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발’ 386 용퇴론

박수칠 때 떠나? 남아?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차기 대권후보로 꼽혔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21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발표했다. 임 전 실장은 현 정부의 핵심 실세로 86그룹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의 갑작스런 선언으로 ‘86그룹 용퇴론’이 불거지면서 여의도엔 최근 ‘세대교체론’의 바람이 불고 있다.
 

▲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총선을 5개월여 앞두고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86그룹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임 전 실장의 선언이 여권의 세대교체론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임 전 실장은 지난 17일 페이스북에 “제도권 정치를 떠나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려 한다”며 “앞으로의 시간은 다시 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싶다”고 밝혔다.

돌연…
불출마

임 전 실장은 “예나 지금이나 저의 가슴에는 항상 같은 꿈이 자리 잡고 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 번영. 제겐 꿈이자 소명인 그 일을 이제는 민간 영역서 펼쳐보려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 캠페인부터 비서실장까지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한 2년 남짓한 시간이 제 인생 최고의 기쁨이고 보람이었다”며 “50 중반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두렵기도 하다.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며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뛰어가겠다”고 적었다.

임 전 실장은 2000년 김대중정부 시절 ‘젊은피 수혈론’으로 국회에 입성해 2017년 문재인정부가 출범될 때 ‘2인자’ 자리인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지난 1월에 대통령비서실장직서 물러난 뒤, 내년 총선서 종로 출마를 위해 은평구서 종로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을 대표하는 거물급 정치인으로 자리잡은 그가 내년 총선서 ‘정치 1번지’로 꼽히는 종로에 출마해, 차기 대권 후보군 반열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은 진정성 있는 정계 은퇴가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며 승부수를 띄운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는 이유다.

정치권에선 ‘조국 정국’ 이후 86그룹 운동권은 ‘정치 기득권’이라는 비판이 크게 일고 있는 상황서 임 전 실장이 느끼는 부담감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우상호 전 원내대표는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조 전 장관 사태 파동 이후에 우리 세대에 대해 이런저런 질타가 쏟아졌지 않나. 국회의원 탐욕을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느니, 진짜 하고 싶었던 통일운동으로 돌아가자는 식의 마음 정리를 해온 게 아닌가 싶다”고 분석했다.

종로를 맡고 있는 같은 당 정세균 의원(6선)과의 지역구 조율 실패도 불출마 원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 의원은 7선 도전을 위해 지역구 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가 됐다” 세대교체 방아쇠
임의 큰 그림? 아름다운 선택?

정 의원이 종로를 내줄 의사가 없다는 게 명백해진 상황서 임 전 실장이 다른 지역구로 옮기는 것도 모양새가 빠지니 잠시 물러나 있겠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남북 정상회담의 주역을 맡았던 경혐과 서울시 정무부시장 경력이 있다. 이를 살려 2022년 지방선거서 서울시장 출마 또는 차기 통일부장관 입각 등 시나리오를 나름대로 그린 후 불출마를 선언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임 전 비서실장의 갈등설도 불출마 원인으로 꼽힌다. 양 원장은 최근 민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서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청와대 인사들이 청와대 출신 경력을 총선서 정치적인 경쟁력으로만 활용하는 데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해석된다.
 

▲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 전 실장의 의도와 상관 없이 총선을 준비하는 청와대 인사들에겐 ‘청와대 출신이라고 해서 지역구를 정리하거나 챙겨주지 않는다’는 메세지를 분명하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86그룹은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 민주화운동과 학생운동으로 민주주의 쟁취에 앞장서면서 비교적 이른 나이에 정계에 입문, 현재 정치권의 주류 세력으로 자리잡아 어엿한 중진 의원들로 성장했다.

민주당 86그룹 중 재선 및 중진의원은 이인영 원내대표를 포함해 박홍근·송영길·안민석·김태년·우상호·우원식·윤호중·조정식·최재성 등이 포함돼있다. 큰 물갈이 폭과 참신한 인적쇄신은 선거서 당의 승리를 이끄는 주요 변수로 꼽히는 만큼 이들은 매 선거철마다 ‘물갈이’ 대상으로 거론돼왔지만 당 지도부가 이를 강요할 수는 없다.

임 전 실장이 ‘자기 희생’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당내에서 인적쇄신의 정당성은 이미 확보된 셈이다.

