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람 잡는’ 부모들 진상 백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8.07 11:27:33
  • 호수 14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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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갑질 성지된 맘카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내 아이 예쁘지 않고 귀하지 않은 부모는 없겠지만, 부모의 갑질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은 학부모 갑질로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소아과나 어린이집은 맘카페 갑질로 폐업 사태마저 발생한다.

한국은 저출생·고령화가 심각하다. 지난해 한국 합계출산율(가임기 15~49세 여성이 낳을 거라고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0.78명으로 역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OECD 회원국 평균의 절반 수준인 출산율이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만성적인 저출생에 시달리는 이웃 나라 일본도 합계출산율이 1.26명이라는 점에서 한국 저출생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내 아이만
소중하다”

통계청은 향후 출산율이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국회예산정책처(NABO)는 2021년 3월 공표한 ‘내국인 인구 시범 추계: 2020~2040년’서 출산율이 2020년 0.87명서 2025년 0.75명, 2030년 0.73명으로 지속 하락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민정서도 이에 한몫한다. 한국 국민 절반은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다. 결혼·출산 적령기인 30대도 결혼 후 자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54.7%에 그쳤다. 특히 10~20대의 경우 과반수가 결혼 후에도 자녀를 낳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가 있는 가정은 자녀 양육을 위해 전심을 다 하다 보니 이에 따른 부작용도 생긴다. 이를 겪는 것은 주로 영·유아들이 이용하는 교육·의료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이야기다. 


‘빅5’라고 불리는 서울의 대형 병원들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에 실패했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미달 현상이 이어지면서 소아 진료 공백 대란 현실화가 코앞으로 도래한 셈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마감한 ‘2023년도 하반기 상급년차 레지던트 모집’ 결과,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의 2~4년 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인원은 0명이었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은 2년 차 10명, 3년 차 10명, 4년 차 3명 등 전국 8개 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 총 23명을 모집했지만 지원자는 0명이었다. 세브란스병원 역시 2년 차 8명, 3년 차 11명 등 총 19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0명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서울아산병원도 각각 6명과 3명을 모집했으나 지원자는 전무했다. 서울대병원은 올 하반기 소아청소년과 상급년차 레지던트를 모집하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2023년 상반기 전공의 1년 차 모집서도 빅5 병원을 비롯한 주요 대학병원서 전공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며, 지원율은 역대 최저인 16%대로 떨어졌다. 이 같은 전공의 지원 감소는 결국 정상적인 진료를 어렵게 만들 수밖에 없다. 

소아청소년과의 인기가 왜 이렇게 떨어진 것일까? 일각에선 소아청소년과가 겪고 있는 악성 민원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맘카페 갑질’에 힘들어하는 경우는 많다. 한 병원 원장은 폐업을 선언하기도 했다.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보호자 민원이 과할 정도로 빈번하게 일어난다. 일선 현장의 의사들 사이에선 “안 그래도 의사가 부족한데 더 줄어들 것”이라고 예견하기도 했다.


지난달 31일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충남 홍성의 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맘카페 회원의 갑질에 시달려 소아청소년과를 폐업하고 성인 진료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병원에 공지문을 붙였다.

“보호자 악성 허위 민원으로 폐과”
“소청과 문 닫고 성인진료병원으로”

9세 초진인 환아가 보호자 연락 및 대동 없이 내원하자, 병원에서는 14세 미만은 보호자와 동반해야 한다는 내부 방침에 따라 보호자와 함께 오라며 아이를 돌려보냈는데, 맘카페 회원인 아이 엄마가 보건소에 진료 거부라며 악성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다.

해당 아이의 엄마는 39도의 열이 나는 아이를 진료도 보지 않고 집으로 돌려보냈고 5분 이내로 올 수 있느냐고 했는데 민원을 넣고 싶다는 글을 맘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엄마의 주장 중 일부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5분이 아닌 30분 정도의 시간을 줄 테니 보호자와 함께 오라고 했다는 게 병원 측의 설명이다. 이후 해당 엄마는 맘카페에 게시했던 글을 삭제하고 민원을 취하했다. 

광주에서는 지난 6일, 악성 민원으로 폐과를 선언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이 있다. 이 의원은 “박모 보호자의 악성 허위 민원으로 지난 5일로 폐과한다. 만성 통증과 내과 관련 질환을 치료하는 의사로 살아가겠다”고 공지했다.

