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⑩한국에 아메리카 뒷골목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1.19 04:47:40
  • 호수 15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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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어둠이 점점 짙어지자 외로움도 진해졌다.

차가운 밤바람이 몰아치며 어린 시절부터 움터 온 고독감을 지푸라기마냥 떨게 했다.

그래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그런 감정은 더 깊고 절실할수록 존재의 본질을 직면케 하는지도 몰랐다.

환락의 거리

보산리 입구로 들어서자 길이 한층 넓어지면서 전혀 새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거리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들에 내걸린 간판엔 Lucky Club, Paradise Hall, DOWNTOWN SHOW, Cat’s Story, Casanova, Little Angels, Cicago Jack, Seven Star, Las Vegas Club 따위의 네온사인이 현란하게 반짝거렸다.

서울의 번화가에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간판이 많았지만 대체로 한글로 적혀 있었는데, 도발적이고 울긋불긋한 영어 글자들을 보자 무척 낯설었다.

근무 시간이 끝났는지 길엔 미군들의 숫자가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복으로 갈아입고 부대에서 벗어나온 젊은 백인과 흑인들은 활기차고 자유분방스러울 뿐만 아니라 때로는 거만해 보이는 모습으로 환락의 거리를 활보하고 배회했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휘황한 네온사인 조명이 섞여 이리저리 흘렀다.

그들은 마치 입대하기 전 자신이 놀던 아메리카 뒷골목의 유흥가에라도 온 듯 여유만만했다.

이미 한잔 걸친 치들은 클럽에서 고른 이국땅의 예쁘고 날씬한 아가씨와 함께 또 다른 생의 몽상과 환희를 찾아 비틀비틀 걸음을 옮겨놓았다.


덩치가 거대한 그들에게 안긴 아담한 한국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어린 소녀처럼 보였다. 털이 숭숭 난 커다란 팔을 가진 백인과 흑인들은 아가씨의 가녀린 허리를 안고 곧 구겨 버릴 듯이 쓰다듬으며 허옇게 웃었다.

청운이 찾는 블루문blue moon 클럽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나쳐 버렸는지도 몰랐다.

청운은 목을 좀 축이고 지친 다리도 쉴 겸 적당한 곳을 찾아 이리저리 둘러보았으나 모든 클럽의 문 앞에 ‘한국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어 문득 갈증이 더 심해졌다.

‘이것 참…… 오아시스 없는 사막 같군.’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절룩절룩 걸었다. 마침 맞은쪽에서 홀로 걸어오는 여자를 보자 청운은 다가서서 물었다.

“혹시 블루문이란 데가 어딘지 아세요?”

“그건 여기 없어요.”

여자는 껌을 씹으며 붉디붉은 입술로 대꾸했다.

“그게 정말인가요?”

청운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그런 건 이 세상에도 없고 저 달나라에도 없는 허무맹랑한 사람들의 환상이에요. 꿈 깨고 지금 살 일이나 걱정하는 게 좋아요.”

“난, 친한 형을 만나 보려고 블루문을 찾는 거예요.”


청운은 그쯤 하고 다른 행인에게 물으려고 발짝을 뗐다. 그런데 그 여자가 빨간 하이힐 뒷굽으로 길바닥을 똑똑 울리며 걸어가면서도 말을 계속했기 때문에 청운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쳇, 블루문이라구? 세상에 그딴 푸른 달이 어디 있겠어? 환상으로 남도 속이고 자기 자기마저 속이려고 지어낸 것일 뿐……. 그래도 혹시 몰라 백과사전을 한번 찾아 봤지. 환상마저도 아닌 찌질한 현실이야. 대기 중에 먼지 농도가 짙어지면 미세한 먼지들이 붉은 계통의 빛은 산란시키고 나머지 색은 통과시켜 달이 푸르게 보일 수 있다더군.”

여자의 긴 머리칼은 물을 들였는지 자줏빛이 감돌았고 끝부분이 곱슬곱슬했다. 겨울 밤바람이 찬데도 여자는 몸매가 잘 드러나는 매끄러운 우단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것도 붉었다. 각선미를 뽐내는 하얀 종아리를 제외하곤 온몸에서 붉은 색깔을 뿌리며 그녀는 살랑살랑 걸어갔다.

적어도 뒷태 하나만큼은 주간지 화보에서 본 여배우나 미스코리아의 몸매에 못잖아 보였다.

보산리 입구 들어서자 새로운 풍경
모든 클럽 문에 ‘한국인 출입금지’


“혹시 클럽 쑈 무대에서 활동하는 피에로 또는 코리아 채플린을 아세요? 꽤 유명하다던데…….”

청운은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 옆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아마 블루문 클럽을 아는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여자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곧장 또박또박 걸었다. 옆얼굴이 달처럼 창백했다.

“호호…… 개도 입귀가 찢어지도록 웃겠네. 뭐, 유명한 배우라구요?”

“그럼 무명 배우인가 보죠? 아무튼 피에로 형을 알긴 아는군요. 지금은 뭘 해요?”

