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이후…> ⑤‘참패한’ 보수의 미래

‘침몰 직전’ 구멍난 통합호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 21대 총선서 참패하면서 ‘선거 4연패’라는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역대 대한민국 선거 중 보수정당이 맞은 최악의 참패다. 이대로라면 2022년 대선도 어렵다. <일요시사>는 통합당의 향후 계획을 점쳐봤다.
 

▲ 지난 15일, 21대 총선서 미래통합당 여의도 당사서 출구조사를 지켜보고 있는 미래통합당 지도부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은 21대 선거서 103석(지역구 84석·비례대표 19석)을 얻어 개헌 저지선(100석)을 겨우 지켜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경기·충청·제주 등 대부분의 지역서 우세를 보이면서 180석(지역구 163석·비례대표 17석)을 얻는 기염을 토했다.

중도 이탈
분당까지?

통합당에게 그나마 다행인 건 이번 총선서 보수 세력이 결집했다는 점이다. 통합당의 주요지지 기반인 TK(대구·경북)에서는 범보수 진영이 석권했다. PK(부산·울산·경남) 역시 표심이 다소 갈렸지만 거의 분홍 물결로 덮혔다. 하지만 집토끼 잡기에 급급해 중도층을 놓쳤다는 뼈아픈 평가가 잇따랐다.

이번 선거로 통합당은 충격에 휩싸인 상태다.

통합당 황교안 전 대표는 지난 15일 개표가 진행되고 있는 늦은 밤에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21대 총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제1당을 자신했던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 역시 “자세도 갖추지 못한 정당에게 지지를 요청해 송구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김 전 위원장은 민주당과 통합당의 지난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승기를 잡아오면서 ‘선거의 달인’으로 불렸지만 통합당의 참패로 커리어에 적잖은 흠집이 나게 됐다.


이번 선거는 영·호남 지역구도가 더 굳혀져 거대양당 정치 형태로 다시 회귀하는 양상을 보였다. 선거의 승패를 가른 건 역시 중도 민심이었다. 통합당은 선거내내 ‘문정권 심판론’을 앞세워 네거티브 공세에만 집중했다.

텃밭만 겨우 지켜…대선도 먹구름
궤멸 위기 직면 가시밭길 앞날은?

선거 직전까지 휘말렸던 막말 논란은 민심이 등을 돌리는 데 불을 지폈다. 당 윤리위는 ‘세월호 텐트’ 막말 논란을 일으킨 경기 부천병의 차명진 후보에게 ‘탈당 권유’ 징계를 내렸다. 세대 비하 발언으로 빠르게 제명된 관악갑 김대호 후보에 견줘봤을 땐 상당히 낮은 수위의 징계였다. 수도권 후보들 사이에선 차 후보를 지키다 수도권 표심이 다 날아가게 생겼다는 읍소마저 터져 나왔다.

끝내 차 후보는 ‘현수막 성희롱’ 등의 발언을 이어가며 중도 민심 이탈을 자초했다.
 

▲ 기자회견 갖는 김종인 위원장

이번 선거로 통합당은 대선에 출마할 지도부급 인물들을 모두 잃었다. 황 전 대표는 종로서 민주당 대표주자인 이낙연 후보에게 선거 초반에 패색을 보였고, 심재철 원내대표는 경기 안양시동안을서 민주당 이재정 당선인에게 패했다.

나경원 전 원내대표 역시 4선 고지서 같은 판사 출신인 민주당 이수진 당선인에게 동작을을 내줬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광진을의 통합당 오세훈 후보는 민주당 고민정 당선인에게 꺾이면서 정치적 치명타를 입게 됐다.

진공 상태
비대위 출점?


이언주 의원 역시 광명서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기는 배수의 진을 쳤지만 고향서 패했다. ‘세종시 설계자’로 꼽혔던 김병준 후보는 선거 전 세종을 ‘사지’로 칭하며 살아오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결국 강준현 당선인에게 밀려났다.

