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0 세대교체’ 통합당 보수재건 프레임

신병이냐? 노병이냐? 기로에 서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미래통합당이 21대 총선 참패를 수습하기 위한 재건에 돌입했다. 당 내부에선 ‘830세대’를 비롯한 당의 청년 인사들이 보수 재건의 선봉장에 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일요시사>는 통합당 세대교체의 새로운 국면을 조명한다.
 

▲ 발언하는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 ⓒ문병희 기자

“보수의 가치를 지향하면서도 미래 세대를 포용하는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오히려 지금이 환골탈태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존의 서열과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꽃을 피울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건 몇 선 의원이냐가 아니라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느냐다. 추월하려면 차선을 바꿔야 한다. 기존 방식대로, 습성대로 하면 또 지는 것이다.”

갈등 최고조
선택의 기로

총선이 끝난 지난 22일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형오 전 공관위원장이 한 언론사와 나눈 대화다. 김 전 공관위원장은 이 날 공천 작업을 전두지휘했다는 점에서 보수 참패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지낸다는 근황을 전하며, 세대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 전 공관위원장의 지적대로 통합당 내부에선 청년 신인들에 대한 역할론이 크게 대두되고 있다. 통합당은 이번 총선서 중량급 인물들이 대거 낙선해 리더십 무주공산에 빠져 있는 상태. 당은 이들에게 무너져가는 보수를 재건하고 당내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는 과제를 남겼다.

따라서 통합당은 보수재건의 첫 번째 전략으로 ‘꼰대’ 이미지를 벗고, 젊고 개혁적인 정당으로 거듭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 내부서도 3040세대가 전면에 나서서 정치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수차례 제기된 바 있어 젊은 인사들이 당 재건 과정서 전진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2022년 대선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이들이 주도적으로 새로운 당권과 대권 세력 구축에도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향후 전당대회를 통한 새로운 리더십이 들어서는 과정서 세력다툼이 이뤄질 공산도 높다.

21대 총선서 원내로 진입한 초선 당선인 중 50세 미만의 인사는 김웅(서울 송파갑)·배현진(서울 송파을)·황보승희(부산 중·영도)·전봉민(부산 수영)·배준영(인천 중·강화·옹진)·김은혜(경기 성남 분당갑)·김병국(포항 남·울릉)·정희용(경북 고령·성주·칠곡)·김형동(경북 안동 예천)·강민국(경남 진주을) 당선인 등이 있다.

‘꼰대’ 탈피 젊고 개혁적인 정당으로?
‘40대 경제통’ 홍정욱·김세연 상한가

통합당 김웅 송파갑 당선인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서 21대 초선 의원으로서 개혁 소장파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당의 얼굴과 간판을 바꿔 체질 개선을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당의 고질적 문제인 감수성과 포용적 사고 부족을 채워줄 인물이라면, 초선이라도 큰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초선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부산 중·영도의 황보승희 당선인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소장파 개혁 모임을 주도해 보수의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황보 당선인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줄 아는 초선 의원이 되겠다”며 “혁신과 통합이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한 통합당이 보수 우파를 대표하는 정당으로서 제 역할을 하도록 초선 의원답게 패기를 갖고 옳은 목소리를 내겠다”고 언급했다.
 

▲ 발언하는 김웅 당선인 ⓒ문병희 기자

특히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이 내세운 ‘40대 경제통’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가장 큰 세대가 바로 3040으로, 그들의 마음을 잡지 못하면 2년 후 대선을 치를 수 없다”며 “가급적이면 70년대생 가운데 경제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한 사람이 후보로 나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21대 총선서 통합당 참패의 가장 큰 이유에는 외연확장 실패와 젊은층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김 전 위원장이 ‘40대 기수론’ 카드를 꺼내든 것도 같은 맥락이다. 2년 후 치러질 대선 때까지 당을 더 젊게 쇄신해내지 못하면 대선 패배도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중진의원
가교역할

