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6.18 12:02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끝이 매섭다. 성남FC에 후원금을 낸 기업을 발판 삼아 ‘윗선’을 겨누고 있다. 2018년 고발-경찰의 불송치-고발인의 이의신청-수사무마 의혹-재수사 등 우여곡절을 겪은 사건이 검찰에 이르러 마치 쾌속열차를 탄 듯 질주하는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방탄조끼에 균열이 가고 있다. 이 대표는 대선 패배 이후 3개월도 안 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대선에서 진 후보는 일정 시간 정치권에서 사라진다는 일종의 관행을 뛰어넘은 행보였다. 당 대표 선거에도 나서 투표율은 낮았지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갑옷 입고 방어했지만… 금배지와 당 대표 간판, 여기에 민주당에서 밀어붙인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숱한 의혹을 받아온 이 대표를 지킬 최후의 보루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조직 정비를 마친 검찰이 수사 속도를 높이면서 이 대표는 벼랑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으로 쌍방울그룹이 수사 선상에 올랐고 최근에는 이 대표의 측근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은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임 중이던 2018년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은 변호인들에게 쌍방울그룹의 전환사채 등을 활용해 거액의 수임료가 대납됐다는 내용이다. 쌍방울그룹 수사 과정에서 이 전 부지사의 뇌물 수수 의혹이 불거졌고 결국 그가 구속되면서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도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수사가 급물살을 타는 중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으로 재임 중이던 2015~2017년 두산건설, 네이버 등 6개 기업이 성남FC에 후원금을 내고 민원을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앞서 검찰은 두산건설 전 대표를 뇌물공여 혐의로, 전 성남시 전략추진팀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두산건설은 성남FC에 55억원 상당의 광고 후원금을 내고 그 대가로 2015년 두산그룹이 소유한 분당구 정자동 병원 부지 3000여평을 상업용지로 용도변경 받았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은 이들을 기소하면서 전 성남시 전략추진팀장이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 대표, 정책실장이었던 민주당 정진상 당 대표 정무조정실장과 공모했다고 공소장에 적시했다. 그러면서 두산건설 외의 5개 기업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당초 경찰은 두산건설 외에 5개 기업에 대해서는 ‘혐의 없음’ 처분한 바 있다. 두산건설 전 대표 기소 검, 네이버로 수사 확대 5개 기업 중 주목도가 높은 곳은 네이버다. 다른 기업과 달리 ‘우회 지원’이라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성남FC에 후원금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사단법인 희망살림’에 40억원의 후원금을 냈고, 희망살림은 성남FC에 광고비 명목으로 39억원을 지급했다. 이후 네이버는 정자동에 제2사옥 신축 허가권을 따냈다. 대가성 의혹이 불거지는 대목이다. 2015년 5월19일 성남시와 네이버, 희망살림과 성남FC는 ‘빚 탕감 프로젝트 참여와 확대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이날 4자협약식에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과 김진희 당시 네이버 I&S 대표, 곽선우 당시 성남FC 대표, 그리고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이 희망살림 상임이사 자격으로 참석했다. 협약의 골자는 ▲네이버가 희망살림에 2015~2016년 2년간 4회에 걸쳐 10억원씩 총 40억원의 후원금 지급 ▲희망살림이 성남FC에 19억5000만원씩 2년간 39억원을 메인 스폰서 광고비로 지급 ▲성남FC가 ‘롤링주빌리’ 로고를 메인스폰서 광고로 표출 등이다. 네이버의 후원금이 희망살림을 거쳐 성남FC의 광고비로 가는 구조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네이버와 성남FC 사이에 있던 희망살림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김웅 의원이 “저소득층 경제자립을 위한 법인이 갑자기 2년간 네이버로부터 40억원을 후원받았다”며 “네이버가 희망살림을 이용해 성남시에 뇌물을 줬다는 걸 누가 반박하겠는가. 희망살림은 뇌물 퀵배송업체 아닌가 싶다”고 지적하면서 크게 부각됐다. 두산 잡고 그 다음은? 여기에 오세훈 서울시장은 희망살림이 네이버로부터 후원금을 받아 성남FC 광고비로 사용한 것을 두고 “누가 봐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며 “국감 이후에 자세히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감사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네이버에 집중됐던 의심의 눈초리가 희망살림으로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2012년 6월21일 설립된 희망살림은 ‘복지제도에서 소외된 저소득 가구의 경제적 자립과 기부문화 확산을 통한 공동체 의식 함양에 이바지함’을 사업 목적으로 삼고 있다. 