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19)흉포성과 정복욕으로 활보

  • 김영권 작가 nammunsan@naver.com
  • 등록 2026.03.30 02:36:59
  • 호수 1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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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블루문의 홀보이가 된 이후로 청운은 미군을 예전처럼 볼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이방인을 바라보던 시선, 피에로 형의 초대로 홀 안에 앉아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구경하던 눈길은 이제 일단 거두어야 했다.

그들은 달러를 뿌리는 고객인 것이다. 돈에도 품격이 있는 것일까?

워싱턴 대통령이 박힌 미국 달러 앞에서 세종대왕이 새겨진 한국은행권 지폐는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사람 취급

어쨌든 청운은 편견 없이 사실 그대로 미군들을 바라보려고 했다. 가능하면 한 인간으로서….

모든 존재가 그렇듯 미군 중에도 선량하고 신사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개쌍놈 같은 양아치도 많았다. 그런 치들은 대부분 자기 나라인 미국에서는 하류인생으로서, 가난에 찌들고 무식한 탓으로 홀대받는 자들이었다.

개중엔 뒷골목 우범지대를 떠돌며 마약을 하고 성폭행이나 강도짓뿐만 아니라 살인까지 저지른 뒤 도망쳐 온 불량배나 강력범죄자도 섞여 있었다.

쉽게 말해 그런 치들은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의 군복을 걸치고 있지만 속엔 죄악이 숨겨진 채(물론 모든 인간의 내부엔 죄악 성향이 잠복돼 있겠으나…) 어떤 바이러스처럼 강한 활동성을 보이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일부 미군은 한국인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동물처럼 대하면 자기 위신이 짐승으로 추락될까 봐 짐짓 인간의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자기네 나라에서 하층민으로 무시되고 핍박받은 울분과 설움을 약자인 한국 남자에 대한 우월감이나 소녀같이 작은 기지촌 여자들을 노리개 삼아 능욕하는 짓으로 탕감하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가능하면 그들을 객관적으로 파악해 보려 애를 썼다. 지피지기랄까. 그렇다고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그냥 일상 속에서 보고 겪으며 편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부대끼노라면 어느 날 문득 인종을 떠나 같은 인간으로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그래도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는 건 결코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을 특별한 인간 또는 신이라 여기고 이국의 미개한 작은 여자들을 돈 주고 구입한 시녀나 성노예로 삼아 희희낙락하는 것이었다.

미군 중에서도 질이 좀 낮은 하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에 섞여 많이 들어오는 건 한반도가 전쟁에 가까운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1950년에 (누가 먼저 때렸든)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을 벌였던 남한과 북한은 일단 휴전협정을 맺었을 뿐 아직 싸움을 끝낸 건 아니었다.

오히려 물밑으로 더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으르렁거리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전쟁…만성이 된 한국 사람들은 대수롭잖게 생각하게끔 되었으나 미국인을 비롯해 외국인들에겐 그렇지가 않았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핵폭탄을 속에 지닌 위험지역이었다. 아무리 고국에서 홀대받는 구겨진 청춘일지언정 사지死地와 비슷한 곳으로 가긴 싫었을 터였다.

하지만 위험수당이 꽤 쏠쏠했기 때문에 기피지역 1번지인 이 황토에도 잡다한 미국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지원해 왔던 것이다.

해외 미군 기지는 나라마다 다른 양상이었다. 한국에는 주로 젊은 독신 남성 군인을 1년간 배치한 반면, 일본과 독일에는 2∼3년으로 복무 기간을 조금 더 길게 두었고 아내와 자녀도 함께 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한국을 일단 전시지역으로 판단해, 가족을 함께 보내기엔 너무 위험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미군과 각 주둔국 사회 사이의 관계도 다르게 형성되었다.

가족을 동반해 긴 복무기간을 받고 배치된 기혼 군인들은 미혼 군인들에 견줘 기지 주변 주민들과의 관계가 훨씬 건전했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한국인을 무시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마치 대통령이나 황제처럼…달러 지폐에 그려진 그들의 대통령이 그런 권력을 주는지도 몰랐다.

물론 좀 차이는 있었다. 백인은 겉으론 점잖아 보이면서도 이기적이고 아집이 아주 강했다. 고정관념적인 독한 편견이라고나 할까.