당내 입지도가 높은 대표주자들 역시 여의도 입성에 실패했다. 동대문을에 출마한 3선의 이혜훈 의원 역시 민주당의 파란 물결을 이겨내지 못했다. 구로을의 민주당 윤건영 당선인을 잡기 위해 투입된 통합당 김용태 후보 역시 무릎을 꿇었다. 김 후보는 양천을서 3선을 한 후 ‘윤건영의 자객’으로 구로을에 나섰지만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혔다.

대선까지 남은 2년동안 통합당은 설욕전을 치르기 위해 당 정비에 사력을 다할 전망이다. 당헌 당규상, 당 대표 궐위 시에는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원래는 심 원내대표 주도로 비상대책위를 꾸린 후 빠른 시일 내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표 선출 등 지도부 구색을 맞추는 게 일반적인 수순이다. 하지만 총선 패배로 권력 진공 상태에 빠졌기 때문에 당선자들 간 논의가 전제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계
기대주는?

특히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의 비대위행이 크게 점쳐진다. 당내 중진들 역시 김 전 위원장을 원하고 있고, 황 전 대표 역시 김 전 위원장에게 비대위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이 이를 수락할지는 미지수다. 그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한 걸로 전해졌다. 기자회견서도 그는 “여기 올 때부터 분명히 말씀드렸는데 선거하는 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임무라고 생각하고, 선거가 끝나면 일상의 생활로 돌아간다고 얘기했다”고 했다. 다만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이 있는 만큼 당 안팎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셀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만약 김 전 위원장이 이를 거부하면 당은 오는 7∼8월 전당대회를 열어 당 대표를 선출할 전망이다. 따라 이 경우에는 중진들이 당 리더십 구축에 중심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5선고지에 오른 이들이 유력한 대상이다. 주호영(대구 수성갑)·서병수(부산 진갑)·정진석(충남공주부여청양)·조경태(부산 사하을)의원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향후 지도부 구성에는 당에서 컷오프된 후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대구 수성을)·김태호(경남 산청함양거창합천)·윤상현(인천 동구미추홀구을)·권성동(강원 강릉) 당선인들도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홍 당선인은 당선 소감으로 “제대로 보수 우파 입지를 다지는 정당으로 만들겠다. 보수 우파 이념과 정체성을 잡고, 2022년 정권을 가져올 수 있도록 다시 시작하겠다”며 당 재건에 힘 쓸 것을 시사했다.

비대위 김종인 유력 “5선 리더십 기대”
홍준표·김태호 부상…안철수계 영입설도

문제는 당의 복당 허용 여부다. 당은 무소속 출마자들에 대한 복당을 불허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재로서는 한 석이 아쉬운 만큼 이들을 외면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주호영 의원 역시 복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사실상 이들의 당 복귀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 재건 과정서 유승민 전 대표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유 의원은 SNS에 올린 글에서 “저희들이 크게 부족했음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보수의 책임과 품격을 지키지 못했다”며 “더 성찰하고 더 공감하고 더 혁신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지 위에 새로운 정신, 새로운 가치를 찾아 보수를 재건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 참패 속에서도 김웅(송파갑)·하태경(부산 해운대갑)·유의동(경기 평택을) 등 이른바 유승민계 인물들은 10명 넘게 생환했다. 대권 의지가 있는 유 의원이 비대위를 맡은 후 측근 의원들을 요직에 배치하면서 존재감을 다시 드러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 외에도 4선에 오른 권영세(서울 용산)·박진(서울 강남을) 등도 당권 레이스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분류된다.

외연확장
국민의당?

끝으로 국민의당과의 통합 가능성도 점쳐진다. 중도층의 마음을 되돌리는 건 통합당의 첫 번째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연 확장이 시급하다. 그나마 정치적 궤를 함께하는 국민의당이 유력한 통합 후보다. 이번 총선서 국민의당은 6.8%의 비례 득표율을 얻으며 3석을 배분 받았다. 이들과 만약 합당이 이뤄진다면 안철수 대표 역시 통합당의 대권주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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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