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치와 꼼수 사이' 차기 총리 하마평

그냥 철수로 갈까? 말까?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대통령만큼 관심받는 인물은 국무총리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 인사, 조직 등 권한 축소를 예고하면서 권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는 차기 총리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뜨겁다. 차기 총리는 통합과 전문성의 이미지를 함께 겸비한 인물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총리직은 지명 직후 혹독한 검증 시험대를 거친다. 국정 전반을 지휘하면서 지탄을 받게 되면 헌법상 대통령이 해임 권한을 가져 짐을 싸는 경우도 숱하다. 이런 탓에 총리는 파리 목숨에 비견되기도 한다. 

1년짜리
얼굴 마담?

지금껏 임기 2년을 넘긴 총리도 단 9명 뿐이었다. 한 인물이 오랫동안 자리를 지킨 경우가 없다. 근래에는 문재인정부 첫 총리를 맡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총괄선대위원장이 임기 2년을 채운 게 전부다. 

차기 정부에서 새 정부 총리가 얼마나 권력을 가지게 될지 모두 주목한다. 역대 정권에서도 늘 총리의 권한이 강화돼야 한다는 기조가 뚜렷했다. 대통령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를 타파하기 위함이다.

이런 탓에 일각에선 책임총리제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책임총리제는 총리에게 실질적인 인사권을 주자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이해찬 당시 총리를 임명하고 책임총리제를 한 차례 실행한 바 있다.


당시 책임총리제가 가능했던 이유는 노 전 대통령과 이 전 대표가 신뢰관계에 있고, 이 전 대표가 여당 내 책임총리였다는 점에서 가능했다. 현재 여대야소의 현상이 뒤집힌 여소야대 형국에서는 실현 가능성이 다소 낮다.

이런 탓에 차기 윤정부의 대표 얼굴 중 하나인 총리에 누굴 임명할지 결정하기 쉽지 않은 모양새다.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차기 윤정부는 슬로건으로 국민 통합을 내세우고 있다. 인수위원회 다양한 범주의 인사를 영입 중이다. 

차기 총리 역시 여러 인물이 하마평에 오른다. 윤정부 1대 총리는 국민 통합과 실무 능력 등 ‘상징성’을 갖춘 인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여소야대 대립구도를 타파할 수 있는 인물이 차기 총리로 지명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가장 강력히 떠오르는 인물은 대선 직전 윤 당선인과 단일화했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다. 안 대표는 단일화 선언 당시 합의문에서도 공동 정부를 반드시 실현시키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단순히 정권교체 명분만을 가지고 단일화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상징성 가진 인물 임명 중요 
전문가 이미지로 상승 효과

현재 안 대표는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고 있는데, 이를 통해 단일화 과정에서 윤 당선인과 안 대표가 약속한 통합의 첫걸음을 내딛기 위한 포석을 깐 것으로 해석된다. 


일각에선 인수위원장 자리를 안 대표의 시험대라고 관측한다. 2개월 남짓한 시간 내 안정적으로 인수위를 이끌어야 총리로 임명될 경우 반발이 적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를 윤정부 1대 총리로 임명하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에서는 중도층을 통한 외연 확장을 강조해온 기류를 이어갈 수 있고, 통합·공동정부 등의 상징성을 나타낼 수 있는 적임자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여론에서도 안 대표 능력에 기대치가 높으며 전문가라는 이미지도 강하다.

그러나 자칫 인수위 활동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그 책임론이 고스란히 돌아갈 수 있어 변수가 될 수 있다. 이를 의식한 듯 안 대표 역시 지금은 인수위에 집중할 때라며 총리 언급을 자제시키려는 분위기다. 

안 대표와 비슷한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카드로 언급되는 인사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다. 반 전 사무총장은 한국 최초의 유엔사무총장으로 국제무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이미 총리실, 대통령비서실 등 경력이 있는 점도 강점이다. 굵직한 행정부, 외교 경험이 총리직을 수행할 때 장점으로 비친다. 

과거 노무현정부에서 사무총장직에 오른 이력 덕에 민주당의 반발도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무총장 시절 그가 강조하던 메시지도 통합이라는 점을 들어 윤 당선인의 러닝메이트 역할을 함께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호남으로
일단 통합? 

또 반 전 총장이 충청 출신인 만큼 충청권에서도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점도 이점이다. 반 전 총장 카드로 충청에서의 지방선거 승리까지 노려볼 수도 있다.

정치권에서는 두 인물 모두 총리로 적합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전문가 이미지를 통해 공동정부 실현이라는 상징성이 두드러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다만 두 인물이 국민의힘 내부 지지기반이 거의 없는 탓에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안 대표는 행정 경험이 전무해 전문가 이미지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라는 상징성과는 다르게 지역적 상징성을 띤 인물들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윤 당선인은 유세 기간 호남을 공략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호남 득표율도 대선 관전 포인트로 여겼다. 결과적으로는 호남에서 어느 정도 선방했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호남 공략이 일정 부분 먹혀든 셈이다.

이런 까닭에 윤 당선인이 지역적 통합에 방점을 두고 민주당 혹은 호남계 인사를 총리로 지명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호남인 차기 총리로 오르내리는 인물은 국민의힘 김병준 지역균형발전특위 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윤 당선인이 정계에 발들이게 한 인물 중 한 명이다. 윤 당선인의 정치적 멘토 역할을 수행하며 정치적으로 신뢰가 깊은 사이다. 

국민의힘 선대위 출범 초기에도 선대위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당시는 국민의힘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위원장직을 내려놓으며 한 발 물러났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재차 위원장으로 임명하면서 한층 더 관계가 강화된 모양새다. 선대위에서 맡았던 역할을 그대로 이어가려는 기류가 강하게 흐른다. 

