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FBI’ 국수본부장 후보자 해부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1.25 11:07:07
  • 호수 13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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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2인자 두고 용호상박 5파전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75년 경찰 역사상 가장 강력한 ‘공룡경찰’ 시대를 알리는 국수본이 출범했다. 일반 수사는 물론 대공수사권까지 거머쥔 수사본부장은 경찰의 제2인자나 다름없다. 국수본부장의 적임자는 누구일까.
 

▲ (사진 왼쪽부터)국가수사본부장 공모에 지원한 백승호 전 경찰대학장, 이정렬 변호사, 이세민 전 충북경찰청장 차장

경찰 수사를 총괄하는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지난 4일 출범했다. 경찰청장의 구체적인 수사 지휘가 불가해지면서 국수본부장이 경찰 수사의 실질적인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국수본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인해 경찰 수사권이 강화되자 이에 대한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 경찰청장이 개별 사건 수사를 지휘할 수 없도록 하는 등 규모가 커진 경찰 권력에 대한 분산의 의도도 담겼다.

권력 분산
부실 봉쇄

경찰 관계자는 “국수본과 자치경찰제 도입 후 국민 중심 책임 수사 체제를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우선 목표”라며 “지금까지 큰 무리나 혼선, 시행착오가 없이 차분하게 시행하고 있고, 계속 점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부실 수사를 원천 봉쇄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관계자는 “경찰의 잘못으로 사건 처리가 잘못되고 국민이 피해를 보는 사안이 단 한 건도 없도록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수본부장 자리가 아직 공석이라 ‘반쪽짜리 수사기관’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에 국수본의 첫 수장을 선발하기 위한 공모를 진행했다. 


경찰청 본청에 위치한 국수본 조직은 본부장 공석으로 직무대리 체제를 유지한 채 지난 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본부장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으로 임기는 2년이다. 본부장은 내부 승진 인사, 외부 임용 모두 가능하다. 초대 본부장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외부 공모를 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 임용 시 자격 요건은 10년 이상 수사 업무에 종사한 고위 공무원·총경 이상 경찰 공무원 재직 경력자, 판사·검사·변호사 10년 이상 경험자, 국가기관 등 법률 사무 10년 이상 종사 변호사, 법률학·경찰학 조교수 이상 10년 이상 근무자, 앞선 4가지 자격 요건의 합산 경력이 15년 이상인 자 등이다.

검·경 수사권조정과 대공수사권 이전으로 경찰에 크게 힘이 실리자, 이름 있는 현직 법조인들이 대거 국수본부장직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국수본부장에 지원한 5명 후보자에 대해 분석했다.

수사권 강화…사실상 모든 수사 총괄
컨트롤타워 역할…외부 공모로 가닥

▲백승호 전 경찰대학장 = 1964년 전라남도 장흥군에서 태어난 백 전 경찰대학장은 광주 금호고등학교와 전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23기로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연수원을 수료한 이후 변호사로 활동했으나 고시 출신 경정 경력채용에 지원해 경찰공무원으로 전직했다. 이후 총경, 경무관을 거쳐 치안감으로 승진했다. 치안감 시절 경기청 제1차장, 전남청장을 지냈다.

2015년 12월 인사에서는 치안정감으로 승진해 경찰대학장을 맡았으나 2016년 11월 인사에서는 보직을 받지 못하며 공직에서 퇴임했다. 백 전 경찰대학장은 현재 법무법인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백 전 경찰대학장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찰 재직 당시 수사 분야에서 일했었고 퇴직 후 변호사로 일하면서 경찰 수사와 관련해 느낀 점도 많았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경찰 수사 업무를 잘 이끌고 싶다”고 공모 지원 이유를 밝혔다.

경찰청 수사과장, 경찰 수사연수원장 등을 지낸 그는 국수본 출범 때부터 경찰 조직 안팎에서 초대 본부장감으로 이름이 거론됐다. 또 경찰의 업무 특성을 잘 꿰고 있어 수사 전문성을 갖춘 데다 현재 경찰 현업에서 벗어나 법조인으로 활동 중인 외부 인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초대 본부장
상징성 고려

한 경찰 관계자는 “초대 국수본부장은 외압에 흔들리지 않는 독립성을 갖춘 동시에 3만명에 달하는 수사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만큼, 외부 인사 중에서도 전문성을 갖춘 경찰 출신이라면 적임자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정렬 변호사 = 이 변호사는 1991년 10월 제3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4년 2월 사법연수원 23기를 수료했다. 1997년 2월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판사로 임관한 후 2013년 6월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로 퇴임했다.

이 변호사는 서울남부지법 판사로 근무하던 2004년 5월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모씨에 대해 “병역법상 입영 또는 소집을 거부하는 행위가 오직 양심상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서 양심의 자유라는 헌법적 보호 대상이 충분한 경우에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해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는 2013년 층간소음으로 이웃집과 갈등을 빚다 재물손괴 혐의로 벌금 100만원 형사 처벌을 받기도 했다. 
 

