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돋는’ 반기문-윤석열 평행이론

2017 반 보면 2022 윤 보인다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곧 등판한다. 대선 정국에서 그가 정계 개편의 중심이 될 것이란 관측 가운데, ‘찻잔 속 폭풍’에 그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독주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권은 그에게 앞다퉈 러브콜을 보내고 있고, 서점가에선 그와 관련된 도서가 연일 출간되고 있다. 윤 전 총장은 “날 파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외부와 선을 긋는 눈치다.

곧 등판
어디로?

윤 전 총장의 독주는 이례적이다. 그는 지난해 여권의 공세 속 반문(반 문재인)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계속된 ‘추미애-윤석열’ 갈등 속, 정부에 분노한 민심이 ‘대통령 후보 윤석열’을 만들어냈다. 이 흐름에 따라, 평생 ‘칼잡이’로 살던 그는 지난 3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반대하며 옷을 벗었다.

당시 윤 전 총장은 “앞으로도 어떤 위치에 있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정계 진출을 시사했다.

그는 사퇴 이후 한 달 넘게 잠행 중이다. 간혹 ‘공정’의 이슈가 화두로 떠오를 때마다 메시지를 낼 뿐이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LH 사태’를 두고 “이런 식이면 청년들은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기존 정치 문법도 거부하고 있다.


정치권 인사보다는 원로나 국내 석학을 만나 현안을 나누는 식이다. 퇴임 이후 그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노동 전문가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 등을 만났다.

정치권에 따르면 윤 전 총장은 김 교수를 만나 대선 출마 의지를 밝혔다고 한다. 당시 그는 심도 깊은 담론을 던졌고, 김 교수에게 정치에 대한 고견을 구하기도 했다. 윤 전 총장은 청년 일자리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교수와의 자리에선 청년실업, 결혼과 출산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이쯤 되면 윤 전 총장의 대권 행보는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다. 정치권에서는 그가 5월 중순 쯤에 등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의 지지율도 굳건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YTN 의뢰로 지난 16일 ‘여야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를 물은 결과, 윤 전 총장은 37.2% 지지율을 얻어 이재명 경기도지사(21.0%)를 오차범위 밖에서 이겨내고 1위를 차지했다.

‘칼잡이’ 이례적 독주…반문 대표주자로
지난 대선 삼킨 ‘반 현상’과 다를까

정치권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이 지지세가 더 올라갈 것으로 보고 있다. 여론조사 분석을 보면 그를 지지하는 주요 세력은 정부에 반감을 가진 중도층이다. 코로나19 백신 확보 문제, LH 사태, 부동산 문제 등 여러 악재가 연달아 터졌진 상태다. 레임덕에 빠진 정부가 단기간에 분위기를 반전시키기는 어려워 보인다.

게다가 야권에서는 이렇다 할 만한  대권 주자가 없다. 현재 그를 제외한 주자들의 지지율은 5% 이하다. 21대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이끌었던 황교안 전 대표가 크게 패배한 이후 주목할 만한 기대주가 부재한 상황. 윤 전 총장이 대안 세력이 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관건은 이 지지율이 얼마나 견고하느냐다. 전문가들은 윤 전 총장의 최대 변수로 ‘정치인 윤석열’을 꼽고 있다. 그가 차후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여론이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공정의 이미지를 밀고 있는 만큼, 사소한 실책도 치명적일 수 있다.

인물이 가진 리스크도 큰 편이다. 윤 전 총장은 평생 ‘칼’을 휘두른 천직 검사다. 지나칠 정도로 경직된 원칙주의자인 그가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 불리는 정치에 적응할 수 있을 지 미지수다. 외교·안보·남북관계·경제를 망라한 구상을 보여야 할 과제가 남는 셈이다.

대척점
다르다?

다만 그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순간 지지율이 거품처럼 사그라들 것이란 해석도 있다. ‘윤석열 정치’의 실체가 드러나면,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지금의 지지율은 새 바람으로 인한 기대감에서 오는 반짝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윤 전 총장도 과거 제3지대 후보처럼 결국 현실정치의 벽을 넘어서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다. 제3지대 후보는 역대 대선의 단골손님이었다. 이들 모두 혜성처럼 나타나 ‘찻잔 속 태풍’에 그쳤다.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윤석열의 반짝 지지율 1위는 조만간 가뭇없이 사라질 것이다. 반기문도 훅 갔다”고 했다.

이 시나리오에는 비슷한 전례가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017년 대선 국면에서 보수 진영의 기대주로 급부상했다. 박근혜정부 임기 내내 반 전 총장의 지지율 40%를 웃돌며, 상위권을 독식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를 여러 차례 앞설 정도였다.

