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 ②조직적인 은폐 의혹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김정수 기자 = 누군가에겐 공포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치 떨리는 기억의 현장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괴물 양산소’라 했다. 20여년 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그럼에도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 그들은 그곳을 ‘7사’라 부른다.
 

전주교도소가 현재의 자리, 평화동으로 이전한 시기는 1972년이다. 그로부터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7사는 최소 20년 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 실체는 여태껏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했다. 전주서 10년간 활동한 인권단체 관계자도 처음 듣는 일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베일 속
최소 20년

7사는 전주교도소 일곱 번째 사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일반사동이 아닌 특별사동으로 분류된다. 7사에는 1명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여러 개 있다고 전해진다. 운용 목적은 재소자 보호와 진정이다. 흥분 상태가 지속되거나 자해 우려가 있는 재소자들이 수용된다. 일반 재소자가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이곳서 교도관들의 가혹행위가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전주교도소를 거친 재소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7사를 알고 있었다. 20년 전 출소자부터 현재 수감 중인 재소자까지 예외는 없었다. 또 전주교도소서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이 포착됐다.

<일요시사>가 접촉한 전주교도소 출신은 인천과 부산, 영월, 전주 등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고 수감 기간도 다르다. 하지만 7사에 대해서 만큼은 공통된 증언을 내놨다.


▲자해를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재소자를 끌고 간다 ▲빛이 없는 좁은 방에 가둔다 ▲수갑을 뒤로 채운다 ▲3종 세트(수갑, 족쇄, 헤드기어)를 착용시킨다 ▲곡소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식사 시간이나 용변이 급해도 풀어주지 않는다 등이다.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7사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당하는 ‘부류’가 따로 있다고 귀띔했다. 이른바 ‘법자’들이다. 법자는 교도소 은어다. ‘법무부 자식’의 준말로 가족이나 친지 없이 오로지 법무부와 관계가 있다는 뜻에서 비롯됐다.

끌려가고 당하는 특정 부류 있다
완벽한 고립…법자와 지적장애인

증언을 종합해보면 법자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외부와 단절됐다는 것이다. 접견인이 없어 7사에서 가혹행위를 당하더라도 알릴 방법이 없다.

물론 교도소 내에서 민원을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필터링’에 가로막힌다는 게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공통된 말이다. 불리한 민원으로 판단되면 묵살하는 식이다. 면담조차 어려운 법자들에게 민원은 그림의 떡인 셈이다.

국가기관에 진정서를 제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재소자가 정확한 근거와 자료를 확보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법자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전산망’에 있다. 재소자들의 신상정보가 고스란히 기록돼있기 때문이다. 누가, 언제, 얼마나 접견을 왔는지 파악하는 건 일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법자라는 이유만으로 7사에 수용되는 건 아니다. 저마다 사유가 있다. 하지만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극히 사소한 이유를 걸고 넘어진다는 설명이다. 가장 많이 언급된 사례는 ‘떠드는 것’이었다.

장애인도 
예외 없다

재소자끼리 다툼이 있어도 7사에 수용되는 몫은 법자가 짊어진다. 접견인이 있는 재소자가 7사에 수용되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고 한다. 외부로 알려질 수 있어서다.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법자 외에 지적장애가 있는 재소자들도 주요 대상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출소자는 이를 두고 ‘완벽한 고립’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2018년 4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맞닿아 있는 청원이 게재됐다. ‘교도소 내에서 공무원의 장애인 폭행 등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전주교도소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담겨있었다.

‘정신장애를 이유로 의무과 진료를 원했던 재소자가 교도관의 거절로 항의하다가 폭행을 당했다.
 

▲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유사한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

상처가 생겼지만 (교도소 측은) 접견인이 알지 못하도록 접견을 제한했고, 보호장비를 연속 13일 이상 착용시켰다’ ‘장애인 수용자가 외부와의 접촉이 없어 고립된 상태인 것을 알고 있는 전주교도소서 수용자를 폭행해 상처가 생기고 이가 부러졌다’ 등이다.

청원인은 이 외에도 전주교도소 진정실, 보호실서 교도관들의 가혹행위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정실과 보호실은 7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또 보호장비를 징벌의 용도로 사용하고, 3일 이상 착용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청원인은 민원과 고소를 접수했지만 거기까지였다. 교도소 측이 제출한 CCTV만 확인할 수 있었고, 증거를 수집할 수도 없었다.

