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⑧모종의 자책감과 무기력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1.05 04:53:47
  • 호수 1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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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헌병은 청운을 한동안 주시했으나 별 말없이 뒤쪽으로 걸어갔다 청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허약한 심정에 대해 비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 헌병의 가죽 장갑 낀 손이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헌병의 등장

“주민등록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헌병은 이미 그의 앞에 와 서서 엄중히 훑어보며 말했다.

청운은 잠바 안주머니에서 귀향증을 꺼내 가죽 손에게 내밀었다. 헌병은 잠시 살펴보고 되돌려 주며 깍듯이 경례를 붙였다.

“실례했습니다.”

헌병이 내려가고 나자 고물 버스는 다시 털털거리며 행로를 짚어 나갔다. 마치 나무 지팡이를 짚고 바쁜 길을 가는 노인네처럼.

또록하다면 또록하고 흐릿하다면 흐릿한 기억하지만, 청운에겐 검문소에 의한 아픈 상흔이 있었다. 여섯 일곱 살쯤 된 어린 시절이었던 듯싶다. 지금과는 다른 여름철,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젖어 있었지만 제정신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조금쯤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긴 했으나 가끔 큼직한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강을 따라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군모를 쓴 어떤 아저씨가 올라왔다.

그는 청운의 볼을 슬며시 쓰다듬은 다음 아버지에게 민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잠바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깜빡 잊었다고 변명했다. 냉정한 군인 아저씨는 “잠시만 내려주십시오” 하고 거듭 재촉했다.

왕년엔 아버지 자신도 순경으로서 수상쩍은 사람을 닦달하며 끌고 간 적도 있었고 그런 사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했지만 군인 헌병에겐 통하지 않았다.

“뭘 죄가 없으면 왜 그리 자꾸 뒤로 빼는 거여. 다들 바쁜 길인데…….”

승객들의 구시렁거림을 못 이겨 아버지는 결국 주춤주춤 버스에서 내렸다.

청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눈짓하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버스 문을 내려 사라지는 순간 청운은 질린 표정으로 곧장 뛰따라 내렸다.

푸른 강 위에 긴 철제 다리가 놓였고 그 앞쪽에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청운은 깜짝 놀랐다.

기다리마던 버스가 아무 말도 없이 출발해 다리 위를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청운은 두 손을 들어 내저으며 발을 굴렀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 차의 선반 위엔 소중한 물건이 든 가방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는 다행히 별일 없이 풀려나왔지만 꿈이 든 그 가방은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청운은 다급히 아버지를 밀치고 검문소 안으로 들어가서 울먹이며 실상을 알렸다. 아버지는 뒤늦게 깨닫곤 헌병에게 화를 냈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기껏 헌병이 세워 준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봤지만 끝내 가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불뚝성까지 내어가며 따지긴 따졌으되 차부 앞 술집에서 대포 한잔을 들이켜고는 시나브로 잊고 야릇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 아빠가 초능력을 쓰면 저절로 돌아오고말고, 허헛허…….”

청운은 그런 얘길 믿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어쩜 저럴 수 있을까 하고 외려 증오하고픈 심정이었다.

하긴 오랜만에 처갓집에 간다는 자가 제멋대로 자란 수염도 깎지 않고 후줄근한 꼴로 거들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믿을까 싶었다.

그 가방 속엔 약소하나마 어린 소년의 부푼 꿈이 담겨 있었다.

멋진 그림이 들어간 신기로운 옛이야기 책과 정글북, 피노키오, 보물섬 같은 미지의 동화…… 그리고 앙징맞은 만화경과 망원경, 산새가 지저귀는 듯한 옥색 호루가기, 예쁜 딱지, 돋보기 따위의 장난감…… 엄마가 그걸 마련해 주었을 때 미리 좀 슬쩍 살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가방 속에 챙겨 넣었었다.

외할머니 집에 가서 하나씩 꺼내 호기심을 풀고 산마을의 동무들과 함께 가지고 놀면 한층 더 즐거울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젠 날아가 버린 파랑새가 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것이기에 더욱 신비롭고 그립고 아쉬운지도 몰랐다.

