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5인방과 이재명 운명

하나 둘…벌써 세 번째 의문의 죽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이 재점화되는 모양새다. 이대로라면 이번 대선의 최대 화두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장동 사건 ‘윗선’ 의혹을 받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재판에 임하고 있는 대장동 5인방의 입에 이 후보의 운명이 달렸다는 말까지 나온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이하 대장동 사건)의 불씨가 꺼질 듯 꺼지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의혹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한 차례 크게 타올랐던 사건이 관련자의 재판 과정에서 다시 불붙는 모양새다. 지금 분위기로는 대선 혹은 그 이후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지난 12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처음 제보한 인물인 이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2018년 이 후보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모 변호사에게 수임료로 현금과 주식 등 20억원을 줬다며 관련 녹취록을 친문(친 문재인) 성향 단체인 ‘깨어있는시민연대당’(이하 깨시연)에 제보한 인물이다.

깨시연은 이 녹취록을 근거로 이 후보 등을 지난해 10월 검찰에 고발했다. 

이씨는 투숙하고 있던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의 누나가 “동생과 며칠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112에 신고한 뒤 이씨 지인을 통해 모텔 측에 객실 확인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업원은 인기척이 없자 비상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고, 침대에 누운 채 사망한 이씨를 발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씨 유족은 기자회견을 열고 “고인이 민주당과 이재명 진영에서 다양한 압력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은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면서도 “이 후보는 고인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을 밝힌다”고 말했다. 이씨를 두고 ‘변호사비 대납 녹취 조작 의혹’ 당사자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씨의 죽음을 이 후보와 연관시키려는 국민의힘 등 야당의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대선이 2개월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씨의 사망이 악재로 작용할 수 있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 후보 역시 “망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명복을 빈다”면서도 선대위 입장을 참고해달라며 말을 아꼈다.

문제는 이씨의 사망 소식이 앞선 두 사람의 죽음을 상기시켰다는 점이다. 대장동 사건에 연루돼 수사를 받아온 유한기 전 성남도시개발(이하 성남도개공) 개발사업본부장, 김문기 개발1처장은 지난달 10, 21일에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으로 떠났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 제보자 사망
대장동 사건 관련 두 죽음 오버랩

이씨까지 포함해 이 후보가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 관련자 3명이 망자가 된 셈이다.

유한기 전 본부장은 성남도개공에서 유동규 전 기획본부장에 이어 2인자 ‘유투(two)’로 불리며 화천대유자산관리(이하 화천대유)에 유리한 수익 배분구조를 설계하는 데 연루돼 검찰 수사를 받는 중이었다. 황무성 전 성남도개공 사장 사퇴 종용에 관여한 의혹도 있다.

유한기 전 본부장은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사실이 전해진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문기 전 개발1처장은 대장동 개발 민간사업을 선정하는 1, 2차 평가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화천대유에 점수를 몰아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는 대장동 사업 평가 채점표 등을 정민용 전 성남도개공 전략사업실장(변호사)에게 열람하게 했다는 이유로 내부 감사를 받는 중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징계를 통보받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후보는 다시 대장동 리스크로 난처한 국면에 처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지지율 격차가 벌어지고 있던 상황에서 대장동 사건이 다시 꼬리표처럼 따라 붙은 것이다. 대선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점 역시 이 후보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여기에 대장동 5인방의 재판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점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0일 유동규 전 성남도개공 기획본부장,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남욱 변호사(구속), 정영학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불구속) 등 이른바 대장동 5인방의 첫 공판이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배임) 등의 혐의로 기소된 대장동 5인방은 이날 공판에 모두 참석했다. 

사건 관련자
잇따라 사망

유동규 전 본부장은 김만배씨 등과 공모해 화천대유 측에 최소 651억원가량의 택지개발 배당 이익과 최소 1176억원에 달하는 시행 이익을 몰아줘 성남도개공에 손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만배씨로부터 5억원, 남욱 변호사와 정영학 회계사 등으로부터 3억5200만원에 달하는 뇌물을 수수하고, 대장동 개발사업 이익 중 700억원가량을 받기로 약속한 혐의도 있다. 정민용 변호사는 이들과 공모해 화천대유와 천하동인 1~7호에 최소 1827억원의 이익이 돌아가게 사업을 짠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에 녹취록,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을 제공한 정영학 회계사를 제외한 4명은 이날 공판에서 모두 혐의를 부인했다. 정영학 녹취록은 정 회계사가 김만배씨, 남 변호사 등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으로 그가 검찰에 자진해 제공했다. 이 녹취록에는 수익금 배부 문제와 정관계 로비 정황 등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피고인들이 대장동 민관합동개발 공모지침서가 나온 2015년, 이미 민간사업자에게 많은 수익이 돌아가도록 사업을 설계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핵심 근거로 잡은 것은 화천대유에 유리한 7가지 조항이 담긴 공모지침서다.

