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윤갑근 전 국민의힘 충북도당위원장이 6·3 지방선거 충북도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충북이 대한민국의 중심에 있지만 그동안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것은 제대로 된 전략과 추진력이 부족했고, 힘을 모으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중부권 특별자치도’ 구축을 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충북을 단순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국가 공간 전략의 중심축으로 재설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선언은 단순한 지방선거 공약을 넘어 최근 국가 공간 전략의 변화와 맞물린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특별법이 추진되고 있고, 이재명정부가 제시한 ‘5극3특’ 구상 속에서 충청권은 하나의 권역으로 묶여 있다. 형식적으로 충북은 충청권 안에 포함돼있다.
그러나 권역 통합이 진행될수록 충북의 독자적 존재감은 더 약해질 수 있다는 문제의식도 동시에 제기된다.
비슷한 사례는 전북특별자치도에서도 나타났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가 시작되자 전북은 호남권 내부에서 전략적 공백을 우려하며 ‘전북특별자치도’를 추진했고, 결국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특별자치도가 됐다. 권역 통합이 곧 지역의 존재감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 사례다.
우리나라에는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제주특별자치도라고 부른다. 사방이 수평선으로 막힌 공간이지만 그 고립은 오히려 브랜드가 됐다. 섬이라는 조건은 관광자원이 됐고 독립성은 특별자치라는 제도로 보상받았다.
물리적 단절은 전략 자산으로 전환됐다. 그래서 제주는 더 이상 고립이 아니라 선택된 공간이 됐다.
그렇다면 육지로 둘러싸인 또 하나의 ‘섬’은 어떤가. 바다가 아니라 산과 도로 막힌 공간, 대한민국 유일의 내륙도 충청북도다. 바닷길이 없으니 항만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방이 타 시도로 둘러싸여 있지만 중심성은 힘이 아니라 경계로 작동해 왔다. 제주가 바다섬이라면 충북은 육지섬이다.
문제는 이번 ‘5극3특’ 구상에서 충북이 빠졌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형식적으로는 충청권에 포함돼있다. 그러나 전국의 다른 도들이 각 권역의 중심축을 형성하는 것과 달리 충북은 ‘충청권’이라는 큰 틀 속에 흡수돼 독자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이름은 들어갔지만 역할은 흐릿하다. 이것이 더 본질적인 공백이다.
충북은 제주를 제외하면 인구가 가장 적은 도다. 인구 160만 가운데 청주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국회의원 수 역시 최소 축에 속하다 보니, 정치적 발언권은 구조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작은 규모는 전략 집중의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권역 통합 논리 속에서는 오히려 존재감이 희미해진다.
충북은 반도국인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바다와 접하지 않은 도다. 항만이 없고 해상 물류 기반 자체도 없다. 경부선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지만 광역시는 배출하지 못했다. 경부 축을 공유하면서도 상징적 거점 도시를 갖지 못한 유일한 도다. 구조적으로 ‘지나는 공간’이 돼버린 셈이다.
충청권을 보면 대전과 세종은 행정·연구 중심이고 충남은 북부 산업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충북은 무엇인가. ‘충청권의 일부’라는 설명은 가능하지만 ‘충북의 전략’은 무엇인지 선명하지 않다. 권역 통합은 있었지만 도 단위 전략 설계는 부족했다.
강원은 춘천·원주·강릉이 권역 거점으로 작동하고 전북은 전주·익산·군산이 하나의 도시권으로 이어졌다. 충남은 천안·아산·당진 등 북부 산업권이 형성됐다. 각 도는 권역 내 중심 역할을 분명히 갖고 있다. 그러나 충북은 청주 외에 뚜렷한 거점이 없다. 전략이 청주에 집중되고 나머지는 비어 있다.
괴산과 보은은 소멸 고위험 지역에 포함됐다. 진천과 증평은 고령사회, 다수 지역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고령화는 단순한 인구 감소가 아니라 산업·재정·복지 구조를 동시에 압박한다. 작은 도일수록 충격은 더 빠르게 온다. 권역 흡수형 구조는 이 문제를 세밀하게 다루기 어렵다.
충북의 또 다른 특징은 ‘영향력의 경계’다. 서쪽은 대전·세종 생활권, 서북부는 수도권 영향권, 동북은 강원권, 동남은 경북과 연결된다. 도내 결속보다 도외 연계가 더 강한 지역도 적지 않다. 이것은 약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기회이기도 하다. 7개 시도와 접하는 유일한 교차 지점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묻는다. 5극3특이 권역 중심 전략이라면 권역 안의 ‘내륙 중추’는 어디인가. 충청권이 하나의 극이라면 그 안에서 충북의 독자 기능은 무엇인가. 지금 구조는 충청권 통합에는 기여하지만 충북의 전략적 정체성은 흐린 상태다. 빠진 것은 아니지만 드러나지 않는다.
충북을 살리는 길은 ‘흡수’를 ‘중추’로 바꾸는 것이다. 바다가 없다는 것은 항만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뜻이다. 대신 철도와 고속도로를 기반으로 전국 2시간 내 연결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항만 중심이 아니라 철도와 데이터 중심의 내륙 물류 허브 전략이다.
또 하나는 초연결 실험 지대다. 대전·세종과 행정·연구 협력, 경기와 산업 연계, 강원과 관광·에너지 협력, 경북과 농생명·바이오 협력. 충북을 경계가 아니라 ‘다중 연결 허브’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흡수된 공간이 아니라 연결의 중심축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청주 집중 구조도 전략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인구 과반이 한 도시에 몰려 있다는 것은 정책 실험 속도가 빠르다는 뜻이다. AI 행정, 스마트 농업, 바이오 헬스, 첨단 배터리 산업을 묶어 ‘내륙형 혁신특구’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작은 도이기에 가능한 집중 모델이다.
소멸 위험 지역은 은퇴자 도시와 고령친화 산업 실증지로 전환할 수 있다. 의료·요양·치유 관광을 결합한 내륙형 실버 메가존. 산과 호수, 조용한 환경은 부담이 아니라 자산이다. 초고령화를 가장 먼저 겪는 도가 미래 산업 모델을 먼저 만들 수도 있다.
충북은 땅도 작고, 정치적 힘도 크지 않다. 그러나 작다는 것은 빠르게 설계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중심이 비어 있다는 것은 새로 채울 수 있다는 의미다. 문제는 빠졌느냐가 아니라 역할이 보이지 않느냐다.
이재명정부의 5극3특이 완성형이 아니라면 이제 권역 내부 전략을 세밀하게 재설계해야 한다. 충청권 안에서 충북의 독자 기능을 명확히 해 5극4특으로 가야 한다. ‘흡수된 도’가 아니라 ‘내륙 중추권’으로 재정의하는 것, 그것이 진짜 균형발전이다.
바다섬은 이미 특별해졌다. 이제 육지섬을 전략섬으로 만들 차례다. 충청권에 포함됐다는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전략이 보이지 않으면 존재감도 약해진다. 충북을 권역의 주변이 아니라 중심의 연결축으로 설계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 공간 구조를 입체로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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