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윤석열 검찰총장 둘러싼 여야 쟁탈전

러브콜이냐? 동네북이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한 정치권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줄곧 관심의 대상이었던 검찰의 수장이라 해도 정치권의 이 같은 관심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야당은 윤 총장을 언급하며 대권주자로서의 가능성을, 여당은 검찰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군기 잡기에 나섰다. 
 

▲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한 다양한 정치권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윤석열을 잡아라!’ 여야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검찰총장 잡기에 나섰다. 물론 의미는 다르다. 대선, 지선, 총선 등 세 번의 선거서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 완패한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한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다. 반면 법제사법위원장을 차지한 민주당은 윤 총장을 손봐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여론조사서
이름 언급

통합당은 21대 총선서 103석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문재인정부 3년 차에 치러진 선거였지만 유권자들은 통합당을 외면했다. 이후 김종인 전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을 비대위원장으로 쇄신에 나섰지만 뾰족한 돌파구는 아직 찾지 못했다. 특히 불과 2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설 차기 대권주자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대선주자 선호도를 자유응답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28%로 1위를 차지했다. 이 의원의 선호도는 한국갤럽 조사서 6개월 연속 20%를 상회하고 있다. 

2위는 지난 조사보다 1%포인트 올라 12%를 기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이 지사는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번져가던 지난 3월부터 지지도가 크게 올랐다. 반면 통합당 홍준표 의원(2%),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1%), 오세훈 전 서울시장(1%) 등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들은 힘을 쓰지 못했다. 보수 야권에서는 3% 이상 선호도를 기록한 후보 자체가 없었다. 


한국갤럽 관계자는 “제1야당 또는 보수 진영의 구심점 역할을 할 리더가 눈에 띄지 않는다”며 “야권 인물들은 모두 통합당 지지층이나 무당층, 보수층서 한 자릿수 선호도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보수 진영의 대권주자들이 실종된 상황서 윤 총장은 일종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모양새다. 한국갤럽 조사서 윤 총장은 선호도 1%를 기록, 대권주자들 사이에 이름을 올렸다. 윤 총장은 이미 이전에도 여러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서 이름이 거론된 바 있다. 

다음 달이면 취임 1년
정치권에서 관심 많아

<세계일보>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1월26∼28일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적합도 여론조사 결과 윤 총장은 10.8%를 얻었다. 이낙연 의원(32.2%)에 이어 2위다. 심지어 황교안 당시 통합당 대표(10.1%)보다도 높았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보도가 나간 후 윤 총장은 “여론조사 후보군에서 빼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한국갤럽이 2월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서도 윤 총장은 5%의 선호도를 얻어 이 의원(25%), 황 전 대표(10%)에 이어 3위에 올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 악수 나누는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윤석열 검찰총장 ⓒ문병희 기자

당시에도 대검찰청은 윤 총장을 후보군서 제외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한국갤럽 측은 “응답자들이 직접 주관식으로 선호 인물을 꼽는 식이라 제외가 어렵다”고 회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론조사 등을 통해 잠재적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윤 총장의 존재감이 정치권, 특히 야당인 통합당서 최근 높아지고 있다. 통합당 관계자들이 대권주자를 거론하는 과정서 윤 총장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것. 특히 김종인 비대위원장이나 김무성 전 의원 등 그동안 대선서 ‘킹메이커’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 윤 총장을 언급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1대 국회서 현직 의원 타이틀을 뗀 김 전 의원은 통합당의 킹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서 “제일 중요한 대통령 선거에 우리가 쌓아온 경륜을 총동원하겠다”고 밝혔다. 

빼달라 해도
선호도 나와

이날 인터뷰서 김 전 의원은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윤 총장에 대해 “내 주변에도 윤석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좌파 정권하에 임명직 검찰총장이 어려운 상황서 꿋꿋이 버티고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는 사고의 유연성, 사고의 민주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검찰서 평생 소신으로 인기를 얻었는데 정치인으로 변신이 가능할까”라며 윤 총장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 의문부호를 달면서도 “변신이 되면 그것도 가능한 이야기다. 이 사회에 영웅이 탄생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종인 위원장은 지난 8일 TV조선 <뉴스9>에 출연해 통합당의 차기 대권주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대권주자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대선에 관심 있는 사람이 미래 비전을 제시하며 스스로 나와야 한다”며 “대권주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있지만 확실하게 부각되는 사람은 없다”고 짚었다. 

