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마케팅' 국민의힘 플랜B

잡룡으로 잠룡 깨운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윤석열 마케팅'에 나섰던 국민의힘 내부에서 플랜B가 떠오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길어지면서 이를 대비한 시나리오를 구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당권 후보들의 입에 오르고 있다. 이들은 윤 전 총장과 개인적 친분을 언급하며 영입을 공언했다. 윤 전 총장에 공을 들이는 당내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플랜A
리스크

일각에서는 당내 상황이 바쁘게 돌아가는 만큼 ‘윤석열 마케팅’이 점점 자취를 감출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당은 열 명 넘게 나온 당 대표 후보군 덕에 전당대회 흥행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윤 전 총장의 잠행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당내 기류도 조금씩 변하는 양상이다. 윤 전 총장에게만 당의 화력이 쏠려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불확실한 윤 전 총장의 변수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

이는 '정치인 윤석열'이 가진 리스크가 크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지율은 고공행진 중이지만, 윤 전 총장이 대선에서 이길 것이라 예단하긴 어렵다. 만약 윤 전 총장이 입당한 후 변수가 생긴다면 당은 그야말로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과거 반기문 전 UN사무총장의 사례를 보면 이는 불가능한 스토리도 아니다.

이외에도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총공세에 나설 경우에 대비해야 한다. 윤 전 총장을 겨냥한 결정적 한방이 드러나면 대선 정국에서 당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윤 전 총장의 가족까지 검증대에 오르게 되면 그가 사퇴 결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윤 전 총장 처가 재산 문제는 그의 역린으로 꼽힌다. 윤 전 총장이 대선 가도에 뛰어든다면, 아내의 사업과 장모의 재산 증식 과정에 대한 의혹들이 연이어 터질 전망이다.

잠행 길어지는 윤
흥행 중인 국민의힘

이미 윤 전 총장은 과거에 처가 재산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지난 2019년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당시 윤 전 총장은 65억9076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검찰 고위 간부 중 1위다. 다만 윤 전 총장 명의로 된 예금은 2억1386만원이고, 나머지는 아내 김씨의 재산이었다.

특히 윤 전 총장 장모의 부동산 의혹은 꾸준히 제기되는 문제다.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윤 전 검찰총장의 장모가 대한주택공사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토지 보상으로 100억원이 넘는 이익을 얻었다고 한다'며 '30억1000만원에 경매로 낙찰 받은 땅이 아산신도시 조성을 위한 토지로 수용되면서 132억3581만7780원을 받았다는 것'이라고 적었다.


실제 <오마이뉴스>는 윤 전 총장 장모의 아산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보도했다. 윤 전 총장 장모의 조흥은행 통장 거래명세서를 살펴보면 2001년 경매로 30억1000만원에 아산신도시 부지를 2004년부터 2005년까지 토지 보상금으로 132억여원을 받아 3년 만에 102억여원의 차익을 남겼다고 전했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당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대선후보로 나서려면 처가 의혹 등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공직자 가족의 재산 증식 문제는 ‘불공정’과 연결돼 추후 큰 뇌관이 될 수 있어서다.

이외에도 윤 전 총장이 대권후보로 뛸 경우 강성 보수와 중도 보수의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윤 전 총장은 보수 정당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했다. 여전히 강성 보수 사이에서는 대권 주자로 부상한 그에 대한 불편한 심기가 감지된다.

윤에 올인?
이대론 위험

이와 반대로 야권의 플랜B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입장도 있다.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과 함께한다면 자연스레 여권의 공세를 야권이 막을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당이 힘을 실어준다면 윤 전 총장이 웬만한 공세에는 크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나올 때까지는 당의 후보들에게 집중하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확실하지 않은 윤 전 총장에 '올인'하는 것보다 일단 당의 후보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것.

현재 국민의힘 소속 차기 대권주자로는 황교안 전 대표와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있다. 최근 미국으로 떠난 황 전 대표는 귀국 후 집필 중인 저서 작업을 곧 마무리하는 등 차기 대선 비전 제시에 나설 전망이다.

유 전 의원은 고향 대구를 찾아 대선 행보를 공식화한 상태로 17일 광주를 찾을 예정이다. 이는 이념과 지역을 뛰어넘는 대권주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각오로 풀이된다. 원 지사도 일찌감치 내년 지방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고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제는 이들의 지지율이 좀처럼 올라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인물 모두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도 넘기지 못하고 있다. 유 전 의원과 원 지사는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며 각 현안에서 뚜렷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상황.

특히 황 전 대표의 대권행을 두고는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크다. 그는 극우·강경 보수 세력의 색채가 짙은 인물이다. 21대 총선 패배의 원인으로 꼽히는 그가 대권주자로 나서면 '중도로의 확장'이 필요한 당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야권 후보
존재감 미약

지난 5일 황 전 대표는 백신 확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후 여러 논란을 낳았다. 그는 미국 정부에 코로나19 백신을 요청하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지자체장들이 있는 서울·부산·제주만 우선 지원해달라는 뜻을 밝혔다. '국민 편가르기' 발언으로 당심을 얻으려다 민심을 잃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같은 당 장제원 의원마저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며 저격했다.

이 흐름이 계속되면 당밖 유력 주자인 윤총장과의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제1야당의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 외의 새 인물을 영입해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다.

이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와 최재형 감사원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김 전 부총리의 경우, 김 전 위원장의 '대안 카드'라는 말이 돌면서 부상된 인물이다. 김 전 부총리는 문정부 초대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직을 1년6개월간 역임했다.

최근에는 사단법인 '유쾌한 반란'을 발족해 여러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최근 강연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정치 지도자도 없이 그저 과거와 진영논리의 싸움만 하고 있다"는 정치적 발언으로 이목을 끈 바 있다.

기지개 펴는 당내 주자들 존재감 미미
당 밖의 제3 후보는…오세훈 히든카드?

최 감사원장은 현직 감사원장 신분이지만 국민의힘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였다. 정부가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를 감사위원에 임명하려 할 때 그는 '정치적 중립성'을 앞세워 반대 뜻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이와 관련해 김 전 위원장은 이들을 지원할 의사가 없다고 선을 그은 상태다.


아울러 대권주자로서는 정치적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현실적 평가도 따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차출론도 제기된다. 최근 오 시장은 '서울비전 2030 위원회'를 구성했다. 전직 고위관료와 각계각층의 전문가로 구성됐다. 이는 서울의 비전뿐만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오 시장의 대권 씽크탱크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오 시장은 대선이 아닌 내년 지방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재출마하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이는 과거 그의 행적과 관련이 있다. 오 시장은 과거 무상급식 논란으로 시장직을 던졌다. 만약 1년여 남은 현 임기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다면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질 수 있다.

하지만 당에서 정권교체의 명분만 만들어준다면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 시장은 최근 나경원 전 의원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를 꺾으면서 야권에서 정치적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다.

오세훈
차출론?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보궐선거 승리로 자신감이 많이 붙은 상태다. 대선에 나가고 싶어할 것"이라며 "다만 2011년 무상급식 논란으로 사퇴한 만큼 당에서 부름이 있어야만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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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