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⑧진선미 민주당 의원 인터뷰

6번 주저앉고…7번 주자 나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필요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존엄성’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변화 요구다. 전문가에게 권한을 주자는 당연한 주장도 따른다. 20여년 동안 모두 7번 발의된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담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미 6번을 주저앉았다. 7번째 발의자인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을 만났다. 

2006년 11월24일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을 안건으로 ‘검시제도의 개선에 관한 공청회’가 열렸다. 당시 김희수 변호사가 법학계 측 진술인으로 나섰다. 14년 뒤인 2020년 7월16일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주최한 ‘검시관 제도 도입을 위한 토론회’에도 김희수 변호사가 좌장으로 등장했다.

억울한 죽음

같은 사람이 14년의 세월을 거슬러 같은 주제의 자리에 등장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기간 동안 관련 주제에 대한 논의가 단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방증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법의학 소재의 드라마 <싸인>이 방송(2011년)됐고,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법의관 정원이 늘었다. 

2016년 충북 증평에서 일어난 80대 노인 살인사건으로 부검 건수가 증가했다. 경찰이 집에서 사망한 노인의 사인을 병사로 판단해 장례까지 치렀는데 CCTV를 통해 범죄로 인한 죽음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사건이다. 육안으로 확인해 범죄 혐의점이 없으면 병사로 처리하는 경찰의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국과수 안팎의 변화에도 검시제도 개선에 대한 ‘바람’은 불지 않았다. 2005년 윤호중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17년 동안 총 7건의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이 중 6건이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이제 진 의원이 발의한 법안만 남았다. 2018년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 폐기 이후 지난해부터 다시 한번 국회를 두드리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달 28일 국회에서 만난 진 의원은 “(법안 통과를 위한)때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결국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뜻을 전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 2번 발의
2018년 폐기 이후 재차 시도

“(검시제도는) 법무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 경찰청의 입장이 서로 얽혀있는 사안입니다. 동시에 관련 부처가 법안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고 전반적인 이해도도 높지 않아요. 법안을 만드는 동안 각 부처와 소통하는 과정에서 일종의 벽을 느꼈습니다.” 

진 의원은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검시권을 부여한 현행 검시제도가 진실의 발견과 인권보장이라는 목표를 놓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사의 부검 영장 청구 자체가 범죄 가능성에 맞춰져 있어 행정부검 등 행정적 필요성에 부응하는 데 한계가 있고 필요한 부검을 모두 시행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의학적으로 비전문가인 검사를 검시의 주체로 보고 있는 형사소송법 제222조 1항에 대해 실제 검시를 담당하는 의사의 경험과 전문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조항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다 보면 수사 과정에서 의사가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의 의견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실제 한 해 일어나는 변사사건은 3만건 전후다. 이중 8000~9000건만 부검을 진행한다. 일부 법의학자는 변사사건 발생 건수를 7만건까지 보기도 한다. 최소 2만여건에서 최대 6만여건은 법의학 지식이 있는 전문가의 눈길이 닿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때 변사에서 병사로 사인이 바뀌는 사체는 대부분 화장터로 향한다. 이후 문제가 생겨도 돌이킬 수 없다는 뜻이다.


“죽음은 이별 그 자체만으로도 남아있는 유족과 가까운 사람에게 고통입니다. 이때 죽음의 원인이 불분명하거나 왜곡되면 유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군 의문사 등 사망원인에 대한 규명이 필요한 사건의 인과를 제대로 밝히는 것이 관련자의 명예 회복, 나아가 우리 사회의 신뢰 회복과 인권 증진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고 국가의 존재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토론회 거쳐 현장 목소리 담아
“국민적 공감대 위한 자리 마련”

진 의원은 지난해 발의한 법안에 ▲검시업무에 관한 종합계획 수립‧시행 ▲법의관의 자격과 직무 ▲법의관 양성에 대한 사항 등을 규정 ▲법의관 직무수행의 독립성 ▲법의관 양성기관 지정 등의 내용을 담았다.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과학적·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5년마다 검시업무에 관한 종합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은 기존 법안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검시제도 법안은 진 의원에게 ‘마음의 짐’이면서 반드시 완수해야 할 ‘과업’인 듯했다. 국과수, 대한법의학회 등과 함께 2번의 토론회를 통해 의견 수렴을 진행했고 현장의 목소리를 십분 반영해 만든 법안인 만큼 애착도 상당했다. 국회 중요 일정 중에도 검시제도 법안 통과를 위한 방안에 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입법을 하는 사람으로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최종 입법에 이르러야 국회의원의 임무가 완수된다고 생각합니다. 검시제도 관련 부처인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경찰청의 최근 입장을 먼저 확인한 뒤 관련 상임위인 법사위와 행안위 위원들에게 법안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관심을 높이는 자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국민적 공감대 제고를 위한 기회도 마련할 것입니다.”

검시제도 법안에 대한 진 의원의 생각은 본회의 통과 이후로까지 나아가 있었다. 그는 “이번 법안은 검시 절차와 법의관의 역할 등 기본적인 사항을 먼저 법률화한 것”이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향후 형사소송법의 변사자 검시 조항을 개정하고 검시 기본법 제정을 통해 검시청의 독립성과 권한을 확보하는 등 후속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가 나서야

“사회적 약자의 죽음은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았다고 느낄 만큼 비참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인을 모른 채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당사자 그리고 가족은 죽음의 격차를 크게 느낄 것입니다. 내 가족, 내 친구의 죽음에 의혹이 있다면 당연히 해소해야 합니다. 미비한 법과 제도 때문에 생기는 죽음의 격차,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이 간극을 줄여야 합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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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