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⑤양경무 국과수 법의학부 부장 인터뷰

21년 부검대서 마주하는 가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의학자는 ‘공식적으로’ 사체를 만나는 사람이다. 법의학자의 사명은 사체가 하는 말을 듣고 ‘진실’을 밝히는 데 있다. 실체적 진실과 과학적 진실. 한국 사회에서 진실은 대체로 전자에 머무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과학적 진실에 닿으려는 법의학자의 노력은 오랜 시간 제자리걸음이다.

팔순을 넘긴 아버지는 여전히 아들을 놓지 못했다.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 수 없어 속을 태운 게 38년이다. 생의 절반을 아들의 사인 규명을 위해 살았다. 그동안 진실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가공됐다. 유일한 진실은 아버지의 투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 ‘허 일병 사건’ 아버지 허영춘씨의 이야기다.

사인 규명
국가 책무

1984년 4월2일 강원 화천군 육군 7사단에 복무하던 허 일병이 가슴에 2발, 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허 일병의 사인을 두고 군 수사기관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진상위)의 조사 결과가 엇갈렸다. 군 수사기관은 극단적 선택, 의문사진상위는 타살로 판단했다.

법원의 판단도 엇갈렸다. 2007년 허 일병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은 타살, 서울고등법원은 극단적 선택으로 결론내렸다. 2015년 9월 대법원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단정해 타살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할 수 없다”며 사인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유족의 재심 청구도 기각되면서 허 일병의 사인은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게 됐다. 


아들의 죽음에서 끝내 진실을 찾지 못한 허영춘씨는 검시제도 개혁에 나섰다. 2005년 유시민 전 의원의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는 데 앞장섰다. 검시관 양성과 독립성을 골자로 하는 이 법안은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이후로도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거듭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 국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의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돼 계류 중이다. 진 의원은 “허 일병 아버님께서 (통과를)정말 염원하고 계신 법안”이라며 “아버님 연세도 벌써 여든이 넘으셨다”고 말했다. 

끝내 밝히지 못한 사인은 유족의 마음에 멍에로 남았다. 윤창륙 조선대 치과대학 법의치과학교실 명예교수는 “고인이 사망했을 때 편안하게 영면에 들도록 할 수 있는 건 가족밖에 없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게 안 될 때는 국가가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인을 알지 못한 채 이른바 ‘묻히는 죽음’이 한국에 상당하다는 점이다. 특히 변사사건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사기관과 전문가 사이의 견해 차이가 일종의 공백을 만든다는 지적이다.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법안이 발의될 때마다 첫머리에 ‘억울한 죽음’라는 말이 들어가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극단적 선택? 타살? 사인 모르는 부모
자식 못 보내고 40년 끌어안아

한국에서 한 해에 발생하는 변사자 수는 3만명 전후다. 경찰청과 해양경찰청은 매년 변사자 현황을 파악해 공개한다. 경찰청은 극단적 선택‧타살‧과실사‧재해사‧기타 등으로 구분해 변사 현황을 조사한다. <2020 경찰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20년 변사자는 2만1573명이다.


최근 5년 동안 2016년 2만2964명, 2017년 2만2282명, 2018년 2만4417명, 2019년 2만4204명 등의 변사자가 나왔다.

해양경찰청은 해난사고·본인 과실·극단적 선택·타살·병사·원인불명·기타 등으로 변사를 구분했다. <해양경찰 백서 2021>에 따르면 2016년 673명, 2017년 636명, 2018년 665명, 2019년 623명, 2020년 646명의 변사자가 발생했다. 총 변사자 수는 2016년 2만3637명, 2017년 2만2918명, 2018년 2만5082명, 2019년 2만4827명, 2020년 2만2219명으로 확인된다.

일부 법의학자는 이 수치를 6만~7만명까지 보는 경우도 있다. 대한법의학회지에 게재된 <2017년도 법의부검에 대한 통계적 고찰> 논문에 따르면 2017년 변사자는 3만7096명이다. 경찰청 3만6460명, 해양경찰청 636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청 변사자 수에서 국과수와 차이를 보이는 것은 변사사건으로 집계됐다가 조사 혹은 부검 후 자연사로 빠진 사건을 제외했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2017년 변사사건으로 접수됐다가 자연사로 빠진 건수는 1만4178건이다.