40대 기수론으로 갑작스레 주목을 받게 된 인물들이 있다. 바로 홍정욱 전 의원과 김세연 의원. 홍 전 의원은 1970년생으로 언론사 <헤럴드> 및 올가니카 회장을 역임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 꾸준히 정계 복귀설이 항간에 나돌았으나, 아직은 기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김 전 위원장의 40대 기수론이 부상하자 이른바 ‘홍정욱 관련주’가 상한가를 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1대 총선서 불출마한 김세연 의원 역시 40대 기수론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김 의원은 1972년생으로, 주식회사 동일고무벨트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지난 20일 한 라디오에 출연해 “이미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두 개의 패러다임이 거대하게 작동하던 것은 수명을 다했다고 생각한다”며 “‘830(80년대·30대)세대’가 통합당과 함께 사회 전반적으로 주도권을 새롭게 형성하고, 여러 영역서 빠른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이 현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830세대의 원외 청년인사들도 당 재건을 위해 큰 활약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서울 노원병)·송한섭(서울 양천갑) 전 후보가 대표적 인물이다. 이들은 이번 총선서 낙선했지만 당내서 청년 목소리를 내는 데 일정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보수대통합 당시 들어왔던 김재섭(서울 도봉갑) 전 후보, 천하람(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 전 후보, 조성은 전 선거대책위원회 부위원장 역시 유력한 원외 인사들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당의 830세대 인사들은 ‘청년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자체 활동에 나선 상태다. 지난 27일 김용태(경기 광명을), 박진호(경기 김포갑) 전 후보 등을 비롯한 20명의 청년 당원들은 통합당 비대위에 청년 당원들이 50% 이상 배치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아울러 청년 비대위원은 독립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뜻도 함께 밝혔다.
 

▲ ▲청년 인재 회동 갖고 있는 미래통합당

천하람 전 후보는 이날 “더이상 비대위가 ‘누구의 키즈’를 양산하는 곳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청년의 총의를 전달할 수 있는 통로로 기능하기를 바란다”고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기수론 찬반
현실론 팽배

이들은 만약 통합당 비대위가 출범할 경우에 청년 비대위원을 참여시켜 청년들의 의견을 당 의사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천 전 후보는 “청년이 개인 자격으로 비대위에 참여하면 현역 다선 의원들에게 주눅이 들 수 있는 만큼 청년의 힘을 그룹으로 엮어 메시지를 세게 만들 것”이라며 목표를 이전에도 밝힌 바 있다.

당 내부에서는 개혁적인 중진급 인사들이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청년 인사들이 당 내부에 쉽게 융화돼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데 앞장 서줘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 키우기에 힘써 온 김세연, 정병국 의원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김 의원은 일찌감치 830 세대교체론의 중요성을 피력한 바 있다.

그는 “영국 보수당이 그랬던 것처럼, 30대 당수가 나올 정도의 과감한 세대교체가 불가피하다”고 했다. 30대 이하의 젊은 세대를 키우지 못하면 당이 뒤처지는 것을 당연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정 의원의 경우 총선 직전 통합당과 청년정당들과의 합당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는 한 라디오 방송서 “실질적으로 보수정당 내에서 뭔가 하겠다고 하시는 청년들의 생태계가 형성돼있지 않다 보니까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나 하는 확신이 없다”며 우려의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근본적으로 바꿔주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830’ 3명에 원외인사 합류?
대선 남은 2년 현실론 부상

통합당 안팎에서는 3040 인사들이 노후한 당 이미지를 쇄신하고, 세대교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원내대표 경선과 전당대회 등에서도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온다.

다만 원내 진입에 성공한 830세대가 워낙 적다는 게 변수로 꼽힌다. 당내 830세대들의 대부분은 이번 총선서 낙천·낙선해 실력 발휘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당내 830세대는 3명이다. 지역구 의원 중에는 83년생인 배현진(서울 송파을) 당선인 단 한 명이고, 비례대표로는 82년생인 지성호, 80년생인 김예지 당선인이다.

통합당서 이들을 키우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없다면 이들 스스로가 당내 입지를 확보하기엔 무리라는 관측도 있다.
 

▲ 배현진 당선인 ⓒ문병희 기자

아울러 830세대들을 통합당 쇄신 전면에 내세우기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들은 아직 정치 신인이기 때문에 위기 수습 능력과 리더십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특히 2년도 채 남지 않은 차기 대선을 고려하면 이들이 야권 대권 후보로 성장하기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는 현실론도 팽배하다. 통합당 중진들 사이서도 40대 기수론을 둘러싼 찬반이 가열돼있는 상태다.


이번 총선에 불출마한 3선 김영우 의원은 “차기 나라 지도자는 경제 전문가여야 한다는 말은 잘못됐다. 40대여야 한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며 40대 기수론을 사실상 반대했다.

환골탈태
그 끝은?

홍준표 수성을 당선인 역시 40대 기수론에 대해 “좋은 일이지만 대한민국을 이끌 만한 능력과 자질이 되는가 살펴봐야 한다”며 “30대, 40대가 그만한 정치적 역량이 있는 세대가 아니라고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통합당 하태경 의원은 “저는 50대지만, 40대 기수론에 찬성한다”며 “과감한 세대교체를 추진해야 한다”고 40대 기수론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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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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