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 선두’ 이낙연 흔드는 세력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09 10:35:40
  • 호수 1296호
  • 댓글 0개

친문의 토사구팽? 적은 내부에 있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1위 자리가 위태롭다. ‘어대후(어차피 대선후보)’라는 평가에 균열이 생겼다. 11월 위기론은 현실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이야기다. 잇따른 악재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를 흔드는 세력의 존재를 의심한다.
 

▲ 경제상황 점검회의서 발언하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꽃가마는 없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당 안팎에서 악재가 연달아 터졌다.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는 추세다. ‘어대후 이낙연’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은 옛일이 됐다. 

고꾸라진 
지지율에…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지난달 26일부터 30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25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하고 지난 2일 발표한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이 대표는 21.5%의 지지율을 기록해 이재명 경기도지사(21.5%)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여권을 향해 ‘작심발언’을 쏟아냈던 윤석열 검찰총장은 17.2%로 3위에 올랐다.

이 대표의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6월 동 기관 조사에서 30.8%를 기록했던 이 대표의 지지율은 7월 25.6%, 8월 24.6%, 9월 22.5%를 거쳐 10월 21.5%로 떨어졌다. 4개월여 동안 9.3%p 빠진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이 대표는 지난 8·29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로 선출됐다. 그럼에도 지지율 하락은 멈추지 않았다. 컨벤션 효과(전당대회와 같은 정치 이벤트를 연 직후에 지지율이 상승하는 효과)마저 이 대표의 지지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세부적으로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 대표와 함께 1위에 오른 이 지사는 60대와 70대를 제외한 전 연령대에서 이 대표를 앞섰다. 즉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요 연령층인 30대와 40대에서 이 지사가 이 대표를 누른 것이다.

현재 추세라면 다가올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지사가 이 대표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

이 대표에게 잇따라 악재가 겹친 결과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 공천 논란이 그중 하나다. 앞서 민주당은 소위 무공천 조항으로 불리는 당헌 96조2항에 ‘전 당원 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을 신설하는 데 대한 찬반조사를 실시했다. 

총 투표수 21만1804표 중 18만3509표(86.64%)가 찬성했다. 박원순·오거돈 등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 행위로 실시되는 선거에 민주당이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6월부터 하락세 계속 왜?
잇단 악재에 리더십 흔들

이 대표는 고개를 숙였다. 그는 찬반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우리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논리다. 이 대표는 이어 “민주당은 철저한 검증, 공정 경선 등으로 가장 도덕적으로 유능한 후보를 찾아 유권자 앞에 세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의 당헌 개정 결정에 여권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원조 친노’ 인사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당헌을)지금 와서 손바닥 뒤집듯 저렇게 뒤집었다. 너무 명분 없는 처사”라고 일갈했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정의당 역시 비판에 가세했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고성준 기자

강은미 원내대표는 “정치적 손익만을 따져 손바닥 뒤집듯 쉽게 당의 헌법을 바꾸는 것을 당원 투표라는 미명으로 행하는 것이 어디 자기 얼굴에만 침을 뱉는 것이겠느냐”며 “성 비위라는 중대한 범죄에 연루된 단체장의 보궐 선거에 또 다시 자당 후보를 출마시키려는 철면피는 최소한 피해자들에 대한 어떤 반성도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지적했다.

찬반조사의 유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26.35%에 불과한 총 투표율 때문이다. 민주당 당규 38조에 따르면, ‘전 당원 투표는 전 당원 투표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의 투표’로 효력을 발휘한다. 전 당원 투표의 유효 투표율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민주당 최인호 수석대변인은 “이번에 실시한 투표는 의결 절차가 아니라 (당원들의)의지를 묻는 것이고, 당헌 개정은 내일(지난 3일) 열릴 중앙위 의결을 통해서 절차가 완료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권이 최종 목표인 이 대표에게 당헌 개정 논란은 분명한 악재다. 민주당 박수현 홍보소통위원장은 “당 대표로서, 대권주자로서 민주당과 자신의 지지율 하락을 감내해야 할 외길이었다. 이 대표는 머뭇거리지 않고 독배를 들었다”며 일련의 논란을 평가했다.

욕먹어도
공천 강행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국회 사의 표명 사태’ 역시 이 대표에게 몰아닥친 악재다. 지난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이하 기재위) 전체회의 도중 “(대주주 기준과 관련해)최근 2개월간 갑론을박이 전개된 것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이에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사태는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나온 돌발 발언이었다. 전체회의에 배석했던 여야 의원들 모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순간 정적이 흐른 가운데 민주당 의원들은 홍 부총리의 발언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은 “설사 결심했더라도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 책임 있는 공직자의 태도인가”라며 “기성 정치인의 정치적 행동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어 부적절하다”고 질타했다.

민주당 소속의 윤후덕 기재위원장은 “질문도 없는 상황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스스로 밝혀 위원들이 애써 준비한 정책 질의와 예산 심의를 위축시켰다”며 “위원회 권위에 맞지 않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부총리의 국회 사의 표명 사태는 청와대가 사직서를 반려하며 해프닝으로 끝났다. 반려가 있고 난 후 홍 부총리는 “인사권자 뜻에 맞춰 직무 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사의를 표명한 지 하루 만에 다시 부총리 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 유인태 국회사무총장

그러나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홍 부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이유로 대주주 기준을 언급했다. 민주당과 정부는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두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펼쳤다.


홍 부총리의 기획재정부는 정책의 일관성, 과세 형평성 차원에서 기준을 3억원으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이 대표의 민주당은 현행 10억원의 기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분파하면  
이삭줍기?

