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조유담 기자 = 더 이상 하나의 정답을 따라가지 않는 시대에 대한민국 30대의 생존 전략은 평생직장 대신 해외 이민과 공무원 시험, 창업과 N잡으로 흩어지고 있다. 고용 불안과 연금·주거 위기 속에서 “지금처럼 살아서는 30년 뒤를 버틸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며, 현재의 30대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안정된 조직의 시대가 저물어가는 가운데, 현재의 30대는 더 많은 자유를 얻은 대신 그 선택의 위험까지 홀로 감당해야 하는 첫 세대가 됐다. 과거 대한민국의 30대는 비교적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대학 졸업 후 취업에 성공해 한 직장에서 경력을 쌓고, 승진과 결혼, 내 집 마련으로 이어지는 삶이 하나의 ‘정석’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더 이상 같은 궤도를 따라가지 않는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희미해졌고, 안정적인 일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여기에 장기화된 취업난과 채용 축소까지 겹치면서 기존의 경로에서 이탈하거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30대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탈하거나 모색하거나 실제로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30대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쉬었음’ 인구 255만5000명 중 청년층은 42만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의 이립(而立)은 30세를 일컫는 말이다. 서른 살이 된 이들은 ‘세상일에 미혹되지 않는’ 나이(불혹, 40세)에 이르기까지 10여년 동안 디디고 선 자리를 다져야 한다. 하지만 2026년 현재, 30대에게 주어진 사회의 자리는 그리 넓지 않다. 이들이 서 있을 곳은 어디인가. <일요시사>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30대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1996년·2026년 그들이 사는 법 ②벼랑 끝에 걸치다 ③극단의 세대 해법은? ④김옥란 센터장이 전한 고립 청년들의 질문들 ⑤젊은 정치인들 이야기 ⑥게속 바뀌는 생존 전략 ⑦도약할 준비는 끝났다 <webmaster@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기다려라, 곧 우리가 간다.” 인터뷰 도중 ‘현역 기득권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곧바로 돌아온 한마디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말에 뼈가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거철마다 여야는 앞다퉈 개혁의 상징으로 청년 정치인을 앞세우지만, 막상 30대가 여의도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미래 세대를 이끌어갈 청년 정치인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잃을 게 없어 더욱 솔직했다. 김지수 대통령 직속 대한민국 국민통합위원회 위원(1986년생)·더불어민주당 김보미 강진 군의원(1989년생)·정진호 의정부 시의원(1995년생)의 이야기다. 그들은 취재진이 끼어들 틈도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다가도 청년 문제에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재치 있는 말투로 서로의 혼을 쏙 빼놓더니 이내 깔깔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세 사람은 기득권의 벽에 부딪혀 깨지고 좌절해도 또다시 도전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유난히 하늘이 푸르던 5월, <일요시사>가 여의도 국회에서 김지수·김보미·정진호를 만났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김지수=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되고 싶은 김지수다. 2020년 비례대표 면접 탈락, 202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여기 제가 와도 되는 곳인가요?”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를 찾은 고립 청년들이 가장 먼저 건네는 질문이다. 취업난과 관계 단절, 미래에 대한 불안 속에서 방 안으로 숨어들던 청년들은 어느새 30대가 돼있었다. <일요시사>는 김옥란 센터장을 만나 30대 고립 청년들의 진짜 이야기를 들어봤다. 취업난과 주거 불안, 관계 단절과 번아웃이 겹치며 청년들의 삶은 점점 팍팍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사회와 단절된 채 방 안에 머무르는 ‘고립 청년’ 문제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한 번 사회와 멀어진 청년들은 다시 관계를 맺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은 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센터장과의 일문일답.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는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 ▲고립 위기에 놓인 19세부터 39세까지 청년들의 회복을 돕고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곳이다. 단순히 취업만을 목표로 두기보다 신체·정서·관계·자립 회복을 함께 돕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최근 고립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30대 청년들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몇 년 전만 해도 센터를 찾는 청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두 번의 탄핵과 한 번의 계엄, 청년 세대를 불안으로 밀어 넣은 정치가 결국 업보를 돌려받았다. 청년이 극우·극좌라는 극단의 영역으로 나뉘면서 정치 양극화는 물론 사회적 혼란까지 초래한 것이다. 극우·극좌는 상대를 향한 혐오를 기반으로 한다. 그 틀을 깨는 건 한 사람이 새로 태어나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진보적인 목소리로 기득권에 저항하던 운동권 청년’은 옛말이 됐다. 대한민국이 초고속 성장을 이룬 지금, 청년들은 불공정, 미래 불확실성, 젠더 이슈, 무한 경쟁 등 온갖 갈등이 중첩된 삶을 하루하루 버텨내고 있다. 결국 이 같은 불만이 정치적 제도와 기득권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극우·극좌라는 과잉 반응으로 표출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닿지 못할 평행선 청년들이 극단적인 정치에 매몰되는 이유는 “역시 내가 옳았어”라는 자기 확신을 느끼기 때문이다.