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중하게 잘 판단하라.”
이 말은 짧은 한 문장이지만, 지금 대한민국 법무 행정의 핵심 쟁점을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냈다. 대장동 사건 1심 판결 이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검찰에 건넨 이 말은 결국 항소 포기로 이어졌다. 정 장관은 “지시한 적 없다”고 말했고,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은 “법무부 의견을 참고했다”고 설명했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는 이 한마디가 지시냐 조언이냐를 둘러싼 논쟁을 불렀지만, 발언의 본질은 언어가 아니라 권한과 책임의 문제다.
논리학에서 “A이면 B다”라는 명제는 전제의 방향성을 내포한다.
그러나 “A를 고려해 B를 판단하라”는 문장은 결론을 위임하는 형태다. 전자는 명령의 언어고, 후자는 판단의 언어다. 정 장관의 발언은 후자에 가깝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는 말은 결과를 지시하지 않고, 판단의 책임을 되돌려준 명제다.
이 차이는 작지만 결정적이다. 명령의 문법이 작동할 때 조직은 위로부터의 지시를 기다리고, 판단의 문법이 작동할 때 조직은 스스로의 책임을 자각한다. 정 장관의 말은 바로 그 구조적 전환을 시도한 셈이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의 형사소추를 임기 중 제한한다(헌법 제84조). 이는 대통령이 형사적 피의자로서 기소되지 않는다는 의미이지, 위법 행위 자체가 면책된다는 뜻은 아니다. 기소의 보류와 면책의 인정은 다르다. 이 원칙은 국가 최고 권력자의 책임을 임시적으로 유보함으로써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한다는 제도적 판단에서 비롯됐다.
정 장관의 결정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구조를 지닌다. 검찰의 항소권을 법무부가 직접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법무 행정의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하면서 판단의 책임을 검찰 조직 내부에 유보한 것이다. 즉, 대통령의 소추 제한이 권력의 자율을 지키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면, 정 장관의 신중함은 검찰 자율을 회복시키기 위한 행정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신중하게 하라”는 표현은 때때로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조직문화가 상명하복일수록 그 언어는 더 강한 지시로 해석된다. 그러나 정 장관의 신중함은 ‘소극적 회피’가 아니라 ‘적극적 절제’였다.
정 장관이 직접 항소 지시를 내렸다면, 검찰의 독립성은 다시 정치의 그림자 아래로 들어갔을 것이다. 반대로 정 장관이 일체의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면, 법무 행정의 책임성이 희미해졌을 것이다. 정 장관의 태도는 그 중간인 책임과 자율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시도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정 장관은 절제의 언어로 균형을 택했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대통령실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전혀 다른 방향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기회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검토하라”고 정 장관에게 말했다. “검토하라”까지는 정 장관의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와 비슷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은 “있는 사실을 얘기한 걸로 명예훼손이라고 하는 건 맞지 않다. 민사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형사처벌이 아니다”며 “독일이나 해외 입법 사례를 참고해 시간 끌지 말고 빨리 추진하라”고 덧붙인 것은 정 장관의 언어와 완전히 다른 표현이었다.
정 장관의 신중함이 절제의 언어였다면, 이 대통령의 빨리 추진하라는 발언은 단호한 명령의 언어였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두 언어의 방향은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는 권력의 행사를 절제하는 개혁으로, 다른 하나는 국민의 언어를 해방하는 개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전자는 권력 내부의 통제에 관한 실험이고, 후자는 표현의 자유를 확장하는 제도적 선언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국회는 굵직한 현안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법사위 야당 의원들은 정 장관을 향해 “사실상 항소 지시를 한 것 아니냐”며 공세를 퍼붓고 있다. 정 장관은 12일 오후 법사위 전체회의에 나와 직접 설명할 예정이다.
야당은 “정치적 고려에 따른 항소 포기”라며 비판하고 있고, 여당은 “법무부가 검찰을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검찰의 자율성 회복을 강조할 것이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는 이 한마디가 정치권의 해석 프레임 속에서 상반된 의미로 재구성되고 있는 것이다.
논리학에는 ‘이중 부정의 오류’라는 개념이 있다. “개입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곧 “책임을 회피한다”는 결론으로 연결되는 오류다. 정 장관의 언어가 바로 그 시험대 위에 있다. “지시하지 않았다”는 말이 곧 “책임이 없다”는 뜻으로 왜곡될 위험, 그것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다.
그는 실질적으로 검찰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결과적으로 법무 행정의 방향성을 보여줬다. 논리적으로 보면, 비개입을 통한 개혁이라는 역설적 구조를 실험한 것이다. 이 대통령의 지시 또한 같은 문맥에 놓여 있다. 신중함이 멈춤의 언어라면, 폐지는 단호함의 언어다.
둘 다 권력을 쥐되 휘두르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정 장관은 권력을 휘두르지 않음으로써 권력을 제어했고, 이 대통령은 형벌의 권력을 내려놓음으로써 언론의 자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이 두 개의 실험은 결과적으로 권력의 언어를 국민의 언어로 되돌리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맞닿아 있는 것이다.
정 장관의 신중함은 결과적으로 법무 행정이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보여준 하나의 문법이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의 지시는 국민의 언어가 어디까지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를 묻는 또 하나의 문법이었다.
“신중하게 잘 판단하라” 이 말은 이제 법무부와 검찰만이 아니라, 정치와 사회 전체가 되새겨야 할 명령문이다. 그리고 그 말의 주어는 더 이상 정 장관이 아닌 우리 모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