대학병원 의사도 민원에 시달린다. 한 국공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불친절하다는 등의 이유로 정보공개를 청구하고 민원을 제기해 힘들게 하는 부모가 있다. 돈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생각해 일하고 있지만 이런 민원이 있을 때는 회의감이 든다”고 털어놨다.

임현택 소아과의사회 회장은 “맘카페나 네이버 리뷰란에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대상으로 한 악성 댓글이 많다. 이런 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힘들어한다. 이런 일로 망하는 병원도 있고 그러면 몇 억원씩 손해 보고 정신적으로 힘들다. 한 의사는 악성 민원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이 아픈 걸 낫게 해주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 네이버 리뷰는 없애고 맘카페에 올라온 악성 글을 그대로 게시되게 놔두는 운영자에 대해서는 페널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소아청소년과 대학 A 교수는 출산율과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부족한 것은 상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고발합니다”
합의금 강요

A 교수는 “출산율이 낮아 의사들이 소아청소년과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부모들은 아이가 점심을 평소보다 덜 먹거나, 트림을 평소보다 많이 해도 병원에 데려온다. 이마에 물린 모기 자국 때문에 응급실도 온다”며 “절대적인 출생아 수는 적지만 미숙아, 선천성 질환, 만성 질환자는 급증해서 환자군의 크기와 필요한 진료 양의 규모는 적지 않다”고 밝혔다. 


즉, 출산율이 낮다고 해서 진료를 원하는 환자 수가 적지 않다는 것.

이어 “소아 인구가 줄어서 소아청소년과가 비전 없다는 말은 15년 전부터 나왔지만, 마니아 층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문제가 되는 이유가 뭘까? 소아청소년과 의사를 하면서 보호자한테 폭행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그러나 폭언과 무례함은 무엇을 상상해도 그 이상”이라고 소청과의 현실을 지적했다.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환자 보호자에게 폭행과도 같은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며, A 교수는 이런 상황 때문에 소아청소년과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A 교수는 “부모에게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가해자, 사기꾼, 돌팔이, 저임금 노동자 정도의 포지션인가 생각이 들 정도다. 아무리 무례한 행동을 해도 ‘부모 마음에 걱정이 돼서’라는 한 마디만 붙이면 온갖 무례, 갑질, 폭언, 폭행이 용인된다”며 “보호자가 던진 약봉지나 처방전에 맞아봤고, 멱살잡이 직전까지 여러 번 가봤으며, 소리 지르며 협박당하는 일도 겪는다”고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폭언보다 심각한 상황도 있다. 이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만 겪는 일은 아니지만, 환자가 어리기 때문에 다른 과보다는 훨씬 자주 겪는 일이다. 게다가 의사는 정상적으로 진료 행위를 했지만 형사소송에 걸리는 일도 많다. 

A 교수는 “고의적 위해가 아닌 일반적인 진료 행위의 결과에 의사에게 형사 재판을 거는 나라는 전 세계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동료, 선배, 아무것도 모르는 전공의까지 형사소송에 휘말리고 하루아침에 감옥에 간다. 이런 상황이니 소아청소년과를 기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씁쓸해했다.


일상적인
폭언 폭설

어린이집 교사가 겪는 부모 갑질도 이에 못지 않다. 깁스한 아이가 혼자 넘어진 것을 두고 학부모가 보육교사 잘못이라고 얼굴에 물을 뿌리고 뺨을 때리거나, 아이가 잘못 말한 내용을 맘카페에 작성해서 어린이집이 폐업한 경우도 있다.

임신 중이었던 10년 차 어린이집 보육교사 B(32)씨는 지난 4월 학부모로부터 얼굴에 물을 맞으면서 “무릎 꿇으라고. 이 X아, 서서 하는 사과는 안 받아. 무릎 안 꿇으면 경찰 부를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원생들을 데리고 야외 활동 지도를 하던 중 다른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고 있었다. 이때 양쪽 팔에 통깁스를 한 아이가 혼자 넘어져 얼굴을 다쳤다. 다음 날 아이의 엄마와 외할머니는 어린이집으로 찾아와 얼굴에 물을 뿌리며 “아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냐”고 폭언을 퍼부었다.

원장과 동료 교사들이 나서서 CCTV를 보여주며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득해도 소용없었다. 이들의 괴롭힘은 석 달 동안이나 이어졌다. 감정이 격해진 날엔 교사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B씨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끝내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 B씨는 이 일로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유산했다.