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같은 성향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고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을 바라보는 색안경은 짙어진다. 극우에 있어 극좌는 “대한민국 공산당화에 앞장서는 사람”이며 극좌에 있어 극우는 “민주주의를 무너트리는 척결 대상”으로 정의된다. 해외는 정치 양극화가 가져온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과거에는 “조금 늦더라도 결국 자리 잡는다”는 믿음이 있었다. 한때 한국 사회는 30대를 ‘성장의 시기’로 여겼다. 직장을 잡고, 가정을 꾸리고, 자산을 형성하며 삶을 안정시키는 시기였다. 그러나 지금의 30대는 다르다. 반복되는 취업 실패와 불안정한 노동, 치솟는 집값이 기본인 경쟁 사회 속에서 삶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인간관계, 내 집 마련은 물론 미래에 대한 기대감 자체를 내려놓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청년세대는 ‘3포세대’로 불렸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의미했다. 이후 포기하는 대상이 늘어나면서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 꿈과 희망까지 내려놓는다는 의미의 ‘N포세대’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벌어도 불안 놀아도 불안 그러나 최근 청년세대를 설명하는 분위기는 이보다 더 무겁다. 몇 가지를 포기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 새롭게 등장한 표현이 ‘사회적 로그아웃’이다. 극심한 경쟁과 취업난,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관계와 미래 계획을 하나씩 줄여나가다 결국 사회 바깥으로 밀려난 것을 의미한다. 무엇이 30대 청년들이
[일요시사 취재2팀] 김유미 기자 = 1991년생 성호씨(가명)가 직장을 그만둔 시기, 그와 서른 살 차이가 나는 아버지 1961년생 은상씨(가명)는 오래 해오던 일에서 은퇴 시점을 헤아리고 있었다. 이들 부자는 유럽 섬나라 한 곳을 여행하기로 했다. 부자가 함께 이국땅에서 보낸 스물한 개 밤사이. 30년, 한 세대 차는 좁혀졌을까? 아들 성호씨는 4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막 나와 방황하던 시기였다. 한동안 “조직이 잘되면 나도 잘되는” 것이라 여기며 몸과 마음을 바쳤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조직과 사람에게 걸던 기대를 놓게 됐다. 그는 “동력 엔진이 꺼져버렸다”고 표현했다. 60년대생 평생직장 아버지 은상씨는 젊어서부터 영업 일을 해왔다. 지방 출장이 잦아 집을 며칠씩 비우는 일이 왕왕 있었다. 성호씨는 어렸을 때 젊은 아버지가 무슨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일하는 아버지를 너무 당연하게 여겼던 듯하다고 했다.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인 부자는 여행을 떠났다. 성호씨는 몇 번인가 이미 여행한 곳이었기에 익숙한 그 섬에 아버지와 가고 싶었다. 여행하면서 부자는 여행지에도, 날씨에도, 서로에게도 더 익숙해질 수 있었다. 1961년, 소련(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 개인정보가 공공재가 되고 있다.” 연이은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한탄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면 정보 유출에 대한 충격파는 작아졌는데 이는 점점 무뎌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큰 문제는 사고를 예방하기보다 수습에 방점을 찍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보안 전문가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일요시사>가 10명의 ‘화이트해커’에게 물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하루에도 몇 통씩 오는 문자메시지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고수익 보장’ ‘종목 추천’ 등 메시지의 내용도 다양하다. 오는 족족 삭제하고 번호를 차단했지만 다음 날이면 또 다른 번호로, 또 다른 내용의 메시지가 온다. 김씨는 본인 번호가 대체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궁금했다. 어디서 새서 어디로 가나 개인정보가 더는 ‘개인’의 것이 아니게 된 모양새다. 안전지대는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방위로 털리고 있다. 이름, 나이,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 민감한 정보도 예외는 없다.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된 한 이용자는 “(개인정보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3일 통신업계 등에 따르면, LG유플러스는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에 관해 검찰은 피의자 신분인 군 장성들에게 ‘센 질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검찰의 축소 기소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을 비롯한 내란 핵심 멤버에게 평양 침투 무인기 사건과 외환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취재를 종합하면, ‘북풍 공작’ 장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지난해 12월19일 구속된 이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검찰이 입수한 그의 수첩에는 ‘국회 봉쇄’ ‘수거 대상’ ‘사살’ ‘북의 NLL(북방한계선) 공격 유도’ 등이 적혀 있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북한 오물풍선의 ‘원점 타격’ 방안까지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군사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규명 필요한데···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 자료에 따르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지난해 12월14일과 12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국방부 장관과 합작해 평양 무인기 사
