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합의금 시달리는 교사 사연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3.07.28 16:33:38
  • 호수 1438호
  • 댓글 4개

선생님에 거짓말 탐지기 들이댄 이유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이초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아요. 자살 시도하고 이틀 만에 깨어났어요.”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함명규씨의 고백이다. 졸지에 아동학대 교사로 몰린 그는 충격에 빠져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초등학생 제자의 폭력 행위를 제지한 것이 화근이었다. 신고가 접수된 후부터 그는 이미 피의자였다. 

지난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가 교내서 숨졌다. 타살 정황이 없어 극단적 선택으로 추정됐다. 원인을 놓고 학부모의 갑질 등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관련 학부모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교사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이들은 “서이초등학교 사건이 남 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비슷한 일을 겪은 함명규 교사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새내기 교사가 아닌 저처럼 늙은 교사가 죽었어야 했다”며 “억울한 교사들이 합심해 교권 회복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무고함을 증명할 기회는 ‘거짓말 탐지기’가 유일했다. ‘내 아이만 소중하다’는 이기심을 버리고 집단지성을 통해 갈등을 극복해야 할 시기다.

“죽어야 
끝난다”

함 교사는 지난해 경기도 파주시 한 초등학교서 2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해 5월20일 자신의 제자 A군이 4학년 B군을 놀이터서 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관계를 묻자 A군은 ‘형들이 모함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B군의 담임은 물론, 교감까지 진상 규명에 나섰다. 경찰 입회하에 양측 부모는 CCTV 확인 후 해당 사실을 인정했다.

그때까지도 A군을 자식처럼 여겼던 함 교사는 학교폭력위원회(학폭위)가 가혹하다고 생각했다. 법령에만 맞춰진 학폭위는 교사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어린 나이를 감안해 교사의 지도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함 교사는 B군 부모에게 학폭위 구성만큼은 참아달라고 애원했다.


자신을 탓하며 거듭 사과했다. 돌이켜보면 가장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B군의 부모는 재발 방지와 사과만을 요청했다. 함 교사의 진심이 통한 건 이때가 마지막이었다. 

함 교사는 A군에게 사과 편지를 작성하게 했다. 당사자 간의 손편지를 통해 화해를 유도한 것이다. A군은 3일 동안 사과 편지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참다못한 함 교사는 A군에게 교실 뒤에서 편지를 쓰게 했다. 당시 A군은 스스로 무릎을 꿇은 채 편지를 썼다.

무릎을 왜 꿇냐고 묻자 A군은 “잘못했으니 무릎 꿇어야 한다”고 답했다. 가학적 태도를 미뤄보아 학대가 의심됐지만 넘어갔다. 

마지못해 A군이 쓴 편지에는 “4학년 형(B군)이 놀려서 그랬다. 앞으로 놀리지 말라”는 내용이 담겼다. 5개월 후 A군과 부모의 태도는 돌변했다. 이들은 함 교사가 A군을 훈계하면서 목을 졸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담임 교체를 요구했지만, 목 조른 사실이 없어 이뤄지지 않았다.

급기야 국민신문고에 함 교사가 아동학대 교사라는 글이 올라왔다. 장학사까지 나서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다. 아동학대 교사로 의심받으면서 A군을 보호 조치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분리조치된 함 교사는 병가를 냈다.

아동학대범으로 몰려 경찰 출동
‘누가 거짓말 하나’ 극단적 선택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A군 부모는 “아이에게 사과 편지를 쓰게 했고, 수업서 배제했다”며 함 교사를 경찰에 신고했다. A군을 무릎 꿇게 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아동학대범 피의자로 확정된 순간이었다. A군이 스스로 무릎 꿇는 모습을 본 동급생 C군은 함 교사가 시킨 것이 아니라고 증언했다.