그 일환으로 ▲저소득 취약계층 대상 금융복지상담 사업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기부금 사업 ▲그 밖의 법인의 목적 달성에 필요한 사업 등을 영위하겠다고 명시했다. 2019년 12월 롤링주빌리로 법인명을 변경 등기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에서 희망살림이 부각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성남FC에 광고비 명목으로 39억원을 지급한 게 본래의 사업 목적과 전혀 결이 다르다는 것. 2015년 언론 보도에 따르면 희망살림은 2014년 4월부터 2015년 1월까지 대부업체 기부 등으로 51억여원어치의 부실채권을 소각했고 이로 인해 약 800명이 빚에서 벗어났다. 다시 말하면 네이버가 낸 후원금을 원래 목적에 따라 사용했다면 최소 수십명에서 수천명이 ‘빚 탕감’의 혜택을 볼 수 있었다는 뜻이다. 희망살림이 목적 사업을 뒤로하고 성남FC 유니폼에 ‘롤링주빌리’ 로고를 노출하는 데 2년간 39억원을 쓴 것을 두고 끊임없이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석연치 않은 점은 홍보를 위해 광고비를 들여놓고 ‘기부금품 모집등록’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부금품의모집및사용에관한법률 4조(기부금품의 모집등록)에 따르면 1000만원 이상 기부금품을 모집하기 위해선 행정안전부 장관 또는 지자체장에게 모집·사용계획서를 등록해야 한다. 10억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은 행안부, 이하는 지자체에 등록하도록 돼있다. 목적 잊고 다른 용도?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희망살림은 2012년 설립 이후 2019년까지 2015년을 제외하고 단 한 차례도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았다. 2015년은 희망살림이 성남시·네이버·성남FC 등과 4자협약을 맺은 해다. 그마저도 네이버로부터 받은 돈은 후원금이 아니라 ‘법인회비’ 명목으로 처리됐다. 당시 희망살림 대표였던 이헌욱 전 GH(경기주택도시공사) 사장은 2015년 3월4일부터 그해 말까지 기부금품을 모집하겠다고 신청했다. 그리고 같은 해 4월7일 사임했다. 이 전 사장이 사임한 날 희망살림 대표로 취임한 김재욱 목사는 대표자만 바꿔 다시 신청했다. 희망살림이 2016년 4월 서울시에 제출한 ‘기부금품 모집 및 사용명세 보고서’에 따르면 모집금액은 4180만원으로 확인된다. 2015년 3월부터 그해 말까지 약 9개월 동안 기부받은 금액이다. 희망살림은 이 중 ▲부실채권 매입 2266만원 ▲채무자 상담 및 교육 1225만원 ▲제도개선 운동 및 캠페인 598만원 ▲모집비용(운영·관리비 등) 91만5200원을 사용했다. 흥미로운 점은 그 시기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한 또 다른 ‘롤링주빌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2015년 8월27일 설립된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다. 사단법인 희망살림, 바뀐 이름인 사단법인 롤링주빌리와는 별개의 조직으로, 세간에는 ‘주빌리은행’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명예은행장을 맡은 적이 있고, 현재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이 명예은행장으로 돼있다. <일요시사>가 단독으로 입수한 ‘롤링주빌리 서울시 기부금품 모집 등록 내역(2015~2021)’에 따르면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는 2015년(10월30일) 제윤경 전 의원, 2017년(1월25일)과 2018년(2월22일), 2019년(2월25일) 유종일 원장을 대표자로 기부금품을 모집하겠다고 등록했다. 4자 협약 후 우회지원 비영리단체 또 있다? 2020년(2월21일)과 지난해(2월25일)는 설은주 현 희망살림 대표가 대표자로 명시됐다. <일요시사>가 확인한 ‘2015년, 2017~2021년(2016년은 모집기간이 겹쳐 없는 것으로 추정) 모집등록증·사용계획서·사용명세서’ 등을 보면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는 기부금품을 꾸준히 모집한 것으로 확인된다. 모집 목적은 ‘장기연체 부실채권을 매입해 채무자 구제, 채무자 중심의 금융 환경을 위한 토론회, 캠페인, 금융소비자 교육 등을 추진’으로 돼있다. 2015년(10월30일~2016년 10월29일) 3억7754만7288원, 2017년(1월25일~2018년 1월24일) 1억4661만2534원, 2018년(2월22일~2018년 12월31일) 5650만4263원, 2019년(2월25일~2020년 2월24일) 7166만9178원 등을 모았다. 지난해에는 2월25일부터 올해 2월24일까지 8억7000만원을 모집하겠다고 목표액으로 등록하면서 모집비용으로 1억2600만원을 사용하겠다고 기재했다. 사단법인 희망살림(롤링주빌리)이 존재하는데도 불구하고 같은 이름의 비영리단체가 만들어진 점, 비슷한 일을 하고 있는데 사단법인은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고 비영리단체는 진행한 점 등에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희망살림의 경우 2015년에만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신청한 점이 의아하다는 반응도 나왔다. 