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6.01.01 18:28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그녀는 또 술잔을 들어 루주가 짙은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누나, 지금 몇 살이야?” “뭐, 누나? 그건 왜 물어?,재수없게…… 아까 스물다섯이라고 얘기한 것 같은데, 응? 히힛, 난 항상 그렇게 생각하니까 말야.” 통금 사이렌 “아니, 뭐…… 8.15 해방이란 것도 내겐 실감이 잘 안 되는데다가, 6.25 전쟁 때 열 살쯤이었다면…… 지금은 아마 서른 살 정도 된 것 같아서…….” “흥, 그래 맞아. 하지만 순전히 거짓말만은 아냐.” “응?” “몸은 늙어 가도 마음만은 응달의 이끼처럼 마냥 붙어 머물러 있는 것 같아.” “왜 그럴까?” “흥, 한이 많아서 그렇겠지 뭐. 그리고 아무리 구질구질한 뒷골목 인생이라도 처녀 시절엔 누구든 로맨스가 있는 법이니까.” 창녀는 굳이 건배를 청하면서 청운의 잔에 자기 잔을 쨍 부딪친 다음 울음도 웃음도 아닌 묘한 눈빛으로 마셨다. “그 후 난 견디다 못해 집에서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청운은 술을 쭉 들이키곤 위악적으로 이죽거렸다. 여자는 발끈하더니 바락 성을 냈다. “흥! 아무리 몸 팔아 먹고 사는 신세지만…… 그런 양갈보하구 비교한다면 기분이 상당히 드럽지. 내가 아무리 비루먹은 국내산 똥개 놈들하구 붙어 연명하는 똥치래두 말야, 징그러운 코쟁이 놈들한테 헤닥거리며 몸을 팔곤 싶지 않아.” 삶의 종착역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다 좋아서 그러고 살겠어. 인생사, 어쩔 수 없는 상황이란 것도 있을 텐데…….” “흥, 거긴 화대가 꽤나 쎄긴 쎄다더군. 그러니 뭐 양놈 돈 보고 그 소굴에 들어간 거지 뭣 땜에 그랬겠어. 천만금을 준대도 난 그런 곳은 싫어.” 여자는 소주를 쭉 들이켰다. 그녀의 얼굴은 화장을 진하게 해서 그렇지 실은 나이가 제법 들어 보였다. 하기야 젊고 팔팔한 시절이라면 낡은 외진 구석에서 움츠려 있을까. 하지만 청운은 내색하지 않았다. 상대가 젊은 티를 내면 젊은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놀다 가. 잘해줄게, 응?” “찾는 사람이 있어서…….” “아이 참, 장미나 백합만 꽃인가 뭐.” 여자는 아양을 떨었다. “무슨……?” 폐병 든 찔레꽃 “아이 참, 코스모스나 맨드라미도 개성이 있고 치자꽃은 향기로워 좋잖아, 응?” “그럼 혹시 폐병 든 찔레꽃을 알아요? 다리를 절룩거렸는데…….” 여자는 입에서 껌을 꺼내 무심중에 매만져 딱딱 소리를 내면서 청운을 흘겨보았다. “혹시 그 찔레 언닐 잘 알어? 흠, 단골은 아닌 것 같고…… 고향 동생이야, 아님 고이 숨겨둔 기둥서방이셨나?” 여자는 자기 말이 실없는지 깔깔 웃어댔다. “어디 살고 있는지 알아요?” “어디? 흠, 알면 꽃 천지로 데려다가 살게?” “…….” “여기 없어.” “그럼?” “서너 달 전에 동백꽃 지듯 피를 머금고 죽어 버렸어.” 여자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랬군요. 그럼 이만…….” 청운은 돌아섰다. 그때 여자가 아까보다 더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청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홀 한 구석쪽에 붙은 주방으로 다가섰다. 하얗고 투명한 커튼이 반쯤 쳐진 창문 앞에서 그는 멈춰 섰다. 안쪽에서 어떤 소리가 새어나왔다. 비명은 아니지만 겁에 질려 허덕거리며 떨리는 목소리였다. 청운은 슬쩍 훔쳐보았다. 바깥 홀의 현란함에 비해 의외로 어두워 보이는 공간 속에서 어떤 자가 식칼을 든 채 킬킬거리고 있었다. 칼을 숨기고 “너 계속 그렇게 멍청하게 굴래? 왜 아직도 메뉴를 제대로 못 외어서 이 주방궁의 황제인 나를 욕먹이냐구! 뱃대길 콱 찔러 버릴까, 응?” “아으으…… 주방장님…… 한번만 살려 주시면 다음엔 잘할게요. 흐으…….” 식칼의 퍼런 날 앞에 선 소년이 주춤주춤 구석쪽으로 물러나며 애걸했다. 식칼을 쥔 사내는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점점 공포에 질린 소년 쪽으로 다가서며 위협을 했다. 