통합당 대권주자로 윤 총장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서는 “후보 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으냐고 하지만 본인이 현직에 있어 부정적 자세를 갖고 있다”며 “만약 일반인으로 들어와 그런 의사가 있다고 밝히고 후보가 된다면 그때 여러 여건하에서 가능할지는 그때가 돼봐야 안다”고 설명했다. 가능성을 아예 닫아 두진 않은 셈이다. 

앞서 김 위원장은 총괄 선거대책위원장 시절 총선 유세를 다니던 때 “윤석열 검찰총장이 가장 정직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검찰총장으로 임명할 때 상황과 어떠해서 임명을 했고 그 다음에 조국 사태가 나서 윤 총장이 자기는 법대로 하겠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윤 총장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그런 것이 현 정부의 모습 아니냐”고 말한 바 있다.
 

▲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문병희 기자

가족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정치권서 감싸는 태도를 비판하는 과정서 나온 말이다.

통합당서 윤 총장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데 반해 민주당은 연일 ‘윤 총장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21대 총선서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얻어 검찰 개혁에 힘이 실리면서 비판 수위는 점차 높아지는 추세다. 여기에 민주당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면서 검찰, 특히 윤 총장은 표적이 되는 모양새다. 

거대 여당
법사위까지

민주당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서 전반기 법사위원장으로 4선의 윤호중 의원을 선출했다. 거대 여당을 견제하고 협치를 위해 매 국회서 제1야당 몫으로 남겼던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차지한 것이다. 법사위원장은 국회 입법 활동서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기 때문에 대개 제1야당에 돌아갔다. 여당이 쟁점 법안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려 할 경우 견제하는 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다. 

법사위원장 외에도 민주당은 이날 국회서 기재위원장(윤후덕)·외통위원장(송영길)·국방위원장(민홍철)·산자위원장(이학영)·복지위원장(한정애) 등 6명의 상임위원장 선출안을 표결로 처리했다. 통합당은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향후 의사일정을 전면 보이콧하기로 했다. 21대 국회 개원과 동시에 여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통합당의 강력한 반발과 지금까지 제1당 몫이라는 관행에도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끝까지 사수하면서 검찰 개혁에도 속도가 붙을 예정이다. 실제 윤 법사위원장도 “우리 사회의 마지막 개혁 과제 중 하나인 사법부와 검찰의 개혁을 완수하겠다”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법제도의 질서가 사회에 정착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법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20대 국회에 이어 21대 국회서도 법사위원에 배정된 민주당 김종민 의원은 지난 16일 법사위가 열리면 윤 총장의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 감찰 무마 의혹을 집중 추궁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통합당, 대권주자로 언급
민주당, 전방위에서 공격

앞서 법무부는 한 전 총리 수사팀에 대한 감찰을 대검 감찰부 감찰3과에 넘겼는데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 맡도록 윤 총장이 지시한 것을 두고 ‘감찰을 막으려는 취지 아니냐’는 의혹이 언론서 제기됐다. 

김 의원은 이날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워낙 국민적 관심이 높은 사안”이라며 “결과도 중요하지만 누가 어떤 절차를 거쳐 조사를 하는지 절차와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특히 검찰에 가장 큰 부담이 되는 게 남의 범죄에 대해선 매우 엄격하게 다루는데 제 식구는 감싸기를 계속 해왔다는 것”이라며 “검사장과 연루 의혹이 있는 채널A 사건에 대해서도 공정하고 투명하게 조사 과정을 밟아야 된다”고 강조했다. 
 

▲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한 전 국무총리 사건과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사건 등에 대해 말을 보탰다. 추 장관은 지난 18일 “대검이 감찰을 중단하고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실에 진상 확인을 지시한 조치는 옳지 않다”며 윤 총장에 직격탄을 날렸다. 이는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대검 감찰부서 법무부 직접 감찰을 회피하려고 한 것이 아니냐”라는 질의에 대한 답변이었다. 

추 장관은 “감찰 사안인데도 마치 인권문제인 것처럼 문제를 변질시켜 인권감독관실로 이첩한 대검 조치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관행화돼서는 절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검 스스로 감찰을 이끄는 감찰부장을 외부 인사로 한 점을 명분을 삼아놓고서는 그것을 회피함으로써 관례를 만들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시정 조치를 밟겠다”고 예고했다.

추미애 장관
직격탄 날려

윤 총장은 다음달로 취임 1년을 맞는 상황서 벼랑 끝까지 몰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총선서 압승을 거둔 것에 이어 법사위원장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검찰에 대한 압박 수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기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7월 출범을 앞두고 있어 윤 총장이 ‘식물총장’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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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