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17)“병신 같은 대한민국”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3.16 03:00:00
  • 호수 1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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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자세한 건 니가 다음에 알아 봐. 하지만 확실한 건…일제 식민지 시대와 지금이 그리 크게 멀지는 않다는 사실이야.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자마자 곧장 미군이 밀고 들어와 총독부 건물에서 일장기를 내려 버리고 대신 미국 성조기를 올려 걸었다잖아.”

일장기 버리고

“그럼 태극기는?”

“모르지, 어느 구석에 처박혀 있었는지…국민들 가슴속에서 피를 흘리며 나부끼고 있었을라나, 히히.”

“그렇구나. 난 일제 식민지 시대와 지금은 전혀 다른 먼 나라의 얘기인 줄 알았었는데….”

“나도 그랬어. 근데 백발 누님이 살아온 얘길 들어 보니까 일본군 위안부와 미군 기지촌의 양갈보가 한 여인의 삶 속에 같이 들어 있는 거야.”

“그 누님 연세는?”

“꺾인 백댓 살쯤.”

“뭐?”

“쉰다섯 살쯤이란 말이지.”

“말도 안 돼. 난 그 시대와 이 시대 사이에 깊은 강물이 가로질러 흐르는 것 같은데….”

“하지만 계산해 보면 사실인걸 뭐.”

청운은 침묵했다.

“앞으로 간혹 희망집에 가봐. 백발 할멈의 인생사도 기구하지만, 요일별로 구수한 된장찌개, 청국장, 김치찌개 따윌 먹을 수 있으니까 말야. 봄이 오면 싱그러운 나물 반찬도 많이 나올 거야.”

저쯤 기지촌 유흥가의 입구가 보였다. 지금은 낮이라서 조용하고 눈송이에 가려 언뜻 깨끗해 보이지만, 밤이 오면 온갖 소음과 현란한 불빛이 난무하며 허구의 성채를 쌓아 올리고 그 속에선 젊은 인간의 욕망들이 꿈틀거릴 것이었다.

둘은 찻길을 건너 골목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계속 걸었다.

깨진 콜라병과 빈 맥주 캔 따위가 나뒹구는 길은 환락의 밤거리보다 훨씬 더 을씨년스럽고 지저분하고 위협적인 느낌을 주었다.

건물의 시멘트 벽엔 조잡한 글씨로 낙서가 휘갈겨져 있기도 했다.

‘살인자는 리챠드! 잡아 죽이지 않고 뭐 하냐? 병신 같은 대한민국!’

‘그리운 안나…이 러브 유. 영원히….’

‘바기나는 똑같다. 양키 고홈!’

눈은 이제 그쳐 있었다. 낡았지만 기와지붕을 올린 꽤 넓은 한옥 한 채가 나타났다. 피에로의 뒤를 따라 청운은 그 집으로 들어섰다.

마당가에 큰 오동나무가 마른 잎을 두어 개 단 채 섰고 그 옆엔 오래 된 듯싶은 우물이 있었다. 우물가엔 아까 어떤 집에서 본 것과 비슷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런데 우물이 말랐는지 모르지만 펌프질을 해서 물을 퍼 여자들은 세수를 하거나 작은 빨래를 주물거리며 잡담을 하곤 했다.

검둥개 새끼 한 마리가 눈 쌓인 마당 한쪽을 뛰어다니다가 별 적의 없이 심심풀이로 짖어댔다.

“오요요~ 이리 온…눈이 내리니 동화 속에 나오는 강아지가 된 기분인가 보구나. 어서 형님한테로 와.”

피에로가 불렀으나 검둥이 녀석은 ‘뭔 개소릴 지껄여.’라고 생각하는 듯 힐끗 흘겨볼 뿐이었다.

“호호, 하두 허튼소릴 하니까 강쥐까지도 무시하는군.”

세수를 마친 여자가 머리에 묶었던 수건을 풀어 닦으며 이죽거렸다.

“헤헤, 누님과 누이들, 모두 안녕? 마침 만난 김에 내 아우 구름이를 소개할게. 앞으로 좀 잘 봐줘요. 순진한 애 물들이지 말고.”

