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철’ 예비후보들의 임대료 전쟁 내막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2.24 10:18:48
  • 호수 12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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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듯한데…’ 사무실 두 배로 뛴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선거는 ‘쩐의 전쟁’이다. 예비후보 신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복수의 예비후보자가 말한다. “움직이나 가만히 있으나 돈이 나간다.” 그중 선거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목돈이 나가는 부분이 바로 임대료다. <일요시사>는 예비후보들이 짊어지고 있는 임대료 부담 실태를 취재했다.  
 

▲ 선거 유세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선거철만 되면 ‘명당’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다. ‘사통팔달’(사방으로 통하고 팔방으로 닿아 있음. 즉 길이나 통신망이 막힘없이 통하는 모습)해서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정치권서 말하는 소위 명당이다. 

목 좋은
빌딩으로

일례로 5선의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사용했던 사무실은 광진을 지역구의 중심이자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자양 사거리에 위치해 있다. 광진을에 도전장을 내민 미래통합당 소속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사무실 역시 추 장관이 사용했던 사무실과 차로 1분, 도보로 5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지난해 8월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인사는 <일요시사>에 “보통 사무실은 그 지역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곳으로 잡는다. 오 전 시장이 사무실을 추미애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잡았다는 것은 제대로 한 번 붙어보겠다는 의지”라고 해석한 바 있다.

사통팔달만이 명당의 조건은 아니다. 종로 출마를 선언한 미래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지난 19대 총선 때 정세균 국무총리가 사무실로 썼던 광화문 인근 빌딩에 사무실을 차렸다. ‘당선 프리미엄’이 붙은 명당이다. 앞서 18대 총선 때는 한나라당(자유한국당 전신) 박진 전 의원이 이곳서 당선됐다.


황 대표와 대결을 펼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 역시 당선의 기운을 받는 곳에 사무실을 꾸렸다. 이 전 총리 사무실이 있는 종로6가 금자탑빌딩은 정 총리가 20대 총선 때 사용하던 곳이다. 이 전 총리는 기존에 계약한 빌딩 3층과 정 총리가 자리를 비운 5층을 사무실로 쓰고 있다.

종로가 대한민국의 정치 1번지라면 대구의 정치 1번지는 수성갑이다. 이 지역구 출마를 선언한 예비후보들 중 많은 수가 유동인구가 많은 범어네거리 일대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해당 일대는 전통적으로 지역의 요충지로 통한다. 해당 지역구 현역인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지난 20대 총선 당시 이 일대에 사무실을 차렸다. 경쟁자였던 김문수 당시 예비후보는 당초 만촌네거리 쪽으로 사무실을 물색했으나, 김부겸 측이 범어네거리에 사무실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듣고 계획을 수정, 해당 일대에 사무실을 열었다.

명당 선점 경쟁 ‘쩐의 전쟁’
수지타산 맞지 않아 이전도

21대 총선을 두 달여 앞둔 현재, 예비후보들은 이런 명당을 차지하기 위해 분주하다. 특히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정치 신인들에게 명당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홍보가 공천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예비후보들은 비싼 임대료에도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하곤 한다. <일요시사>와 대화를 나눈 예비후보들은 고충을 털어놨다. 

최근 수도권의 한 예비후보는 시세보다 두 배 높은 임대료를 감수하고 사무실을 계약했다. 원래도 인기가 많은 자리였지만, 본인에 대한 출마설이 지역에 돌자 임대료가 기존 금액서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해당 예비후보는 탄탄한 조직과 인지도 등을 갖춘 현역 의원과의 대결서 승리하기 위해 비싼 임대료쯤은 감수해야 한다고 털어놨다.
 


총선을 앞두고 사무실을 이전하는 예비후보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일요시사>가 만난 예비후보는 공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비싼 임대료 대비 공간이 협소해서였다. 그는 접근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훨씬 넓은 사무실을 선택했다.

충청의 한 현역 의원실 관계자는 캠프 시절을 떠올리며, 예비후보들이 느끼는 임대료 부담에 대해 설명했다. 좋은 자리는 한정돼있고, 선거 때마다 거점으로 쓰는 자리는 정해져 있으니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것.

웃돈을
주고라도

누군가 당선됐다고 하면 웃돈을 주고라도 사무실을 임대하고 싶어 하는 후보의 심리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예비후보자 등록 기간이 되면 지역에서는 치열한 눈치싸움이 전개된다.  

대구·경북(TK)의 한 예비후보 측 관계자는 선거철만 되면 뛰는 임대료 문제를 뿌리 뽑아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7일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선거철만 되면 임대료를 높게 부른다. 예를 들면 월세를 30만원 더 부르는 식이다. 관행이다. 이런 것도 사실은 선거법을 바꿔서라도 합리적인 가격을 찾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니 목 좋은 곳은 엄청나게 부른다. 이게 불공정의 시작이라 생각한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관행이라 말했다. 즉 임대료 상승은 총선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뜻이다. <일요시사>는 지난 6·13지방선거서 뛰었던 한 인사를 만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봤다.

