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숙원’ 공수처 역할의 한계

방패로 세웠다 부메랑 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공수처장 후보 지명 등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공수처 출범은 물론 안착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산적한 과제가 많다. 여론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고위공직자수사범죄처리법

2019년 12월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지 8개월여 만이었다. 당시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부터 본회의 통과에 이르기까지 여야는 극심한 정쟁을 벌인 바 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발의안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의 비리와 범죄를 전담 수사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수처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검찰총장, 판·검사, 시·도지사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다.

이 중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선 기소권도 갖는다.

공수처는 중복되는 범죄 수사에 대해 우선 수사권을 가진다. 특히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 수사 이첩을 요청할 수 있다. 여기에 검·경 등이 범죄 수사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할 경우, 이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는 조항이 담겼다. 이 조항은 수사 착수 단계부터 검·경 수사를 무력화하고, 공수처가 특정 인사에 대한 선택적 수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공수처장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7명 위원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추천위는 여야가 각각 추천한 위원 2명과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으로 구성된다. 당초 공수처법에는 야당의 비토권이 존재했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 출범에,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위헌 여부를 두고 헌재에 제소하는 등 공수처 출범을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수처 법정시한(지난해 7월15일) 내 출범이 실패로 돌아갔다.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문제를 두고도 여야는 팽팽하게 대립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여러 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공수처장 청문회·조직 구성
출범과 안착까지 첩첩산중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오히려 공수처 출범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상대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 조치를 하면서 정국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여당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연내 통과를 밀어붙였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2월10일 통과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 이상’(5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정당이 열흘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학계 인사를 대신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 5년 이상’이었던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을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 ⓒ고성준 기자

이후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지난해 12월28일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모두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인사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0일 두 사람 가운데 김 연구관을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낙점했다.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꼭 1년 만이었다. 


김 후보자는 대구 출신에 보성고, 서울대 고고학과를 나왔다. 1995년 법관으로 임용됐다가 1998~2010년까지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재직하며 헌재 소장 비서실장, 선임헌법연구관, 국제심의관을 맡았다. 

법 고치고
추천 강행

청와대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판사, 변호사, 헌재 선임연구관 외에 특검 특별수사관 등의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가진 만큼 전문성과 균형감, 역량을 갖췄다고 판단했다”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이어 “그동안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등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대한변협 사무차장 등 공익 활동도 활발히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최종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여당은 중립과 공정을 기대한다는 환영의 뜻을 보냈다. 반면 야당은 정권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5일 “공수처가 대한민국에 법이 살아있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반대로 공수처가 앞으로 정반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수처에 대한 기대가 우려가 되지 않도록 또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 공수처장 후보 지명까지는 마쳤지만,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하고 안착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다. 공수처는 법 규정상 공수처장 없이 조직을 구성 및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윤석열 검찰총장

출범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공수처 차장, 수사처 수사관 선임, 수사처 검사를 뽑기 위한 인사위원회(이하 인사위) 구성 등에 있어서 공수처장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후보 추천 과정에서 여야가 강하게 부딪쳐온 만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험난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은 이번 달 내 공수처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야당은 인사청문회 자체에 심드렁한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해도 야당의 송곳 검증이 예상된다. 위장전입 의혹, 뒤늦은 체납 증여세 납부 등 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추윤 갈등에
국민 의심↑

공수처 조직 구성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공수처장은 공수처 차장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차장을 임명하는 구조다. 그 다음에 인사위를 열어 공수처 검사 23명을 임용해야 한다. 인사위 구성을 두고 여야가 또 한 번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 인사위는 공수처장과 공수처 차장, 공수처장 위촉 1명에 여당 추천 2명, 야당 교섭단체 추천 2명으로 구성된다. 

인사위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기 때문에 유일한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 추천 인사위원 2명의 동의 없이도 검사 임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아예 인사위원을 추천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5명만으로 인사위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공수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국민 여론이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권력기관 개혁’을 화두로 잡았다. 검찰이 독점했던 권한을 경찰에 나눠주고,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인 공수처를 만드는 방식으로 검찰개혁을 진행했다. 검찰개혁은 문 정부를 상징하는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대통령은 물론 여권 인사들, 지지자들까지 검찰개혁이라는 말을 수시로 사용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19년 9월27~28일 양일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찰개혁 주장에 대한 공감도’ 여론조사에서 61.0%가 검찰개혁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36.1%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에 대한 지지는 2019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9년 1월9일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9%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응답은 15.6%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 변화
대통령 지지율도 추락 거듭

하지만 이 같은 기류는 지난해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해 추·윤 갈등은 1년 내내 사회를 달궜다. 지난해 1월 추 장관이 법무부에 입성한 이후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했다. 검찰인사‧수사 지휘권 문제를 거쳐 검찰총장 직무배제‧징계청구 등 사상 초유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여당에선 추 장관의 행보를 두고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야당에선 ‘윤석열 찍어내기’라고 비판하면서 정치권으로까지 전선이 넓어졌다. 그 사이 윤 총장이 대권후보로 급성장하더니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3강 구도를 구성할 만큼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오르면서 묘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직무배제 조치,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정직 2개월 처분 모두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법무부 징계위의 정직 2개월 처분은 문 대통령의 재가까지 이뤄졌던 터라 추 장관은 물론 청와대도 타격을 받았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문 대통령의 사과, 후임 법무부 장관 지명 등 지난해 말에 이르러서야 추·윤 갈등이 윤 총장의 압승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가 나왔다. 

엠프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기관 4개사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검찰개혁 추진 방향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고 응답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자세한 사항은 NBS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에는 국민 59%가 검찰개혁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71%는 절차와 방법에 무리가 있다고 인식한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지난해 12월27일부터 사흘간 벌인 여론조사 결과다(자세한 사항은 케이스탯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대의에 공감하지만 절차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셈이다.

국민 절반
“매우 잘못”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5%대로 주저앉으면서 검찰개혁에 대한 동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얼미터가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성인 1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5.1%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평가도 61.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문 대통령이 강세를 보였던 40대에서도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섰다. 특히 ‘매우 잘못함’이라고 응답한 적극적 비토층이 50%에 육박했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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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