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 떠난 여의도 야인들 현주소

내년 총선까지 무사 귀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당을 들어가고 나가는 것. 민주주의 정치판에서 숱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이번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당적 변동은 비교적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그 각각 유별난 서사가 담겨 있는 탓이다. 혹시 생환할까? 아니면 그대로 내쳐질까. 이제 총선은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무소속’ 김남국 의원이 국회로 출근했다. 더불어민주당 탈당을 선언하고 잠행에 들어간 지 17일 만이다. 앞서 가상화폐(코인) 자산 거액 투자 논란에 휩싸인 김 의원은 지난달 14일 SNS를 통해 탈당 의사를 밝혔다.

그는 게시글을 통해 “더 이상 당과 당원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 옳지 않다고 판단해 저는 오늘 사랑하는 민주당을 잠시 떠난다. 존경하는 당원동지 여러분께 너무나 송구하다”며 “중요한 시기에 당에 그 어떤 피해도 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저는 앞으로 무소속 의원으로서 부당한 정치공세에 끝까지 맞서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적었다.

민주당 탈당 
무소속 8인은?

이날 민주당 측은 김 의원이 탈당계를 제출함에 따라 탈당 절차가 완료됐다고 알렸다. 이에 따라 민주당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던 진상조사는 사실상 중단됐다. 이재명 대표가 긴급 지시했던 윤리감찰 역시 완전히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다.

이에 당 안팎에선 수세에 몰린 김 의원이 ‘꼼수 탈당’했다는 비판이 줄을 이었다. 특히 절묘한 탈당 시점 또한 입길에 올랐다. 김 의원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이태원 참사 현안 보고 등 의정활동 중에도 코인을 거래한 정황이 나온 직후 탈당을 선언하고 잠행에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원조’ 꼼수 탈당으로 지적받았던 민형배 의원이 복당한 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또 다른 꼼수 탈당 논란이 불거졌다. 민 의원은 지난해 4월20일 검수완박 국면서 법안을 강행 처리하기 위해 스스로 탈당계를 제출한 바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할 목적이었다. 

여야 간 이견이 큰 법안 논의를 위해 구성되는 해당 위원회는 여당 의원 3명, 야당 의원 3명으로 이뤄진다. 이때 야당 몫 중 한 자리는 비교섭단체에게 돌아간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은 이 한 자리를 양향자 의원으로 채우려 했다.

민주당 출신인 양 의원이 법안 통과에 찬성해주면, 과반을 구성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양 의원은 법안 반대 의사를 내비쳤고, 민 의원이 이 자리에 들어갈 요량으로 탈당을 감행한 것이었다. 결국 민주당과 민 의원의 계획대로 국민의힘의 안건조정위원회 방어선은 무너졌다.

지난 3월 헌법재판소는 다수 의견서 안건조정위원회 무력화가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고, 국회법에도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지난 4월26일 민 의원의 특별 복당을 요청했다. 

민 의원은 자신을 향한 비판을 ‘반정치적인 정치 부정행위’라고 일축했다. 김 의원의 탈당이 자신의 사례와 동일선상에 놓이자 “(김 의원 탈당은)나와 전혀 다르다”고 선을 긋기도 했다.

민 의원은 지난달 25일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저 같은 경우에 입법활동을 하다가(그랬던 것)”라며 “전혀 다르다. 제가 볼 때는 당에서 (김 의원)복당을 고민할 시기는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민 의원은 당헌 당규를 이유로 김 의원이 총선 전에 복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민형배 이어 김남국…‘꼼수 탈당’ 논란 
‘회전문’ 탈당→복당 반복에 비판 잇달아 


하지만 정작 김 의원에겐 추후 복당 의지가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탈당 선언문에서 “(당을)잠시 떠난다”는 표현을 두 차례 남겼다. 흘러가는 상황에 따라 언제든 복당을 시도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셈이다. 민주당 내부서도 친명(친 이재명)계를 중심으로 김 의원을 여전히 옹호하는 목소리가 남아있다.

민 의원의 적극적인 선 긋기에도 둘 사이 등호가 쉽게 떨어지지 않는 까닭은 이 같은 상황의 유사성에 있다.

다만 김 의원의 경우 민 의원에 비해 넘어야 할 산이 더 많이 남아있다. 우선 김 의원에 관한 국회 차원의 징계 절차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여야는 지난달 30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김 의원 징계 안건을 상정했다. 양측 간사는 너나 할 것 없이 ‘빠른 처리’를 강조했다.

