거노인은 부패된 상태로 발견돼 사인 규명을 위한 정보를 얻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현장검안 사업에 참여한 한 법의관은 “방 전체가 사체의 부패액으로 가득 차 있는 현장도 봤다”고 전했다. 

외국인으로 추정되는 변사체는 67건이다. 병사가 18건, 외인사가 14건, 사인을 알 수 없는 ‘기타 및 불상’은 34건으로 파악됐다. 성별로는 남성이 55명, 여성이 12명이다. 2019년 2월에 사망한 외국인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불법체류자)였다. 새벽에 기침과 경련 증상을 보여 응급실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개인의 죽음
사회의 책임

최민성 국과수 서울과학연구소 법의관은 “사회가 만든 병이 분명히 존재한다. 일자리를 잃고 술을 많이 마셔서 걸리는 간경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걸리는 결핵 등 이들은 병사지만 병을 만든 건 사회다. 사회적 보호가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빈곤에 의한 극단적 선택도 사회의 책임이 있다. 결국 망자는 사회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현장검안 사업 비하인드 스토리

“사람 없어서 끝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현장검안 사업을 바탕으로 2015~2017년 <서울과학수사연구소 검안사례들에 대한 통계분석>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국과수는 시체검안서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변사사건에서 법의학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작성된 시체검안서·사망진단서에 의존해 수사가 진행되고 종결되는 현실을 바꿔보려 한 것. 


시체검안서는 사망진단서와 마찬가지로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서류다.

유족은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가 발급한 사망진단서 혹은 시체검안서가 있어야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의사가 48시간 이내 치료한 환자의 사망에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는 달리 시체검안서는 직접 진료를 하지 않은 의사도 쓸 수 있다.

의사에 따라 사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장검안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2016년 충북 증평 사건의 경우 사망종류를 ‘병사’라고 기재한 시체검안서가 사건의 단초가 됐다.

경찰은 시체검안서를 믿고 사건을 종결했고 유족은 경찰의 말을 믿고 장례를 치렀다. 유족이 CCTV를 다시 보지 않았다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

대한법의학회는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소 최종보고서>에서 “이 사업은 전문가에 의한 신속한 현장검안을 통해 수사의 방향 제시에 도움을 줬다. 신속한 시체검안서 발급, 장례절차 진행, 저소득층 검안비 절감 등으로 유족의 편익이 증가되는 등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어 “한국의 검시·검안제도의 문제점을 노출하고 개선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다음 기약 없어

문제는 현장검안 사업을 더 끌고 갈 여력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장검안 사업은 시범사업 때부터 법의학자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장검안 사업을 마칠 때쯤에는 대부분의 의견이 일치했다.

‘현재 인력으로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

결국 6년1개월 만인 2021년 3월31일을 끝으로 현장검안 사업은 종료됐다. 재시작은 불투명한 상태다.

당초 국과수의 계획은 현장검안 사업을 중장기적으로 서울 전체 나아가 전국으로 확대하는 것이었다.

동시에 법의관에게 현장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이후 대학과 업무 협업을 진행해 보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결론적으로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대한법의학회는 “현행 사업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법의관의 업무 피로도가 높다”며 “법의학자가 직접 현장에서 검안을 담당한다는 이상적인 형태로 고안된 사업임에도 근본적인 인력 부족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많은 인력을 가진 기관 주변 지역에서만 실시될 수 있는 제도라는 한계를 노출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 국과수에서 서울 강서·양천·구로를 대상으로 현장검안 사업을 한 이유는 양천구 신월동에 위치한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서 자동차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한 법의관은 “보통 현장에서 검안을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그런데 왔다갔다 이동시간이 2시간”이라고 헛웃음을 터트렸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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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