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가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으로 야권 정치인 4명을 대통령실에 요청한 사실이 언론 취재진에 포착되면서, 그의 일관성 없는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송 비대위원장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텔레그램 메시지로 안상수 전 인천시장 부인 김모씨, 정찬민·홍문종·심학봉 전 의원 등 4명을 광복절 특사로 요청하는 장면이 <이데일리> 카메라에 포착됐다.
사진에 따르면, 송 위원장은 “감사합니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눈웃음 이모지를 보냈으며, 강 비서실장이 “이게 다예요?”라고 묻자 “현재까지 연락 온 건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날 송 비대위원장은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면 요청에 관한 질문을 받자 “그건 얘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곽규택 수석대변인은 5일 원내대책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송 비대위원장의 요청이 당의 공식적인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곽 대변인은 “특사 때마다 대통령실과 여야 간에 특사 대상에 대한 의견 교환이 있었다는 정도의 차원으로 생각해달라”고 당부했다.
문제는 송 비대위원장의 말과 행동이 다르다는 점이다. 그는 불과 며칠 전인 지난달 2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광복절 특사는 철저히 민생 사범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 대통령 사면이 정치적 거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가에선 이를 두고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사면론이 여권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입장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송 비대위원장이 요청한 대상자들의 배경은 논란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안 전 시장의 부인 김씨는 지난 2021년 국민의힘 제20대 대선 경선에서 홍보 대행사 대표에게 수억원 규모의 금품을 건넨 혐의로 1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안 전 시장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1년에 2년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정 전 의원은 용인시장 재직 시절, 부동산 개발업자에게 인허가 관련 특혜를 제공하고 중간자를 통해 뇌물을 챙긴 혐의로 7년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상실했다.
홍 전 의원은 2012년 한나라당 의원 시절, 사학재단 이사장과 대학 총장 직무를 맡아 교비 75억원을 횡령하고 배임한 혐의로 4년6개월 징역형이 확정됐으며, 이로 인해 의원직이 박탈됐다.
심 전 의원은 2013년 12월, 경북의 한 제조업체를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4년3개월의 징역을 선고받았고, 이에 따라 10년간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결국, 송 비대위원장의 모순적인 행보는 사면이 정치적 거래 수단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더욱 불 지피게 된 셈이다.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은 5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저희 지도부가 며칠 전까지도 조국 전 대표 사면 (반대) 얘기를 많이 했다”며 “앞에서 ‘사면하면 안 된다’고 얘기하는데 뒤에서는 그런 흥정과 거래가 있었다는 점이 노출된 건 지도부의 권위와 신뢰마저도 굉장히 무너뜨린 일”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은 사면 대상자들에 대해 “아직 사면복권을 할 만큼, 우리 사회가 그걸 용인할 만큼 형기가 지나지 않은 것 같다”며 “매우 안타깝고 부적절했다”고 덧붙였다.
윤희석 국민의힘 전 대변인도 전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서 허탈감을 드러냈다.
윤 전 대변인은 “이게 뭐냐. 이렇게 되면 일단 거명된 분들 (사면) 안 된다”며 “조국 전 대표 특사 얘기가 나오면 저희가 반대하잖나. (그런데 송 비대위원장이 야권 정치인 사면을 요청하면) 그 논리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지금 거명된 분들이 다 안 좋은 일로 처벌받은 분들”이라며 “이건 (의미가) 큰 사진”이라고 강조했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주진우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면권이 자기 죄를 감추거나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남용돼서는 안 된다”며 “우리가 사면을 요청하면 조국, 이화영 같은 사람들 사면의 빌미가 될 수 있다. 정치인 사면 거부하고 민생 사면만 요구하자”고 주장했다.
송 비대위원장과 강 비서실장의 대화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대통령실은 “사면에 대한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앞선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정치인 사면 여부와 대상을 묻는 질문에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민생 사면 관련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으로 안다”며 “이조차도 아직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해 민생 사면을 하겠다고 논의가 위로 올라오는 상태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정치인 사면에 대해선 뚜렷한 논의가 오가고 있지 않은 상태”라고 말을 아꼈다.
다만 일각에선 정치적 사면이 여야 진영 간 균형을 맞추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던 관행을 고려할 때, 이재명 대통령이 조국 전 대표 사면을 검토한다면 보수 측 인사도 함께 사면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현재 보수 진영에서 조국 전 대표급 인물이 부족한 상황에서, 송 비대위원장이 제안한 4명이 그 ‘균형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법무부는 오는 7일 사면심사위원회를 열고 광복절 특사 대상자를 심사할 예정이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이르면 오는 11일 국무회의에서 심의·의결을 거친 뒤 이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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