7가지 조항은 김만배씨 등이 공모해 대장동 사업 초기 당시 초과이익 환수 조항 등을 삭제하는 등 민간 사업자에 개발이익이 돌아가도록 설계한 것을 의미한다. 

민주당 대응
언론에 재갈?

김만배씨의 변호인은 “성남도개공은 (성남시 방침에 따라)확정적 이익을 얻는 방식으로 기본 방향을 정한 것이고, 민간사업자의 이익은 고위험을 감수한 투자의 결과이지 배임의 결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검찰의 주장이 전형적인 사후확증편향이라는 주장도 덧붙였다. 


이날 공판 이후 김만배씨 변호인의 “이재명 성남시장이 안정적 사업을 위해 지시했던 방침에 따랐던 것”이라는 발언이 논란으로 떠올랐다. 민주당 선대위 공보단은 해당 발언에 대해 당시 성남시장인 이 후보의 사적 지시가 아니라 성남시의 공식방침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재명 지시가 아니라 성남시 공식방침이 옳은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후보는 지난 11일 김만배씨 측의 발언에 대해 “매우 정치적으로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이어 “검찰이 신속하게 진상을 제대로 수사하고,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말씀드린다”며 “수개월 동안 수사를 해놓고 이제와 이상한 정보를 흘려서 자꾸 정치에 개입하는 모양새인데 검찰의 각성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해당 발언을 보도한 언론을 언론중재위원회, 선거관리위원회에 제소하겠다고 나섰다. 민주당 권혁기 공보부단장은 “‘이재명 지사’와 같은 키워드가 대대적으로 헤드라인에 반영됐다”며 “우리 측도 반론을 제기했는데 제목에 같은 크기나 비중으로 반영되지 않았고, 기사 내용에도 같은 분량으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대응이 대장동 사건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대장동 수사와 관련해 대검찰청에 항의 방문을 하는 등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국민의힘 김기현 원내대표는 “검찰이 진짜 몸통에 대한 수사는 놔두고 꼬리 자르기만 계속하고 더 나아가 심지어 아예 수사 자체를 안 하고 공익제보자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생사람까지 잡고 있는 실정”이라며 “검찰은 이 죽음에 대해 간접살인의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고 강조했다. 


재판에서 ‘이재명 지시’ 언급
정진상 조사 뒤늦게 알려져

문제는 실제 대장동 사건 수사가 윗선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이 후보는 물론이고 민주당 정진상 선대위 비서부실장에 대한 수사도 공소시효(다음달 6일경)가 임박해서야 쫓기듯이 이뤄졌다. 소환조사 일정만 한 달 넘게 조율하다가 지난 13일 조사를 받은 사실이 16일 뒤늦게 알려졌다.

정 부실장은 대장동 사건이 처음 불거질 무렵부터 소환조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 인물이다. 이 후보가 인정한 최측근이면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윗선’의 배임 여부를 밝혀낼 핵심 인물이기 때문. 그는 2015년 성남시 정책실장으로 재임하면서 ‘성남의뜰에 대한 출자 승인’ 등 대장동 사업 관련 여러 내부 문서에 서명했다.

당시 최종 결재권자는 이 후보 당시 성남시장이다. 

여기에 정 부실장은 황무성 성남도개공 사장의 사퇴 과정에도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중이다. 사망한 유한기 전 본부장이 2015년 2월6일 황 전 사장에게 사퇴를 압박할 당시 녹취록에서 그는 ‘시장님’과 ‘정 실장’ 등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들은 이 후보와 정 부실장으로 추정됐다. 또 그는 유동규 전 본부장이 압수수색을 받기 전 여러 차례 통화한 당사자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 14일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이하 사준모) 정 부실장 등에 대한 기소 여부를 법인이 판단해 달라며 재정신청을 하면서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정지됐다. 재정신청은 고소‧고발인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이 당부를 대신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공소시효 만료일 30일 전까지 검사가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에도 재정신청을 할 수 있다. 

대선 두 달
출구 없나?

검찰의 수사 의지를 두고 말이 나오는 부분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 부실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다 보면 그 다음 단계가 이 후보이기 때문에 검찰이 몸을 사리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이 후보는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또 다시 불거진 대장동 사건으로 뚜렷한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다. 검찰 수사 촉구, 특검 도입 등을 외치고 있지만 이마저도 공염불로 여겨지고 있는 상황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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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