희망살림과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유순덕씨는 “가계부채의 심각성과 부실채권 시장의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희망살림에서 먼저 부실채권 소각운동을 시작했다”며 “하지만 (일처리를 위해서는)이사들이 계속 모여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점 때문에 사단법인에서 하기에는 힘들었다. 그래서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를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교수님들께 금융시장이 잘못됐다는 걸 알리면서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이거는 필요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우선 성남시민을 상대로 부실채권 소각 운동을 시작했던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유종일 원장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명예은행장을 맡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2015년 12월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유종일 박사님과 주빌리 은행 공동은행장인 거 아시죠?”라는 글을 올린 적 있다. 유 이사는 “명예은행장은 명예직일 뿐 운영에 관여하거나 이사회에 참석하는 등의 권한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부금품 모집등록과 관련해서는 “서울시에 확인해본 결과 희망살림의 경우 2012~2014년, 2016~2019년 기부금품 모집등록을 하지 않은 게 맞다. 2020년부터 다시 등록했다”며 “2015년에는 따로 사업을 하겠다고 신고한 걸로 알고 있다. 그 당시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네이버 때문에 한 게 아니라 사업계획서를 따로 낸 것 같다”고 밝혔다. 같은 이름 다른 목적? 성남공정포럼 관계자는 “사단법인과 비영리단체는 설립 과정이나 운영 방식, 비용 처리 등에 있어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일반적으로 사단법인이 비영리단체에 비해 엄격한 관리를 받는다는 것”이라며 “사단법인이 있는데도 굳이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기부금품을 모집한 이유에 대해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영리단체 롤링주빌리의 경우 롤링주빌리로 고유번호증을 받아놓고 주빌리 은행이라는 실체 없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며 “수사당국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세계 핵전쟁이 임박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계속해서 엄포를 놓고 있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가 핵을 사용한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며 “(핵전쟁이 시작되면)아마겟돈이 올 것”이라고 응수했다. 세계 핵전쟁이 실제로 발발한다면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긴 할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핵전쟁에 대비한 현재 한국 정부의 처세술은 ‘전무’한 상태다. 인류는 ‘인류 종말’에 대한 걱정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문명을 이룩한 이래 천적이 없어진 인류가 스스로에게 엄격한 경고를 날려온 것이다. 자연재해로 인해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말하는 ‘기후종말론’부터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걱정하는 ‘AI 종말론,’ 우주 소행성과의 충돌로 지구가 폭발할 것이라 믿는 ‘소행성 충돌론’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히로시마 2000배 다행히도 이 같은 종말론들은 모두 ‘낭설’로 치부될 만큼 당장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인류의 안위를 걱정할 만큼 실질적인 위협이 크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낭설이 하나 있다. 핵전쟁으로 인류가 멸종될 것이라 믿는 ‘핵전쟁 종말론’이다. 우크라이나전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러시아가 ‘핵전쟁’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탓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며 벌어진 ‘우-러 전쟁’ 초기만 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금방 패할 것으로 보였다. 약 70배에 달하는 군비 지출 규모, 100배가량 차이 나는 공군력과 해군력 등 모든 지표는 우크라이나의 ‘조기 패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우크라이나는 선전 중이다. 수도 키이우를 사수하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똘똘 뭉쳐 저항하고 있고, 세계 각국에서 의용군이 참전하며 힘을 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이런 선전을 예측하지 못했던 나라에는 러시아도 포함된다. 