“적극적으로
놓아야 된다”

쇄신론에 불을 지폈던 민주당 이철희 의원 역시 임 전 실장의 불출마에 대해 ‘아름다운 선택’이라며 당내 86그룹 정치인들을 향해 이제는 물러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서 “개개인이 역량 있는 사람들은 더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의 세대, 그룹으로서는 저는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이 의원은 “정치권이 국회를 너무 독점하기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는 386이라고 하는 86그룹이 퇴출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2030세대 청년 정치인의 유입이 끊겨 있어 대표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회에 세대교체론을 과감히 요구한 셈이다. 또, 평등과 공정을 외치는 청년들이 많아진 만큼 후배 정치인들에게 시대의 문제를 풀 역할을 물려줘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86그룹 용퇴론을 성찰과 반성의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서 “지난 30년간 386그룹이 정치권의 주역으로 있으면서 혁신에 얼마나 성과를 거뒀는지에 대해 근본적으로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김 의원은 “불출마만이 좋은 선택은 아니다”라며 맹목적인 중진, 86그룹 퇴진설에 우려를 표했다.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반면 쇄신론의 대상으로 꼽힌 의원들의 불만도 거세다. 86그룹 의원들이 기득권화 및 세대교체 대상으로 분류된 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도 당내 어느 정도 형성돼있다. 대표적인 86그룹의 핵심축인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모든 사람이 다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86그룹 용퇴론 확산에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에 "(86그룹이)그동안 쌓아온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힘을 모아줘야 한다”며 “이런 시기에 근거 없이 386, 586을 기득권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민주개혁 세력을 분열시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불쾌감
표출도

또 다른 86그룹 민주당 우 전 원내대표 역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우 의원은 TBS 라디오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 파동 이후에 우리 세대에 대해서 이런 저런 질타가 쏟아졌는데, 우리가 무슨 자리를 놓고 정치 기득권화돼있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86그룹 민주당 박홍근 의원은 “윗세대 선배들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 주역이 돼 일해본 경험이 없다. 어느 세대는 안 된다며 선거를 앞두고 한바탕 제사상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며 청산 대상으로 지목받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강하게 표출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도 “86그룹은 국회의원을 직업 삼아 하는 게 아니라 정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뜻이 있는 사람들이 많다”며 “단지 오래 했다는 이유로 나가라고 하면 당내서 공감대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구만 챙기는 다선 의원을 정리하기 위해 특정 세대를 겨냥한 쇄신 요구를 띄울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50대인 86그룹이 은퇴할 나이가 아니라는 점에서 50년대생인 중진의원들이 용퇴 대상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불거지고 있다. 86그룹의 용퇴가 아니라 중진 용퇴 쪽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이해찬 대표를 따로 만나 ‘중진 용퇴론’에 대한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장 임 전 실장과 종로 지역구를 두고 다퉜던 정 의원에 대한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민주당 초선 의원은 “국회의장까지 하고도 그 자리를 더 하겠다고 버티는 게 후배 입장에선 참 민망하다. 자유한국당에선 김세연 의원(3선)이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여당은 뭐 하고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참에 정치 풍토가 잡혔으면 좋겠다. 정말 양보해서 4선까지 한 사람은 5선에 도전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런 가운데 비례대표로 20대 국회 입성한 이용득 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이 의원은 은퇴 선언문을 통해 “현재 대한민국 정치환경에서는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며 “직접 경험해보니 우리 정치에는 한계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조국 정국’ 민낯 보인 86그룹
물갈이 폭보단 ‘판갈이' 중요


민주당 의원 128명 중 3선 이상 중진은 38명, 전체의 30%를 차지한다. 이 대표는 현재 당내서 최소 25명의 의원이 불출마할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는 민주당 현역 의원 중 공개적으로 21대 총선 불출마를 공식화한 의원은 이해찬 대표, 이철희·표창원·이용득 의원과 진영 행정안전부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장관, 문희상 국회의장 7명이다.

7선의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전당대회 때 “튼튼하게 당을 닦아 재집권할 기반을 마련하는 게 저의 마지막 역사적 소임”이라며 일찌감치 불출마 선언을 했다. 민주당 출신이지만 국회의장은 당적을 가질 수 없어 현재 무소속 신분인 문희상 국회의장(6선)도 내년 총선에 나가지 않기로 했다. 원혜영(5선)·백재현(3선) 의원 등도 불출마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백원우 부원장 역시 이미 총선 불출마 의사를 이미 밝혔다. 정기국회가 종료되는 내달 10일부터 21대 국회의원 예비 후보 등록신청 시작인 내달 17일을 전후로 불출마 선언 러시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물갈이 폭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문을 열어주는, 제대로 된 ‘판갈이’를 마련하는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6그룹은 2000년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피 수혈론’의 결단으로 정계에 대거 진출했다. 반면 2019년 현재는 청년 정치인들이 정계 입성을 위해 올라야 할 현실 정치의 벽은 너무 높다. 이는 정치 입문에 혜택을 받았던 86그룹이 청년 정치인 세대를 키우는 작업에 소홀했음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조국 정국을 겪으면서 청년세대는 86그룹의 기만과 위선의 민낯을 보게 됐다. 진짜 쇄신을 위해서는 ‘공정’과 ‘평등’을 외치는 청년들 사이서 86그룹의 용퇴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해 터져 나오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청년 정치인
키우는 작업

민주당 지도부는 인재영입 과정서 ‘청년세대에 대한 기회 부여’ 등을 원칙으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86그룹의 기득권화에 담긴 본질을 파악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아울러 당내 평가 과정을 통한 중진의원들의 명예로운 퇴진의 방식을 강구하고, 본인의 결단에 따른 질서 있는 세대교체가 병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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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