여자는 대꾸 없이 코웃음을 치곤 율동적으로 걸었다 얼마 후 거센 바람을 피하듯 슬쩍 비켜 서더니 갑자기 붉은 입술을 열었다.

“직접 물어 봐요. 호호…….”

그러고는 어느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청운은 눈을 들어 간판을 쳐다보았다. 없었다.

영어도 한글도. 다만 건물 지붕 위에 검은 하늘을 배경으로 커다란 푸른 달이 떠올라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은은한 빛을 허공에 뿌리고 있었지만, 진짜 달이 아니라 내부에 네온사인이 장치된 둥근 플라스틱 통이었다.

청운은 출입문 앞으로 슬슬 다가갔다. 클럽의 기도를 보는 성싶은 목이 굵은 사내가 힐끗 쏘아보았다.

“혹시 여기가 블루문입니까?”

청운의 물음에 사내는 한번 더 훑어보고 나서 심드렁히 대꾸했다.

“흐음, 그런데요.”

“혹시 여기 피에로라는 희극 배우가 있는지……?”

“누구요? 피에로가 어디 한두 놈이어야지.”

“본명은 김순식이라고 하는데…….”

사내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헌데 형씬 걔하곤 어떤 사이유?”

“의형제간입니다.”

“흐흣, 요즘 세상에 의형제라니 웃기는군. 흠, 아무튼 일단 조용히 들어가서 한번 물어 보슈.”

“예, 고맙습니다.”

청운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이제 곧 피에로 형을 만나게 된다고 생각하니 감개무량한 나머지 문지기가 악당이든 개구리든 우선 고맙기만 했다.

저 아득한 선감도에서 고락을 같이하다가 마침내 목숨마저 걸고 탈출을 감행했으나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 채 험한 바다 한가운데서 헤어져야 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청운으로서는 그런 이색 지대에 처음 들어가 보는 셈이었다. 물론 청량리 풍전 나이트클럽과 유사한 업종이겠지만 왠지 모를 다른 느낌이 밀려들었다.

덩치 크고 야릇한 체취를 풍기는 백인과 흑인들만의 유흥장이라서 그럴까?

혹은 그들과 바짝 붙어 얼려 미소 짓는 여자들 때문인가? 아니면 미군부대가 바로 앞에 진을 치고 있어서 그 후광 때문에……?

청운은 어둑스레한 구석쪽에 서서 신세계 같은 홀의 내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코리아 채플린

휘황찬란한 조명이 교차하는 널찍한 원형 공간에서는 귀청을 찢을 듯한 팝송 곡조에 맞춰 남녀들이 뱀장어처럼 어울려 춤을 추고 있었다. 미꾸라지와 뱀장어랄까.