국회가 김 의원에게 제명 등 중징계를 부여한다면 “무고함을 밝히고 돌아오겠다”던 김 의원의 복당 명분은 크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이외에도 김 의원은 당 자체 징계를 피해 탈당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민주당 당헌 당규에 따르면 ‘징계 절차가 진행되는 과정서 탈당한 경우’로 판단될 시 제명에 상응하는 제재가 가능하다. 복당은 향후 5년간 허용되지 않는다. 설령 순전한 ‘자진 탈당’으로 해석하더라도 탈당 시점으로부터 1년이 지나야 복당을 신청할 수 있다. 

의혹이 말끔하게 소명되거나, 당 지도부의 ‘예외적 결단’이 없다면 사실상 다음 총선 이전 복귀와 공천이 어려운 상황이다. 민주당 측이 김 의원 탈당 직후 “징계 절차 중 탈당으로 보기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본다”고 밝히긴 했지만, 비명(비 이재명)계 등 당내 비판 세력의 반발을 잠재우기엔 근거가 빈약하다는 평가다.

원조 꼼수 탈당의 ‘무사 생환기’와 또 다른 꼼수 탈당. 총선이 불과 열 달 앞으로 다가온 시점서 민주당 출신 ‘야인’들에게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최근 복당한 민 의원과 탈당한 김 의원 외에도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이 여럿 남아있다.

현재 원내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은 총 9명으로 ▲김남국 ▲김진표 ▲김홍걸 ▲박완주 ▲양정숙 ▲양향자 ▲윤관석 ▲윤미향 ▲이성만 의원이 있다. 이 중 김진표 국회의장을 제외한 나머지 8명은 각종 범죄나 부정 의혹에 휘말리면서 당적을 잃었다.

징계 피해
밖으로∼

비례대표 출신의 김홍걸 의원은 2020년 9월 부동산 축소 신고, 투기 논란을 이유로 출당됐다. 비례대표는 탈당 시 의원직을 잃는다. 이에 민주당이 여론을 달래는 동시에 김 의원의 의원직을 지켜주기 위해 ‘탈당 권유’ 대신 출당 조치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후 김 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인정돼 벌금 80만원을 선고받았다. 우여곡절 속에서도 의원직을 지킨 김 의원은 현재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해둔 상태다. 민 의원과 비슷한 시기에 복당 절차가 진행됐고, 현재 당무위원회 의결을 기다리고 있다.

의혹에 관한 사법절차가 종결된 만큼, 복당 절차에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던 셈이다.


반면 양향자 의원은 사실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게 정치권의 일반적인 평가다. 양 의원은 광주 서구 을 지역구서 민주당 소속으로 선거를 치러 당선됐다. 그러다 2021년 7월 지역구 사무실 직원의 성폭력 사건에 관해 당 윤리위원회가 징계 출당을 건의하자, 실제 출당이 이뤄지기 전에 자진 탈당했다. 이후 복당을 신청했지만, 당규 원칙상 허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양 의원과 민주당이 완전히 척을 지게 된 건 검수완박 국면 때다. 양 의원이 법안 반대 의사를 밝힌 데 이어 기권 투표까지 감행한 것이다. 몇 주 뒤 양 의원은 자신의 SNS에 복당 신청을 철회하겠다며 “내가 입당했던 더불어민주당은 지금의 민주당이 아니다”고 일갈했다.

이후 한동안 오히려 여권과 보조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양 의원은 지난해 6월 국민의힘서 제안한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 위원장직을 수락했다. 이에 국민의힘 합류설도 돌았으나 실제 입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난해 말 민주당이 먼저 “양 의원이 신청한 복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양 의원이 복당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약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양 의원의 향후 거취는 안갯속이다. 

탈당 후에도
돌격대 활약

윤미향 의원은 2021년 6월22일 양이원영 의원과 함께 부동산 의혹으로 출당됐다. 당시 민주당은 국민권익위원회 전수조사 결과 관련 의혹이 있는 의원 12명에게 자진 탈당을 권고했는데, 비례대표인 이들은 의원직을 유지해주기 위해 출당 조치했다. 


양이 의원은 같은 해 10월 무혐의 처분을 받고 복당한 반면, 윤 의원은 아직 복당하지 못했다. 윤 의원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윤 의원은 1심서 15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올해 초 민주당 내부서 윤 의원을 복당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 검찰이 항소함에 따라 윤 의원 재판은 계속 진행 중이다. 

양정숙 의원은 당선인 신분인 2020년 4월29일 당시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던 더불어시민당서 제명됐다. 양 의원은 지난 총선에 출마하면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약 92억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제20대 총선에 비해 43억원가량 증가한 액수였다. 양 의원이 재산을 급격히 불려나가는 과정서 동생 명의를 도용해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에 민주당과 시민당은 양 의원을 선거관리위원회와 검찰 등에 고발했다. 양 의원은 1심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 벌금 300만원의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지만 2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민주당은 양 의원을 고발하기 이전에 “복당을 받아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치권에선 민주당이 양 의원을 직접 고발하는 것을 간접적 사퇴 요구로 해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 의원은 끝내 사퇴하지 않았고, 민주당은 무죄 선고 뒤에도 양 의원 복당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키지 않았다.