어린 소년의 부푼 꿈 담긴
소중한 가방을 잃어버리다

‘아, 그때 그 향긋한 자연 속에서 그 멋진 동화를 읽으며 예쁜 꿈을 키우고, 신기로운 장난감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면…… 혹시 그랬다면 내 미래는 좀더 밝게 변화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선감도에도 끌려가지 않고…….’

청운은 그 잃어버린 가방만 생각하면 언제라도 안타까운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소중한 물건을 상실한 외로운 아이는 모종의 자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서글픈 여름을 보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도박과 폭행죄로 경찰에 구속되었고 석방된 다음엔 술병에 걸려 집안 형편은 서서히 내리막길에 놓였다.

그리고 청운은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어 세상의 밑바닥을 떠돌게 되었던 것이다.

‘백주 대낮에 무장간첩이 날뛰고 살인 강도 강간범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니 검문검색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잠시면 된다며 끌고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영원히 조각내 버리는 짓은 하지 말았으며 좋겠어. 자기들 멋대로! 차라리…… 겉모양을 점잖게 꾸민 채 한밤중에 나라 돈을 쥐새끼처럼 솔솔 빼 처먹는 높으신 분네들이나 제대로 검문검색해서 그 잘난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상실케 했으면 좋겠네. 무엇을 하든 상하 한쪽이 격심한 갈증과 낙망을 느끼도록…….’

청운은 생각에 잠겨 차창을 열곤 밖을 내다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답답한 심정을 조금쯤 날려보내 주었다.

버스가 종착지에 도착해 가래 끓는 듯한 괴로운 호흡을 겨우 멈추었다. 청운은 아직껏 잠에 빠져 있는 옆자리 여자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 뒤 버스에서 내렸다.

음습한 터미널을 벗어나 일단 한길가로 나선 청운은 갑자기 삭막한 기분에 휩싸였다.

겨울이라지만 아직 해가 많이 남은 세 시경인데도 길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량한 소읍 같은 인상을 풍겼다.

냉랭한 바람만이 전신주를 윙윙 울리며 불어대면서 먼지와 종이 조각 따위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빈 깡통이 굴러가는 소리가 으스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차도 그다지 다니지 않았다.

청운은 천천히 길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급한 건 없으니까 방랑자처럼 슬슬 구경이나 해보지 뭐. 사심 없이 걷다 보면 의외로 목적지가 더 가까워지기도 할 테니 말야. 애써 찾으려 들면 길이 일부러 실타래처럼 꼬인 양 헤매게 되는 경우도 많더군.’

청운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지의 딴세상에 온 듯 걸었다.

멋대가리라곤 없이 단조롭게 뻗은 길이지만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엔 허바허바 사진관, 뉴욕 미장원, 마미 제과점, 샤인 금은방, 미미 양품점, 보이스 전파사, 러브 레스토랑, 신세계 극장, 로얄 애견숍, 샤론 의상실, 바우 전축, 동두천 제1직업소개소, 오쇼 복덕방, 법류사무소와 대서소, 친선 결혼상담소, 아델라이다 꽃집 등의 간판이 붙어 있었다.

ㄱ자로 꺾어 돌자 병원, 잡화점 같은 간판도 보였다. 그런데도 행인이 드물어서인지 유령 마을 같은 첫 인상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청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바로 그때, 요란스런 굉음이 지축을 울리며 멀찍이서 들려왔다. 이어 일군의 군용 차량이 줄지어 아스팔트를 지나갔다.

탱크, 장갑차, 검은 괴물 같은 트레일러, 뭔지 잔뜩 적재한 대형 트럭, 오일탱크를 실은 차량 등 기나길 수송행렬이었다.

성조기와 ‘U.S.A. Army’라는 흰 표식이 찍힌 그 차량들은 한국의 하늘에 뜬 태양을 무시하듯 아직 한낮인데도 굳이 인위적인 강렬한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그건 거대한 드래곤의 눈알처럼 의뭉스럽고 자만심으로 무장된 듯이 보였다.

거대한 드래곤

잠시 후 저쪽 하늘 높이 헬리콥터 편대가 나타나더니 요란스런 프로펠러 회전음으로 공기를 찢고 햇빛을 조각조각내어 반사하면서 줄지어 날아갔다.

겨울 하늘 한구석에 떠 있던, 얇게 썰어 놓은 배의 속살 같은 희미한 반쪽 낮달이 불안감을 못 이겨 파르르 떠는 듯이 느껴졌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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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