조사 과정서 경찰은 “5개월 전 사건이고, 초등학생이 한 말은 효력이 없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A군의 일방적인 주장과 달리 함 교사의 유리한 증언들은 묵인됐다. 지난해 10월 함 교사는 피의자 신분으로 1차 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경기북부경찰청은 “A군을 무릎 꿇린 적 없다”는 주장을 믿지 않았다. 경찰은 함 교사에게 ‘거짓말탐지기’로 판단하자고 했다. 아동학대범으로 몰린 함 교사의 존엄성마저 무너졌다. 지난해 11월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 함 교사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함 교사는 재차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거절됐다. 거짓말탐지기는 피검자의 생리적 변화를 기계로 측정·기록한 후, 진술의 진위 여부를 추론하는 심리분석 기법이다. 그만큼 오차범위도 넓다.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아동보호재판서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무고를 증명할 수 없다는 박탈감이 몰려왔다. 함 교사는 유서를 작성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틀 만에 깨어난 함 교사는 12월 경기북부청서 2차 조사를 통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됐다. 파주교육지원청은 함 교사를 두고 경징계 위원회를 열었다.

혐의가 입증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아동학대 교사로 간주했다. 다행히 그간의 공로와 적극적인 해명으로 경고에 그쳤다. 함 교사의 죄목은 정서학대 및 수업 배제였다. 함 교사는 상담 기록과 녹음, 사진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돈 노리고
고의 신고

하지만, 아동학대 교사를 향한 시선은 바뀌지 않았다. 아동보호재판을 앞둔 함 교사는 당당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 ‘아동학대 신고 피해 교사를 위한 모임’ 카페를 운영 중이다. 

함 교사는 <일요시사>와 인터뷰서 “제 실명을 거론해달라. 이 기회를 통해 무고한 교사들의 억울함을 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겨우 살아났지만, 여전히 깊게 잠들지 못한다.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일부 교사들은 함 교사 사건을 보며 공감했다. 이들은 “무죄를 입증하는 건 증거가 있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경기도 고양시의 한 교사는 아동학대 피의자로 몰려 학부모에게 합의금 1000만원을 줬다. 

문제는 합의금을 주면 혐의를 인정한 꼴이 된다는 것이다. ‘아동학대 교사’라는 꼬리표도 따라붙는다. 변호사를 선임한 교사는 혐의를 부인하는 가해자로 인식돼 재판서 불리하다. 아동학대 신고는 여러 모로 교사에게 불리하다. 이에 따라 합의금을 노리고 무작정 신고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아동학대 교사라는 오명과 싸워 이긴 교사도 있다. 지난해 4월 광주 한 초등학교의 윤수연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다. 

윤 교사는 학생 간 싸움을 멈추고자, 책상을 고의로 넘어뜨리고 성의 없는 반성문을 찢었다. 경찰은 이를 정서적 학대로 보고 불구속 송치했다. 이에 검찰은 공개심의위원회 판단까지 거쳐 윤 교사를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다.


학부모는 이에 항고장까지 냈다. 광주고검은 “학부모가 낸 추가 증거를 검토해도 지검의 판단이 정당했다”며 ‘항고 기각’ 결정을 내렸다. 윤 교사를 상대로 학부모가 낸 3200만원 손해배상 민사소송도 기각됐다. 1년3개월 만에 아동학대 교사라는 낙인을 지울 수 있었다.

윤 교사는 “오랜 고생을 견디고 싸웠는데 서이초 교사 소식을 들으니 ‘내가 지금까지 한 게 뭐였나’라는 허탈함이 느껴져 힘들었다”고 말했다. 

잠재적
가해자

학부모로부터 민형사상 고소를 당했을 때 주위에선 적당히 합의하라고 윤 교사를 설득했다. 교권 붕괴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그는 끝까지 싸웠다. 더는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교단은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사례들로 넘쳤다. 교사가 학부모에 건네는 합의금으로 조용히 덮어졌다.

윤 교사는 뜯어고치기로 했다. 법정 다툼을 택한 윤 교사는 “고소당한 뒤, 아이들을 지도할 때면 계속 자기 검열을 하게 됐다”며 “‘괜히 또 그런 얘기를 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억울함은 풀렸지만, 여전히 악성 민원이 무섭다. 학생 생활지도도 자신이 없어 당분간 담임을 맡지 못할 것 같다고도 했다. 윤 교사가 누명을 벗기까지 주변에서 보낸 많은 지지가 있었다. 제자, 학부모, 동료 교사들이 그를 위해 1800건 이상 탄원서 제출과 연명에 나섰다.


6학년 제자들은 재판부와 검사에게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학부모와의 법정 공방서 교사는 불리한 입장이다. 

