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⑬흉내 내는 미8군 쇼단들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2.09 02:47:46
  • 호수 15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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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피에로는 마이크를 빼들고 입으로 가져가 백남봉이나 남보원이 하듯 원맨쇼를 펼치기 시작했다.

긴 휘파람 소리는 대포알이나 미사일이 멀리 날아가는 것을 묘사하는 성싶었다.

이어 폭발하는 소리가 꽤나 요란했으나 앞니가 빠졌기 때문인지 더러 불발탄 같은 싱거운 소음도 섞였다. 그래도 피에로는 열심히 성대모사를 해 나갔다.

성대모사

“드드드드…타타타타타…피융 피융…으윽, 내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라! 제군들은 삼천리 금수강산과 한민족을 위해 사즉생의 정신으로 싸워 달라…드르륵 드르륵 콰쾅…… 으흑, 나는 피눈물을 머금고 가네…소련 놈한테 속지 말고, 미국 놈들 믿지 말고…참다운 자주 독립과 해방 세상을 이뤄다오….”


마지막 말은 불분명해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저 피에로 형은 뜬금없이 왜 저런 소릴 지껄이고 있을까, 하고 청운은 고개를 저었다.

‘무대에서 저런 덜떨어진 헛소릴 왜 하는 거야? 더군다나 대부분의 관객이 미국 군인인 판에 누가 그런 이상스런 소릴 알아먹겠느냐구, 응? 가만 있자, 혹시 미군들이 알아먹지 못하게 일부러 그런 대사를 늘어놓은 건 아닐까? 흠,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그건 이 홀에선 아무런 메아리도 없고 의미도 전달되지 못하는 독백에 불과하지 않느냔 말야.’

청운의 그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피에로는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한국 말로 계속 지껄였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코리아 채플린 쑈가 시작되겠습니다! 자, 박수로 환호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박수 소리는 별로 나지 않았다. 그 대신 검푸른 장막을 젖히며 한 아가씨가 무대로 툭 뛰어나왔다. 장막 위쪽에 매달린 별들이 흔들리며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무명 저고리에 검정 치마 차림인 그녀는 한쪽 팔목에 꽃이 가득 담긴 대바구니를 걸고 있었다. 아담하고 가냘파 보이는 몸매였다.

그녀는 한숨을 폭폭 내쉬며 종종걸음으로 이리저리 거닌다. 무슨 큰 고민거리라도 있는 모양이다. 급기야 무릎을 꿇고 앉아 하늘 향해 빌며 기도를 드린다.


그때 방랑자 채플린이 지팡이를 빙빙 돌리며 지나간다. 꽃팔이 아가씨는 마치 그가 하느님이라도 되는 양 우러러보며 꽃 한 송이만 팔아 달라고 간절한 눈빛으로 애원한다.

무언극이라 말은 없지만 무수한 말보다 더 애절해 보인다.

채플린은 콧수염을 움찔거리며 고민스런 표정이다. 그러더니 천천히 아가씨를 일으켜 세워 정겨운 미소를 짓는다.

아가씨가 안도의 숨을 쉬자 그는 그녀의 귀에 입을 가까이 대곤 뭔지 한동안 속삭인다. 아가씨는 좀 놀란 눈으로 머뭇거렸으나 채플린의 재촉에 못 이겨 결국 한 발짝 두 발짝 무대 앞쪽으로 걸어 나간다.

그러고는 대바구니에서 조화 같은 장미와 동백꽃을 집어들어 미군들을 향해 공손히 던졌다. 키스를 함께 담아….

반응은 별 신통찮았으나 동전 몇 개가 무대 바닥으로 되돌아오긴 했다.

꽃팔이 아가씨는 몸을 굽혀 그걸 주웠다. 그리고 콧노래를 여리게 흥얼거리며 일어서는 순간 채플린은 갑자기 뒤돌아서며 음흉한 히틀러의 웃음을 흘린다.

어느 새 그의 머리 위엔 낡아 빠진 방랑자의 모자 대신 금빛 별이 달린 대원수의 군모가 얹혀 있다. 히틀러는 독사 같은 눈으로 아가씨를 노려본다.

그녀가 흐느끼며 마지못해 동전을 건네주자 히틀러는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만족스레 웃곤 꽃팔이의 야윈 어깨를 감싸 안은 채 삐딱삐딱 걸어 장막 뒤로 사라진다.

