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중국통’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의 APEC 총평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에 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APEC 정상회의가 마무리됐다. 의장국을 맡은 한국은 대형 외교 이벤트를 무난하게 치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는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과 만나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의 외교 전쟁 무대가 된 경주 APEC 정상회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양일간 경북 경주 등에서 열린 아시아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났다. APEC은 무역과 투자 등에 대해 정부 간 논의하는 지역경제협력체로 1989년에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아 외교무대를 진두지휘했다.

경주에 쏠린
세계인의 눈

이번 APEC 정상회의의 관심사는 단연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패권국인 미국과 그 뒤를 바짝 쫓는 중국 정상 간의 만남이 성사될지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모였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APEC 참석과 정상회의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시작된 무역 전쟁의 연장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이 결정되면서 관세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과 중국은 한쪽이 관세를 부과하면 그에 더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양국이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가 수백~수천%에 이르기도 했다.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희토류를 무기로 미국을 압박했다. 희토류는 희귀 광물로 반도체 제작 등에 사용된다. 지난 9월9일 중국 상무부가 역외로 나가는 희토류의 수출을 통제하면서 미국과의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AI를 앞세운 정보 전쟁의 시대인 만큼 희토류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당장 미국은 관세 부과로 응수했다.

이번 APEC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졌다. 지난달 30일 김해공항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난 건 6년 만이다. 이날 회담에는 양안(대만-중국) 문제 등 민감한 이슈 대신 무역과 경제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공군기지 의전실인 나래마루에서 만나 약 100분간 회담 후 ‘휴전, 확전 자제’ 수준의 합의를 이뤄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시행 중인 합성 마약 펜타닐 관련 징벌적 세를 기존 20%에서 10%로 낮추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부분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온 것이다.

6년 만에 트럼프-시진핑 만나
희토류·관세 한발 물러섰나

지난달 30일 서울 금천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미국과 중국 모두 APEC 정상회의를 무대로 부담이 덜한 선택을 했다”고 분석했다. 양국이 따로 정상회담을 진행하려 했다면 의전이나 장소, 의제 등을 두고 오래도록 논의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데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그런 부분이 단숨에 정리됐다는 설명이다.

윤 회장은 “관세 협상을 하는 방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주의보다는 양자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국 정상과 1대 1로 만나 이른바 ‘거래의 기술’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식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요 이유는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역시 APEC 다음 의장국으로서 한국방문이 예정돼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했을 때 나름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각국 정상이 공항 의전실에서 만나 회담을 진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미·중 정상회담은 김해공항 의전실에서 열렸다. 한국을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시 주석이 상호 가장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였기에 그곳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정상회담에 많은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두 나라가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우리 근대사를 보면 패권국이 독주 체제로 갈 때보다 경쟁국이 존재할 때 더 발전했다. 일례로 미국과 러시아가 패권국을 놓고 경쟁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러시아가 몰락한 뒤 미국이 패권국으로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으나 9·11 테러가 일어나는 등 반작용이 나타난 것도 그 시기”라고 말했다.

고래 싸움
새우 등은?

이어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면서 세계는 G1과 G2라는 경쟁 체제를 보게 됐다. 패권국의 지위를 지키려는 나라(미국)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나라(중국) 간의 건전한 경쟁은 결국 세계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쟁은 작게는 국가 발전에, 크게는 인류 발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중 정상회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은 ‘영원한 우방’인 미국과 ‘결코 멀어져서는 안 될’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교 스탠스가 명확한 미국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는 정권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윤 회장은 시 주석의 방한 시기에 주목했다. 시 주석은 2014년 박근혜정부 때 한국을 찾은 이후 11년 동안 걸음을 하지 않았다. 윤 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때는 박근혜정부 시기다. 시 주석의 방문으로 전략적 협력 동반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중 사이가 격상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시 주석이 서울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시 주석은 ‘금 100냥으로 집을 사고 금 1000냥으로 이웃을 산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해 정말 좋은 이웃은 금으로도 바꾸지 않는다며 중국인들이 신라 왕자 김교각을 존경한다고 하는 등 한국 친화적인 연설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문재인정부, 윤석열정부를 거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만한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봤다. 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건 양측 모두 굵직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상태인데, 그 논의가 이뤄지기엔 (그 당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미 회담
진전 있어

윤 회장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확한 외교 스탠스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보 정권일 때와 보수 정권일 때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는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도 맞지만 정치, 외교 부분에서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인 만큼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 주석의 방한 의미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짚었다.

윤 회장은 “시 주석의 방한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빨간불이 켜져 있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앞에서 양국의 경제협력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내수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과 한국 기업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양국 간 ‘윈-윈’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 회장은 ‘미국은 옛 친구, 중국은 새 친구’라는 개념을 꺼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시기에는 중국 입장에서 미국에 기울어진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 대사들이 곤란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은 21세기형 선진 한국에 맞는 외교 스탠스로 대중 관계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는 1945년 해방 이후 정치, 사회, 군사,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다. 중국은 1992년에야 수교를 맺은 한국의 새 친구다. 새 친구가 생긴다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고, 옛 친구가 있다고 새 친구를 사귀지 않는 게 아니지 않나. 옛 친구(미국)에 대한 예의, 새 친구(중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년 만에 의장국으로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윤 회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일을 거론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언론에 보도된 정도의 내용만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윤 회장은 “한국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는데 중국에는 기사에 나온 내용 정도만을 알린 점 등은 대중 외교의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한다”며 “그것이 외교의 본질”이라고 했다.

윤 회장은 “옛 친구인 미국에 대한 예의와 함께 새 친구인 중국에 대한 배려를 갖춘다면 피할 수 없는 미중 양국의 패권 경쟁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증진은 물론, 불확실성의 시대에 시시때때로 바뀌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양국의 우의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 외교, 문화 속에서도 협력의 길을 찾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서면을 통해 APEC 정상회의에 대한 총평을 부탁했다.

윤 회장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진행된 첫 대형 외교 이벤트를 무난하게 치렀다는 설명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전,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성과 등을 높게 봤다.

윤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게 굉장한 관심사였고, 한국 정부로서는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2박3일을 보냈는데 한국에서는 숙박도 하지 않고 잠깐 들렀다 가는 수준으로 방한했다면 외교적으로 실패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잘 정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관세 협상이 일정 수준 정도로 타결됐고 무엇보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미국과 논의가 이뤄진 점은 아주 높은 현실적 성과라고 볼 만하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방폐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군비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등 여러 가지로 한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한국군의 ‘숙원’이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추진한 이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미 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며 “그것에 기반해 나는 한국이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윤 회장은 “APEC 정상회의는 정상이 모여서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 정상끼리 얼굴을 맞대고 관계의 물꼬를 트거나 돈독하게 만드는 자리다. 한국은 이번 APEC을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과 연달아 회담을 진행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의 무대도 제공했다. 이제 이 관계를 건전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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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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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