몇 주 내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선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군 수뇌부를 교체하고 추가 징집 명령을 내리는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지만, 상황은 점점 암울해져만 간다. 그러던 중 푸틴 대통령을 ‘대노’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이달 초, 우크라이나 군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인 ‘크림대교(케르치해협대교)’를 폭파시킨 것이다. 현지 매체들은 이를 두고 우크라이나가 푸틴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평가했다. 크림대교가 푸틴에게 보급로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2014년, 푸틴은 크림반도를 강제합병했다. 크림반도 사태는 냉전시대 이후, 처음으로 러시아의 영토가 넓어진 사건이다. 이는 전 세계에서는 푸틴의 ‘악행’으로, 러시아 내에서는 푸틴의 ‘공적’으로 기록된 바 있다. 푸틴 대통령 스스로도 ‘크림반도 강제 점령’을 본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로 언급해왔다. 푸틴 대통령은 크림반도를 합병하자마자 러시아 본토와 크림반도를 잇는 크림대교 건설을 추진했다. 총 5조원 가량 들어간 이 공사는 푸틴의 ‘유도 상대’라 알려진 최측근 재벌이 맡아 수년 만에 완성시켰다. 푸틴 대통령은 다리 개공식에서 직접 트럭 운전을 해 다리를 건너가는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 건설을 자축했다. 크림대교 폭파 후 심각해진 우-러 상황 핵 누르면 나토 참전 불가피 ‘3차 대전’ 러시아의 자존심이자 러시아군의 주요 보급로가 파괴되자 푸틴 대통령은 전격적인 ‘피의 보복’을 감행했다. 지난 10일 오전(현지시각) 러시아는 키이우와 중남부 지역, 서부 지역 등 우크라이나 전역에 75개 미사일을 발사했다. 현지 취재진은 전체적인 피해 규모는 파악할 수 없지만, 키이우에서만 적어도 네 차례 큰 폭발이 발생했고 최소 19명이 죽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매체 BBC는 “초기 일부 폭발은 키이우 중심부에서 발생했는데 이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전쟁이 시작된 후로 키이우 중심부가 공격을 받은 것은 처음”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전례 없던 보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은 “(이번 폭격은)에피소드 1화에 불과하다”며 추가 보복 계획을 시사했다. 추가 보복 계획에는 ‘핵무기 사용’도 배제되지 않은 모양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대국민 방송 연설에서 “러시아의 영토가 위협받을 경우, 국익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가용한 모든 수단을 지체 없이 동원할 것”이라며 “이는 허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모든 수단’에 핵이 반드시 들어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푸틴 대통령의 충격적인 연설을 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푸틴의 발언이 허세가 아님을 재차 확인해줬다. 그는 “푸틴이 전술핵이나 생물무기 또는 화학무기를 말할 때는 농담을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핵 위협은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러시아가)핵무기를 사용했을 때 아마겟돈으로 끝나지 않게 할 능력 같은 것은 없다”고 덧붙였다. ‘아마겟돈’이란 성경에 등장하는 ‘인류 종말 전쟁’이다. 성경 내용에 따르면, 아마겟돈 후 현 인류는 종말을 맞이하고, 신이 ‘새 인류’를 창조한다. 푸틴은 한다? 아마겟돈 공포 군사 전문가들은 바이든의 ‘아마겟돈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였다. 저 정도로 ‘센’ 발언이 구체적인 보고 없이 가능하겠냐는 분석 때문이다. 그동안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무수히 많은 예측을 쏟아냈고, 대부분 사실로 귀결됐다. 언론은 그의 예측이 맞아들어갈 때마다 바이든에게 보고된 미군의 정보가 알려진 것 이상으로 정확하다고 분석했다. 안보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핵전쟁 가능성을 직접 시사한 이면에 ‘러시아의 핵사용 징후 보고’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지난달 푸틴의 핵 발언 이후, 미국은 러시아의 핵을 찾아내기 위해 미군 위성과 정찰기를 총동원하고 있다. 미 정치 일간지 <폴리티코>는 백악관 인사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러시아를 전보다 더 밀착해서 감시하고 있다”며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해당 매체 보도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우주와 공중 모두를 감시 대상에 넣고 있으며 핵무기 예상 배치 지역에 상업용 위성까지 동원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을 시사하고 있는 러시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핵탄두를 갖고 있다. 