그에 비해 흑인은 늘 허연 이를 드러낸 채 싱긋빙긋 웃다가도 감정이 성해져 폭발할 경우엔 말리기가 힘겨웠다.

자기를 버리는 건 좋은데 무심 무아가 아니라 자기파괴적으로 될 땐 남까지도 사해(死海)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다.

즉, 자기의 죽음으로 남의 생명마저 빼앗는 것이다. 히히 웃으며….

사람은 낯선 이국이나 이방 지역으로 떠나게 되면 나름대로 소망과 욕망을 담은 꿈을 꾼다. 기지촌의 여인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꾸듯 미군들도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 땅으로 왔을까?

만약 그렇다면 과연 그 꿈은 어떤 걸까? 그들이 미개국이라고 무시하는 작은 나라에서 바라는 소망이나 욕망은?

맨허턴이나 시카고 뒷골목에서 놀던 양아치들이 주한미군 출신 선배에게 듣는 조언 중 하나는 ‘한국은 여자들이 꽤 예쁘면서도 값은 싸다. 일본이나 독일엔 비하면 껌값이지.

그리고 암캐처럼 마구 조져도 상관없어. 그깟 년들을 우리가 기분 상해서 죽여도 한국 경찰 놈들은 우릴 건드릴 수가 없어. 실제로 계집년의 바기나 속에 콜라병을 처박아 죽이고도 유유히 귀국해 버리면 그만이야.’라는 말이라고 했다.

주한미군에 질 낮은 하류 인생들
무시하는 나라에 바라는 욕망은?

‘그리고 롤리타 콤플렉스를 가진 놈들에겐 일종의 천국일 수도 있단 말야. 왜냐? 그년들의 키가 대개 작아서 우리 몸에 비하면 어린 소녀 같다고 할 수 있거든. 몸매가 아담하면 다 아담하지. 좀 닳고 닳은 여자의 바기나라도 우리들 페니스가 들어가면 고통스런 비명을 내지르고 하니까. 흐흐흐.’

그 소리는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미군의 입으로부터 청운이 직접 들은 것이었다.

그들은 분단국의 위험수당까지 포함된 월급을 받은 날이면 땅거미를 밟고 클럽으로 몰려 들어와서 유쾌하게 웃으며 달러 지폐로 슬픈 소녀 같은 여인들의 몸을 가지고 놀았다.

마치 로마의 황제가 노예 시녀에게 바라는 것을 해주길 바라는 듯이….

혹시 먼 옛날 그들의 조상이 아프리카를 무대로 원주민을 사냥해 노예로 부리거나 사냥당해 부려먹인 기억이 잠재의식 위로 떠올라 뇌리를 살살 간지른 건 아닐까?

그래서 백인들과 흑인들의 가학증과 피학증이 동시에 레일을 지나 이 한국 땅으로 와서 가엾은 여인들을 학대하는 건 아닐까?

‘인디언 헤드’는 미군부대의 심볼 마크였다. 미국인들이 아메리카에 상륙해 그곳 원주민이던 인디언들을 쫓아낼 당시 미군 기병대들은 죄없는 무수한 주민들을 총칼로 무참히 살육했다.

그리고 생사람의 머리를 잘라내 총검에 꽂고 다니며 용맹성을 자랑했다.

이제 그들의 후손인 미군들은 선조들을 존숭하는 의미로 별과 도끼 문양 안에 인디언의 머리 모양을 새겨넣어 도안해 군복 왼쪽 어깨에 단 채 한국 땅을 활보했다.

흉포성과 정복욕을 상징하는 그 마크 외에도 미군들은 모자나 셔츠에 ‘태어남은 우연, 사랑은 선택, 살인은 직무’라는 따위의 글귀를 새겨 단 채 뽐내기도 했다. 아예 문신을 새겨 우쭐거리는 놈도 있었다.

하지만 청운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모든 인간에겐 장점과 단점이 함께 있다고 옛 성현들도 경계하지 않았던가.

선입견 따윈 버리고 부대끼며 살다보면 문득 실체가 느껴지지 않겠는가 싶었다.