지난 대선 정국에서 정치권은 ‘반기문 신드롬’으로 술렁였다. 2017년 2월 그가 대선 출마를 포기할 때까지 그를 미화한 책만 50여권이었다. 하지만 이는 거품에 불과했다. 베일에 싸여있던 실체가 드러나자, 반 전 총장에게는 ‘1일 1실수’라는 수식이 따라다녔다.

특히 서민의 삶과 거리가 먼 그의 언행은 숱한 논란을 낳았다.

한 대학 강연에서 ‘청년 주거 정책’에 대한 질문에 “젊어 고생은 사서라도 하는 것”이라고 답하거나, 공항철도 탑승권 발매기에 1만원권 두 장을 겹쳐 넣었다가 “뉴욕과 다르다”고 해명하는 식이었다. 민심은 연일 싸늘해졌고, 지지율은 10%대로 급락했다.

그를 둘러싼 의혹 검증 절차 역시 혹독했다. 당시 반 전 총장에게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3만달러를 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태였다. 평생 외교관의 길을 걸어온 이에게 이를 견딜 만한 맷집은 없었다.

남은 1년
거품 빠지면?

결국 반 전 총장은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귀국한 지 불과 20일 만에 “인격살해에 가까운 음해와 각종 가짜뉴스로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다”며 대선 출마 뜻을 접었다. 이후 정치권은 쇼크에 빠졌다.


당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반 전 총장의 대권행을 위해 스스로 대권 출마를 포기한 상태였다. 제3지대 빅텐트 구상 동력마저 급격히 상실됐다. 반 전 총장의 전례를 비춰 봤을 때, 윤 전 총장의 행보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면 야권이 흔들릴 것을 점칠 수 있는 대목이다.

‘반기문 현상’은 정치권에서 지지율은 한순간의 바람일 뿐이라는 교훈을 남겼다.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와 대결할 영웅을 찾는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염증으로 새인물의 새로운 정치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이에는 기존 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가 담겼다.

친노 원로인 유인태 전 의원은 “우리 정치가 워낙 국민들로부터 혐오의 대상 같은 불신이 심하다 보니까 이런 현상은 늘 있어왔다”고 지적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은 다르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 새인물들은 권력을 직접 나서서 만들려 했다. 반면 윤 총장은 스스로 투쟁해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무엇보다 문재인정부의 대척점에 서 홀로 컸다는 상징성이 있다.

냉정한 정치판…신기루 지지율 경계
리스크 큰 ‘정치인 윤석열’ 과제는?

반 전 총장과 달리 버티는 힘도 강하다. 1년 넘게 여권의 파상공세로 인해 채워진 맷집이 있고, 권력 의지도 남다르다는 평가다. 이외에 메시지 전달 능력도 탁월해 보인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은 부패를 완전히 판치게 만드는 부패완판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반 전 총장이 1일 1논란을 일으켰던 것과 대조되는 대목이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순히 명성으로 지지를 얻었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나 고건 전 국무총리와 달리 지지율이 탄탄하다. 진흙탕 싸움에서 벗어나 홀로 소나무처럼 빛나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윤 전 총장의 행보에 따라 정치권 전체가 격변에 가까운 정계개편을 이룰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오는 5월 양당의 지도부가 구성된다. 9월~10월에 대선후보 경선이 예정돼있다. 윤 전 총장의 지지율이 다른 대선 후보를 압도하는 만큼, 그가 야권의 구심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양당은 윤 전 총장이 언제 등판할지, 어떤 형태로 정치를 시작할지 주목하고 있다. 물론 그의 행보를 가장 주시하는 세력은 제1야당이다. 국민의힘은 조직력과 자본력을 갖춘 당에 합류할 것을 압박하고 있다.

또 다른 변수도 생겼다.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 전 총장과 함께 독자 노선을 개척할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면서다. 김 전 위원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아사리판’이라 평가절하한 바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윤 전 총장이 국민의힘에 합류하지 않을 것으로 호언하고 있다.

새로운 정당에서 힘을 키울 것이란 전망이다. 그는 “강한 대통령이 될 만한 사람이 나오면 당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가게 돼있다.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라고 분석했다.

이대로 쭉?
막판 미지수

물론 모든 게 미지수다. 윤 전 총장 본인의 뜻이 아직 불명확한 데다, 찻잔 속 폭풍 속에 그쳤던 이들처럼 여러 암초에 걸려 끝내 완주조차 못하는 상황이 또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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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