홀 천장에 매달린 오색 미러볼이 서서히 돌며 환상적인 색색가지 빛을 조합해 춤추는 남녀들의 얼굴과 몸 위에다 뿌렸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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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단독] 국방부 TF, 정보사 못 뒤진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방부는 내란 특별검사팀이 해소하지 못한 건을 발본색원하려 했다. 특별수사본부 외에도 TF팀을 꾸렸으나 역부족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진상규명 핵심 기관인 정보사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의혹의 상당수가 근거가 빈약해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인사도 문제다. 내란에 연루된 핵심 기관임에도 인적 쇄신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본부에 조사관들이 상주까지 했는데 밝혀진 게 없다.” 한 정보사령부 영관급 장교의 말이다. 정보사를 둘러싼 의혹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주장이다. 군 안팎에서는 국방부 차원의 특별수사본부와 헌법존중 TF(테스크포스)만으론 어림도 없다는 지적이 거세다. 제보와 투서 내란 특별검사팀의 후신인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정보사에는 대북공작 전문가들인 휴민트(HUMINT·인간정보·820)가 있다. 휴민트 부대인 HID(북파공작부대)와 이들을 지휘하는 100여단이 핵심 중의 핵심이다. 이들은 대북공작 실행 부대로 전략·기획은 특수사업처가 담당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정보사 특수처는 최근 특수·대외·훈련평가 등 3개의 부서를 특수·대외로 개편했다. 신임 정보사령관에는 1988년 이진백 사령관 이후 38년 만에 처음으로 비육사 출신인 조선대학교 학군장교(ROTC)출신 박민영 육군정보학교장이 임명됐다. 참모장은 육사 출신 한모 준장, 정보단장은 하모 준장(3사)이 맡게 됐다. 100여단장이던 육사 출신 정모 준장은 제2작전사령부로 전보됐다. 국방부는 당분간 100여단장 자리를 공석 상태로 놔두기로 했다. 휴민트 조직이 12·3 내란에 깊숙하게 연루된 만큼 특수본의 수사가 끝난 이후 진급 심사 절차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정보사는 검찰과 경찰, 내란 특검팀 수사에 의해 부서명이 노출돼 기밀이 새 나가고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홍도 격화되고 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에 제보와 투서가 빗발치고 있는 점이 정보사 내부 분위기가 악화되고 있다는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한 군 관계자는 “‘진급 시즌’ 때문이라고 해도 의혹에 그치는 제보가 많다. 중요한 내용도 있지만 타 부서의 간부를 언급하며 ‘문제가 있어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는 식”이라고 말했다. ‘약물 공작’ 문건 본거지 특수처 압수수색 패스 논란의 인물들 되레 진급 “장군 인사로도 거론”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을 통해 드러난 ‘약물 공작 문건’ 이후에는 관련자들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문건 작성자인 이모 대령(현 속초 HID 부대장)과 군무원 외에도 당시 특수처장이던 A 대령과 관련자들에 대한 인사 조처가 필수적이라는 지적이다. 박 의원이 확보한 해당 문건은 정보사 특수처 산하 대외 담당실에 존안돼있었다. 문건 작성 및 책임자인 A 대령과 이 대령 모두 특검팀의 소환 조사를 받았다. 다만 특검팀의 수사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던 터라 어떤 목적으로 문건을 작성하게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특검팀에 파견됐던 한 경찰 관계자는 “특수처 간부 중 일부는 수사에 협조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작성하게 됐다는 것 외에는 확인된 사실이 없다. 노상원 전 사령관과의 연결고리가 의심됐으나 정황을 포착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방부 특수본과 TF는 관련 의혹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실제 담당 조사관들은 정보사 안양 본부에 상주하면서까지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약물 공작 문건 외에도 지난해 2월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준장)이 국회에서 증언했던 ‘2016 계획(가칭)’도 조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 준장은 국회 청문회에서 “2016년 속초 HID 부대장으로 있을 때 당시 노상원의 지시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며 “대북 중요 임무를 6개월간 준비한 적이 있었는데, 여러 불합리한 지시가 많았지만 특히 요원들을 폭사시키라던 지시가 생각난다. 노상원은 요원들에게 ‘원격 폭파 조끼’를 입혀 보낸 뒤 임무를 끝내면 폭사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했다. 이 계획은 노상원 전 사령관이 취임 이후 자신의 비서실장과 특수처장, 사업단장을 해임한 이후 모의됐다. 일반적 공작처럼 북한 내 쿠데타를 야기하거나 우회적으로 설득하는 작업이었다. 실제 수십명의 공작관들이 강제로 동원돼 노 전 사령관의 비상식적 계획을 준비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노상원 폭사 지시 ‘2016 계획’도 조사 바짝 붙었는데 빈손…진상규명 어려울 듯 한 국방부 관계자는 “TF에서 해당 사안을 조사했던 건 사실”이라며 “차후 어디서 수사하게 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했다. 복수의 전·현직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2016 계획’이 2차 종합 특검이 출범한 이후에도 드러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문건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소실됐을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노 전 사령관은 2016 계획 외에도 대북공작 관련 보고서를 ‘특수’가 아닌 ‘일반’ 문서로 만들도록 지시했고 제한된 공간에 보관한 후 통제했다고 한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담당자들이 안양 본부에 가서 보고하는 절차에서 노상원이 직접 100여단을 방문해 보고를 받았다. 시스템이 이상하게 바뀌었는데 문상호도 똑같았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일반 문서로 분류한 대북공작 문건들은 김용현에게 따로 보고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노상원은 사실상 수년간 김용현에게 휴민트들이 작성한 첩보를 갖다 바친 것”이라고 비판했다. 군 정보기관 간 갈등도 폭발 직전이다. 또 다른 군 정보기관인 777사령부에 대한 ‘인사 차별’이 원인으로 거론된다. 앞서 777사령부에 소속된 시긴트(SIGINT·신호정보·820) 전문가들은 휴민트와 같은 820 정보병과다. 다만 ‘인간’과 ‘신호’로 구별될 정도로 업무 자체가 전혀 다르다. 정보사는 관행대로 육군 소장이 신임 정보사령관을 맡게 됐지만 777사령부는 공군 준장으로 격하 보직된 데 이어 지휘관의 군종까지 뒤집히는 전례 없는 조치가 단행됐다. 777사령부는 정보사와 다르게 내란에 연루된 사실이 드러난 바 없다. 인사만 놓고 보면 두 군 정보기관 간 인사에 차이가 있다는 건 명확하다고 볼 수 있다. 주먹구구 인사 국방부 인사를 담당하던 한 소식통은 “777 입장에서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인사”라며 “정보사 육사 출신들의 진급이 대거 배제됐다고 해도 외형적으로만 그럴듯해 보이지 속사정은 다르다. 실질적 지휘 체계는 뒤바뀌지 않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인적 쇄신이라고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TF도 이 같은 문제를 인지했다. 16일 조사를 마무리한 TF는 조만간 결과를 검토해 다음 달 13일까지 승진 취소 및 징계성 전보 등 인사 조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적어도 이날까지는 군 정보기관 내 파열음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