인디언처럼

루돌프 사슴 코는 매우 반짝이는 코
만일 내가 봤다면 불붙는다 했겠지
다른 모든 사슴들 놀려대며 웃었네
가엾은 저 루돌프 외톨이가 되었네

안개 낀 성탄절 날 산타 말하길
루돌프 코가 밝으니 썰매를 끌어 주렴
그 후론 사슴들이 그를 매우 사랑했네
루돌프 사슴 코는 길이길이 기억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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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지방선거 이후 꺼낼 국민의힘 개헌 꽃놀이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여야 6당이 참여한 개헌 시도는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으로 인해 결국 무산됐다. 입법적 전격전을 선호하는 민주당은 지방선거 이후 내년 재보궐선거까지 약 10개월 동안의 공백기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의 청야전술은 이를 막아낼 수 있을까? 국민의힘을 제외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여야 6당이 발의한 헌법 개정안이 지난 7일 의결정족수 미달로 투표 불성립 처리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표결 불참을 당론으로 정한 후 의원 전원이 불참했다. 이튿날인 8일,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하자,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헌안 처리를 중단했다. 정족수 미달 투표 불성립 현행 헌법에 따르면,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이나 대통령이 발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이를 20일 이상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공고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해야 한다. 이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를 거쳐 유권자 과반이 투표하고, 투표자 과반이 찬성해야 확정된다. 지난 7~8일 기준, 국회 재적 의원은 286명이라서 개헌안 가결에는 191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의원은 모두 106명이다. 여야 6당 의원 전원이 개헌안 투표에 참여해 찬성한다면, 국민의힘에서 최소 11명 이상의 이탈자가 나와야 한다. 개헌안에는 ▲헌법 전문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부마 민주항쟁 명시 ▲계엄 선포 시 48시간 이내 국회 승인을 받아야 유효하도록 변경 ▲국회가 계엄 해제를 능동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대통령 권한 축소 등의 내용이 담겼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7일 청와대 앞에서 진행된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은 연임 불가 선언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며 “개헌을 하겠다면, 먼저 이재명이 연임 불가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부마 민주항쟁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을 헌법 전문에 담는 데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며 “헌법 전문은 특정 사건에 대한 게 아니라, 통합적 역사 인식 아래 균형 잡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다 헌법 전문에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987년 개헌은 오로지 제왕적 대통령 견제에만 집중해서, 국회에 예산·입법 등 막강한 권한을 몰아주는 기형적 구조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가 권력남용을 이유로 언제든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을 탄핵의 심판대에 세울 수 있다면, 헌정 질서를 무너뜨리면서 폭주하는 국회도 해산의 심판대에 설 수 있어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완성된다”며 “의회해산권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은 지난해에도 민주당을 비판할 때마다 의회해산권 도입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주요 관계자들의 발언에 대해서는 “개헌안 속 숨겨진 덫을 잘 파악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개헌은 통치 구조 개헌의 전초전일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헌법적 상식과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헌법 개정은 그 헌법 개정 제안 당시의 대통령에 대해서는 효력이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과거 대통령들이 개헌을 통해 정권을 연장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성적 고려 차원에서 삽입된 조항이다. 대통령이 해당 조항의 효력을 무시하면서 임기 연장·중임 변경을 추진하려면 하야한 후 재선을 노려야 한다. 건국·새마을운동·의회 해산 쏟아내…과연? 이재명 독재 연장? 헌법 구조상 불가능한데…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정치적 책임이 매우 클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상식적이라고 보기 어렵다. 송 원내대표가 헌법 전문에 추가할 것을 요구한 건국·새마을운동·근대화도 실제로 시도할 경우, 엄청난 논쟁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헌법 전문은 실제 헌법재판에서 보충적 규범으로 활용되는 등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법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가지고 있으며,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취지를 선언하는 문장이다. 