소년은 털썩 무릎을 꿇곤 두 손을 모아 비벼댔다. “제발…… 앞으론 제왕님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그런 경우는 많이 있어. 사내아인 엄마의 슬픈 모습에 빠져들고 계집앤 아빠의 멋진 모습을 흠모하듯이……’ ‘하지만 엄마는 절름발이가 아니었어.’ ‘흠, 그렇지. 그런데 너가 문제일 뿐……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너의 마음속에 모종의 불구자 의식이 싹텄을 수도 있거든. 더구나 아버지까지 병석에 누워 올바른 생활을 못했기 때문에 실패 의식이 네게 큰 영향을 미쳤을 거야. 마음이나 정신에 씨앗이 심어지면 서서히 자라 육신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얘기지.’ 제3의 목소리 ‘하지만…… 난 북파됐다가 총알을 맞았기 때문에…….’ ‘물론 그래. 그렇지만 너무 축 처지지 말고 좀 활기차게 걸어 보란 말야.’ ‘음…….’ ‘과거에 정상인보다는 부랑아나 불구자들은 사귄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몰라. 사실상 건달이나 깡패들도 겉으론 개폼을 잡고 거들먹거리지만 속으로 뭔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그렇게 평범하지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별이 푸른 건 허공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빌딩 숲으로 산맥을 이룬 도시의 하늘 선線이 만일 콘크리트 장벽에 완전히 가려 버린다면 별은 사라지리라. 아마 하늘보다 먼저 사람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그 별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깨어진 채 구르다가 지하의 나이트 홀이나 살롱으로 가서 유리조각처럼 반짝일는지도 모른다. 서글픈 실루엣 청운이 쉬엄쉬엄 걸어서 청량리역 앞에 도착한 건 어둠이 꽤 짙어져 길가의 네온사인이나 질주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들이 반딧불처럼 명멸할 무렵이었다. 청운은 역사 지붕 밑 정면의 푸른 글자 중에 ‘량’ 자가 흐릿하게 빈사 상태로 깜박이는 것을 무심히 쳐다보다가 낡은 시계탑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얼핏 ‘청리역’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시계바늘은 모른 척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이따금 역 광장을 휩쓸어 불며 휴지 조각이나 비닐봉지 따위를 이리저리 흩날
“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몽키하우스’를 찾아가는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래도 소요산 등반객은 꽤 많은 편이었다. 허나 그들 중에 옛 양공주 성병환자 수용소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겨우, 어느 모시옷을 정갈히 갖춰 입은 할머니가 가리켜 주는 곳으로 올라갔다. 언덕 하얀 집 거긴 격주로 각설이 패들이 공연하는 데라는데, 공일인지 몇몇 남녀가 탁자 앞에 앉아 토론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몽키하우스가 어디죠?” “우린 원숭이 안 키워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르기도 했고…이 부근이라던데….” “글쎄요.”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백색이나 회색 건물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높다랗고 거무칙칙한 벽의 뒷면만 보일 뿐이었다. 잡초를 헤치며 슬슬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옆면과 정면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1970년대엔 흰색이었다는데 언젠가 연노란 색으로 덧칠한 듯싶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희끄무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