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16)쌀과 보리, 음양의 조화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3.09 06:27:07
  • 호수 1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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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자 다른 마을이 나왔다. 피에로는 한 골목 속으로 접어들었다. 좁은 길 양쪽으로 시멘트 벽에 함석지붕을 얹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그마한 흐린 창문엔 왠지 의심쩍게 모두 견고한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길바닥엔 녹슨 깡통이나 빈 담뱃갑 그리고 깨어진 술병 조각 따위가 나뒹굴었다. 그 위엔 하얀 눈송이도 내려앉자마자 곧 사그라져 버렸다.

미국 노래

좀더 가자 낡아빠진 기와지붕을 인 작은 한옥이 나왔다. 담벽 너머로 마당이 훤히 보였다. 우물가에 여자들 몇이 쭈그러 앉아 머리를 감거나 손빨래를 하며 시시덕거렸다.


한 여자가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설거지통에 쏟아 붓자 그릇이며 유리잔 따위가 부딪혀 쟁그라운 소리를 냈다.

이마나 어깨에 내려앉는 눈송이를 먼지인 양 털어내는 하얀 손도 보였다. 문간방에서는 얼굴이 작고 창백한 한 여자가 문을 열어 놓은 채 엎드려 하늘을 쳐다보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방 한켠에 놓인 옷장과 화장대 따위가 얼핏 바라다 보였다. 전축에서 잡음이 섞인 멜랑콜리한 곡조의 미국 노래가 흘러나왔다.

피에로가 휘파람으로 그 곡을 따라 불자 담배 피던 여자는 멀뚱히 쳐다보며 동그란 연기를 만들어 띄어 보냈고, 다른 여자들은 담벼락 위로 얼굴만 쑥 드러난 희극적인 그의 표정을 향해 깔깔댔다.

“헤이, 짝퉁 채플린, 찬밥이라도 한술 뜨고 가.”

“헤헤, 내일 구수한 된장찌개 끓여 주면 얼음밥이라도 구수히 먹지롱.”

“된장은 없고 치즈뿐인데 어쩐다니. 차라리 치즈 국을 끓여 줄까나?”


여자들은 아무런 사심 없이 까르르 깔깔 웃어댔다. 그 순간만큼은 속세의 번뇌를 벗어난 선녀들 같았다.

하지만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철둑길이라도 있는 듯 기차가 요란스런 소음을 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그 웃음소리는 갈가리 찢겨 삼켜져 버리고 말았다.

둘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기지촌의 중심지로 들어가기 전의 길목에 허름한 판자집이 하나 있었다. 피에로를 따라 청운은 그곳으로 들어섰다.

탁자 세 개가 놓인 작은 간이식당 같았다. 젊은 여자 몇이 둘러앉아 수다를 떨며 허연 김이 오르는 칼국수를 후룩후룩 먹고 있었다.

“누님, 잘 주무셨지유?”

피에로가 빈 탁자 밑의 의자를 꺼내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눔아, 지금이 몇 시관데 그딴 소리냐.”

주방 앞쪽의 의자에 앉아 있던 호호백발 할머니가 대꾸했다.

“히히, 누님은 시간이 굳어 있다면서 뭘 그러우.”

“그래, 욘석아, 내가 한이 많아서 그럴 뿐이지.”

뚱뚱한 그 할머니는 일어나서 주방으로 들어서며 구시렁거렸다.

“구름아, 우리도 칼국수 먹을까?”


“응, 그래.”

청운은 피에로의 물음에 대답하며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아냐, 할매 칼국수도 이 동네 사방에 소문난 일미지만…앞으로 먹을 기회가 많을 테니 오늘은 그냥 가정식 백반을 먹자. 국이 시원할 거야.”

“응, 좋아.”

피에로가 주방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누님, 밥 주세요.”


안에서는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피에로는 난로 위의 주전자를 들어 보리차를 컵에 따랐다.

“여긴 간판도 없고 메뉴표도 없어. 그냥 할매집이라고도 하고 또 누가 붙였는지 모르지만 입에서 입으로 퍼져 희망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지. 그리고 여기 메뉴표가 없는 건 칼국수와 백반밖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야. 하지만 앞으로 자주 들르다 보면 내 말이 헛소리란 걸 알게 될 거야. 히히.”

그때 백발 할머니가 주방에서 소리쳤다.

“야, 가져가!”