따라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가치를 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선 역사적 평가가 끝난 불가역적 가치를 담는 게 원칙이다. 그래서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 ▲4·19 민주 이념 등이 담겨있다. 여야 6당이 전문 추가를 시도했던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도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특히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재평가를 주도했던 정권은 국민의힘의 전신 신한국당 소속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문민정부였다. 송 원내대표가 주장한 건국 이념 반영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곧바로 충돌한다. 임시정부 법통 논란은 해방 직후에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논쟁이었다. 임시정부의 법통을 인정했던 진영은 이승만 전 대통령·한국민주당 등 우익 진영이었다. 제헌의회도 임시정부 시절 임시의정원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방향으로 정통성을 확보했다. 이는 김 전 대통령·김대중 전 대통령도 인정한 후 역사적 상식으로 굳어졌다가 뉴라이트 진영이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면서 송 원내대표의 주장으로까지 흘러간 것이다. 건국 이념 반영은 임시정부 법통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나 의원이 주장한 의회해산권에 대해서는 “대통령제와 맞지 않는다”는 반박이 나온다. 의회해산권은 의원내각제 국가에서 총리가 보유하는 권한이다. 의회가 갖는 내각불신임권과 함께 상호 견제를 위한 짝패를 이룬다. 국무총리가 있고, 현역 의원이 내각에 참여하는 우리 통치 체제는 일정 부분 의원내각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된다. 대통령은 의회가 아닌 국민을 향한 정치적 책임을 진다. 아울러 국회는 대통령에 대해 탄핵소추권을 가질 뿐 대통령과 내각을 불신임할 수 없다. 대통령은 구조적으로 의회해산권을 가질 수 없다. 대통령이 의회해산권을 가졌던 것은 유신 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이었다. 이 헌법은 대통령에게 강력한 권한을 부여했던 프랑스 드골 헌법을 참고했다. 역사적 평가 불가역 가치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하거나 필리버스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선 “나름대로 이유는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06석을 보유한 국민의힘으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아울러 개헌안의 주요 내용인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등은 모두 전신 민주공화당·민주정의당을 포함한 국민의힘의 약점이다. 국민의힘으로서는 4·19 혁명에 이어 역사적 약점이 헌법 전문에 추가되는 굴욕을 감당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은 자가당착에 빠질 수 있는 부분까지 감수하면서 개헌안 표결에 불참했다. 부마 민주항쟁의 무대 부산·마산은 오랫동안 국민의힘을 탄탄하게 받쳐주던 주된 지지 기반이었다. 부산·경남은 노무현 전 대통령 등장 이후 경합 지역이 됐다. 국민의힘은 개헌 투표에 불참하면서 부산·마산의 위업을 헌법 전문에 담는 것을 걷어차는 외통수에 갇혔다. 비상계엄 관련 개헌안은 근본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키면서 국회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서는 개헌을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내부에서조차 평가가 일단락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이 배출한 전직 대통령의 업보가 헌법에 명백하게 못 박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위헌 정당”이라는 암시가 새 개헌안에 담기는 것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야 6당 중 민주당에 대해선 “국민의힘의 구조적 약점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기습적인 총력전을 시도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 정당은 이미 6·3 지방선거라는 총력전을 앞두고 있다. 국민의힘이 개헌안 표결에 불참한 이유에 대해선 “개헌 시도가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인식을 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총력전 속 총력전’을 시도한 것과 비슷하다. 개헌 시도와 6·3 지방선거를 묶는 연환계를 구사하면서 전쟁을 양면 전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당세가 줄어들어 물량 동원에 한계를 보이는 국민의힘을 상대로 심리적·물리적 과부하를 유도한 것이다. 이는 장 대표의 지도력 논란까지 파고들어 결정적 지점에 화력을 집중하고, 국민의힘의 정치적 명분까지 꺾으려 했던 난도 높은 승부수였다. 개헌안 표결은 진행하지 못했지만, 국민의힘의 궁색한 현실을 전방위적으로 폭로했기 때문에 “졌지만 지지 않은 승부”라는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의힘은 그 궁색한 현실 때문에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고전적인 청야전술을 동원할 수밖에 없었다. 