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다” 특성화고 실습생 잔혹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0.25 14:49:35
  • 호수 13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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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니 위험한 일 당연?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특성화 고교생이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위험한 일자리를 저렴한 노동력으로 채우려는 기업과 취업률을 높이려는 학교 사이에서 10대의 희생양이 나온 셈이다.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실습생 홍모군이 요트업체 현장실습 과정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등을 제거하기 위해 잠수작업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악한 환경

사고 발생 후 해당 학교 및 실습업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규정과 지침을 다수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홍군이 재학했던 학교는 시민단체나 학부모 등 외부위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현장실습 운영위원회에 학교 구성원과 학교전담 노무사만 포함했다.

또 실습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해야 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단독으로 개발했다. 실습업체와 공유하지 않은 셈이다. 이외에도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공란이 있는 등 현장실습 계약을 부실하게 체결한 정황, 학생의 실습일지도 작성되지 않았다. 

실습업체도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위반사항들로는 ▲잠수 관련 자격·면허·경험이 없는 실습생을 대상으로 잠수작업 지시 ▲안전·보건 교육 미실시 ▲정해진 실습 시간을 지키지 않은 점 등이었다.


현장실습에 나선 학생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는 10년 전부터 일어났다. 실습생을 교육 대상이 아닌 ‘값싼 노동자’로 여겨온 정부와 기업, 학교의 행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현장실습생 A군은 작업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자동차학과 3학년이었던 A군은 10월부터 12월까지 약 2개월간 공장 도장라인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A군은 평일 10시간씩 근무하고, 토요일에는 8시간 특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라인의 노동자들은 주당 최장 70시간 이상 근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A군은 “머리가 아프다”며 동료와 병원에 가려고 기숙사를 나서다 경비실 앞에서 쓰러졌다. 뇌출혈 증세를 보인 A군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실습 학생들 사고 빈번
안전망 없는 미성년 노동자

2014년 1월엔 한 실습생이 기숙사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졸업 3개월 전부터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이었던 B군은 일이 익숙지 않다 보니 동료 근로자들에게 지적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후 B군은 “너무 무섭다. 제정신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기고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해 2월 오후 10시경 울산 북구 농소동 모듈화 산업단지 내 자동차 협력업체 금영 ETS 공장에선 전날 내렸던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공장 안에서 일하던 실습생 C군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실습생이 야간근무 중 사고로 숨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업체가 야간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폭설로 인해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작업을 중단했는데도 하청업체가 작업을 강행한 점도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당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제7조에는 ‘현장실습 시간은 1일 8시간으로 하고 갑은 야간(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및 휴일에 을에게 현장실습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2017년 1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홍모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습’이었음에도 홍양은 가장 악명 높은 부서로 배치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1월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도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프레스기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2017년 12월 현장실습생 사고가 잇따르자 교육부는 ‘실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조기 취업 형태를 띤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폐지하고 실습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여 ‘학습 중심’으로 전환하려 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현장실습 분야 역시 전공에 맞는 직무 관련분야로 한정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양과 이군 모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홍양은 애견학과, 이군은 원예과에 다녔지만 콜센터와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갔다.

규정·위반 어기고 업무 강행
주당 70시간 이상 근무 투입도

교육부의 제도 개선안은 저임금 노동으로만 여겨지는 현장실습을 교육으로 정의하고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해당 방안이 올바른 개선 방향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생들의 근로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 대책으로 인해 현장실습생의 근로자성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학생과 근로자의 성격이 혼용됐던 현장실습생 신분은 학생으로 규정됐고 현장실습 계약은 표준협약서·근로계약서에서 표준협약서로 축소됐다. 수당 역시 임금에서 현장실습비로 바뀌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 이사장은 “근로계약서, 최저임금 등을 보상받지 못하면서 현장실습제도는 2017년 이후에 더 퇴보했다”고 짚었다.

다만 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조항을 담아 실습생을 근로자로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됐다. 결국 현장실습에 대한 규정이 관계 부처마다, 법마다 제각각이다.


2017년 당시 내놓은 대책 가운데 그나마 현장실습생을 보호할 수 있는 일부 기준조차 점점 완화됐다.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기준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육부는 ‘선도기업’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선도기업은 노무사가 동행해서 기업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해야 하고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절차가 까다롭다. 최근 사망한 홍군은 ‘참여기업’에서 일했다. 참여기업은 학교 현장실습 운영위원회의 심의만 거치면 된다.

2019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해,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기업참여가 급감해 학생들의 현장실습 기회가 축소된다는 이유였다.

