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 숙원’ 공수처 역할의 한계

방패로 세웠다 부메랑 될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청와대와 집권여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위한 고삐를 바짝 당기고 있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공수처장 후보 추천, 공수처장 후보 지명 등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공수처 출범은 물론 안착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산적한 과제가 많다. 여론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는 고위공직자수사범죄처리법

2019년 12월30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 이른바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수처법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지 8개월여 만이었다. 당시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지정부터 본회의 통과에 이르기까지 여야는 극심한 정쟁을 벌인 바 있다. 

시작은
창대했지만…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발의안 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의 비리와 범죄를 전담 수사하는 기구를 설치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공수처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회의원,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와 국무총리비서실 정무직 공무원, 검찰총장, 판·검사, 시·도지사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갖는다.

이 중 판·검사와 경무관급 이상 경찰에 대해선 기소권도 갖는다.

공수처는 중복되는 범죄 수사에 대해 우선 수사권을 가진다. 특히 범죄수사와 중복되는 검·경 등 다른 수사기관 수사 이첩을 요청할 수 있다. 여기에 검·경 등이 범죄 수사과정에서 고위공직자 범죄 등을 인지할 경우, 이 사실을 즉시 공수처에 통보하는 조항이 담겼다. 이 조항은 수사 착수 단계부터 검·경 수사를 무력화하고, 공수처가 특정 인사에 대한 선택적 수사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았다. 


공수처장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 7명 위원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2명을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 중 1명을 지명,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도록 했다. 추천위는 여야가 각각 추천한 위원 2명과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으로 구성된다. 당초 공수처법에는 야당의 비토권이 존재했다.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 출범에, 국민의힘은 공수처법 위헌 여부를 두고 헌재에 제소하는 등 공수처 출범을 막는 데 사활을 걸었다. 그 사이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공수처 법정시한(지난해 7월15일) 내 출범이 실패로 돌아갔다. 공수처장 후보를 추천하는 문제를 두고도 여야는 팽팽하게 대립했다.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여러 차례에 걸쳐 회의를 열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공수처장 청문회·조직 구성
출범과 안착까지 첩첩산중

하지만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사이의 갈등이 극한까지 치달으면서 오히려 공수처 출범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상대로 직무배제 및 징계청구 조치를 하면서 정국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여당에서 공수처법 개정안 연내 통과를 밀어붙였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해 12월10일 통과된 공수처법 개정안은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의 의결 정족수를 ‘3분의 2 이상’(5명 이상)으로 완화하고, 정당이 열흘 이내에 추천위원을 선정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학계 인사를 대신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변호사 자격을 10년 이상 보유하고 재판·수사·조사 실무 경력 5년 이상’이었던 공수처 검사 자격 요건을 ‘변호사 자격 7년 이상’으로 완화하는 내용도 담았다. 
 

▲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 후보자 ⓒ고성준 기자

이후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는 지난해 12월28일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연구관과 이건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최종 후보로 추천했다. 모두 대한변호사협회가 추천한 인사들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0일 두 사람 가운데 김 연구관을 초대 공수처장 후보로 낙점했다.

공수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 꼭 1년 만이었다. 


김 후보자는 대구 출신에 보성고, 서울대 고고학과를 나왔다. 1995년 법관으로 임용됐다가 1998~2010년까지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1999년 조폐공사 파업 유도 사건 특별검사팀에 특별수사관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는 헌법재판소에서 헌법연구관으로 재직하며 헌재 소장 비서실장, 선임헌법연구관, 국제심의관을 맡았다. 

법 고치고
추천 강행

청와대 관계자는 “김 후보자는 판사, 변호사, 헌재 선임연구관 외에 특검 특별수사관 등의 다양한 법조 경력을 가진 만큼 전문성과 균형감, 역량을 갖췄다고 판단했다”고 지명 배경을 밝혔다. 이어 “그동안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등 헌법적 가치 수호를 위해 노력해왔으며 대한변협 사무차장 등 공익 활동도 활발히 수행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최종 후보자로 지명했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에 대한 여야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여당은 중립과 공정을 기대한다는 환영의 뜻을 보냈다. 반면 야당은 정권의 꼭두각시라고 비난했다.

