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주교도소 7사의 비밀 ①살 떨리는 증언들

손발 묶고…때리고…밥도 개처럼 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김정수 기자 = 누군가에겐 공포의 장소였고, 누군가에겐 치가 떨리는 기억의 현장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괴물 양산소’라 했다. 20여년 동안 외부로 알려지지 않은, 그럼에도 전주교도소에 수감됐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곳. 그들은 그곳을 ‘7사’라 부른다.
 

▲ 전주교도소 ⓒ고성준 기자

교도소의 존재 이유는 ‘단절’과 ‘교화’다.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재사회화하는 일을 담당한다. 하지만 국내 교도소의 기능은 교화보다 단절에 방점을 찍고 있다. 높은 담으로 인한 물리적 단절과 재소자에 대한 혐오로 생긴 심리적 거리감은 아이러니하게도 교도소를 성역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공포의 방

요새화된 교도소는 외부의 감시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됐다. 재소자들의 목소리는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했다. ‘재소자에게는 그래도 된다’는 사회적 인식은 교도소서 일어나는 부조리를 눈감아줬다. 그 결과 교도소는 재소자를 더 악랄한 범죄자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재소자를 악에 받치게 만든다’는 7사는 전주교도소 내 또 다른 사각지대다.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 있는 전주교도소는 광주지방교정청 산하 교정시설로, 형이 확정된 기결수와 미결수를 동시에 수용 관리하고 있다. 

미결수와 기결수는 1∼6사동에 나눠 수감된다. 전주는 여전히 폭력 조직의 위세가 상당하고 그로 인한 조직범죄가 많아, 전주교도소에서는 조직에 따라 사동을 나눠 재소자를 수감하기도 한다. 별칭으로 월드컵 사동과 나이트 사동으로 불린다. 이 외에 아픈 재소자들을 수용하는 병사동이 있다. 


7사는 일반사동에 속하지 않는 특별사동으로 보호실, 진정실 등으로 알려져 있다. 재소자가 자해를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 진정과 보호를 목적으로 잠시 수감하는 곳이다. 일반사동과 달리 재소자들이 항시 기거하진 않는다. 취사장 앞에 자리하며 기결수 사동과 가깝다. 

지난해 말 자신을 전주교도소 재소자라고 밝힌 표두형이 <일요시사>로 편지를 보냈다. 올해 3월까지 5개월여에 걸쳐 날아든 편지서 눈길을 끈 대목은 전주교도소 7사에 대한 언급이었다. 그는 아내를 통해 언론사, 교정본부, 법무부, 대검찰청, 국가인권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등에 전주교도소서 겪은 일과 7사에 대한 두려움을 담은 편지를 수십통 보냈다.

“7사라는 데 들어가면 죽어서 나와” “여기 7사라는 곳이 있어. 거기 들어가면 고문당하는 거야” “CRPT(기동순찰팀)가 날 건들고 꼬틀이(꼬투리) 잡고 7사에 집어넣으려고 해” “7사라는 곳 가보지는 않았지만 날 묶어 보내려 한다. 서대문 형무소 같이 빛 하나 들어오지 않는 시설에 수감(수갑) 채워 던져 놓는다” “전주교도소 7사 폐쇄하라고 하세요. 7사는 인간이 갇혀서도 짐승이 갇혀서도 안 되는 공간입니다”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보이지 않는 폭력 들리지 않는 비명
보호실 뒤에 숨은 진짜 모습 공개

전주교도소서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7사에 대한 소문에 빠삭했다. 전주의 스터디카페, 빨래방, 부산의 구치소, 인천의 다방, 영월의 당구장 등에서 만난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서로 일면식도 없으면서 마치 ‘입을 맞춘 듯’ 7사의 악명에 대해 설명했다. 

#. 교도소에 들어가자마자 7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몇몇 형님들이 거기 끌려가면 안 된다고 겁을 줬다. 어느 날 방에 누워 있는데 “살려주세요” “교도관” “주임님”하면서 악쓰는 목소리가 들려 ‘저게 7사서 나는 소리구나’ 생각했다. 운동 시간에 7사에 갔다 왔다는 놈이 바지를 벗었는데, 다리가 피멍으로 새카맸다. 손하고 발을 묶어서 어두운 곳에 던져놓는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관구실에 불려갔다가 CCTV 화면에 잡힌 무슨 덩어리를 봤다. 좁은 방에 사람이 묶인 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교도관에게 물었더니 이불 같은 걸로 가리더라. 수갑을 뒤로 채워놓고 밥 먹을 때도 풀어주질 않아 개처럼 먹는단다. CRPT들이 내게도 ‘7사에 못 보내서 한’ ‘너를 못 묶어서 한’이라고 말하곤 했다.(표두형, 전주 스터디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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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에 누워있다 보면 가끔 벽 너머로 서럽게 우는 소리가 들렸다. 소지(사동도우미)로 일하는 동안 3명이 7사로 끌려가는 모습을 봤다. 1명은 원래는 점잖은 분이셨는데 민원실서 깽판을 쳤다. 그분은 끌려갔다가 금방 나왔다. 교도관들에게 빌었다고 하더라. 1명은 CRPT하고 갈등이 생겼는데 순식간에 4명이 달라붙어서 넘어뜨렸다.

