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지지율과 이재명 딜레마

‘50% 키맨’ 드디어 만나나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아직도 만나지 않았다. 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이야기다. 마주쳐도 어색한 눈빛만 보낼 뿐이다. 지지율 하락 때는 이 대표에게 득이 될 만남이 불발됐다. 지금은 윤 대통령이 조금 더 유리한 위치다. 이제 두 인물이 정말로 만날 때가 된 듯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최고 지지율인 40%를 기록했다. 1년 동안 윤 대통령은 지지율을 많이 까먹었다. 인사 문제 등 각종 악재들로 인해 취임 3개월 만에 지지율이 30%대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지지율은 더 내려가 20%까지 주저앉았다. 대통령실의 측근 채용 의혹, 김건희 여사 논란, 강제동원, 양곡법·간호법 거부권 사용 등이 이유다. 

변하는
국정기조

그러나 초반부터 밀어붙인 외교의 영향과 북한을 향한 강한 태도로 안보를 강조하며 지지율 반등이 시작됐다. 최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연속적으로 30%후반대~40%대를 기록 중이다. 국정 지지율이 5주 연속 상승하면서 12주 만에 이뤄낸 결과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현재 흐름을 이어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큰 폭으로 하락했을 때 지지를 보내줬던 중도층의 이탈이 심했다. 대부분 대선 기간 지지를 보내준 이들이다. 중도층 이탈의 이유는 일본과의 외교 문제와 69시간 근로제 논란 때문이었다.

어느 한쪽을 지지하지 않는 무당층이 많은 2030의 이탈이 컸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은 국민의힘에게도 곧바로 영향이 갔다.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에게 뒤처지기 시작한 때다.

본격적으로 다시 지지율 상승이 이뤄진 시기는 연속적인 순방외교를 펼쳤을 때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마무리와 누리호 3차 발사 성공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정치권에선 민주노총의 불법집회 대응,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참석도 지지율이 상승한 이유로 보고 있다. 보수 진영 출신의 대통령으로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취임 직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호남의 호감도도 높았다. 대선 기간에도 지속적으로 호남에 공을 들였던 덕에 보수 대통령으로서는 가장 높은 표를 받았다. 점차 지지율이 상승하자, 윤 대통령도 자신감을 얻은 모양새다. ‘소통’을 강조해온 행보를 다시 펼칠 기세다. 얼마 전 SBS <동물농장> 출연에 이어 조만간 기자회견도 열 계획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취임 1주년을 맞았으나 별도의 기자회견을 갖지 않았다. 이번에 기자회견이 열리면 도어스테핑이 중단된 뒤, 약 반년 만에 공식적으로 자리가 마련되는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지지율 회복에 따른 자신감을 표시 차원으로 읽힌다. 다만 일각에서는 지지율 상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일시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외교의 영향도 있지만, 송영길 전 대표의 돈봉투 살포 및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 의혹 등 민주당의 악재에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지율을 대선 직후 수준인 50%선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윤석열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에도 힘을 받을 수 있다. 용산 개각설까지 언급되면서 내각 개편의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치권에서는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국정운영의 기조가 점차 변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같은 시점서 결국 윤 대통령이 이 대표를 만나야 지지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최장 기간 등 돌린 대통령과 야당 대표
당내서도 회담 필요하단 목소리 커져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TV 토론을 예고해 정치 대화의 복원 가능성을 열어뒀다. 협치와 신경전의 미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거대 양당의 대표가 만난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모아진다. 두 양당 대표는 모두 복잡한 당내 현안으로 인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책토론은 그런 면에서 서로에게 득이 될 수 있다. 

다만 서로의 처해 있는 위기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목적이 강해 보인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동반 상승 효과를 보지 못하면서 그동안 강조해왔던 당정일체가 무색해졌다. 민주당은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비롯해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법안들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처리 문제 등을 끌어가며 다시 핵심 지지층의 결집을 이끌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데도 불구하고 주도권을 내주며 이리저리 치이기 바쁘다. 반사이익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정부여당인 국민의힘 지지율이 올라야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더 오르기 마련이며,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곡선을 그려야만 국민의힘도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찾아오기도 수월하다. 

앞서 이 대표는 윤 대통령에게 지속적으로 만남을 제안했던 바 있다. 그는 윤 대통령 당선 직후 두 차례나 ‘영수회담’을 갖자고 제안했으나, 대통령실 측은 단독 회담을 거절하고 다자 회담을 요구했다. 결국 만남은 그렇게 미뤄졌고, 지난해 8월,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3분간 짧게 통화를 나눈 게 전부였다. 

이후로 1년이 지난 현재까지 두 인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에도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회담을 요청했으나 윤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으며 짧은 통화도 즉흥적으로 이뤄졌다. 이진복 정무수석이 이 대표에게 제안했고, 이 대표가 이에 대해 응하면서다. 

기약없이
깜짝 만남?

이 대표의 만남 요청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난해 9월에도 민생 회담을 제안했으나 역시 다자 회담을 고집했다. 

최근 있던 조계사 방문 때도 어색한 악수에 따른, 미묘한 기류만 흘렀고 별 다른 이야기는 오가지 않았다. 그 사이 국민의힘은 혼란을 거듭했고, 당은 지금도 여러 사안으로 몸살을 앓는 중이다. 지도부 내부의 잡음은 사라졌으나, 존재감이 크지 않다.


