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권 ‘비례민주당’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3.02 10:15:25
  • 호수 12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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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는 꼼수로 막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계획된 수순일까, 불가피한 선택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그동안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 창당에 선을 그어왔던 더불어민주당의 내부 여론이 심상치 않다. 바로 ‘위성정당 불가피론’이다. <일요시사>는 민주당 내부서 흘러나오는 속칭 ‘비례민주당’ 시나리오에 대해 취재했다.
 

▲ (사진 왼쪽부터)손혜원 무소속 의원,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영길·민병두(더불어민주당) 의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창당 문제는 정치권을 줄곧 시끄럽게 만들었다. 거대 양당이 실제 위성정당을 만들게 되면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려는 제도의 기존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런 취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너도 나도

‘비례자유한국당’은 지난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창당준비위원회 결성을 신고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군소정당은 즉각 비판에 나섰다. ‘위장계열사’ ‘떴다방’ ‘괴뢰정부’ 등 자극적인 단어들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관위가 당명에 ‘비례’라는 단어의 사용을 불허하자 ‘미래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지난 5일에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한선교 의원을 당 대표로 미래한국당 중앙당 창당대회가 열렸다.

행사에 참석한 당시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황교안 대표는 ”미래한국당 창당은 무너지는 나라를 살리기 위한 자유민주세력의 고육지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관위는 지난 13일 미래한국당의 정식 등록을 허용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의 위기감을 증폭시키는 예상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던 참이었다. 통합당이 현재의 113석을 유지한다는 전제로, 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을 합한 의석이 140석 이상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 정설처럼 떠돌았다. 일각에선 두 정당을 합쳐 과반인 150석을 넘길 것이라는 예상도 내놨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민주당 내부에서는 공포가 확산됐다. 비례민주당(가칭) ‘불가피론’이 그 증거다. 통합당과의 대결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비례민주당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선거법 통과 후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결국에는 비례민주당을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지만, 큰 힘을 받지는 못했다. 민주당 지도부가 분명하게 선을 그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비례민주당은 정치권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친문(친 문재인)인 손혜원 의원의 발언 직후 비례민주당에 대한 관심은 들불처럼 번졌다.

앞서 지난 20일 손 의원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손혜원TV’을 통해, 민주당 주도가 아닌 친여 성향의 원외세력이 모여 창당하는 일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려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여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의 발언까지 더해졌다. 그는 지난 21일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장기적으로 보면 원칙의 정치가 꼼수 정치를 이긴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선거에선 민심이 왜곡될 우려가 있다”며 “만약 그런 비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입장을 전했다.

논란이 되자 그는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은 꼼수 중의 꼼수”라며 “민주당도 원칙대로 가는 게 맞다”고 입장을 선회했다.


원내1당 뻿기면…탄핵론 공포
‘불가피론’ 고개 속 총대는 누가?

정치권은 민주당 정봉주 전 의원이 위성정당에 참여하는 그림을 예상해왔다.

정 전 의원은 지난달 25일 새벽, 자신의 SNS에 “꿈꾸는 자를 참칭하는 자들이 판치는 정치판을 한 번쯤은 바꾸는 게 맞을 것 같다”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해당 게시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통합당 이준석 최고위원은 “정 전 의원이나 손 의원이 구심점이 돼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내다봤다. 정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열린민주당’ 창당을 선언했다. 

한 번 옮겨 붙은 불씨는 크게 확전되는 추세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이 위성정당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한 데 이어 같은 당 민병두 의원도 가세해 ‘민병대’ 주도의 위성정당 창당 필요성을 주장한 바 있다.

손 의원, 민 의원 등이 주장하는 내용의 요지는 민주당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위성정당을 만드는 형태가 아닌, 친여 성향의 원외세력이 모여 위성정당을 창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 의원이 위성정당을 언급하며 ‘민병대’라는 표현을 꺼낸 이유다.
 

민주당 지도부는 공식적으로 당 차원의 위성정당 창당에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도, 원외세력이 주도하는 창당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의병들이 여기저기서 나오는 것을 어쩔 수 있겠느냐”고 한 발언이 대표적이다.

위성정당 창당 시나리오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고한석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지난 24일 창당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민주당 내 청년 조직인 ‘전국청년당’을 아예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안이다. 원외세력 주도 창당은 금전적·물리적 한계가 있으니 당내 조직을 활용하자는 얘기다.

민주당은 최근 전국청년위원회를 전국청년당이라는 이름으로 개편했다. 

고 전 부원장은 “(다른 식으로 위성정당을 창당하면)정의당 등 군소 진보정당들의 극렬한 반발이 예상돼 차기 국회서 ‘연합 정치’가 어려워진다”며 “청년민주당(가칭)이 명분과 현실성이 있는 대안”이라고 밝혔다.

현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장경태 청년위원장은 청년 당원 중 일부가 자발적으로 “청년민주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전국청년당 조직을 청년민주당으로 만들거나 개편하는 일은 논의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위기감↑


위성정당 창당 여론은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과 비례한다. 최근 통합당서 거세게 밀어붙이고 있는 ‘탄핵론’에 대한 위기감이다. 통합당은 민주당으로부터 원내 1당을 빼앗은 뒤 문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나서겠다는 복안이다. 민주당 최재성 의원과 윤 전 실장, 고민정 전 청와대 대변인이 국회 정론관에 모여 문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한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를 한 목소리로 비판한 일은,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이 결코 작지 않음을 보여준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대구 봉쇄’ 조치” 홍익표의 말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지난 2018년 8월부터 맡고 있던 당 수석대변인직을 내려놨다.

대구·경북(TK) 지역에 대한 ‘봉쇄 조치’ 발언이 논란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는 고위 당·정·청 협의회 결과 브리핑서 봉쇄라는 단어를 써가며 코로나19 확산 저지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봉쇄라는 표현이 중국 우한 봉쇄처럼 TK 지역 사람들의 이동을 전면 봉쇄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파장을 낳았다.

논란이 커지자 홍 의원은 물론, 민주당 지도부도 나서 표현이 부적절했다고 사과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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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