“임대료가 많이 세진다. 두 배가 뛰고, 그것보다 더 뛰는 경우도 있다. 진짜 자리가 좋으면 조금 더 바가지를 씌우기도 한다. 선거철에 아쉬운 건 우리라서 건물주들이 조율을 잘 안 해줘도 ‘울며 겨자 먹기’하는 심정으로 계약해야 한다.”

지방선거 출마 경험이 있는 또 다른 인사는 “이런 경우도 있다. 건물주가 ‘난 무조건 1년 계약해야 한다. 아니면 계약을 안 하겠다. 계약하려면 하고 안 하려면 하지 마라’고 말하는 경우인데 실제로 1년 계약하는 사람도 봤다”며 “공천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보통은 선거가 다가와서 사무실을 급하게 구하는 편이라 우리가 절대적 ‘을’”이라고 하소연했다.

현수막도
비용 지불

사무실 외벽에 설치하는 현수막 비용도 고민거리다. 현수막 설치는 사무실 임대만큼이나 중요한 선거 과정이다. 당연히 후보자 입장에서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크고 퀼리티 좋은 현수막을 설치하고자 한다. 문제는 현수막 설치하는 데 드는 추가적인 비용이 만만찮다는 점이다.

사례는 다양하다. 현수막이 건물에 입점해 있는 매장의 간판을 가리는 경우, 통상 후보자가 매장 측에 배상해야 한다. 지불 금액은 지역별로, 매장 측의 요구별로 천차만별이다. 매장 측이 후보자에게 현금 대신 선풍기나 에어콘 등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는 후문이다.


건물주가 현수막을 설치하는 데 따른 추가 비용을 후보자에게 요구하기도 한다. 현수막이 건물의 외관을 해치니 비용을 지불하라는 이유다. 이 또한 지역별로 사람별로 천차만별이라 일반화하기는 힘들다. 어떤 건물주는 비용을 요구하지만, 또 어떤 건물주는 요구하지 않기도 한다.
 

▲ 선거는 돈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정치 이벤트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복수의 예비후보자들이 이러한 선거철 관행에 불만을 드러냈다. 이 같은 관례로 선거가 ‘쩐의 전쟁’이라는 굴레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러한 문제를 포함해 선거에 드는 비용을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불만을 드러내는 후보자만큼이나 건물주·임대인(임대차 계약에 따라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물건을 빌려준 사람)을 이해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선거철 사무실은 단기계약이 주를 이룬다. 두 달서 세 달 정도가 일반적이다. 경우에 따라서 1년 계약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 수는 많지 않다는 것이 지역 정가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따라서 단기계약을 하는 입장에서 1년, 2년 계약하는 사람과 같은 임대료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다.

단기 임대라서…
‘떴다방’ 닮았네∼

수도권의 한 예비후보는 “나는 (건물주를)이해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두 달 정도 사무실을 쓰는 동안 그 곳을 임대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지 않느냐”며 “건물주 입장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선거 때문에 놓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주·임대인의 입장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또 다른 예비후보는 ‘떴다방’(부동산 분양이 있는 지역으로 이동해 일시적으로만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데서 유래한 이름)을 예로 들었다. 

“(선거철 사무실은) 재고처리하려고 한두 달 장사하고 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면 정상적으로 1년, 2년 계약하면 되는 일 아닌가. 그 룰을 깨고 세 달 가량 사무실을 쓰는 건데(임대료를) 똑같이 내려고 하면 안 된다.”

추가적인 현수막 비용 역시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라고 여기는 예비후보가 적지 않았다. 다만 현수막이 건물을 가리는 일에 대한 배상은 ‘합당하다’와 ‘그렇지 않다’로 예비후보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합당하다는 측은 건물주의 사유재산을 이용한다는 점을, 그렇지 않다는 측은 건물주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준 적이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선거는 ‘빈익빈 부익부’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정치 이벤트로 그 부담은 현역 의원들보다 예비후보에게 더 가중된다. 임대료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역의 경우 통상 기존 지역 사무실을 선거 사무실로 전환한다. 반면 예비후보들은 단기로 새로운 사무실을 찾아 계약해야 한다. 현역보다 예비후보에게 가중되는 시간과 비용 부담이 더 큰 것이다. 

여전히 높은
‘15%’의 벽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21대 총선의 선거비용 제한액을 지역구 후보자 평균 1억8200만원으로 설정했다. 지역별로 차등이 있지만, 빚내서 선거에 나온 예비후보자들에게는 여전히 부담되는 액수다. 또 현행 선거법에 따라 후보자는 15% 득표 시 선거비용 전액, 10% 득표 시 반액을 보전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지도가 낮은 예비후보자들에게 15%는 여전히 높은 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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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