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법무부를 향한 검찰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대장동 항소’ 포기가 트리거다.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부가 수천억원 환수를 포기했다고 직격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외압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대장동 2차 수사팀은 핵심 인물들의 횡령액이 7000억원대라고 결론 냈다. 재판부는 달랐다. 검찰의 계산에 오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128억원이 부당하게 얻은 이익.” 1심 재판부가 판단한 대장동 일당들의 범죄수익이다. 7886억원이라고 본 검찰의 계산과는 차이가 크다. 검찰은 수사 초기부터 배임액을 완벽하게 특정하지 못했다. 재판부는 ‘가액 불상’이라고 언급하며 추징액을 473억원으로 제한했다. 사실상 ‘대장동 8000억원 환수 포기’는 검찰의 언론 플레이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언론 플레이
대장동 사건 수사와 공소 담당 검사들은 항소 포기에 대해 크게 반발했다.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를 비판하는 글을 쏟아낸 게 한둘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김영석 대검 감찰1과 검사는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한 전례가 있었나. 항소 포기로 인해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죄의 핵심 쟁점(재산상 이익 취득 시기 등)에 대한 상급심 판단 기회를 잃었다”고 비판했다.
강백신(사법연수원 34기) 대구고검 검사도 검찰 내부망에 “수사팀 및 공판팀은 본건 항소 여부에 대해 대검에서 법무부에 승인 요청을 한 경위, 판단 근거, 항소 필요 판단을 번복한 경위를 설명해달라”고 요구했다.
강 검사는 함께 올린 경위서에서 대검찰청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는 애초 항소를 제기할 예정이었지만 법무부 측에서 항소가 불필요하다고 의견을 내 항소 금지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반대로 대검이 항소를 불허했고, 이준호 서울중앙지검 4차장을 통해 “일부 피고인이 구형보다 중형이 선고돼 항소의 실익이 없다”는 설명을 들었다고도 주장했다.
검찰 내부에선 “항소의 실익이 없다”는 설명이 실무례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미현 검사도 전날 페이스북에 대검 내규인 ‘검사 구형 및 상소 등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을 게시하며 “구형의 2분의 1 미만일 경우 원칙적으로 항소하고, 예외적인 경우에 항소를 포기하도록 돼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3분의 1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1심 “대장동 일당 부당이익 1128억원”
수사·공소팀 “사퇴하라” 수뇌부 직격
검찰이 대장동 일당들의 부당이익이 7886억원이라고 주장한 건 지난 6월부터다. 당시 대장동 사건 1심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계산한 대장동 일당들의 부당이익은 다음과 같다.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 징역 12년, 추징금 6111억원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 징역 7년, 벌금 17억400만원, 추징금 8억5200만원 ▲남욱 변호사 징역 7년, 추징금 1011억원 ▲정영학 회계사 징역 10년, 추징금 647억원 ▲정민용 변호사 징역 5년, 벌금 74억4000만원, 추징금 37억2000만원 등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지난달 말 ‘정확한 손해액 산정이 불가능하다’며 총 473억3200만원만 추징했다. 1심 재판부는 대장동 일당 ▲김만배 징역 8년 추징금 428억원 ▲유 전 본부장 징역 8년 벌금 4억원 추징금 8억1000만원 ▲남 변호사 징역 4년(추징금 없음) ▲정 회계사 징역 5년 ▲정 변호사 징역 6년 벌금 38억원, 추징금 37억2200만원 등 각각을 선고했다.
대장동 담당 검사들은 항소를 포기하면서 2심에서 중형이 선고돼도 추징할 수 있는 범죄수익이 473억원으로 제한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공사는 2015년경 피고인들의 업무상 배임으로 인해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1822억원을 공제한 나머지 택지 분양 이익의 절반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침해당했다. 이후 실제 배당 과정에서 공사가 더 받을 수 있었던 금액은 1128억원”이라며 “이는 피고인들의 업무상 배임으로 인해 민간업자들이 추가로 취득하게 된 범죄수익이며, 부패재산몰수법 제2조에 따라 부패재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쉽게 말해 검찰이 주장한 7886억원이 아닌 1128억원이 대장동 일당들의 실질적인 부당이익이라고 본 것이다. 특히 검찰은 대장동 일당들에 대한 공소제기 이후 배임액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했다. 1심 재판부가 추징액을 473억원으로 제한한 결정적인 이유다.
의견 조율 없었다? 1차 수사팀 견해 안 물어
노 책임지고 닷새 만에 사퇴…수장 공백 커져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은 항소 포기 사태 닷새 만인 지난 12일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총장과 차장이 동시에 공석인 적은 2009년 이후 16년 만이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임채진 검찰총장이 사직하고 문성우 대검 차장이 물러나면서 한명관 당시 대검 기조부장이 직무대행을 맡았었다. 이번 사태는 과거보다 심각하다. 검찰청 자체가 사라지는 중대한 상황에서 수뇌부 공백이 발생한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누가 와도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 지휘부를 향한 일선 검사들의 비판은 사그라들고 있는 모양새지만 내부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분위기다. 대장동 사건 1차 수사팀에 속했던 관계자 일부는 이번 항소 포기 사태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 반발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2021년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로서 대장동 사건 1차 수사팀을 이끌었던 김태훈 서울남부지검장은 최근 언론을 통해 “검사장의 집단행동도 부적절하지만 특히 선택적 집단행동에 대해 비판적이어서 (지검장 공동 명의 성명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지검장과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1차 수사팀 일부 관계자들은 대장동 항소 포기 이후 검사들의 반응이 지난 3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법원의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한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 사태 때와 다르다고 지적한다.
대장동 항소 포기 직후인 지난 8일부터 11일까지 나흘간 검찰 내부망에 비판 글을 올려 언론에 알려진 검사만 수십명이다. 윤 전 대통령 석방 결정에 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즉시항고를 포기한 직후인 지난 3월9일부터 12일까지 나흘간 내부망에는 10명도 되지 않는 검사가 의견을 냈다.
내부 갈등
중앙지검에서 대장동 항소 제기와 관련한 의견수렴 과정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항소 포기 결정 과정에서 대장동 2차 수사팀 의견만 반영하고 1차 수사팀의 의견은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관계자는 “항소 논의는 2차 수사팀의 의견이다. 1차 수사팀에는 물은 적도 없고, 의견을 제시하려 해도 막혀 있는 상태였다”며 “모든 검사가 항소 포기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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