지난해 7월 경기도 남양주서 보육교사로 일하던 C(30)씨는 2년 동안이나 악성 학부모에게 시달렸다. C씨가 거짓말을 한 아이에게 “자꾸 거짓말하면 엉덩이에 뿔난다”고 교육했던 것을 구실로 “(아이가) TV에 ‘엉덩이 탐정’(만화 캐릭터)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고 아동학대로 민원을 넣었다.

C씨는 “우리 아이에게 피해를 줬으니까 너도 자살하게 만들어 줄게”라는 폭언까지 들었다. 그는 2년간 해당 학부모에게 시달리다 어린이집을 떠났다. 어린이집은 학부모의 화를 달래기 위해 1200만원의 피해보상금을 제안했고, 이후로 해당 학부모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충분한 해명과 증거를 보여줘도 생떼를 부리며 사실상 합의금을 강요하는 사례도 있다. 돈을 목적으로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며 작정하는 학부모의 민원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 의정부 한 어린이집의 교사는 급식 메뉴에 나온 시래깃국을 아이가 부모에게 “점심으로 쓰레기국이 나왔다”고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학부모 민원에 시달렸다. 합의금을 요구하는 듯하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학부모는 지역사회 맘카페에 저격 글을 올렸다.

이 가짜 뉴스로 어린이집은 나쁜 어린이집 낙인이 찍혔고, 결국 원아 부족으로 폐업했다.

하지도 않은 아동학대 신고 받아
충분한 해명·증거 보여줘도 생떼

2018년 세종시에서 어린이집 보육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도 있었다. 보육교사가 원생을 아동학대했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어린이집 학부모는 보육교사가 자신의 아이를 아동 학대했다고 주장하며 “역겨워. 시집 가서 너 같은 새끼 낳아” “싸가지 없는, 개념 없는 것들” “웃는 것도 역겹다. 아주 XX같이 생겨가지고” 등의 폭언과 폭행을 했다.

보육교사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은 정황이 확인됐고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때리는 CCTV를 확인하자, 학부모는 “애들이 교사를 때릴 수도 있다. 애들이 뭘 안다고 그러냐? 아동학대는 없는 것 확인했으니 조심해달라”고 돌아갔다.

하지만 학부모는 경찰서로 가 보육교사를 향한 고소장을 제출하고 어린이집 주변 동네 주민들과 병원 관계자들에게 유언비어를 퍼트렸다. 법원과 전문가들은 CCTV 분석과 아동학대 기관의 의견을 들어보고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게 나타나는 증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아이가 보육교사를 많이 좋아하는 것 같다”며 아동학대는 없었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해당 학부모는 지속적으로 신고하고 민원을 넣었다. 해당 구청은 민원이 들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확인했는데, 이때마다 보육교사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일반 보습학원도 마찬가지다. 학원강사 13년 차 D씨는 “원생의 나이가 어릴수록 학부모 진상이 심해진다. 고등학교 3학년이 자녀를 둔 진상 학부모는 없다. 유명 종합병원 근처 밀집 지역서 학원을 한 적이 있는데 부모가 대부분 의사, 간호사였다”며 “학생이 학원을 1년 다녔는데 성적이 안 좋다고 1년 치 학원비를 환불해달라고 한 적도 있다. 환불이 불가능하다고 하니 ‘맘카페에 글을 올리겠다, 사기죄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가출한 학부모는 강사한테 아이를 찾지 않는다고 신고하겠다고 하고, 학원비가 밀리면 연락두절되거나 도망치기도 한다. 무단결석한 학생에게 보충수업을 잡아달라고 하는 학부모는 계속 있다. 코로나19가 심해서 학원 영업정지 기간일 때는 당연하다는 듯이 강사가 집에 와서 과외해달라고 한 학부모도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아이들이 좋아서 학원 강사 일을 시작했는데, 초반엔 진상 학부모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 오히려 학원에 혼자 상담받으러 오는 애들이 공부도 잘 한다. 학부모가 애들을 놔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원 많은
학원에선…

모든 학부모가 갑질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심스러워하는 학부모들이 많다. 갑질하는 학부모를 많이 본 또 다른 학부모는 “갑질하는 학부모가 정말 많다. 소아과,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등 아이들이 다니는 곳에는 모두 있다. 아이를 보다 보면 엄마들이 예민해져서 더 그런 것 같다. 특히 지역 맘카페서 갑질하는 것은 너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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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