현장실습 기회는 학교의 취업률 성과로 이어지고, 이는 정부지원금으로 다시 이어진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취업률을 언급하진 않지만 목적 사업비 기준 중 하나가 취업률이고 또 신입생 모집에도 영향을 주다 보니 학교로서는 현장실습 기회를 잡지 못하면 타격을 받는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의 기준이 느슨해지다 보니 학생들은 더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업으로 실습을 하기도 한다. 

취업률 올리기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장은 “학생들이 가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던 기업에 다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북지역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빠졌던 반도체 기업들이 2019년 다시 참여기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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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이재명 목줄 잡은 대법원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선을 앞두고 또 하나의 변수가 발생했다. 대권에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는 후보가 또 한 번 판결대에 서야 할 상황에 놓인 것. 그 후보로서는 지난 대선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은 리스크를 떨칠 기회이면서 나락으로 빠질 수 있는 위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대법원이 있다.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오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열린다. 국민의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각 당은 최종 대선후보를 뽑기 위한 레이스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컷오프를 거쳐 8명의 후보를 추린 후 1차 경선서 4명을 뽑았다. 2차 경선서 과반 득표자 여부에 따라 추가 경선을 진행해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민주당은 3명의 후보가 4개 권역을 돌며 지난 27일, 이재명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 결정됐다. 압도적 1위 제동 걸리나 국민의힘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최악의 악재를 짊어진 상태다. 조기 대선의 책임 소재가 여당인 국민의힘에도 지워진 상황이라 내부가 혼란스럽다. 실제 후보 간에도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최종 1인이 결정되는 다음 달 3일까지 후보 간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민주당은 ‘1극 독주’ 상황이다. 이 전 대표가 경선 지역마다 압도적인 득표율을 보였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박근혜 전 대통령의 득표율보다 높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경쟁자로 나선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은 한 자릿수 득표율을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지난 27일 마지막 경선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최종 결정됐다. 다자 대결, 양자 대결서도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후보를 압도하고 있다. 어떤 후보와 붙어도 15%~20%p 차이로 넉넉하게 앞선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재수 끝에 대권을 잡는 데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와 오버랩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당시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표현이 선거를 지배했듯, 이번 대선은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 유권자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최근 ‘이재명이냐, 아니냐’로 흘러가던 선거 구도에 대법원이라는 변수가 던져졌다. 지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때 처음 불거져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려 있던 ‘사법 리스크’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그중에서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다시 한번 판결대 위에 올랐다. 이 전 대표는 20대 대선 과정서 고 김문기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과 경기 성남시 백현동 한국식품연구원 부지 용도변경과 관련해 허위 사실을 공표한 혐의로 2022년 9월 기소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로 판결했다. 항소심 유죄, 무죄로 뒤집어 김명수 체제서 7대 5로 회생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항소심 판결은 지난달 26일에 나왔다. 이후 헌재가 지난 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면서 이 전 대표의 대선 행보를 막을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나왔다. 공직선거법 재판은 1심은 기소 후 6개월, 2·3심은 3개월 이내에 판결을 내려야 한다는 6·3·3 규정에 따라 대법원 판결은 대선 이후에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이 전 대표의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이하 전합)에 회부하면서 상황이 미묘하게 흘러가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오전,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을 오경미·권영준·엄상필·박영재 대법관으로 구성된 2부에 배당했다. 주심은 박영재 대법관이 맡았다. 그러나 곧이어 해당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고 밝혔다. 전합은 ▲소부서 의견 일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 ▲기존 대법 판례의 해석·적용에 관한 의견을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 ▲소부서 재판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다고 인정하는 경우 등의 상황에 올리게 된다. 사건이 전합에 회부되면서 조 대법원장과 13명의 대법관 가운데 재판 업무를 하지 않는 법원행정처장, 회피를 신청한 노태악 대법관을 제외한 12명이 최종 판결 선고를 포함해 심리 및 판단을 하게 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겸직하고 있는 노 대법관은 이해 충돌을 우려해 전합으로부터 빠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지난 22일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고 첫 기일을 진행한 데 이어 지난 24일에도 기일을 잡았다. 