▲ 경찰청 ⓒ박성원 기자

다음 해 2월10일 서울지방변호사회를 통해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에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다. 하지만 대한변협 산하 등록심사위원회는 4월6일 회의를 열어 이 전 부장판사에 대한 변호사 등록 부적격 판정을 내린 뒤, 변호사 등록 거부 사실을 4월21일에 통지했다.

등록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을 포함해 9명으로 구성됐다. 이 중 6명이 찬성해야 변호사 등록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정렬 전 부장판사의 경우 심사위원 중 변호사 등록에 찬성한 위원이 5명, 반대한 위원이 4명이었다. 결국 찬성 위원 1명이 모자라 부결돼 변호사 등록이 거부됐다.

이후 법무법인 동안의 사무장으로 채용됐고, 2014년 6월 전국 행정 서비스 전문사무직 근로자 노동조합에 노조원으로 가입했다. 부장판사 출신이 변호사가 아닌 로펌 사무장으로 활동한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이력 보니…
변호사 넷

이 변호사는 2018년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꼭 민주공화국이어야 하느냐. 문재인 대통령이 왕조를 여시는 게 어떻겠냐는 제 개인적인 바람을 말씀드린다”고 하는 등 노골적으로 정치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외에도 2011년에 부장판사로서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하는 패러디물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됐으며 법원으로부터 서면 경고를 받기도 했다.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된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복직 소송 합의 내용을 공개해 정직 6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이세민 전 충북경찰청 차장 = 괴산 출신인 이 전 차장은 청주고등학교(53회)를 졸업한 뒤 경찰대 1기생으로 입학해 1981년 경위로 경찰 생활을 시작했다. 지난 2010년 충북청에 몸담으며 ‘경찰의 별’인 경무관으로 승진했다. 지역 경찰 출신 중 최초로 경무관으로 승진한 사례로 뽑혀 지역사회에서 화두가 되기도 했다.

그는 청주 흥덕경찰서장·상당경찰서장, 충주경찰서장, 경찰청 수사심의관·수사기획관, 경찰대 학생지도부장, 경찰 수사연수원장, 충북경찰청 차장 등을 역임했다. 이 전 차장은 2013년 경찰청 수사기획관 시절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성접대 의혹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외압이 있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부분 수사 관련 부서에서 근무한 이 전 차장은 고향으로 돌아와 2016년 충북청 차장을 끝으로 32년간의 공직생활을 매듭졌다. 이 중 26년은 충북에 근무해 ‘토박이 경무관’으로서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퇴임 직후 고향인 괴산군수 보궐선거 출마설이 나오긴 했으나, 현재까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이 전 차장의 지원 소식이 지역사회에 들려오자 충북 경찰 내부에서는 응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법조 출신 변호사 지원
2월 중순쯤 윤곽 드러날 듯


충북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이번 지원자 중 충북 출신은 이세민 전 차장이 유일하다”며 “경찰개혁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는 국수본의 초대 본부장인 만큼 충북에 좋은 소식이 들렸으면 한다”고 이 전 차장을 지지했다.

▲김지영 변호사 = 1972년 태어난 김지영 변호사는 5명 중 유일한 여성 지원자다. 대전 호수돈여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4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계에 입문했다. 2003년 변호사로 개업해 김·장·리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다. 또 법무법인 수호를 거쳐 법무법인 이인에서 활동했고, 2010년 법무법인 율의 변호사로 활동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과 대한변호사협회 국제위원과 북한특위 위원으로 활동했고, 여성변호사회 국제이사와 중앙행정심판위원회 위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위원으로 활동했다. 또 한국 특허정보 영업비밀보호센터를 거쳐 중소기업청 기술유출 자문 변호사를 역임했고,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기술 평가위원으로 근무했다. 

▲이창환 변호사 = 전남 완도군 출신인 이 변호사는 2000년 변호사를 개업했고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도 취득했다. 변호사로서는 주로 노동 사건을 많이 맡았다. 판사·변호사 경험이 있는 법조인이 대거 국수본부장직에 도전한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수사권 조정으로 국수본의 권한이 막강해진 데다 초대 본부장으로서 활동 반경이 넓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수본부장 자리에 매력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또 검찰과 새롭게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하는 상황이라, 검·경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는 법조인들이 자신감을 보인 것이란 시선도 있다.

내부 인사
가능성도

2년 임기의 국수본부장은 2월 중순쯤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심사를 통해 경찰청장이 1명을 추천하면 행정안전부 장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다만 공모 과정에서 적합한 인물이 없다고 판단되면 경찰 내부 발탁 가능성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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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