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몰락한 처럼회 막전막후

화려한 비상 끝 날개 없는 추락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날개 없는 추락’이다. 집권여당 시절 화려하게 비상했던 때가 까마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당 대표의 ‘호위무사’ 역할로 주목을 받았던 과거와는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모임으로 알려진 ‘처럼회’ 이야기다.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이하 처럼회)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내 초선 의원 모임으로 2020년 6월 만들어졌다. 처럼회엔 최강욱·김남국·장경태·민형배·김용민 의원 등이 속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공부모임 성격이 강했던 이들 모임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정국 당시 선봉에 나서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문재인정부
잘나가다가

최강욱 의원(당시 열린민주당 대표)은 “본받을 분들에겐 배우고 누구처럼 못된 짓은 하지 말자는 다짐도 있고 늘 근본을 생각하자는 뜻도 있다”고 처럼회의 명칭에 대해 말했다. 처럼회는 검찰 이슈서 특히 존재감을 드러냈다. 문재인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었던 검찰개혁에 발을 맞추면서 강성 민주당 지지층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처럼회 소속 의원 가운데 대다수는 친이(친 이재명)계로 분류된다. 문정부서 불거진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적극적으로 옹호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공격수를 자처하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당초 검수완박 정국 자체가 처럼회의 입법으로 시작됐다. 2020년 공소청법 제정안과 검찰청법 폐지안을 발의했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수사‧기소를 분리하고 검사의 직무 중 ‘범죄수사’를 삭제하는 내용이 골자다. 검찰 권한을 축소하는 수준을 넘어 없애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이후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개정해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검수완박 정국이 갈무리됐다. 그럼에도 처럼회의 검찰개혁 시도는 끝나지 않았다. 정권교체가 이뤄지자 윤석열정부를 향한 공격도 이어졌다. 소속 의원이 20여명 정도인 정치 모임에 170석 거대 야당이 휘둘리고 있다는 지적이 당내 안팎에서 불거졌다.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지난 17일 ‘이해충돌 방지법에 위반될 경우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내용의 국회법 일부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원은 “헌법 제53조제2항을 보면 대통령이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 재의를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고위공직자의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상황일 경우 국회의원은 국회법 제32조의5에 따라 이해충돌 우려가 있는 안건 등에 대한 회피 조항이 규정돼있다”고 설명했다. 

검찰개혁 주도 강성 모임
대다수 친이재명계 분류

그러면서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 이해충돌의 상황 속에서도 재의권에 대한 별도의 규정이 없어 제도 정비의 필요성이 시급하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대통령이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에 위반될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 대통령의 권력 남용을 방지한다는 취지다. 

김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공수처가 진실과 정의를 외면하고 부정한 목적으로 부당하게 사건을 처리하거나 인사권자가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불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하는 등 법 왜곡으로 법치주의를 훼손한 판·검사에 대해서도 수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공수처법 개정안의 근거로 판검사의 부당한 사건 처리와 불공정한 재판 진행을 ‘법 왜곡’으로 규정하고 이를 처벌한다는 형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개정안 발의에 처럼회 소속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코인 사태’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남국 의원도 공수처법 개정안 발의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국민의힘은 당장 반발했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거부권은 입법부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수단으로서 삼권분립의 가치가 반영된 것은 물론,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자신들이 ‘절대 선’ 이라도 되는 줄 아는 것인가”라고 꼬집었다. 

형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윤석열정부
역풍 맞아

유 수석대변인은 “불공정의 판단은 과연 누가 하는 것이며 이재명 대표에게 죄가 있다 판결하고 송영길 전 대표도 문제 있다는 수사 결과가 나오면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것이 뻔하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지금까지 자행한 ‘입법폭주’도 모자라 법 위에 군림한 채 ‘입법탈주’로 치달으며 법치의 근간을 흔들고 민주주의 근본마저 짓밟는 역사의 죄를 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처럼회가 강하게 나갈수록 그 반작용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민주당 내에서도 처럼회가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모임 해체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그 배경으로 처럼회 소속 의원의 ‘헛발질’이 꼽힌다. 처럼회 핵심 멤버로 꼽히는 의원들이 여러 논란에 휘말리면서 ‘손절’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남국 의원은 거액의 가상화폐(코인) 보유·투자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은 이미 개인적인 사안을 넘어 당 전체로 번지는 모양새다. 대선자금 관련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게이트 형태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총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에 치명적인 악재가 불거진 셈이다. 