또 1명은 오우창이라고 좀 바보다. 좀 모자랐다. 얘는 조금만 떠들어도 CRPT들이 ‘7사에 보내버린다’고 윽박질렀다. 7사에 끌려갈 때는 뭘 모르니까 그냥 얌전히 걸어갔다. 갔다 오고 나면 ‘7사 안 가고 싶다’ ‘못가겠다’며 부들부들 떨었다. 우창이 부모님이 전주 남부시장서 장사를 한다. ‘내 아들이지만 전화 못하게 해주시고 잘 관리 부탁드립니다’ 하고는 영치금만 넣어주고 한 번도 찾아오질 않았다. 

어느 날에는 한 지적장애인이 다른 사람하고 싸움이 붙었다. 진짜 치고 박고 싸운 건데, 둘 중 좀 모자란 사람만 7사에 끌려갔다. 나머지 사람은 매주 찾아오는 접견인도 있었고, 영치금도 빵빵했다. 끌려간 애는 뭐 아무것도 없었고.(송재환, 전주 빨래방)

재소자들은
다 아는 곳

#. 밤에 고함소리가 들려 뭐냐고 물으면 형님들이 7사로부터 나는 소리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멀쩡한 사람이 7사에 갔다 오면 반병신이 되거나 이상해져서 나온다고들 하더라. 어릴 때 소년원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문제를 일으키는 애들에게 구속복을 입혔다. 아마 그 구속복이 전국 교도소에 보급된 걸로 안다. 

그런데 7사에선 구속복을 안 입히고 뒷수갑을 채워 포승으로 묶는다고 했다. 독방도 사고를 치거나 규율을 어기면 가는 곳이라 크게 보면 같은 맥락이지만 하는 짓거리를 보면 7사는 좀 심하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될 일을 CRPT들이 크게 만드는 식? 

그래도 7사 이야기가 바깥으로 알려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교도소는 접견인이 민원을 넣는 것에 굉장히 신경 쓴다. 그런데 연고지도 없고 면회도 안 오고 영치금도 별로 없다? (무슨 짓을 해도) 소문이 안나니 얼마나 좋겠나.(신두호, 전주 빨래방)

#. 7사에 끌려간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족이 저 사실을 알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까 생각했다.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아들이고, 남편일 텐데 그런 취급을 받고 있는 걸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꼈다. 사슬로 손을 뒤로 묶고, 발을 묶은 뒤 다시 둘을 연결해 사람 몸을 활처럼 만든다고 했다. 그 상태로 있다 보면 사람이 말 그대로 미쳐버린다. 소리를 안지를 수가 없는 상황이 된다.(전철환, 인천 다방)

#. 2000년, 2003년에 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취사장 앞쪽으로 걸어가다 보면 7사가 있었다. 우리끼리는 ‘먹방’이라고도 불렀다. 빛이 잘 들지 않고 어두워서, 또 그 안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해서. 벽은 자해를 하지 못하도록 스티로폼 같은 푹신한 재질로 덧대놨다. 그런 방에 갇히면 손에는 수갑을, 발에는 족쇄를, 머리에는 헤드기어 같은 걸 채우고 씌운다. 3종 세트라는 말을 쓸 거다, 요즘엔.(강기동, 영월 당구장)

전주교도소 출신들은 7사에 대해 ▲자해를 하거나 난동을 피우는 재소자를 끌고 간다 ▲빛이 없는 좁은 방에 가둔다 ▲수갑을 뒤로 채운다 ▲3종 세트(수갑, 족쇄, 헤드기어)를 착용시킨다 ▲곡소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지적능력이 떨어지거나 접견인이 없는 재소자가 일반 재소자에 비해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식사 시간이나 용변이 급해도 풀어주지 않는다 등을 공통적으로 언급했다. 

고함 소리
3종 세트

소문의 실체는 2017년 교도관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며 전주교도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재소자와 그의 어머니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재소자 박성철은 CRPT가 “니 어미를 생각하라”는 등 어머니를 언급한 말에 화가 나 창틀 사이로 그의 눈을 찔렀고, 그러자 CRPT 4명이 방으로 한꺼번에 들이닥쳐 머리를 바닥에 찧고 발로 옆구리를 때렸다고 주장했다. 


