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개월' 공주교대 사태 막전막후

“쥐도 새도 모르게 블랙리스트 올랐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 운영에 있어 총장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총장은 교수와 학생, 직원 등 학내 구성원을 이끌고 방향을 잡는 학교의 수장이다. 공백이 있어서는 안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공주교대는 현재 2년 넘게 총장 자리가 비어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내 구성원이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공주교대 총장’을 검색하면 안병근 전 총장의 얼굴이 뜬다. 안 전 총장은 공주교대 제7대 총장으로 2016년 1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재임했다. 공주교대 홈페이지 ‘총장 동정’ 게시판에 올라온 글도 2020년 1월10일이 마지막이다. 제8대 총장이 정해지지 않은 탓이다. 

비어 있는
총장 소식

공주교대는 안 전 총장 퇴임 이후 2년3개월째 총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문제는 이 기간이 앞으로 더 길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총장 임용 제청을 두고 공주교대와 교육부 사이의 줄다리기가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

교육부 장관의 임용 제청 재량권과 대학의 자율성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4년제 국립대학교인 공주교대는 총장을 임명할 때 교육부의 임용 제청, 청와대의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대학에서 투표를 통해 선출된 1~2순위 총장 후보자를 교육부에서 검증한 후 교육부 인사위원회에서 가부를 정하면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용 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다.


최종 임용 여부는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공주교대는 2019년 9월24일 개교 이래 최초로 직선제 총장 선거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이명주 교육학과 교수가 66%의 득표율을 받아 1순위 총장 후보자로 결정됐다. 학생 82%, 교수 63%, 직원 및 조교 80% 등 학내 구성원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공주교대 개교 81년 만에 처음으로 모교 출신 총장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개교 최초로 직선제 선거
구성원 높은 지지로 1순위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기 시작한 건 교육부의 임용 제청이 늦어지면서부터다. 당초 공주교대 제8대 총장은 2020년 1월에 임기를 시작했어야 한다. 하지만 교육부의 임용 제청 결과는 그보다 한 달 늦은 2020년 2월10일에야 나왔다.

교육부는 이 교수의 임용 제청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교육부는 이 교수에 대한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의 임용 제청을 거부할 때는 반드시 사유를 밝히도록 하는 대법원 판례가 존재한다. 아이러니한 점은 해당 판례 또한 국립대학이자 원격대학인 한국방송통신대학교(이하 방송대) 총장 임명 과정에서 내홍을 겪으며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2014년 7월 방송대는 류수노 농학과 교수를 1순위 총장 후보자로 뽑았다. 류 교수는 총장 임기 첫날 교육부의 임용 제청 거부 공문을 받았다. 그는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에서는 류 교수의 손을, 2심에서는 교육부의 손을 들어줬다. 

교육부는 2심 패소 이후 2018년 2월 류 교수에 대한 임용 제청을 진행했다. 류 교수는 1순위 후보자로 추천된 지 무려 40개월 만에 방송대 총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대법원은 “대학이 추천한 총장 후보자를 임용 제청에서 제외한 경우 임용 제청의 구체적 제한 사유가 있는지, 총장 적격성 심사 결과가 어떠한지를 재판부가 심리하고 판단해야 함에도 이를 시행하지 않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성이 있다”고 2심 결과를 뒤집었다. 

총장 임명
계속된 잡음

이 교수는 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삼아 교육부를 상대로 ‘총장 임용 제청 거부 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하면서 근거와 이유를 전혀 제시하지 않은 부분이 행정절차법을 위반했다는 것. 실제 당시 교육부는 ‘총장 임용 후보자 재추천 요청’ 공문만 공주교대에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행정절차법 23조는 “행정청은 처분을 할 때 ▲신청 내용을 모두 그대로 인정하는 처분인 경우 ▲단순 반복적인 처분 또는 경미한 처분으로서 당사자가 그 이유를 명백히 알 수 있는 경우 ▲긴급히 처분할 필요가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당사자에게 그 근거와 이유를 제시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재판 결과는 1심과 2심에서 엇갈렸다. 1심은 교육부의 처분을 ‘위법’으로 판단했지만 2심은 ‘적법’으로 봤다. 2020년 2월13일 교육부가 보낸 ‘총장 임용 후보자 심의 결과 통보’ 공문이 쟁점이 됐다. 이 교수는 임용 제청 거부 사유를 밝힌 해당 공문을 2월14일에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임용 제청 거부 공문과 사유를 밝힌 공문이 동시에 오지 않았다는 것.

1심은 이 교수의 주장을 인정해 “심의 결과 통보가 총장 후보 재추천 요청과 실질적으로 하나의 처분에 해당한다고 볼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총장 후보 재추천 요청과 심의 결과 통보를 하나의 행정 처분으로 볼 수 있다”며 “행정절차법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서 이 교수는 최종 패소했다. 