국정 초반에는 윤 대통령을 만나는 게 오히려 이 대표에게 유리했던 측면이 있었다. 대선서 패배했음에도 먼저 손을 내밀어 정국에 선제적이라는 여론을 형성할 수 있었고, 이 대표도 이를 잘 활용했다. 

이 대표는 줄곧 자신을 저격해왔던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나기 위해 대구를 찾았다. 앞서 김 대표는 홍 시장을 상임고문직서 해촉시킨 바 있다. 

이런 시점서 만난 이 대표와 홍 시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선 홍 시장에 대한 징계 목소리까지 나왔다. 홍 시장이 이 대표와 만남을 가졌던 속내는 결국 중도층을 붙잡으려는 심산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지지세가 약해지면서, 중도층이 증가하고 있는 현재 표면상으로 협치의 이미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사실상 시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상황이 달라진 만큼 윤 대통령에겐 이 대표를 지금 만나는 게 적기로 보인다. 오히려 당내서 협치해야 한다는 요구와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는 중이다. 만남 그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이 대표 역시 위기는 매한가지로 ‘이재명 회의론’까지 불거진 상황이다. 민주당도 다시 한번 친명(친 이재명)계와 비명(비 이재명)계가 나뉘어 각종 사안마다 내부서 혼란을 거듭 중이다. 


중도층
끌어오기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국민의힘을 앞서고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을 잡기 위해 민생, 청년에 방점을 찍고 보수당이 해왔던 행보와 다른 길을 걸으려 안간힘이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이 표면적으로라도 화해하는 모습을 연출해줘야 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중도층과 무당층이 충분히 움직일만한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일시적으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내는 세력은 충성도가 높은 세력이 아니다. 단순히 반사이익으로 인해 잠깐 지지를 보내는 정도다. 

야당 대표와 만나지 않은 최장기록을 쓴 인물이 바로 윤 대통령이다. 대통령과 야당은 협력과 견제의 관계다. 협상과 타협으로 국정을 이끌어가야 한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홍 시장(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이 약 340일 만에 첫 만남을 가졌던 기간보다 더 길다. 그 사이 여당 지도부와의 만남은 자주 있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비롯해 정진석 전 비대위원장, 김 대표, 당 지도부, 연찬회 등 상당히 많은 이를 만나왔다. 

윤 대통령이 원래 이 대표를 만날 생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선 인사 당시 “국민을 위한 정치, 민생을 살리고 국익을 우선하는 정치는 대통령과 여당만으로는 불가하다”며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밝혔다. 또 시정연설서도 “국정 주요 사안을 의회 지도자와 의원들과 긴밀하게 논의하겠다. 그래야 마땅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야당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된 탓은 민주당의 발목잡기에만 있는 것은 아닌 듯 보인다. 그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서로 간에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걸 꼽았다. 경찰국 예산을 받아주면 지역 상품권 예산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끝까지 문제삼았다는 게 주된 이유다. 

유리해진 상황에 먼저 손 내밀어야
총선 끝나고 물러난 다음에야 조우?

또 이 대표가 각종 혐의로 수사를 받는 중 검찰 수사에 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 일각에선 피의자와 만나는 격이라는 인식서 비롯됐다는 해석도 있다. 

지난 4월 임기를 마친 민주당 박홍근 전 원내대표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회동이 불발이 된 점에 대해 아쉽다고 밝히기도 했다. 최근 대통령실은 이진복 정무수석이 민주당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원내대표 회동을 제안하며 아예 이 대표를 패싱하기도 했다.

박 원내대표는 비명계로 분류되는 인사로 정치권서도 합리적인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친명 지도부가 탐탁지 않던 차에 대통령실이 박 원내대표에게 먼저 제안한 것. 그러나 박 원내대표는 당 대표가 먼저라며 일단 같은 편인 이 대표의 편을 들었다. 

여당은 소수고 야당은 다수다. 국민의힘이 주도권을 되찾고 윤 대통령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자신들의 지지율까지 포기하면서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나 한계가 있다. 결국 당내서도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러는 사이 이 대표는 다시 윤석열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정부 역할은 국민을 때려 잡는 게 아니라는 말로 윤정부의 강력한 대응을 작심 비판했다. 또 직전 윤 대통령 당선 1주년 토론회서도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방임을 넘어선 방치”라며 “1년간 사회의 모든 분야서 거대한 후퇴가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앞으로도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만남이 이뤄질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 대표가 대표직서 물러날 경우, 신속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주도권
되찾기

지금은 윤 대통령과 여당이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시스템이다. 여야 관계는 뒷전이고 우리 편만 챙기고 있는 셈이다. 이미 대통령은 민주당을, 민주당은 윤 대통령을 향해 비판 수위를 높혀가고만 있다. 대통령실도 공식 회동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인 탓에 회담은 여전히 기약이 없는 상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만남은 서로에게 득으로 앞으로도 이 대표가 제안할 수 있다. 그때는 윤 대통령도 만남을 가져야 한다”며 “야당과 협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윤 대통령의 지지율도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제언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기현-이재명 토론은 언제?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토론 날짜가 점차 윤곽을 잡아가는 모양새다.

양당은 토론을 위해 협상 테이블을 마련했다. 

TV토론 실무단인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과 구자근 당 대표 비서실장, 민주당 김민석 정책위의장과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이 만나 TV 토론 날짜·의제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협상을 추가로 이어간다.

구체적인 의제 등을 설정하기 위함이다.

아직까지 토론의 주제 등은 정확하게 정해진 게 없다.

정치권에 따르면 TV 토론은 6월 중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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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