결론은 민주당의 승리였다. 고위당정청 회의는 현행 10억원을 유지하는 쪽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은 그동안 쌓아 왔던 민주당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 대표가 줄곧 강조해왔던 당정청 ‘원팀’에 균열이 발생한 것이다. 원팀 기조는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이뤄내는 원동력이었다.

이 기간 민주당은 친문(친 문재인)을 중심으로 뭉쳤다. 현재 민주당 내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거리만 다를 뿐 모두 친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당정 사이에 균열이 발생함으로써 민주당이 당장 내년 4월에 열리는 서울·부산시장 보궐 선거부터 원팀을 이룰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일련의 과정이 거대여당의 폭주로 비칠 수 있다는 점도 선거에서 악재다. 제1차 추가경정예산안 편성 국면이었던 지난 3월, 민주당 이해찬 당시 대표와 홍 부총리가 정면충돌한 바 있다.


이 대표는 홍 부총리를 향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오면 나라도 물러나라고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홍 부총리는 “혹여나 자리에 연연해하는 사람으로 비칠까 걱정”이라며 응수했다. 당시에도 민주당은 홍 부총리의 반대를 꺾고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관철시켰다.
 

▲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이 대표의 대권 명운을 가늠할 중요한 정치 이벤트다.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표는 당정 갈등 논란에 대해 “(대주주 기준은 당정이)그다지 갈등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민주당 내)일부 의원들의 충정은 알겠지만,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친문이 이 대표와 결별하고, ‘독자노선’을 선택할 가능성도 대두됐다. ‘부엉이 모임’ 사조직 논란으로 잠행하고 있던 친문 핵심 인사들이 ‘민주주의4.0 연구원(이하 연구원)’ 창립을 준비하고 있는 것. 연구원은 오는 22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코로나19와 신문명’이라는 주제로 창립세미나를 열 예정이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
결국 양갈래 독자노선으로?

과거 부엉이 모임을 주도했던 친문 인사들이 대거 연구원에 합류한다. 민주당 도종환 의원은 연구원의 초대 의장을 맡으며, 부엉이 모임 출신으로 유일하게 원내대표로 당선된 홍영표 의원과 문 대통령의 최측근인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 중 전해철 의원이 가세한다.

그 외에도 다수의 청와대 출신과 86그룹 민주당 의원, 민간전문가 다수가 연구원에 합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부엉이 모임 사조직 논란을 의식한 듯 연구원은 정책 개발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정치적 논의보다는 코로나19 시대에 맞춰 정책 어젠다를 개발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 그러나 내년부터 매해 굵직한 선거가 예정돼있어 정치권은 연구원이 선거 국면에서 친문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연구원에 합류한 홍영표 의원은 이 대표가 대권 도전을 위해 대표직에서 물러나면 차기 당권에 도전할 것으로 예상되며, 전해철 의원은 민주당 내부에서 원내대표 출마 가능성이 언급된다. 민주당 당대표·원내대표 선거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끝나고 내년 5월에 치러진다. 현재 연구원은 싱크탱크의 성격이 강하지만, 향후 정치세력으로 진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친문은 이 대표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일등공신이다. 친문의 지지는 지난 8·29전당대회 당시 이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부터 63.73%의 득표율을 얻었다.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인 권리당원의 상당수는 문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민주당에 입당한 친문 성향 유권자들이다. 이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다.

친문이 잠행을 깨고 전면에 나선 이유에 대해 정치권은 대선주자들의 지지부진한 지지율을 꼽는다.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두그룹을 형성하고 있지만, 누구 한 명 앞으로 치고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당대회 전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독주하던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 대표와 이 지사 모두 친문과는 거리가 멀다는 점도 잠행을 깬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이 같은 지지율 답보 상태가 연말까지 계속되면 친문이 제3의 인물을 찾아 나설 수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친문 세력 일부라도 흡수해야 당내 경선에서 승산이 있다. 친문 인사들은 이낙연 체제에서 당의 요직에 대거 등용됐다.

일등공신들
분파 가능성도

박광온 의원은 민주당 사무총장, 홍익표 의원은 민주연구원장, 최인호 의원은 수석대변인으로 활동 중이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 출신의 김영배 의원은 당 대표 정무실장, 청와대 일자리수석 출신의 정태호 의원은 전략기획위원장으로 기용됐다. 이 대표 측은 주요 선거를 앞두고 발생할 수 있는 친문의 분파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낙연 싱크탱크’ 실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싱크탱크 ‘연대와 공생’이 내년 3월 출범을 준비 중이다.

출범 이후 대선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물론 이낙연표 대선 공약을 만드는 작업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경수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가 싱크탱크의 대표를 맡을 것으로 전해지며, 민주당 내 경제공부 모임인 ‘경국지모’에서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최운열 전 의원과 신경민 전 의원 등이 싱크탱크에 합류한다.

이 대표가 내각을 이끌던 시절 장관을 지낸 관료 출신들도 일부 싱크탱크에 합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학계 인사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경제 분과 소장에는 김재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 분과 소장에는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치 분과 소장에는 김남국 고려대 교수, 국민건강 분과 소장에는 김재상 이화여대 교수가 내정됐다. 

싱크탱크는 이 대표가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시점인 내년 3월 법인으로 전환해 정식 싱크탱크로 진화할 예정이다.

이 대표가 국무총리였던 시절 곁을 보좌한 남평오 전 총리실 민정실장이 실무를 준비한다.

친문 인사들이 주축이 된 민주주의4.0 연구원과 함께 본격적인 세력 경쟁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목>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