박성철은 2017년 11월 전주교도소 CRPT들을 독직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그는 고소 이후에도 CRPT들이 자신을 주먹과 무릎으로 때리고 2주 넘게 수갑을 세게 조이는 등 보복행위를 했다고 주장했다. CRPT들은 오히려 박성철에게 폭행을 당했다며 맞고소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진술 조서 등에 따르면 박성철은 CRPT들과 충돌한 이후 7사에 수감됐다. 그는 “교도관 폭행에 대해 접견 금지와 일반사동 대신 7사동(보호실)서 지내도록 금치 45일의 징벌 처분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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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최소 10일 이상 7사에 수감돼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그동안 자해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른바 3종 세트를 착용한 채 생활했고 3차례에 걸쳐 CCTV가 없는 복도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 의견서 등에 따르면 박성철이 수갑 등 3종 세트를 차고 있던 기간은 17일에 이른다.

박성철의 어머니 서두옥씨는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접견이 막혀서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너무 걱정돼서 변호사에게 접견을 가달라고 부탁했다”고 당시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박성철에 대한 접견은 한 달 이상 제한된 상황으로 가족조차 그의 상태를 살필 수가 없었다.

변호사가 만난 박성철의 상태는 처참했다. 변호사가 접견을 가기까지 10일가량 교도소서 수도를 막아놓아 그 사이 그는 전혀 씻지 못한 상태였다. 변기에도 용변이 둥둥 떠다닐 지경이었다. 3~4일간 헤드기어를 쓰고 있어서 양코 주변으로 하얀 곰팡이가 가득했다. 

손목에 수갑, 다리에 족쇄를 착용한 상태로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마룻바닥에 방치돼있었다. 아침마다 수갑을 꽉 조이는 바람에 손목에는 고름이 낭자했다. 자료에는 전주교도소 의무과 주임이 ‘(박성철의) 손이 다 썩는다’며 수갑을 풀게 했다는 부분도 있다.


출소자들 증언 대부분 같아
2017년 소송 과정에서 확인

박성철은 CRPT들이 자신을 제압하는 과정서 사망한 재소자를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CRPT들이 발목에 무언가를 찔러 넣으면서 ‘안태윤이 후유증으로 죽었다’며 항복하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해당 진술은 박성철이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서도 나온다. 

당시 진술조서에 따르면 “한두원 교위가 ‘죽은 안태윤이도 나한테 많이 당했다. 너도 당해봐라’라고 말하면서 아킬레스건 쪽에 스테이플러 같은 것을 찔러 넣었다”는 부분이 있다. 또 “많은 재소자들이 교도관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고 있다. 사실 접견을 오지 않는 재소자들이 더 많은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2018년 1월에도 박성철은 7사에 수감됐다. 7사에 수감된 재소자는 박성철뿐이었다. 당시 7사 근무일지에 따르면 박성철은 “몸이 언 것 같다. 너무 추워 한숨도 못 잤다. 몸 왼쪽이 마비되는 느낌이 온다. 얼굴 한쪽에 경련이 일어난다”고 호소했다. 또 저녁 시간 내내 수갑을 뒤로 차고 있던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7사에 수감된 경험이 있는 최상익도 “7사는 문제수를 수용한다는 미명 하에 별도로 만든 방이다. 모든 공간이 폐쇄돼있고 하나 있는 창문도 벽을 향해 나 있어 밀실이나 다름없는 곳”이라며 폐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CRPT들이 반말과 욕설 등으로 재소자들을 자극하고, 재소자들이 화를 내면 보디캠을 켜서 그 부분만 촬영하곤 했다”고 주장했다. 수갑과 족쇄 때문에 손목과 발목에 고름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치료는 전혀 없었다고 덧붙였다. 

박성철의 어머니 서씨는 “7사에 갔다 온 재소자들은 손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수갑을 어찌나 조여 놓는지 손목에 상처가 났다가 아물기를 반복해 나중에는 흉이 남는다. 7사의 표식”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 원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박성철을 부산구치소 화상접견을 통해 마주했다. 그는 3년이 지났음에도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부유물이 둥둥 떠다니던 변기” “구둣발로 밟혔다” “모포도 없이 냉골의 바닥서” “수갑을 꽉 조여서” 등의 말을 했다. 이어 “나는 죄를 지어 교도소에 들어왔다. 내가 나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개처럼 짓밟는 건 너무하지 않나?”라고 토로했다.

같이 때려도
한쪽만 처벌?

당시 전주교도소는 박성철의 주장에 “집단폭행과 가혹행위는 전혀 없었다”면서도 “문제의 독방에는 CCTV가 없어 당시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고 답한 바 있다. 박성철과 전주교도소 측의 맞고소는 박성철이 교도관 폭행 혐의 등에 대해 형을 추가로 받는 것으로 끝났다. 박성철이 고소한 CRPT들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처분됐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이름은 모두 가명 처리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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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s0814@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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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