이 중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은 8777건을 부검했다. 변사자 수 대비 부검률은 23.7%, 전체 사망자(28만5534명) 수 대비 부검률은 3.1%다. 4건의 변사사건이 일어나면 1건만 부검하는 셈이다. 이때 최소 2만명, 최대 6만명의 죽음에서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어딘가에
구멍 있다

이 구멍 사이로 정말 놓쳐서는 안 될 죽음이 새나갈 수 있다는 뜻이다.

양경무 국과수 법의학부 부장은 “법의학의 기능은 ‘억울함을 방지하고 범죄를 밝히는 것’이다. 문제는 사람이 꼭 범죄에 의해서만 사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사고나 감염에 의해서도 사망할 수 있는데 그 경우 진실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통계청에서 매년 발표하는 사망원인 통계에서도 사회가 놓치고 있는 혹은 놓칠 수 있는 죽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른바 ‘R코드’의 존재다. 통계청은 시체검안서와 사망진단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원사인’으로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한다. 원사인은 죽음에 이르게 한 최초의 근원적인 질병이나 손상을 뜻한다. 

통계청은 시체검안서나 사망진단서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건강보험자료, 국립암센터 암환자 자료, 경찰청 변사자 자료, 질병관리청 감염병 자료 등 21종의 행정자료를 이용한다. 이렇게 수집한 사망원인을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따라 분류한다.

이 중 ‘달리 분류되지 않은 증상, 징후(R00-R99)’를 R코드라고 한다.

R코드에는 ‘영아 돌연사 증후군’(R95) ‘원인미상의 기타 돌연사’(R96) ‘순간적 사망’(R960) ‘증상의 발생으로부터 24시간 이내에 일어난 달리 설명되지 않는 사망’(R961) ‘지켜본 사람이 없었던 사망’(R98) ‘기타 불명확하고 상세불명의 사망원인’(R99) 등이 포함된다.


통계청 인구동향과 관계자는 “사인불명을 포함한 알지 못하는 특정 질병으로 사망한 경우”라고 R코드를 정의했다. 

2017년부터 지난 5년간 한국의 R코드 사망자 수는 2만5497명, 2만8466명, 2만8176명, 3만1801명, 3만7833명으로 증가했다. OECD 국가 간 인구 10만명당 R코드(Symptom, Sign, Ill defined causes) 사망자 수를 비교하면 한국은 67명으로 2019년 기준 폴란드(113.7명) 다음으로 높다. 일본은 56.6명, 미국은 14.8명이다. 

지난 7월4일 국과수 원주 본원에서 만난 양경무 법의학부 부장은 “한국의 법의학은 사인 규명이 아니라 범죄 규명에 시스템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 보니 병사로 처리해 부검을 하지 않은 사건에서 가끔씩 놓치는 사건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늘어나는
R코드 수

그는 인터뷰 동안 사인 규명, 진실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양 부장은 2001년 입사 이후 21년 동안 국과수에서만 근무했다. 공보의 기간을 국과수에서 보내면서 법의학의 매력에 빠져 법의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국과수 법의학부 부장을 맡아 정책 수립, 인사 관리, 중요 사건 대응 등 행정부터 실무까지 총괄하고 있다. 2015~2021년 국과수 현장검안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사인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사체가 많다고 봅니다.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범죄가 묻혔는지 구체적인 데이터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후에 어떤 계기가 있어 재조사를 하려 해도 이미 화장으로 사체를 처리했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누군가는 ‘얼마나 문제길래 그래?’라고 묻는데 사실 몇 건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게 문제입니다.”

