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터닝포인트’ 이낙연 11월 위기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0.12 10:53:10
  • 호수 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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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풍이 몰아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국정감사 이후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예상이 정가로부터 들려온다. 당 대표로서는 물론 대권주자로서도 중대한 사건이 예정돼있다. <일요시사>는 이 대표가 맞닥뜨릴 운명의 11월을 미리 살펴봤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ㄱ지ㅏ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팎에선 ‘이낙연 체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취임 후 곧바로 의료계 파업 사태를 해결했다. 코로나19 재확산 추세로 국민의 불안감이 높던 상황서 강경했던 의료계와의 갈등을 해결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각종 사안
정면 돌파

4차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이 역대 최단기간에 국회 문턱을 넘게 한 일은 백미였다. 이낙연 대표는 앞선 취임 일성서 야당과의 ‘원칙 있는 협치’를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야당이 추경안을 마냥 반대하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이 대표는 취임 일성을 통해 한 자신의 말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추석 연휴 전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집행을 약속한 정부여당에 선물보따리를 안긴 셈이다.

‘제2의 조국 사태’로 확전될 수 있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 논란도 미풍에 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표는 해당 논란에 ‘검찰 수사 우선’이라는 기조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고, 추 장관과 그의 아들은 검찰 조사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격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도 발 빠르게 대처해 주목받았다. 이 대표는 국회서 박재민 국방부 차관 등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북한군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라며 규탄했다.

관련 상임위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집도 지시했다. 주말 동안 북한에 남북 공동조사 수용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내놨다.

전당대회 후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도 미연에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권 경쟁상대였던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을 국민통합위원장으로 기용한 일이 대표적이다. 추 장관을 방어하는 과정서 나온 자당 의원들의 설화 문제도 “과잉대응은 자제하라”는 지시로 해결,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서울·부산시장 공천 여부 초읽기
‘친문 적통’ 항소심 선고 임박해

민주당이 발목 잡힐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철퇴를 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낙연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불리는 윤리감찰단은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와 비리 의혹의 주역인 이상직 의원, 10억원대 재산을 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의원을 1차적 윤리감찰 대상으로 선정했다.

결국 김 의원은 제명됐으며, 이 의원은 “선당후사의 자세로 더 이상 당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 잠시 당을 떠나 있겠다”며 탈당했다.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은 당직 정지에 이어 당원권 정지가 결정됐다. 이 대표 특유의 ‘위기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순항하고 있는 이 대표지만, 정치권에선 ‘11월 위기설’이 감지된다. 이달 당 대표로서는 물론 대권주자로서도 중대한 사건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11월에 결정 난다.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내년 4월에 열린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권력형 성비위로 물러났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23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서 부산시 직원을 강제 추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소셜미디어 계정 비밀번호가 변경돼 로그인이 안 된다”며 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강제로 추행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지난 4월 초 부산시 관계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4월 중순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 전 시장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미투’ 의혹에 휩싸였던 박 전 시장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후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오 전 시장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박 전 시장 사건 또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은 한마디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주요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박 전 시장이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두 사건 이후 정치권의 관심은 민주당이 과연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모아졌다. 야권은 잇단 성비위를 저지른 광역단체장들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도 시끄러웠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7월 “공당이 문서로 규정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을 의미한다.

이는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지사의 발언에 “정말로 옳은 말씀”이라고 밝힌 반면, 민주당 이해찬 당시 대표는 비공개 회의서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냐”는 취지로 이 지사의 발언을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지사는 자신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서울·부산시장 무공천 발언은 의견일 뿐 주장이 아니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예정된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궐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내년 2월에는 경선을 치러야 한다. 늦어도 올해 연말쯤에는 민주당이 후보를 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11월 초에 공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민주당 홍익표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6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사견을 전제로 “(후보 공천 결정은)11월 초를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어 “공개적인 논의가 적절한 시점에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역시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게 연말쯤 될 테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먼저 끄집어내 당내서 왈가왈부하는 게 현명한 일인가”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낸다면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있다.