“옛, 누님!”

피에로가 재빨리 뛰어가더니 커다란 둥근 쟁반을 들고 왔다. 구수한 시래깃국 내음이 콧속으로 스며들어 뇌를 깨웠다.

흐린 창문에 견고한 쇠창살
길바닥엔 깨어진 술병 조각

수북히 담긴 쌀밥엔 보리가 점점이 섞여 구미를 돋우었다. 반찬은 멸치가 들어간 두부조림, 마늘장아찌, 잘 익은 김치가 전부였다.

청운은 우선 국그릇을 들어 반쯤 훌훌 마시곤 밥을 쏟아 부었다. 그러곤 슬슬 비벼 한술 가득 뜬 후 김치를 얹어 맛나게 먹었다. 간간이 마늘을 집어 사각사각 씹었다.

옆 테이블의 아가씨들과 실없는 수다를 떠느라고 밥을 반밖에 못 먹은 피에로는 자기 밥을 청운에게 떠넘기려고 애썼다.

“형 덕분에 정말 맛있게 먹었어. 하지만 더 이상은 땡.”

청운은 웃으며 마치 종을 흔들 듯 손사래를 쳤다.

피에로는 수다를 멈추고 갑자기 밥상 앞으로 돌아앉더니 순식간에 밥과 반찬을 먹어치웠다. 무슨 마술이라도 부린 듯 그릇들이 깨끗해졌다.

마지막으로 국그릇을 들어 입가심을 한 그는 흰소리를 한 마디 늘어놓았다.

“구름아, 왜 백프로 쌀밥보다 보리 혼식이 맛있고 몸에도 더 좋은 줄 아니?”

“글쎄.”

“그건 음양 조화 때문이란다. 저 백발 누님의 지론이지. 쌀은 봄에 씨앗을 뿌려 가을 햇볕을 잔뜩 받고 익었으니 양이며, 보리는 한겨울 엄동설한을 찬 땅에서 돋아나 견뎠기에 음기가 강하니라. 잘 살펴보면 각각 생긴 모양새도 남녀의 심볼을 닮았으니, 섞어 먹는 게 천지의 이치에 맞느니라. 히히히…….”

“저 녀석이 또 헛소리를 늘어놓는구나. 다 처먹었으면 어서 꺼지거라.”

주방 쪽에서 백발 할매의 지청구가 터져나왔다.

“흥, 지난번처럼 또 보리밥풀과 쌀밥풀떼길 서로 붙여 음향 합궁 쇼를 한번 해보시지.”

칼국수를 먹던 한 여자의 말에 다른 여자들도 까르르 웃어댔다.

“누님, 잘 먹고 가요. 동생 것도 같이 달아 놓으세요.”

피에로가 일어서서 소리쳤다.

“이놈아, 갚지도 못하면서 무슨 큰소리여! 그래도 지옥에 가서라도 받으려고 장부에 꼭꼭 적어 두고 있으니께 걱정 말어. 허지만 니 동생이란 녀석은 오늘 밥을 참 맛있게 먹어서 한번만 공짜로 해줄 테니 그리 알어!”

“히히, 잘 계세요.”

그들은 밖으로 나와 눈발을 맞으며 걸었다. 흐린 빛을 띠고 흐르는 개천 앞에서 담배를 꺼내 피웠다. 그리고 다시 걸었다. 개천 위에 내려앉는 눈발은 작은 나비들처럼 소리 없이 춤추다가 사라져 갔다.

“백발 할매의 나이가 꽤 들어 보이지?”

피에로가 물었다.

“응. 아마도 환갑 진갑을 지났을 것 같던데….”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지 그렇게까진 많지 않어.”

“그렇구나.”

“한이 많은 분이야.”

청운은 묵묵히 걸었다. 피에로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은퇴해서 희망집을 하고 있지만 예전엔 여기 기지촌에서 미군들에게 몸을 팔았대.”

“아, 그랬구나.”

동그란 연기

“그런데 더 놀랍고 슬픈 사실이 뭔지 아니?”

피에로는 눈을 돌려 청운의 눈을 바라보았다.

“뭔데 그래?”

“그 전엔 일본군 위안부였다는 거야.”

“뭐?”

“열댓 살 봄에 고향 들녘에서 나물 캐다가 잡혀갔다더군.”

“그럴 리가 있어? 전혀 실감이 안 나는걸.”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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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