지난 6일 대전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교수는 당시 교육부의 처분에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교육부가 임용 제청을 거부한다고 밝힌 다음날 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거부 사유를 밝힌 공문을 받기까지 3일 동안 약 40건의 언론 보도가 쏟아졌다”며 “교육부는 언론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공문을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의 임용 제청 거부 사유도 납득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대전교육감 선거 출마 당시 받은 벌금형 ▲과태료 지연 납부로 인한 압류건 ▲주의‧경고 등 대학의 행정처분 등을 사유로 제시했다. 이 교수는 “이 3가지 사유를 찾기 위해 나는 물론 아내의 인생까지 먼지털이, 저인망식으로 싹 훑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19년 10월 이 교수는 1순위 총장 후보자로 추천된 이후 진행한 ‘고위공직 예비후보자 사전 질문서’에서 7대 비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문재인정부는 고위공직 후보자 검증 과정에서 ▲병역 기피 ▲세금 탈루 ▲불법적 재산 증식 ▲위장 전입 ▲연구 부정 행위 ▲음주운전 ▲성 관련 범죄 등 7대 비리를 저지른 경우 인사에서 원천 배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2020년 1월 국가정보원 관계자가 전화로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등에 대해 물었을 때도 이 교수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만일 7대 비리에 해당됐거나 부동산 투기 등의 문제가 있었다면 교육부는 신나서 거부 사유에 포함시켰을 것”이라며 “내가 두 손 들고 항복할 만한 문제가 없었기에 궁색한 사유를 들이댄 것”이라고 항변했다. 

거부 사유 3개
해명도 안 들어

그러면서 “더 분통 터지는 부분은 교육부에서 단 한 차례도 내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른 국립대 총장의 경우 임용 제청 전에 의혹 등에 대해 후보자에게 물어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교육부로부터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최근 고성환 방송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7대 비리에 해당하는 세금 탈루 의혹(1369호 <단독> 방송대 총장 알박기-교육부 이중잣대 추적)에도 총장에 임명된 것을 두고도 이 교수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교육부의 기준으로 내가 총장이 못됐다면 방송대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어야 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는 건 교육부가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주교대 사건 당시 언론은 박근혜정부 시절 ‘좌편향 검정교과서’를 비판한 내용의 칼럼 때문에 이 교수가 문정부의 미움을 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2015년 그는 한 언론에 “현행 검정 역사 교과서는 균형을 상실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격하하고 폄훼하며 친북적으로 모호하게 기술된 측면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중략)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는 것은 차선책으로 불가피한 고육지책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실었다. 

이 교수는 해당 칼럼이 총장 임용 제청 거부의 결정적 이유라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글은 교육학자로서 의견을 밝힌 것이지 어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쓴 게 아니다”라며 “지금까지도 특정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성향을 밝히는 등 정치적 목적으로 활동한 적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문재인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된 셈”이라고 덧붙였다.

7대 비리에 해당 안 되는데도….
교육부, 상고심 기각으로 “절대 안 돼”

현재 공주교대와 교육부는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다. 교육부는 공주교대에 총장 임용 후보자를 재추천하라는 입장이고, 공주교대는 이 교수를 임용 제청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총장 선거를 진행한 공주교대 총장 임용 후보자 추천위원회는 “교육부에서 밝힌 거부 사유는 총장직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결정적 하자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러한 거부 사유는 학내 구성원이 모두 참여한 직선제 선거 과정에 이미 반영됐기에 임용 제청 거부의 재량권 행사는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없고 직선제에서 교육부 장관의 임용 제청 재량권은 헌법의 기본권인 대학의 자율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직선제 선거에서 이 교수가 구성원의 높은 지지를 받은 바, 투표 결과를 존중해달라”고 강조했다.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공주교대 총장 후보자가 제기한 소송에서 교육부가 최종 승소했다. 이를 근거로 공주교대에 총장 후보자 재추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라며 “현재 공주교대에서 총장 후보자 재추천을 위한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시기는 말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교육부가 방송대 류 교수의 경우와 모순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교육부는 당시 류 교수가 제기한 소송의 2심에서 패소하고도 그를 임용 제청했다. 이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해 교육부 국립대학정책과 관계자는 “1월에 발령받아 해당 내용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답변했다.

이 교수는 문정부의 결자해지 혹은 차기 정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지만 현재 나를 총장으로 임명하는 데 법적 걸림돌은 없다”고 주장했다. 몇몇 법무법인에서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현재 기준으로 교육부 장관이 이 교수를 공주교대 총장으로 임용 제청하는 것이 적법하다는 것. 

이 교수는 2019년 총장 후보자 선거 당시 내세운 공약을 최근 상황에 맞춰 재정립하고 있다. 총장이 된다면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가속화되고 있는 대학 위기를 타파할 방법을 고민하는 한편, 확보하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공주교대의 부흥을 이끌겠다는 포부도 드러냈다.

학내 구성원과 지역 사회 관계자의 변함없는 지지에 부응하겠다고도 했다.

2심 지고도
임명하더니?

“교육부는 우리 공주교대를 지방의 작은 대학으로 여겨 공문 한 장으로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은 교원을 양성하는 학교입니다.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굴복하면 대학 민주주의, 대학 자율성 역시 무너지게 됩니다. 제 사례를 계기로 대학 민주주의, 대학 자율성이 정착될 수 있길 바랍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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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