피에로는 청운을 향해 찡긋 눈짓을 했다. 청운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합니다. 시골 촌놈입니데이.”

그는 짐짓 능청을 떨었다.

“숫총각이야?”

밤이 오면 온갖 소음과 현란한 불빛
파마머리에 양돼지처럼 희멀건 안색

“몇 살인데 그래?”

“나이가 무슨 상관이람. 열 살짜리 플레이보이도 있고 서른 살짜리 숫보기 총각도 있는 세상인걸.”

“겉으론 순진해 보이지만 속엔 능구렁이가 들어앉았는지도 몰라.”

그런 소리들을 늘어놓곤 여자들은 까르르 웃어댔다.

“어서 영업 나갈 준비 않고 무슨 새살을 그리들 떨어대!”

깊숙이 들어앉은 안방 쪽에서 뚱뚱한 한 여자가 대청 마룻바닥을 쿵쿵 울리며 걸어 나왔다.

혹시 옛날 같으면 현숙한 안주인이 버선발로 살몃살몃 나타나올 법도 했건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뱀눈에 하이에나같이 야릇한 웃음을 입술 밖으로 흘리는 기분 나쁜 존재였다.

파마 머리에 양돼지처럼 희멀건 안색이었다. 커다란 보석이 박힌 듯 번쩍거리는 귀고리와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들.

“사장 부인인데 사실은 사장보다 더 높은 여자니 알아서 해.”

피에로가 청운의 귀에 살짝 속삭였다.

“누구야, 쟨?”

여자가 무슨 기분 상한 일이라도 있는 양 쌍을 잔뜩 찡그리곤 물었다.

“예이~ 마님, 이 총각은 제 의형제이면서 이번에 홀 보이 역을 맡겨 된 단역 배우입니다.”

“배우는 무슨…개소리 그만해, 욘석아!”

여자는 입귀로 슬쩍 웃으며 물었다.

“그래, 누구라구?”

“윤청운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해봐. 계집을 사악한 뱀으로 알고.”

청운은 무슨 말인가 하려 했으나 여자는 대뜸 신발을 꿰신곤 나가 버렸다.

“흥, 자긴 뭐 계집이 아니라는 말투군. 세상 여자가 다 남자로 바뀌어도 저 여자만은 아마 사악한 뱀으로 남아 있을걸.”

한 여자가 비웃으며 눈을 흘겼다.

“뱀보다는 왕거머리나 박쥐라고 하는 게 낫겠네. 아껴 모은 피를 빨아먹으니까 말야. 호홋.”

“쳇, 거머리만큼만 빨아먹으면 고마워하지. 하마는 물을 마시지만 그년은 우리 피를 몇백 도라무통이나 빨아 처먹고 있다니까.”

“한 사람을 두고 그렇게 욕을 하면 어떡하나. 세 사람이 입을 모으면 없던 귀신도 만들어낸다는데…싫든 좋든 그 왕마담 덕분에 살고 있으면서 뒷욕을 하면 안 되지.”

뚱뚱한 여자가 한 마디 했다.

“안 돼지든 된 돼지든 양돼지든 흑돼지든 결국 같은 소리지. 꿀꿀…그냥 먹고 살면 돼지지롱, 호호호”

머리를 다 감은 아가씨가 하얀 수건을 풀어 슬슬 닦으며 뇌까리곤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문을 열어 놓은 채 화장대 앞에 앉아 분홍색 루주를 꺼내 입술에 바르기 시작했다.

방안에 놓인 자개 장롱과 침대 모서리, 전축 위에 놓인 꽃병 따위가 거울에 비쳐 반쯤 보였다.

성조기 올리다

‘저 동백꽃은 과연 생화일까 조화일까?’

청운은 꽃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야, 그만 가자.”

피에로가 말했다.

“응.”

청운은 뒤따랐다. 뒷문을 통해 어둑한 복도를 한동안 걸어가자 갑자기 현란한 불빛의 일부가 문틈으로 새어나왔다. 피에로가 문을 열었다.

홀 천정에 달린 미러볼이 빙글빙글 돌며 오색 칠색의 무지갯빛을 뿌리고 있었다. 청운은 주춤했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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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