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다” 특성화고 실습생 잔혹사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0.25 14:49:35
  • 호수 13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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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하니 위험한 일 당연?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특성화 고교생이 현장실습에 나섰다가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위험한 일자리를 저렴한 노동력으로 채우려는 기업과 취업률을 높이려는 학교 사이에서 10대의 희생양이 나온 셈이다. 

지난 6일, 전남 여수의 한 특성화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실습생 홍모군이 요트업체 현장실습 과정에서 요트 바닥에 붙은 따개비 등을 제거하기 위해 잠수작업 도중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열악한 환경

사고 발생 후 해당 학교 및 실습업체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면서 관련 규정과 지침을 다수 위반한 사실이 드러났다. 홍군이 재학했던 학교는 시민단체나 학부모 등 외부위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 현장실습 운영위원회에 학교 구성원과 학교전담 노무사만 포함했다.

또 실습기업과 공동으로 개발해야 하는 현장실습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단독으로 개발했다. 실습업체와 공유하지 않은 셈이다. 이외에도 현장실습 표준협약서에 공란이 있는 등 현장실습 계약을 부실하게 체결한 정황, 학생의 실습일지도 작성되지 않았다. 

실습업체도 지침을 지키지 않았다. 위반사항들로는 ▲잠수 관련 자격·면허·경험이 없는 실습생을 대상으로 잠수작업 지시 ▲안전·보건 교육 미실시 ▲정해진 실습 시간을 지키지 않은 점 등이었다.


현장실습에 나선 학생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지는 사고는 10년 전부터 일어났다. 실습생을 교육 대상이 아닌 ‘값싼 노동자’로 여겨온 정부와 기업, 학교의 행태가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2011년 12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현장실습생 A군은 작업 도중 뇌출혈로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졌다. 자동차학과 3학년이었던 A군은 10월부터 12월까지 약 2개월간 공장 도장라인에서 실습을 시작했다. 주야 맞교대로 돌아가는 공장에서 A군은 평일 10시간씩 근무하고, 토요일에는 8시간 특근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라인의 노동자들은 주당 최장 70시간 이상 근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당시 A군은 “머리가 아프다”며 동료와 병원에 가려고 기숙사를 나서다 경비실 앞에서 쓰러졌다. 뇌출혈 증세를 보인 A군은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실습 학생들 사고 빈번
안전망 없는 미성년 노동자

2014년 1월엔 한 실습생이 기숙사 옥상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발생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졸업 3개월 전부터 CJ제일제당 충북 진천공장 현장실습생이었던 B군은 일이 익숙지 않다 보니 동료 근로자들에게 지적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후 B군은 “너무 무섭다. 제정신으로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남기고 괴로워하다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해 2월 오후 10시경 울산 북구 농소동 모듈화 산업단지 내 자동차 협력업체 금영 ETS 공장에선 전날 내렸던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지붕이 무너져 내리면서 공장 안에서 일하던 실습생 C군이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실습생이 야간근무 중 사고로 숨지면서 논란이 일었다. 해당 업체가 야간작업을 하지 못하도록 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어겼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폭설로 인해 원청인 현대자동차가 작업을 중단했는데도 하청업체가 작업을 강행한 점도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당시 현장실습 표준협약서 제7조에는 ‘현장실습 시간은 1일 8시간으로 하고 갑은 야간(밤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 및 휴일에 을에게 현장실습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2017년 1월 전주 LG유플러스 협력회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홍모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실습’이었음에도 홍양은 가장 악명 높은 부서로 배치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린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11월 제주도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이민호군도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프레스기에 몸이 끼어 사망했다.

2017년 12월 현장실습생 사고가 잇따르자 교육부는 ‘실업계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조기 취업 형태를 띤 현장실습을 2018년부터 폐지하고 실습 기간을 6개월에서 3개월로 줄여 ‘학습 중심’으로 전환하려 했다. 

교육부가 내놓은 방안에는 현장실습 분야 역시 전공에 맞는 직무 관련분야로 한정되도록 유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홍양과 이군 모두 자신의 전공과는 관련 없는 분야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홍양은 애견학과, 이군은 원예과에 다녔지만 콜센터와 생수공장으로 현장실습을 갔다.

규정·위반 어기고 업무 강행
주당 70시간 이상 근무 투입도

교육부의 제도 개선안은 저임금 노동으로만 여겨지는 현장실습을 교육으로 정의하고 보호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전문가들은 해당 방안이 올바른 개선 방향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학생들의 근로 현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이 대책으로 인해 현장실습생의 근로자성은 사라지게 됐기 때문이다.

해당 방안에 따르면 학생과 근로자의 성격이 혼용됐던 현장실습생 신분은 학생으로 규정됐고 현장실습 계약은 표준협약서·근로계약서에서 표준협약서로 축소됐다. 수당 역시 임금에서 현장실습비로 바뀌었다. 

이상현 특성화고등학교 권리연합회 이사장은 “근로계약서, 최저임금 등을 보상받지 못하면서 현장실습제도는 2017년 이후에 더 퇴보했다”고 짚었다.

다만 현장실습생에 대한 특례조항을 담아 실습생을 근로자로 규정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됐다. 결국 현장실습에 대한 규정이 관계 부처마다, 법마다 제각각이다.


2017년 당시 내놓은 대책 가운데 그나마 현장실습생을 보호할 수 있는 일부 기준조차 점점 완화됐다. 현장실습에 참여할 수 있는 기업에 대한 기준이 대표적이다. 당시 교육부는 ‘선도기업’ 중심으로 현장실습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선도기업은 노무사가 동행해서 기업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해야 하고 교육청 승인을 받아야 하는 등 상대적으로 절차가 까다롭다. 최근 사망한 홍군은 ‘참여기업’에서 일했다. 참여기업은 학교 현장실습 운영위원회의 심의만 거치면 된다.

2019년 1월 교육부는 ‘직업계고 현장실습 보완방안’을 발표해, 선도기업에 선정되지 않은 기업도 참여기업으로 현장실습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기업참여가 급감해 학생들의 현장실습 기회가 축소된다는 이유였다.

현장실습 기회는 학교의 취업률 성과로 이어지고, 이는 정부지원금으로 다시 이어진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취업률을 언급하진 않지만 목적 사업비 기준 중 하나가 취업률이고 또 신입생 모집에도 영향을 주다 보니 학교로서는 현장실습 기회를 잡지 못하면 타격을 받는다. 현장실습에 참여하는 기업의 기준이 느슨해지다 보니 학생들은 더 열악한 노동환경의 기업으로 실습을 하기도 한다. 

취업률 올리기

김경엽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직업교육위원장은 “학생들이 가서는 ‘안 된다’고 여겨졌던 기업에 다시 가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전북지역에서는 안전을 이유로 빠졌던 반도체 기업들이 2019년 다시 참여기업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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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