사인 규명이 부실하면 필연적으로 통계청으로 가는 정보도 부실해진다. 통계청은 ‘국민의 정확한 사망원인 구조를 파악해 국민 복지 및 보건의료 정책수립을 위한 기초자료 제공’을 목적으로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한다. 사망자로부터 얻은 정보로 산 사람을 위한 정책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늘 주검을 접하지만 궁극적으로 산 자를 위한 학문’이라는 법의학의 목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한국의 사망원인 통계는 선진국과 비교해 질적으로 굉장히 떨어집니다. 사망자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시체검안서에 쓸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어요. 그러다 보면 의학용어 같지만 실제로는 정확한 사인분류표에 의거하지 않은 진단명을 쓰게 됩니다. 그 자료가 통계청으로 가면 사망원인 통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거죠.”

양 부장은 코로나19 사태를 예로 들었다. 그는 2020년 8월 코로나가 한창 확산될 무렵 법의학부 부장으로 취임했다. 국과수도 이 정도 확산력을 가진 감염병을 처음 경험한 터라 코로나 초반에 상당한 부침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스크를 확보하는 문제부터 법의관의 복장, 코로나 감염 사망자의 부검 등이 문제로 떠올랐다. 

앞서 메르스(중동호흡기 증후군) 사태를 겪으면서 위험한 바이러스와 병원체를 부검하는 BL3 실험실이 생겼고 이곳에서 코로나 양성 감염자 부검을 진행했다. 어느 정도 시스템이 갖춰지자 이번에는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제도 개선·인력 충원시
순식간에 선진국 될 것”

코로나 창궐 1년 만에 만들어진 화이자, 아스트로제네카 등을 맞고 부작용을 호소하는 국민이 나타났다. 백신 접종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를 두고 부검 의뢰가 늘어났다.

양 부장은 코로나 사망자를 대부분 ‘병사’로 처리한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코로나 양성 상태에서 사망한 사람은 부검하지 않고 대부분 화장됐다. 그는 “나도 코로나에 걸렸다가 나았다. 확진됐다고 해서 모두 사망하는 게 아니다. 그런데 사망 당시에 코로나에 감염돼있으면 ‘코로나 사망자’로 잡혔다. 어떤 원인이 작동해서 사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제도를 바꿔야 해요. 지금은 변사를 사법시스템 내에서 정의해 ‘범죄 의심만 부검하겠다’고 하고 질병관리청은 질병으로 사망하면 유족이 힘들어하기 때문에 부검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병사로 처리하는 거거든요. 법의관 같은 죽음에 대한 전문가가 범죄와 질병을 구분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결국 인력 문제로 귀결된다. 양 부장은 현재의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서는 법의학자가 전국적으로 80명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영상 의학 관련 자문을 줄 수 있는 의사, 약‧독물 검사를 해줄 수 있는 독성 전문가 등이 있어야 부검 전 일종의 분류작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현재 국과수 법의관 수는 양 부장을 포함해 35명이다. 

양 부장은 21년 동안 3000구가 넘는 사체를 부검했다. 20년이 지났어도 그는 여전히 부검대에 올라온 사체를 보면서 ‘내가 사인을 밝히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를 고민한다.

“구체적으로 통계를 내본 적은 없지만 경제력이 있는 사람보다는 가난한 사람의 부검율이 높아요. 예를 들어 똑같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했어도 가난한 사람은 거주지 주변에 CCTV가 없다거나 골목이 외지다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부검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사인 같아도
환경에 영향

“3000구 이상의 사체를 부검하는 동안 그들(사망자)이 저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고 생각해요.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사회에 환원하고 싶습니다. 지금 한국의 법의학 현실은 ‘미완의 상태’예요. 경찰도, 국과수도, 대한법의학회도 불합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어느 순간 이게 딱 통합되면 한국의 법의학은 순식간에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겁니다. 그러니 현재 법의학에 종사하고 있는 후배들, 입문할 학생들 모두 소명의식을 가지고 전진하셨으면 합니다.”


<jsjang@ilyosisa.co.kr>

 

[양경무 부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법의학부 부장
▲대한법의학회 부회장
▲대한법의학회 인정의
▲광주건물붕괴 버스매몰 희생자 부검 총괄
▲이대목동신생아 4명 사인분석 총괄
▲고 백남기씨 검안
▲빅뱅 멤버 양화대교 교통관련 사망 분석
▲산후조리원 신생아 연속 사망사건 원인분석 및 예방법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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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