<일요시사>는 전주교도소 출신들의 증언과 청원인의 의혹을 뒷받침해줄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

외부 발설
주의 지시

박성철은 지난 2017년 11월 전주교도소 교도관들과 맞고소전을 벌였다. 박성철과 교도관들은 서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박성철의 진술조서에는 교도관들의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특히 박성철은 7사에 수용되면서 본격적인 폭행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진술 말미에는 ‘접견을 오지 않는 수형자들이 더 많은 폭행을 당하고 있어 외부에 알려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성철은 법자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매주 접견을 오는 어머니가 있었고, 사선 변호인도 선임했다. 그래서였을까. 전주교도소는 박성철을 외부와 차단시키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외부 접촉에 빗장이 걸렸다. 어머니의 접견이 제한된 것이다. 결국 변호인이 접견을 신청해 어렵사리 박성철을 만날 수 있었다. 변호인은 당시 처참했던 박성철의 상태를 소상히 기록해 검찰에 제출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변호인 의견서에 따르면 ▲머리에 보호 장비가 사흘 동안 채워져 코 주변에 하얀 곰팡이가 핀 점 ▲손가락과 손목이 수갑으로 꽉 조여진 탓에 피부가 벗겨지고, 빨간 자국 위에 고름이 드러난 점 ▲배에 선명한 멍자국 2개가 있는 점 ▲수술 부위에 고름이 찬 점 ▲17일 동안 손목이 묶여 있었고, 의무과에서 손이 다 썩는다며 수갑을 풀게 한 점 등 이다.

교도소 은폐 정황, 증언과 맞닿아 
사실무근이라지만…의혹 현재진행형

<일요시사>는 2018년 1월 작성된 ‘전주교도소 7사 근무일지’를 확보했다. 근무일지 내 ‘교육·지시사항’서 ‘특이수용자 관련 언행에 유의해 외부인이 아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대목이 포착됐다.

당시 7사 수용자는 박성철뿐이었다. 즉, 그의 말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외부로 새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지시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성철은 2017년 11월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그달 말에는 검찰 조사도 받았다. 고소 사건은 2018년 1월 언론에 보도됐다. 이후 전주교도소는 7사에 수용 중이던 박성철에 대한 감시 수위를 높여 더 이상 내부 사정이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교도소의 조직적 은폐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박성철은 교도관을 폭행한 혐의와 관련, 추가로 형을 선고 받았다. 반면 교도관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그의 주장은 증거불충분으로 일단락됐다.

현재 박성철은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하지만 끝내 박성철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원주교도소 관계자는 박성철의 주장은 이미 사법 절차가 완료된 사건이라며 선을 그었다. 원주교도소 측은 사법 판결을 내세워 사건의 종결을 주장했지만 7사와 관련된 의혹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타 의혹
법적 공방

지난 8월 전주교도소서 날아온 편지에는 7사서 일어난 교도관의 가혹행위가 상세하게 적혀 있었다. ‘한 재소자가 교도관에게 묶여 7사로 끌려갔다. 그러던 중 욕설을 내뱉었다. 7사 앞 꺾어지는 골목이 있다. CCTV가 없는 사각지대다. 그 재소자는 3종 세트에 묶여 대략 30대 넘게 주먹으로 머리를 맞았다.’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셈이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름을 모두 가명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jsjang@ilyosisa.co.kr>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전주교도소 입장은? “가혹행위 없었다”

-전주교도소 7사 수용동의 용도는 무엇인지.

▲보호실로 운영 중에 있다.
※ 관련 규정 :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제95조(보호실 수용)
1. 자살 또는 자해의 우려가 있는 때
2. 신체적·정신적 질병으로 인하여 특별한 보호가 필요한 때

-7사 수용동서 수용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는데.

▲7사 수용동서 수용자에 대한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일요시사>서 확보한 2018년 1월12일 전주교도소 7사 수용동 근무일지 ‘교육 지시사항’란에 ‘특이 수용자 관련 언행에 유의해 외부인이 아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문구가 확인되는데 어떤 의미인지. 또 재소자의 처우와 관련해 무언가를 은폐하려 한 것인지.

▲해당 수용자의 경우 정당한 직무를 수행 중인 직원을 폭행해 재판 및 조사 중이므로 재판에 영향을 주는 언행을 하지 않도록 근무자에게 주의사항을 당부한 내용이다.

-<일요시사>서 확보한 자료와 다수의 증언에 따르면 7사 수용동서 가혹행위 후유증으로 사망한 재소자가 있다는 의혹이 나왔는데 사실인지.

▲가혹행위를 하거나 후유증으로 수용자가 사망한 사실이 없다.

-접견자가 없거나 접견 횟수가 적은 재소자들 또는 지적 장애인을 상대로 더 많은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증언을 다수 확보했는데 사실인지.

▲수용자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장애, 나이,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