김 위원장은 원조 친노(친 노무현) 출신으로 불린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 정책특보 등을 지낸 이력도 있다. 당시에도 지역균형발전 전문가로 평가받기도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임기 말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총리 후보자로 거론됐었다.


정통 행정가?
아니면 측근?

이는 김 위원장이 보수계로 첫발을 내딛게 된 계기였다. 

새시대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전 대표도 언급된다. 김 전 대표는 위원장을 역임하며 옛 민주당 인사와 윤 당선인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했다.

호남을 통한 외연 확장으로 윤 당선인의 호남 지지에 힘을 보탰다. 현재는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아 윤 당선인을 지원 사격 중이다. 

이 밖에 호남 출신으로 박주선 취임준비위원장이 언급된다. 대선 기간 윤 당선인은 호남에서 집중 유세를 펼칠 때 적극 지원 공세를 펼쳤던 인물이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호남 유세에서 윤 당선인에게 표를 끌어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DJ(김대중)정부 당시 대통령 비서실 법무비서관을 지낸 이력을 가졌다. 광주에서만 4선을 지냈으며 민주당 인사 출신이다.

총리설이 떠오른 뒤 박 위원장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나 “정권교체의 밀알이 되고 싶다”며 긍정 쪽에 한층 더 무게를 실었다. 

호남 출신의 세 인물이 총리로 떠오른 데는 민주당과 관계 때문으로 보인다. 여소야대인 상태에서 거대 야당과의 협치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들 모두 민주당과의 관계가 냉랭한 탓에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이들의 언급이 오히려 겉으로만 국민 통합을 시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총리는 윤 당선인이 펼치려고 하는 탕평책 시험대 중 하나다. 총리 임명을 위해선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까닭에 총리 후보자에 대한 민주당의 견제는 거셀 것으로 예상된다. 

문재인정부의 탕평책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이 주를 잇는 있는 만큼 윤 당선인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자칫 어설프게 총리를 지명했다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정치권에서는 오히려 통합보다는 정통 관료 출신 인물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근에는 김부겸 총리 유임설도 나돌고 있다.

정통 관료로 운영 안정감
어설픈 지명은 되레 역풍

당시 김 총리는 논의할 가치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면서 강하게 선을 그었다. 윤 당선인 측도 검토된 바 없다며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다만 원희룡 기획위원장은 가슴 뛰는 일이라며 김 총리 유임설을 띄운 바 있다. 통합정부를 운영하기 위해 김 총리가 유임하는 방안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실제 김 총리와 윤 당선인은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근혜정부에서 윤 당선인이 대구고검으로 좌천됐을 때 함께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을 정도다. 

정치권에서도 김 총리의 유임을 두고 의견이 엇갈린다. 보통 정권이 교체되면 차기 정부는 새로운 방향을 설정한다. 총리는 대통령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야 하는 위치다. 

그동안 김 총리는 문정부의 정책 등 실패에 대한 질타를 적극 방어해온 인물이다. 김 총리 본인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 

김 총리가 유임을 통해 내각 통합을 이어가게 된다면 문정부와는 정반대의 기조를 내세워야 하는 만큼 사실상 유임은 불가능한 일인 셈이다. 

또 다른 정통 관료파 인물로는 정진석 국회부의장도 거론된다. 정 부의장은 5선을 지낸 국회의원으로 윤 당선인의 출마 기자회견 때부터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내 최다선인 정 부의장은 국민의힘 내에서 친윤(친 윤석열)파 우두머리 역할까지 맡았다. 과거 이명박정부에서는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재임해 이미 행정부와 입법부의 업무를 조율해온 경험도 많다.

당시에도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의 면담을 성사시켜 정권 재창출의 포석을 깔았다는 평가가 실무적 능력에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정치권에서는 정통 관료의 경우 총리직을 수행하기 수월하지만 신선하지 않다는 반응이다. 

새 인물
선택하나

총리는 대한민국 2인자다. 윤 당선인이 어떤 인물을 총리에 임명하느냐에 따라 국민 통합과 분열로 갈릴 수 있는 사안이다. 정권교체가 이뤄졌기 때문에 윤 당선인과 뜻을 같이 하는 인물을 제대로 된 검증을 통해 함께 이끌어 나가야 한다. 윤 당선인이 능력에 입각한 인물을 임명하겠다고 밝혀 조만간 후보군이 압축될 것으로 보인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힘 내부 총리 하마평

차기 윤석열정부 총리로 언급되는 인물은 당내에서도 여러 인물을 두고 하마평이 나돈다. 우선 윤 당선인 바로 옆에서 대선을 승리로 이끈 인수위 권영세 부위원장이 언급된다.

권 부위원장은 선대본부 개편을 통해 안정감 있는 리더십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음으로는 선대본부에서 정책통을 맡았던 원희룡 기획위원장도 떠오른다.

원 위원장은 국민의힘 경선 직후 선대위에 합류한 이후 윤 당선인의 새로운 최측근으로 분류된 인사다.

과거 제주도지사를 맡아 이미 행정 경험도 있어 안정감을 꾀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다만 원 위원장의 경우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노릴 수 있다는 관측이 다수다.

이 밖의 인물로는 국민의힘 윤희숙 전 의원도 있다. 윤 전 의원은 경제학자 출신으로 중량감은 떨어지지만 여성인 점과 전문성을 겸비했다는 평이다.

정치권에서는 과거 부친의 땅 투기 의혹으로 국회의원을 사퇴해 청문회에서 집중 질타를 받아 가능성이 낮다는 의견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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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