윤 교사는 지금도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동료 교사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윤 교사는 학부모들의 과도한 민원을 제한하자는 입장이다. 학부모의 민원 녹취 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교 운영진이 민원을 접수하고 처리하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학생들의 일탈, 폭력 행위까지 제지하는 건 교사에게 무리한 처사다. 학생과 교사 사이에 발생한 문제로 합의금을 제시하는 관행도 없어져야 한다. 대다수의 학교장들은 교사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학부모에 합의금 주고 사과하라”고 대답한다. 교사를 보호해야 할 학교장이 ‘학교 평판’에만 몰두한 결과다. 

형식적으로는 교권침해가 발생하면 교사들은 교권보호위원회(이하 교보위)를 개최해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교보위 개최 권한은 학교장에게 일임돼있다. 대부분 학교장은 교보위를 열지 않고 민원인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지시한다. 교사 월급에 합의금까지 내면 당장 생활고에 시달린다.

서이초 교사도 생전에 동료 교사들에게 악성 민원으로 힘들다며 하소연했다. 

가정폭력도 담임 책임이라고?
싸움 말리면 학대 놔두면 방임

황봄이 경기교사노조 교권보호국장은 “학교장 등 관리자들이 선제적으로 민원 내용을 듣고 먼저 중재해줘야 ‘서이초’ 같은 사건을 막을 수 있다”며 “학교장 등은 고연차라 악성 민원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교사들보다 높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단체 등도 학부모 악성 민원을 교장·교감이 적극 개입해 해결하도록 하는 ‘민원 창구 통일’ 등을 교육부에 요청했다. 지난 26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현장 교사들과의 간담회 직후 “악성 민원 접수 체제를 정비하고 교장·교감 등 관리자들도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발언했다.

지난 27일, 교사들은 교권침해의 원인은 잘못된 아동학대법에 있다고 주장했다. 정당한 지도를 해도, 학대 신고를 남발해 교육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열린 간담회서 이 장관은 “교권침해를 제때 막지 못했다”며 사과했다. 현장 교사들의 첫 번째 요구는 아동 학대법 개정이었다.

이날 10년 차 초등 교사는 “선생님, 학부모님들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어떠한 보완장치 같은 게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교사노조가 최근 나흘간 접수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 제보는 1848건이다. 서울 교사들은 교권침해는 제도적인 문제라며 폭넓은 의견 수렴을 요구했다.

학교폭력 발생 장소의 무한정성에 관한 문제도 제기됐다. 국회 국민동의청원까지 올라왔다. 청원인은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을 지적했다. 해당 법은 학교폭력을 ‘학교 내외서 학생을 대상으로 발생한 행위에 의한 피해’를 의미한다. 학교 ‘외’가 포함되면서 교사의 개입 권한이 모호해진다.

‘방학 중 아파트 놀이터서 싸운 사례’ ‘학원서 학생끼리 싸운 사례’ ‘집에서 부모와 학생이 싸운 사례’도 학폭 신고 대상이 된다. 

장소보다 ‘학생’이라는 주체 및 객체를 기준으로 뒀다. 교사가 볼 수 없는 상황서 일어난 사건도 책임을 져야 한다. 그간 학교 ‘외’는 제외해야 한다는 수많은 의견이 제기됐다. 청원인은 현재의 아동학대법은 신고당한 교사에게 ‘유죄 추정의 원칙’을 적용하는 악법으로 규정했다. 현행 아동학대법서의 학대 행위는 신체적 학대와 정서적 학대로 나뉜다. 

압박하고 
괴롭히고

정서적 학대에 관해 청원인은 “의미가 모호해 학부모가 교사를 압박하고 괴롭히는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적었다. 이는 명백한 교사에 대한 인권 침해다. 헌법에 보장된 무죄추정원칙을 무시하는 반헌법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해당 청원은 지난 23일, 5만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 접수 요건을 충족했다. 국회 교육위원회서 채택될 경우, 본회의에 부의돼 심의 의결을 거치게 된다.

한 교사는 <일요시사>와 한 인터뷰서 교권 붕괴에 관해 “싸움 말리면 학대, 놔두면 방임, 뛰지 말라고 말하면 학대, 뛰다 넘어져서 다치면 방임, 큰소리 내면 학대, 작은 소리로 말하면 방임”이라고 토로했다. 교사들이 권위를 되찾겠다는 게 아니다. 훈육도 중요하지만, 법에 오점이 있다는 의미다. 아동학대법 개정으로 교권회복이 이뤄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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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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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