홀의 관객들 속에서는 야유가 흘러 나왔다. 아무래도 히틀러의 사악함을 질타하기보다는 짝퉁 채플린의 연기에 실망한 나머지 내는 소리가 아닌가 싶었다.

6·25전쟁은 미국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상륙하는 계기가 되었다. 휴전 이후 한국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게 되면서 소위 ‘GI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전국 각지의 미군 주둔 캠프가 있었고 그곳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 있었는데 그곳 무대가 미8군 쇼 무대이고 여기에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이들을 미8군 연예인이라고 불렀다.


미8군 쇼는 노래, 춤, 코미디, 마술 등이 가미된 버라이어티 쇼의 형태를 취했기에 악단, 가수, 무용수, 코미디언이 모두 포함된 쇼단을 구성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6·25 이후 미국 대중문화 상륙
전국 각지 주둔 캠프 클럽 무대

이봉조의 헐리우드 쇼, 김희갑의 에이원 쇼, 베니 김(김영순)의 베니 쇼, 송민영의 토미아리오 쇼, 박성원의 블랙 아이스 쇼, 김동석의 웨스턴 주빌리 쇼 등이 당시 활동한 미8군 쇼단들이었다.

미8군 무대는 1960년대 전반기에 전성기를 누리고 베트남전쟁이 발발하면서 쇠퇴했지만, 한국 대중음악에 깊은 영향을 행사했다.

이들은 분기별로 용산의 USIS라는 곳에서 공개오디션을 거쳐 실력을 인정받아야만 무대에 설 수 있었다. 오디션에서 부여받은 레벨은 음악인의 가치이며 거기에 근거해 실력자들은 충분한 보수를 보장받았다.

미8군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왕도는 없었다. 최신 레퍼토리를 입수해 끊임없이 연습함으로써 실력과 흥행성을 배가하는 길이 유일했다.


악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미군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최신 음반을 입수해 일일이 채보하면서 소속 용역회사 창고에서 지지리 연습했다.

미8군 쇼가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 건 아니었다. 비록 불모지인 연예계에 물줄기를 불어 넣고 끼 있는 연예인을 발굴하는 역할을 일정 정도 했지만 한국 고유의 정서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미8군 무대에 선 가수나 코미디언들은 독창적인 재능보다는 미국 본토의 인기 연예인을 가능한 만큼 똑같이 모방할 때 훨씬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패티 킴은 패티 페이지를, 하숙생 최희준은 냇킹 콜을 모창했고, 위키 리는 바비 달린을 모방해 인기를 얻었다.

누구는 봅 호프를, 또 누구는 프랭크 시내트라를, 누군가는 제임스 딘을, 그리고 재기발랄한 김상국조차도 루이 암스트롱을 흉내내야만 계속 무대에 설 수가 있었다.

그들은 예인으로서의 독창성과 자부심보다는 미국 본토에 있는 오리지널의 이미지를 그럴 듯하게 복사(capy)함으로써 가치를 인정받는 신세였다.

그들이 한국에서 유명짜한 밤무대 가수로 뛸 때 미8군 무대에서의 경험과 인기는 실력의 기준이 되었다.

그 자신 유명한 미국 개그맨을 모방하는 밤무대의 사회자가 출연자를 ‘미8군 출신!’이라고 소개하면 현란스러운 홀은 금세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일단 퇴장했던 피에로는 곧 무대 위에 다시 나타나 능글능글한 목청으로 다음에 등장할 여가수를 뻥튀기로 소개하곤 내빼 버렸다.

이국적인 얼굴에 키가 후리후리한 패리 킴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티브이에 자주 출연하는 패티 킴과 비슷한 모습에 똑같은 창법이었으나 참된 기운이 부족한 짝퉁의 모창이었다.

그런 대로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인지 환호성이 일었다.

홀 여기저기서 술잔 부딪치는 소리와 남녀가 서로 껴안은 채 쪽쪽 빨아대는 소리가 났다.

먼 이국땅에서 온 사내들은 작고 분단된 코리아의 여인들에게서 모정을 느끼는 것일까? 혹은….

모방의 밤무대

청운이 술잔을 비우고 탁자에 놓는데 피에로가 분장을 지운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이 빠진 골덴 바지 위에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쑈는 끝났어. 이젠 호랑나비와 범나비들끼리 짝을 맞춰 하룻밤 사랑 유희 하는 일만 남았는걸.”

“응, 그렇군.”

“가자.”

“어디로?”

“아무튼 여길 나가서….”

“응.”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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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