지난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서 이른바 ‘김남국 방지법’으로 불리는 코인 관련 개정안도 만장일치로 처리됐다.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공직자의 재산 신고‧공개 대상에 가상자산을 포함하도록 하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 국회의원이 국회에 신고하는 ‘사적 이해관계 등록’ 대상에 가상자산도 포함하도록 한 국회법 개정안 등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부칙으로 국회의원의 가상자산 보유 현황 및 변동내역을 내달 말까지 국회윤리심사자문위에 등록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20~30대
지지율↓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은 20~30대 청년층 지지율에 직격탄을 날렸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지난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18세 이상 유권자 25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월3주차 정당지지도는 국민의힘 38.5%, 민주당 42.4%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전체 지지율서 국민의힘에 앞섰지만 20~30대서 크게 떨어진 결과를 받았다. 20대서 12.9%p(47.9%→35.0%), 30대서 8.5%p(47.8%→39.3%) 떨어진 것.

배철호 리얼미터 수석전문위원은 “직전 조사에 영향을 주지 않았던 ‘김남국 코인’ 이슈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결과”라고 평했다. 민주당의 지지율 하락은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졌다. 반사이익을 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상황서도 처럼회가 ‘김남국 감싸기’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처럼회 소속 양이원영 의원은 지난 19일 SBS 라디오서 “코인 투자를 하는 국민이 6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며 “코인 투자가 비도덕적이냐”고 반문했다. 김 의원의 코인 투자에 도덕적 문제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처럼회 소속 유정주 의원도 이날 자신의 SNS에 “불법과 투기는 그 무엇이든 근절돼야 한다”면서도 “그러나 일반화시키며 그 행위 자체를 범죄시하는 것, 이슈 따라 끝도 없는 삼만리가 되는 것도 지양해야 하지 않을지”라고 적었다. 처럼회의 김남국 의원 비호에 당내 안팎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일각에서는 처럼회가 김 의원의 코인 의혹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최강욱 의원의 도덕성 논란에 불을 지핀 ‘짤짤이’ 논란이 사실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을 뜻한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짤짤이 논란은 지난해 4월28일, 민주당 내 온라인 화상회의를 하던 중 김 의원이 화면에 보이지 않자 최 의원이 ‘지금 짤짤이 하는 것이냐’고 물었던 일을 말한다. 

‘무소불위’ 입법폭주 비판
코인 의혹 김남국 비호 중

당시 회의에 여성 보좌관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고 몇몇은 최 의원의 발언이 성적 행동을 뜻하는 ‘XXX’로 들렸다며 굉장히 부적절한 발언이자 성희롱이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의 발언은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악재로 불거졌다. 당시 박지현 공동비대위원장은 당윤리심판원에 해당 발언에 대한 조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윤리심판원은 최 의원에게 ‘당원권 정지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최 의원은 윤리심판원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재심을 청구해 현재 재심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해 8월25일 최 의원과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손 기자는 인터뷰 과정서 최 의원이 코인을 짤짤이로 표현했다는 내용을 언급했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두고 불거졌던 최 의원의 발언이 김 의원의 코인 사태와 연결되는 듯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처럼회의 자정 작용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처럼회 소속 장경태 의원 역시 2021년 8월, 김 의원의 코인 거래와 관련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발언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처럼회의 헛발질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 때는 말 그대로 ‘망신살’을 샀다. 당시 민주당은 최강욱‧김남국‧김용민‧이수진‧민형배 의원을 앞세워 한 장관을 공격했지만 역공에 망신만 당했다. 당시 김남국 의원은 한 장관의 조카가 이모(이씨 성의) 교수와 공저한 논문을 딸과 그 이모(어머니의 자매)가 공저한 것으로 착각해 “딸이 이모와 같이 논문을 쓰지 않았느냐”고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다그쳤다. 

최강욱 의원도 영리법인 ‘한국쓰리엠’이 한○○으로 표시돼있는 것을 한 장관의 딸 한모양으로 착각해 엉뚱한 공세를 펴기도 했다. 해당 내용이 담긴 유튜브 영상의 조회수가 급상승하면서 민주당에 대한 민심이반으로 이어졌다. 반면 한 장관의 인지도와 인기는 청문회를 기점으로 크게 올랐다. 

총선 전
악재될까

민주당 내부서도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처럼회 해체론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의혹이 불거지면서 거세지고 있다. 민주당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이 대표는 어디 있느냐”고 비판하면서 “폭력적 팬덤과 이제는 결별해야 한다. 김남국 의원을 비호하는 처럼회를 해체하고 처럼회를 떠받드는 극성 팬덤정치를 확실히 끊어내라”고 요구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처럼회 탈퇴 강성희
“의정활동에 도움 안 돼”

진보당 강성희 의원이 처럼회서 탈퇴했다.

강 의원은 지난 23일 자신의 SNS에 “최근 공정사회포럼(처럼회) 가입이 뜻하지 않은 논란을 불러와 의정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으로 탈퇴의 뜻을 대표님께 전했다”고 적었다.

처럼회는 민주당 내 모임이면서 국회 의원연구단체로 ‘국회 공정사회포럼’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돼있다.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구성원이 될 수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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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