12·3 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국가 경제와 외교·안보는 치명타를 입었다. 국가 경제와 외교·안보는 치명타를 입었다. 모든 피해는 국민이 지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뭐가 그리 급했을까?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함과 동시에 김건희씨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발악이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요시사>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의 수사기록 수천장을 입수해 당시 상황을 들여다봤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②윤통의 영구 집권 큰 그림 ③선포 10분 전 국무위 상황 ④‘비선 장군’노상원 존재감 ⑤2차 계엄 수사 어디까지?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⑦뭉치지 못한 군인들 왜? ⑧축소 수사와 특검 수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계엄이 선포돼도 계엄군 개입은 극히 제한되는 것으로 연습해 왔다.” 이는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계엄 업무 담당)이 검찰 진술서 한 말이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와 전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이 의구심을 품은 대목이다. 12·3 내란 사태 당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방송사 등지에 수천명의 군인이 투입됐다. 하지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하달받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한 부대는 선관위로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뿐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와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부대를 움직였지만 현장 지휘관의 의문은 이른바 ‘항명’으로 이어졌다. 의도에 의문 <일요시사>는 검찰 12·3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의 진술 조서에서 12·3 내란 사태 당시 군인들이 왜 항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봤다. 항명을 한 이들이 12·3 내란 당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지휘권 없는 김 전 장관의 지휘 ▲정당하지 않은 군 투입 등이다. 지휘권 없는 김 전 장관의 지휘에 대한 진술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 소속 장교들에게서 찾을 수 있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를 수사하는 검찰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포함해 군 간부 수십명을 재판에 넘겼다. 수사가 종착역을 향해 가고 있으나 아직 해결 과제는 산적해 있다. 윤 전 대통령이 2차 계엄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이 대표적이다. 검찰은 복수의 군 고위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하면서 2차 계엄 가능성에 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못 박은 것으로 확인됐다.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어 추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 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가 작성한 수사 보고서에 적시된 문장이다. 특수본이 이 보고서를 작성한 건 지난해 12월10일이다. 5개월여가 지난 지금 수사는 어디까지 진행됐을까? 필요성 강조 특수본은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 ‘제2차 계엄 선포’ 가능성에 대한 의혹들을 정리했다. 먼저 검찰은 윤 전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 한덕수 국무총리(현 대통령 권한대행)를 만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헌정 파괴 세력으로부터 헌정 질서를 지키는 불가피한 조치’라는 말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윤 전 대통령은 대국민담화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수사 기록 곳곳에 ‘노상원’ 세 글자가 빼곡하다. 오래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사방을 들쑤셨지만 그 누구도 민간인이 개입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덕분에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맹신론자’를 등에 업고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박근혜 전 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냈다. 육군정보학장 재임 중이던 2018년 여군 교육생을 술자리 등에서 강제 추행한 혐의가 인정되면서 불명예 퇴직 처리됐다. 민간인으로 돌아가 점집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계엄에 사사건건 개입할 수 있었을까? 노 전 사령관의 행적을 쫓아가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이름이 나온다. 나를 따르라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이던 당시 노 전 사령관은 같은 경비대대서 대위로 근무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꾸준히 연을 이어가며 끌어주고 당겨주는 사이가 됐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둘의 친분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김용현과 자주 소통한다” “오늘도 용산에 다녀와 만났다” 등의 말이었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12월3일 저녁, 관용차가 속속들이 용산 대통령실로 들어섰다. 이날 대통령실로부터 급하게 호출을 받은 국무위원은 ▲한덕수 국무총리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다. 비상계엄 선포를 앞둔 윤석열 전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10명의 시선으로 되짚어봤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 계엄을 선포하기 4시간 전인 지난해 12월3일 오후 6시11분,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 장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비상 계엄의 핵심 인물인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의 연락이었다. “당장 집합” 긴급 명령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이 전 장관은 울산서 열리는 김장 행사에 참석한 뒤 서울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김 전 장관은 이 전 장관에게 “어디냐”고 물었고 그는 “울산서 김장 행사 하고 회의를 한 뒤 서울에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몇 시쯤 도착하느냐는 질문에 “8시가 넘는다”고 말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도 5개월이 지났다. 