신뢰도가 높은 매체 중 하나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러시아가 보유한 핵탄두가 총 7454개라고 보도했다. 이 중 전략 핵탄두는 2565개, 비전략 핵탄두는 1830개, 비축 핵탄두는 2889개다. 위력도 상당하다. 지난달 20일(현지시각) 러시아는 미사일 ‘사르마트’를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사르마트는 '악마의 미사일'이라 일컬어지는 대륙간탄도미사일로, 최대 18000km를 날아갈 수 있는 초장거리 미사일이다. 군 전문가 한 목소리 이날 사르마트에 장착된 핵탄두의 위력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리틀보이’의 약 2000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텍사스주 전체나 프랑스 영토 전체를 순식간에 증발시킬 수 있는 위력이다. 러시아는 현재 가장 많은 수의 핵탄두를 만들었을뿐더러 초경량 기술까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제’ 핵무기가 우크라이나에 떨어지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근 국가들 또한 피해를 보게 된다. 폭탄 자체의 위험만큼 치명적이라 평가받는 낙진 피해가 접경 국가들에게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며 러시아의 동향을 살피고 있는 이유다. 접경국에 대한 피해가 현실화된다면 세계 전쟁으로 확전될 가능성이 높다. 핵 사용을 걱정하고 있는 접경국이 모두 군사공동체인 ‘나토(NATO)’ 회원국이기 때문이다. 나토는 경제적, 정치적 색채를 거의 띠지 않는 대신, 강력한 군사적 색채를 띤다. 나토 헌장 제5조에는 “어느 일국에 대한 무력 공격을 모든 회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적혀 있다. 즉 나토 회원국에 대한 낙진 피해는 회원국 전체의 피해로 인식되는 것이다. 비록 나토 회원국은 아니지만, 이 위험에서 대한민국 또한 자유로울 수 없다. 서방 세계에 대항해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 나라 중 북한도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향력 확장을 억제하기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은 ‘반미’ 블록화를 모색해왔다. 그리고 이 블록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 북한과 대한민국은 크고 작은 전투를 지속하며 긴장 상태를 유지해왔다. 양측의 국력 격차가 점차 차이 날 무렵인 1980년대, 북한은 군사력에서라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핵개발을 시작했다. 한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억제시키려 노력했지만 끝내 실패했다. 정부 처세? “사실상 없다” 전술핵, 사드 등 무용지물? 그 결과, 북한은 현재 상당한 수준의 핵무기를 보유했다고 평가받고 있고, 이는 한국을 괴롭히는 만성적인 근심거리로 자리 잡았다. ‘북핵’이라는 고질병은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형태로 발현됐다. 비교적 강경 노선을 취하고 있는 보수정권이 들어설 때는 더욱 그랬다. 북한은 본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늘 무력 시위를 펼쳤고, 반응이 없으면 ‘더 센’ 무력 시위를 보여줘왔다. 최근 선을 넘는 위협 비행이나 일본 국경 인근에 발사한 미사일이 대표적인 예다. 윤석열정부도 굴하지 않았다. 전술핵 재배치를 계획하고있는 것이다. <일요시사>와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최근 논의되고 있는 ‘전술핵 재배치’가 실제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있었던 저수지 미사일 발사에 정부가 크게 놀란 상태”라며 “저수지에서 미사일을 발사하면 사전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만일 저 주장(저수지에서 미사일 발사)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미사일이 발사된 후 대비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술핵 재배치 의지에 대해서 “알려진 것보다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전술핵 재배치는 그 자체로 ‘무력의 평등’을 가져오는 의미가 있는 만큼 효과적인 대응 수단이 될 것”이라 전했다. 그러나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에는 미국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일요시사>는 용산에서 근무 중인 군인에게도 비슷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실상 핵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드가 유일하다. 그러나 잘 알려진 대로 사드 요격으로 북핵을 완전히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며 “전술핵을 재배치한다고 해서 핵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그냥 같이 사용하겠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북한이 ‘핵무기 사용’ 단계까지 넘어가면 그 이후 군사적 대응법은 사실상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따라서 외교 안보 전문가들은 ‘핵 대응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라고 일침한다.