총력 공격 총력 방어 이는 명장들이나 강대국이 자주 구사하던 전법이었던 사실을 전쟁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 태종은 제1차 고당(고구려-당나라)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전략을 바꿔 수시로 소규모 부대로 고구려를 침공해 변방을 교란하는 등 소모전을 병행했다. 태종의 뒤를 이은 당 고종은 2회에 걸쳐 대규모 침공을 감행했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은 제2차 고당 전쟁 당시 사수에서 당나라 대군을 격파했지만, 방어선이 한반도 내부로 점점 밀리고 있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제3차 고당 전쟁에서는 내부 배반까지 겹쳐 고구려가 끝내 멸망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군도 독일군이 서부전선 노르망디 상륙작전이라는 기습을 당해 방어에 모든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바그라티온 작전이라는 총력전을 진행해 동부전선 내 독일군을 완전히 전멸시켰다. 민주당이 노린 전세는 이 같은 구도였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통령이 대표로 재임할 당시부터 윤석열정부를 상대로 30건이 넘는 탄핵소추를 발의하거나 법안 물량 공세를 펼치는 등 총력전 양상의 입법전을 주도했다. 170석이라는 압도적 의석수를 확보한 데서 비롯됐다. 원래 민주당은 압도적 지방선거 승리를 기대했다. 그러다가 이 대통령 공소 취소를 강하게 추진하는 상황에 대한 일부 유권자의 반감을 사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보수층이 결집하는 등 선거 구도가 백중세로 바뀌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고 있고, 개헌까지 시도했다. 지방선거 종료 이후엔 내년 4월 재보궐선거 전까지는 선거가 없는 만큼, 오는 6월부터 내년 4월까지 약 10개월 동안 여야가 전면전을 치를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는 실제 정치학·정책학 이론으로도 입증된다. 존 W. 킹던 미국 미시간대 명예교수는 ‘정책의 창’ 이론을 주장했다.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느끼고 ▲준비된 해결책이 있으며 ▲정치권이 움직일 수 있는 분위기 등 3박자가 맞물리면 ‘정책의 창’이 열린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관점에서는 선거 종료 이후 유권자로부터 직접 심판받지 않는 그 10개월이 정책의 창이 열리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개헌 및 이 대통령 공소 취소 등 물량 공세를 밀고 나갈 수 있는 전략적 시간대라고도 볼 수 있다. 업보·약점 헌법 전문 실리면 위헌 정당? 투표 불참·필리버스터…청야전술 한계 전술적으로 보더라도, 국민의힘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라는 청야전술격 수동적 방어밖에 없다. 법안을 반복적으로 밀어붙이면, 국민의힘은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로 대응하게 된다. 그럴수록 국민 피로도가 높아지고, 중도층의 의심을 받게 된다. 진영이 확고하게 나뉜 상황에서는 중도층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한다. 필리버스터는 말 그대로 마지막 방법이어야 하지만, 국민의힘이 거듭 사용하면서 식상해져 그만큼 비장함의 강도도 낮아졌다. 민주당의 입법적 전격전과 국민의힘의 투표 불참·필리버스터는 일종의 경로가 됐다. 양당 모두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이다. 물론 국민의힘은 송 원내대표와 나 의원을 통해 ▲건국 담론 ▲새마을운동 ▲근대화 ▲대통령의 의회해산권 등 반격 카드를 제시했다. 하지만 모든 국민의 지지를 얻기 어려운 담론이기 때문에 기존 경로를 고칠 만큼 파급력이 강한 승부수가 되긴 어렵다. 아울러 민주당은 압도적 의석을 가진 집권여당이라는 위치를 이용해 선거 기간이 아닌 10개월 동안에도 지지층을 결집하면서 중도층의 설득을 얻을 영구적 선거운동을 할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해선 중도층의 의견이 아직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아 민주당으로서도 도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헌안의 경우는 다르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부마 민주항쟁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요건 변화 등은 국민 대다수가 이미 평가를 마친 사안이다. 이 대통령 공소 취소에 대한 중도층·보수층의 비판을 상쇄할 수도 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영구적 선거운동을 통해 내년 재보궐선거에까지 대비하는 입법적 공세를 치르려고 한다. 청야전술은 자신의 경제 기반을 모두 허물면서 진행하는 극단적 처방이다. 국민의힘이 투표와 토론을 포기하거나 체력을 소비하는 등 극단적 처방을 할수록 대중·언론의 관심을 얻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이어 지지 기반인 부산·경남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헌법 전문에 담는 것까지 포기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접어들었다. 2200년 역사를 자랑하던 동로마 제국이 몰락을 이기지 못했던 사례가 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세운 테오도시우스 3중 성벽은 오스만 술탄국이 준비한 대형 ‘우르반 대포’를 이겨내지 못했다. 또 예니체리 등 최정예 병력을 앞세운 오스만 술탄국의 물량 공세도 이겨내지 못했다. 여기에 방어전을 실질적으로 주도했던 용병 대장 조반니 주스티니아니가 부상 때문에 전장을 이탈하는 불운까지 겹쳤다. 궁색한 현실 자충수 되나 물론 청야전술에도 한계는 있다. 국민의힘에는 연개소문이나 조반니 주스티니아니조차도 없다. 지방선거가 끝나면 민주당에는 정책의 창이 열릴 것이다. 지도력 공백을 회복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이제 청야전술을 넘어선 새 전술을 고안해야 한다. 국민의힘은 과연 정책의 창을 막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