3선 중진인 박완주 의원은 지난해 5월 보좌진 성추행 의혹으로 제명됐다. 피해자를 입막음하고 2차 가해를 시도한 정황도 포착됐다. 박 의원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경찰은 지난해 말, 박 의원에게 성추행‧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적용해 검찰로 송치했다. 

이미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비위로 선거를 참패한 이력이 있는 민주당이 박 의원을 다시 품으려 할지는 미지수다. 실제로 박 의원의 성추행 의혹은 지난 지방선거서 민주당이 참패한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윤관석·이성만 의원은 최근 민주당이 홍역을 앓고 있는 돈봉투 사건에 발목을 잡혔다. 이들은 당의 부담을 최소화하겠다는 명분으로 자진 탈당했다. 이들은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송영길 전 대표의 당선을 도울 목적으로 돈봉투 살포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직도 바깥에…열 달 내 생환 가능성은?
대여투쟁 최전선 서지만…커지는 손절 확률

지난달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이들이 ‘다른 경쟁 캠프서 국회의원을 상대로 금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현역 의원들에게 돈봉투를 살포하기로 마음먹었다는 내용을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시했다.

이들의 복당과 공천은 사실상 수사·재판 결과에 달려 있다. 수사 향방의 첫 가늠자는 이들의 체포 동의안 통과 여부가 될 전망이다. 체포동의안은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됐으며, 오는 12일 본회의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이다.

거리낌 없는 탈당과 슬그머니 이뤄지는 복당의 반복. 민주당 안팎서 ‘당이 회전문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정치권에선 민주당과 그 의원들이 탈당을 정략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탈당 후에도 조만간 복귀할 것을 시사하는 일부 의원은 탈당 후 더 적극적으로 민주당을 위해 싸우기도 한다. 복당을 위한 명분을 쌓고자 하는 마음과, 당에 자신의 ‘과오’로 인한 정치적 부담보다 활약에 따른 득이 더 크다는 인상을 안겨주기 위한 강박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예컨대 민 의원은 야인 시절 일명 ‘김건희 특검법’ 통과를 요구하는 천막 농성 선봉에 섰던 바 있다. 현 정부를 “군사독재정권의 후예, 검사독재정권”이라고 맹폭하기도 했다. 검수완박 국면 이후에도 강성 발언과 활동으로 당 지도부·지지층 등에 꾸준히 존재감을 표출한 것이다.

민 의원이 이번에 ‘특별 복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탈당 후 1년간의 강성 행보로 자신의 ‘충성심’을 증명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문제는 이들의 절박함을 잘 알고 있는 당이 탈당자를 먼저 궂은 일에 동원하는 사례가 왕왕 포착된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서 국회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기 위해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을 수차례 활용했다.

박 의원은 지난해 12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서 방송관계법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하는 공을 세웠다. 당시 민주당은 해당 법안의 단독 통과를 추진하고 있었다.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원회를 활용해 지연 전술을 펴고자 했다.

하지만 박 의원이 야당 몫 중 한 자리를 꿰차면서 안건조정위원회 역시 과반수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민 의원이 검수완박 국면서 보여준 수법이 어김없이 올해도 재현된 셈이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강행 통과될 땐 윤미향 의원이 투입됐다. 이때도 국민의힘은 안건조정위 회부로 시간을 끌고자 했지만, 안건조정위에 윤 의원이 배치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법안에 취임 후 첫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을 사용했다. 

민주당은 입법부 내부의 저지 시도를 봉쇄함으로써, 대통령의 거부권 사용이라는 여권의 정치적 부담 증대를 이끌어냈다.

몇이나
살아남나

하지만 정치권엔 이들을 향한 회의적 시선이 가득하다. 몇 명이나 당으로 생환할 수 있을지, 또 다음 공천을 받아들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마침 이들 8명 중 박완주·윤관석 의원을 제외한 6명은 초선 의원들로 비례 의원도 섞여 있다. 당 입장에선 무리하면서까지 ‘흠결’이 있는 초선 의원을 품어줄 이유가 딱히 없다. 이들 중 상당수가 여느 초선 의원들처럼 ‘손절’당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더군다나 이들의 탈당·제명 사유는 부동산, 선거비리, 성추문 등의 의혹이다. 하나같이 민주당의 ‘모순’을 도드라지게 해 앞서 선거 참패를 야기한 전적이 있는 사유들이다. 선거가 접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커질수록, 이들의 복귀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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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