대법원이 사건 심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면서 판결 선고 시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동시에 이 전 대표 앞에도 몇 가지 경우의 수가 놓이게 됐다. 먼저 대법원이 상고 기각을 하는 경우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전 대표에게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에 대법원이 기각하면 공직선거법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된다. 이 전 대표의 대선 가도에 정말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어지는 셈이다. 변수 등장 경우의 수 반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내는 ‘파기환송’ 판결을 내리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한다고 해서 바로 형이 결정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대선 전에 최종 결론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 경우에는 이 전 대표의 대선후보 자격 논란이 빚어질 수 있다. ‘파기자판’ 가능성도 나온다. 파기자판은 상급심 재판부가 하급심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하면서 사건을 돌려보내지 않고 직접 판결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대법원이 판결을 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 보수 진영 등에서 대선 전까지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을 두고 파기자판 가능성을 거론했던 바 있다. 대법원이 벌금 100만원 이상으로 유죄 판결을 내린다면 이 전 대표는 피선거권 박탈로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은 하급심 판결에 대한 법리해석을 따지는 법률심에 해당하며, 징역 10년 이하의 형이 선고된 사건에 대해선 양형을 판단하지 않는다. 법조계에서는 파기자판 가능성은 작게 보고 있다. 대법원이 심리를 서두르는 것과는 별개로 선고가 대선 이후에 나면 헌법 해석을 둘러싼 논란이 점화될 전망이다.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5년 만에 평행이론? 여기서 논란이 되는 부분이 ‘소추’에 대한 해석이다. 기소로 봐야 하는지, 기소와 재판을 합쳐서 봐야 하는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는 것. 또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재판 정지 여부도 맞물려 있다. 민주당은 대법원의 행보를 경계하는 듯한 모양새다. 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이 전 대표는 우리 당 대선 (경선) 후보기도 하지만 선고 결과에 따라 우리 당이 직접적 영향을 받는 사건이라 당 차원의 입장 표명이 불가피하다”면서 “(대법원의)공정한 재판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은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SNS에 올렸다. 흥미로운 대목은 이 전 대표의 운명이 또다시 대법원의 결정에 달렸다는 점이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지난 대선 전 대법원의 판결로 ‘기사회생’했던 경험이 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이 전 대표는 성남시장 재임 시절인 2012년 6월 보건소장, 정신과 전문의 등에게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기소됐다. 또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열린 TV 토론회서 ‘친형을 강제 입원시키려고 한 적이 없다’는 취지의 허위 발언을 한 혐의(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도 받았다. 1심과 2심 모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지만 허위 사실 공표에 대해서는 판결이 엇갈렸다. 1심은 무죄, 2심은 유죄였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당선무효형에 해당하는 형량으로 대법원서 확정되면 이 전 대표는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지사직은 물론 대선 가도에도 브레이크가 걸릴 판이었다. 조희대 체제도 12명이 판결 이례적 속도전 대선 전에? 대법원은 이 전 대표의 사건을 전합에 회부했다. 판결에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 11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12명 대법관의 의견은 7(무죄) 대 5(유죄)로 갈렸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7명의 대법관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공격적 질문에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취지의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표현”이라고 봤다. 적극적으로 반대 사실을 공표했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볼 수 없다는 취지다. 반면 박상옥 전 대법관 등 5명은 이 전 대표의 발언이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을 방해할 정도로 왜곡됐다면서 유죄 취지의 반대 의견을 냈다. 상대방 후보의 질문이 즉흥적인 것도 아니었고 이 전 대표도 답변을 준비했다는 것이다. 한 가지 눈여겨볼 부분은 당시 판결이 낳은 후폭풍이다. 7대 5 판결의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권순일 전 대법관의 행보가 도마 위에 오른 것이다. 이는 재판 거래 의혹으로 번졌다. 특히 화천대유 실소유주로 알려진 김만배씨가 대법원 선고를 전후해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의 집무실을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확산됐다. 여기에 권 전 대법관은 퇴직 이후 2020년 11월부터 2021년 9월까지 화천대유 고문으로 재직하며 등록 없이 변호사로 활동한 혐의도 받았다. 이 기간 그는 1억5000만원의 고문료를 받았다. 또 대장동 개발업자들로부터 거액을 받거나 약속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른바 ‘50억 클럽’으로 지목된 6명 가운데 1명이기도 하다. 2표 차로 벼랑 끝에서 살아 돌아온 이 전 대표는 경기도지사 임기를 마치고 이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결국 2022년 대선서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지긴 했지만 대법원 판결이 없었다면 출발선에조차 서지 못할 뻔했던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뒤 이 전 대표는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출발선에 서 있다. 고비마다 또 한 번? 문제는 이 전 대표의 발목에 달린 모래주머니다. 이 전 대표는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중에서 공직선거법 사건만 확정 판결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이번에 대법원이라는 산만 넘으면 이 전 대표 앞에는 ‘꽃길’만 깔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물론 ‘가시밭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건 대법원에 달렸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