위헌이자 위법이었기에 내란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윤 전 대통령은 반국가 세력과 간첩을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과거와는 다른 유형의 계엄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으나 전두환보다 위험했고 무모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의 내란 수사 기록에는 그가 영구 집권을 꿈꾼 정황이 확인됐다. “규모로만 봤을 때는 성공할 수밖에 없었다.” 군 전문가들과 법조인들이 바라본 12·3 내란 사태에 대한 평가다. 재판에 넘겨진 군 장성들의 진술조서에도 이들의 규모와 체계가 구체적으로 적시됐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영구 집권을 계획했던 걸까? 경고성이자 평화적 계엄이었다는 주장은 무색하게만 들린다. 경고성 계엄? 대규모 준비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태는 1979년 12·12 군사 반란과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전두환씨는 당시 반란을 통해 1980년 5·17 비상계엄의 발판을 마련했다. 국회의원들을 협박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나 장교 3명, 병사 95명에 불과했다. 윤 전 대통령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국민의힘 내 대권주자 6명과 친윤계 중진들은 조기 대선과 생존을 위한 합종연횡과 줄서기 전쟁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영남 자민련도 상정 못할 시나리오는 아닐 것이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가 지난 4일 재판관 8명 전원의 의견 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을 파면했다.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비상계엄 선포 이후 123일 만에 대통령직서 물러나게 됐다. 헌법 제68조 제2항은 대통령의 궐위·사망·자격 상실 상황서 60일 이내에 선거를 진행하도록 규정했다. 따라서 차기 대선은 늦어도 오는 6월3일 안에 진행돼야 한다. 비상계엄 123일 만에… 각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미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 파면을 공식 반대했던 국민의힘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까지 거론된 국민의힘의 대권주자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오세훈 서울시장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이다. 이 중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주자는 김 장관이다. 김 장관은 올해 들어 차기 대선주자로 갑자기 주목받았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성난 민심이 윤석열 전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비참하게 무너진 권력을 뒤로한 채 이제 모든 시선은 조기 대선을 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급할 게 없다. 예열 중이던 대선 열차의 브레이크를 풀고 달리기만 하면 된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전원일치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헌정사상 두 번째로 파면된 대통령이다. 이야기만 무성했던 조기 대선 시나리오가 대통령 궐위에 따라 현실이 됐다. 숨 가쁜 60일 일정 보니…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대통령 파면 이후 대선은 60일 이내에 치러져야 하며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재의 탄핵 결정 선고 10일 이내에 대선일을 공지해야 한다. 이에 따라 대선일은 5월24일부터 6월3일 사이에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하게 된다. 2017년 3월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이 결정된 뒤 60일을 꽉 채운 5월9일에 조기 대선이 열렸다. 과거 사례로 미뤄볼 때 이번에도 마지막 날인 6월3일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기 대선을 치르기 위해 당마다 후보 경선을 치르고 선거운동 등의 시간을 고려하면 선거일을 최대한 늦추는 게 효과적이라는 해석이다. 60일간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이는 윤석열 전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주목받도록 했던 발언이다. 정권에 대한 수사로 대권주자에 오른 그는 권력을 잡은 후 자멸했다. <일요시사>는 윤 전 대통령이 걸어온 정치 인생에 대해 다시 돌아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 농단을 수사한 공로를 인정받아 검찰총장이 된 후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과의 대립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졌던 정치 새내기 윤석열 전 대통령이 몰락했다. 윤 전 대통령이 처음 정치적으로 관심을 받은 시기는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13년 윤 전 대통령은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장으로 부임한 직후 국가정보원 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맡게 된다. 여주지청장 존재 급부상 당시 검찰 수뇌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국정원 직원들을 체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사했다. 이로 인해 검찰 수뇌부를 비롯해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검찰 내부 보고체계를 무시하고 국정원 직원에 대해 압수수색 및 체포를 강행했다는 이유로 결국 업무서 배제됐다. 며칠 뒤인 10월21일 국회 법사위원회의 서울고검 국정감사에 출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