야권의 공세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재보궐선거 비용만 약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주장을 지난 7월 펼친 바 있다. 만약 후보를 냈다가 선거서 패배한다면,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후보를 내지 않는 결정 역시 상수가 아니다. 재보궐선거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서 치러진다. ‘미니 대선’인 셈이다. 1000만명이 넘는 유권자의 투표가 예상되는 상황서 민심을 점검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느낄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대선 전 야권과의 기싸움서 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민주당에는 서울·부산시장을 노리는 후보들이 많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우상호 의원, 박주민 의원, 부산시장 후보로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김해영 전 최고위원 등이 거론된다.

만약 이 대표가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서울·부산시장을 원하는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11월쯤 입장을 정리한 후 전 당원을 대상으로 무공천을 명시한 당헌 개정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부담 
끌어안을까

앞서 이 대표는 조만간 공천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후보를 낼 것인지 늦지 않고 책임 있게 결정해서 국민들에게 보고한 뒤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후보를 내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오는 11월6일로 다가왔다. 정치권이 그의 선고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재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두 경쟁을 벌이는 양강 구도를 3파전으로 만들 수 있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

<경향신문>이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와 지난 3~4일 실시해 6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여권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대표와 이 지사가 각각 24%의 응답을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서 김 지사는 1%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두를 달리는 두 사람과 김 지사의 격차는 커 보인다. 그러나 차기 대선은 아직 1년5개월이나 남았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사법족쇄’를 풀어내는 데 성공, 이 대표와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 지사 역시 사법족쇄를 풀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부상할 공산이 크다. 

재보궐 패배하면…
친문 표심 이동하나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언론 인터뷰서 김 지사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 “일단 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는 맞다”며 “김 지사가 동안이라 그렇지, 대선 때 55세면 어리지도 않다. 이 지사하고 별 차이도 안 난다”고 언급했다.

친노 좌장이자, 친문의 핵심인 이 전 대표의 발언으로 정치권은 김 지사의 선고 결과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김 지사는 친노·친문을 가리지 않고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주자로 꼽힌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문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기획분과)으로 활동했다.

당시 김 지사가 몸담았던 기획분과는 해당 위원회서 정책 총괄을 맡는 등 중추적인 자리였다.

앞서 김 지사는 경남 스마트산업단지 보고대회(지난달 17일)서 문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정치권의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 당시 김 지사가 “문 대통령께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화답했다. 

김 지사는 ‘친문 적통’이다. 그가 만약 사법족쇄를 풀어내 대권 경쟁에 뛰어든다면 유일한 친문 대권주자로 분류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로 중립적 대권주자에 가까우며, 이 지사는 비문으로 통한다.

정치권은 이 대표와 친문이 ‘시한부 동거’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친문의 지지는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부터 63.73%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양강 구도
3파전으로?

김 지사가 사법족쇄를 풀면 친문 지지층 다수가 이 대표에게서 김 지사로 옮겨갈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 문 대통령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친문의 눈도장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동고동락’해온 김 지사를 향한 친문 진영의 호감도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경수 항소심 쟁점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쟁점은 김 지사가 과연 댓글 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시연하는 장면을 봤느냐다.

김 지사 측은 재판부에 시연회 당일인 지난 2016년 11월9일 수행비서의 ‘구글 타임라인’과 ‘닭갈비 영수증’을 증거로 제출하며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드루킹 일당 등 경공모 회원들과 닭갈비를 먹었을 뿐 시간 관계상 시연회를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김 지사 측이 제출한 영수증은 경공모 회원들이 가게서 식사한 것이며, 김 지사는 시연회를 봤다고 맞섰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엇갈린다.

증인으로 나온 당시 닭갈비 가게 사장은 “닭갈비 15인분을 가게에서 먹고 갈 수 없다. 포장해 간 것이 맞다”며 김 지사 측 주장을 뒷받침한 반면, 경공모 사무실서 식사 준비를 도왔던 드루킹 동생 김모씨와 경공모 회원 조모씨는 당시 김 지사의 식사가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또 다른 쟁점은 ‘역작업’에 대한 판단이다.

특검팀이 제출한 증거 중에는 드루킹 일당이 더불어민주당이나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에 ‘공감’ 버튼을 클릭한 이른바 역작업도 포함돼있다. 

특검팀은 역작업 비율이 전체의 0.7%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 그마저도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경공모 회원 도모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 지사 측은 특검팀이 제출한 댓글 조작 증거의 30% 이상이 역작업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드루킹과 공모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증거라고 맞서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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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