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한반도에 핵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게 미국이다. 전술핵을 용인해줄 리가 없다”며 “갖다 놔도 무용지물이겠지만 북한 무력 시위에 명분만 더 만들어주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푸틴이 핵을 사용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 이거는 말이 안 되겠지만 ‘핵 사용’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것을 가능하다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사용 전 대처해야 그는 통화 말미에 “전술핵 재배치와 사드가 모두 전문가들에게 ‘실익 없는 안보’라고 평가받는 상황에서, 끊임없는 잡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다분히 정치적으로 보인다”고 하소연했다. 핵전쟁 위험이 엄습해오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필사적으로 처세술을 연구해야한다. 다만 그 처세술은 핵 사용 ‘후’가 아닌 ‘전’이어야 할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또 얽히고설켰다. 당이 안정화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도 잠시다. 이제는 차기 당권주자들이 서로를 때린다. 약점만 파고들면서 당권을 잡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아픈 곳만 계속 할퀴자 상처만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하루도 조용하지 않은 날이 없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가처분 2라운드에서 패배했다. 국민의힘이 당헌·당규를 개정해 비대위를 꾸린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가처분 리스크를 털어내고 당이 안정화하는 과정으로 가고 있지만 당권주자들의 물밑싸움이 시작됐다. 국정감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전당대회 모드로 접어들면서 서로를 향한 견제가 치열하다. 복잡한 이해관계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초미의 관심거리다. 이 전 대표가 떠난 자리를 과연 누가 채울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일각에서는 당권 경쟁이 과열돼 또 다른 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차기 당 대표는 차기 총선서 막강한 공천권을 쥐게 되는 권력을 갖게 된다. 게다가 총선에서 승리를 거머쥔다면 공을 인정받아 차기 대권주자 후보까지 보장되는 자리다. 당권주자끼리 일찍부터 신경전을 펼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당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들은 직간접적으로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김기현·안철수·조경태 의원 등이 당권 도전 의지를 밝혔다. 원외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 권영세 통일부 장관 등이 거론된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현실적으로 올해 안에는 개최가 불가능하다. 국정감사가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정기국회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한 탓이다. 또 전대 준비까지는 다소 시간이 소요되는 이유도 있다. 현재 당권주자들이 전대 개최를 요구하는 시기는 차이가 난다. 이런 탓에 견제 수위도 상당히 높다. 우선 원내 인물을 당권주자로 밀어주려는 모양새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이 지난 13일 보수 텃밭인 TK(대구·경북)를 찾아서다. 정 비대위원장은 TK를 찾은 자리에서 첫 현장 비대위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TK를 국민의힘 뿌리이자 심장으로 거론하며 민심 다지기에 나섰다. 원내 주자들도 일찌감치 당권 도전 의사를 밝히면서 TK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다. 현재까지 도전 의사를 드러낸 인물은 세 명이다. 앞서 출사표를 던진 김 의원은 최근 현안들에 빠짐없이 훈수를 두고, 차기 당권주자를 모두 견제하고 있다. 안 의원을 비롯해 유 전 의원을 때리며 세력 확장에 열을 올린다. 이 같은 행보는 김 의원 본인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그는 당내 의원들의 신뢰를 받을 만큼 호감도가 높다. 친윤(친 윤석열) 그룹과도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어 최근에는 ‘윤심’을 바짝 강조한다. 윤심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가장 강력한 원내 경쟁자로 거론되는 안 의원도 연일 저격한다. 실제로 김 의원의 SNS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다음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은 안 의원이다. 