김 후보자는 지난 5일 “공수처가 대한민국에 법이 살아있고 정의가 살아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국가기관이라는 기대가 있다”며 “반대로 공수처가 앞으로 정반대로 운영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수처에 대한 기대가 우려가 되지 않도록 또 우려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단 공수처장 후보 지명까지는 마쳤지만, 공수처가 정식으로 출범하고 안착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있다. 공수처는 법 규정상 공수처장 없이 조직을 구성 및 운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 윤석열 검찰총장

출범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라 할 수 있는 공수처 차장, 수사처 수사관 선임, 수사처 검사를 뽑기 위한 인사위원회(이하 인사위) 구성 등에 있어서 공수처장의 참여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 후보 추천 과정에서 여야가 강하게 부딪쳐온 만큼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도 험난할 것으로 관측된다. 여당은 이번 달 내 공수처 출범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야당은 인사청문회 자체에 심드렁한 상황이다. 우여곡절 끝에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해도 야당의 송곳 검증이 예상된다. 위장전입 의혹, 뒤늦은 체납 증여세 납부 등 김 후보자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추윤 갈등에
국민 의심↑

공수처 조직 구성도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공수처장은 공수처 차장을 대통령에게 제청하고 대통령이 차장을 임명하는 구조다. 그 다음에 인사위를 열어 공수처 검사 23명을 임용해야 한다. 인사위 구성을 두고 여야가 또 한 번 맞부딪칠 가능성이 높다. 공수처 인사위는 공수처장과 공수처 차장, 공수처장 위촉 1명에 여당 추천 2명, 야당 교섭단체 추천 2명으로 구성된다. 

인사위는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되기 때문에 유일한 야당 교섭단체인 국민의힘 추천 인사위원 2명의 동의 없이도 검사 임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아예 인사위원을 추천하지 않을 경우 나머지 5명만으로 인사위를 구성할 수 있는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 

공수처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국민 여론이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권력기관 개혁’을 화두로 잡았다. 검찰이 독점했던 권한을 경찰에 나눠주고, 검찰을 견제하는 기관인 공수처를 만드는 방식으로 검찰개혁을 진행했다. 검찰개혁은 문 정부를 상징하는 수식어로 자리 잡았다. 대통령은 물론 여권 인사들, 지지자들까지 검찰개혁이라는 말을 수시로 사용했다.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2019년 9월27~28일 양일간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검찰개혁 주장에 대한 공감도’ 여론조사에서 61.0%가 검찰개혁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36.1%로 나타났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검찰개혁의 핵심인 공수처에 대한 지지는 2019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2019년 1월9일에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6.9%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반대 응답은 15.6%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검찰개혁에 대한 여론 변화
대통령 지지율도 추락 거듭

하지만 이 같은 기류는 지난해 들어 바뀌기 시작했다. 지난해 추·윤 갈등은 1년 내내 사회를 달궜다. 지난해 1월 추 장관이 법무부에 입성한 이후 두 사람은 사사건건 부딪치기 시작했다. 검찰인사‧수사 지휘권 문제를 거쳐 검찰총장 직무배제‧징계청구 등 사상 초유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다. 

여당에선 추 장관의 행보를 두고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주장했지만, 야당에선 ‘윤석열 찍어내기’라고 비판하면서 정치권으로까지 전선이 넓어졌다. 그 사이 윤 총장이 대권후보로 급성장하더니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과 함께 3강 구도를 구성할 만큼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오르면서 묘한 상황이 됐다. 

게다가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직무배제 조치, 법무부 징계위원회의 정직 2개월 처분 모두 법원에서 제동이 걸렸다. 특히 법무부 징계위의 정직 2개월 처분은 문 대통령의 재가까지 이뤄졌던 터라 추 장관은 물론 청와대도 타격을 받았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문 대통령의 사과, 후임 법무부 장관 지명 등 지난해 말에 이르러서야 추·윤 갈등이 윤 총장의 압승으로 마무리되는 모양새가 나왔다. 

엠프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여론조사 전문기관 4개사가 지난해 11월30일부터 12월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55%가 검찰개혁 추진 방향이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라진 것 같다’고 응답했다.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당초 취지에 맞게 진행되는 것 같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자세한 사항은 NBS 홈페이지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최근에는 국민 59%가 검찰개혁의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71%는 절차와 방법에 무리가 있다고 인식한다는 내용의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겨레>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케이스탯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0명을 상대로 지난해 12월27일부터 사흘간 벌인 여론조사 결과다(자세한 사항은 케이스탯리서치 홈페이지 참조). 대의에 공감하지만 절차가 잘못됐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서 공감대를 얻고 있는 셈이다.

국민 절반
“매우 잘못”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35%대로 주저앉으면서 검찰개혁에 대한 동력이 약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얼미터가 지난 4~6일 만 18세 이상 성인 1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35.1%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다. 부정평가도 61.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호남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문 대통령이 강세를 보였던 40대에서도 부정평가가 긍정을 앞섰다. 특히 ‘매우 잘못함’이라고 응답한 적극적 비토층이 50%에 육박했다(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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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