원내주자, 외부세력 모아야 원외주자, 내부세력 다져야 안 의원을 타격하면서도 자신의 뿌리가 국민의힘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으며 윤석열정부를 향한 충성심도 연일 드러낸다. 김 의원은 대선(대통령선거)과 지선(지방선거)를 지휘해본 이력으로 지도력이 어느 정도 입증돼있다. 그러나 극복해야 할 과제로 원외 지지율과 인지도가 꼽힌다. 4선의 중진인데 반해 인지도가 다른 당권주자들보다 뒤떨어진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그는 이 같은 우려에 대해 “별 의미없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로 거론된다. 김 의원의 짙은 ‘친윤’ 색채도 차후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권 의원의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캐릭터는 정권 초기 압도적인 힘을 보였으나 결국 책임론에 휩싸인 채 불명예 퇴진을 했고, 윤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됐다. 직전 원내대표 선거 역시 비윤(비 윤석열)계로 분류된 이용호 의원이 선전하면서 친윤 그룹에 대한 적잖은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김 의원이 속한 당내에서 최강자 격인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안 의원이 꼽힌다. 그는 원·내외 당권 후보군 중 ‘탑급’이다. 대선에서 단일화로 정권교체를 이뤄낸 이력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이후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 절차를 거치며 보수당에 몸담은 정치인이 됐다. 이때부터 ‘간철수’라는 꼬리표도 함께 따라다녔는데 존재감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도 내려졌다. 그는 한동안 각종 현안에서 침묵을 지켰기 때문이다. 이런 탓에 안 의원은 최근 보수 근거지를 방문하면서 타깃을 중도 보수로 삼았다. 중도 보수를 표방하면서 차기 당권주자로 자신이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존재감 어필 인지도 싸움 안 의원이 중도 보수를 목표로 설정한 이유는 자신의 국민의힘 경력이 짧은 점을 극복하기 위함으로 해석된다. 과거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이었던 그는 스스로 자신의 약점을 알고 있는 셈이다.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비윤 그룹에 속하는 주자도 함께 소환했다. 유 전 의원을 물고 늘어지면서 지속적으로 출마 뜻을 밝히라고 언급한다. 차기 전대의 투표방식이 당원 7 여론조사 3임을 감안할 때 안 의원이 비교적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탓이다. 김 의원이 안 의원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 와중에 다자구도로 전선을 확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 깔린 셈이다. 다자대결 구도가 확정될 경우, 높은 인지도를 가진 안 의원이 당내 표심이 갈린다는 점에서 유리해진다. 당내 또 다른 당권주자 중 한 명은 비윤 그룹으로 통하는 조경태 의원이다. 아직 공식적인 출마 선언을 하진 않았지만, 이달 말쯤 출마하겠다는 의지가 확실하다. 조 의원은 최근 부산 등지를 방문하면서 당원과의 스킨십을 늘리고 있다. 또 최근 기자회견에서 공매도 문제를 띄우며 중도층 흡수를 위해 노력 중이다. 청년층을 노린 행보도 눈에 띈다. 최근 청년층이 관심이 많은 ‘망 사용료’ 이슈를 띄우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지난 10일에는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겠다고 밝히면서 당 전반의 개혁 등에도 힘을 쏟을 방침이다. 그는 30대 중반에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5선을 지내고 있는 당내 중진 중 한 명으로 초선 의원들과 나이 차도 얼마 나지 않는다. 다만 지난해에도 당권 도전에 나섰으나 낮은 관심도 탓에 고배를 마신 바 있다. 약점으로는 약한 조직 기반이 꼽힌다. 비윤 그룹이 조 의원에게 얼마나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부산 지역구 의원들이 조 의원을 확실히 지지할 것인지는 지켜봐야 안다. 친·비윤 2차 대전 조 의원과 함께 비윤 그룹의 대표 주자는 유 전 의원이다. 유 전 의원은 원내가 아닌 원외 대표 주자 중 한 명으로 최근 차기 당 대표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할 때는 유 전 의원이 반사이익까지 누린다. TK에서의 지지율도 눈여겨볼 만하다. 과거 배신자 꼬리표가 점차 떨어져 가는 모양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45%로 급등한 점이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당권주자들은 유 전 의원의 높은 지지율이 ‘역선택’이라며 타격한다. 배신자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었고, 심지어는 민주당의 스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유 전 의원도 아직은 공식 출마 선언을 하지 않았지만 최근 행보를 살펴보면 출마가 임박한 것으로 점쳐진다. 현재 그는 원외에서 세력을 규합하는 중이다. 윤 대통령과 완벽하게 등을 돌리고 연일 국민의힘과 윤정부를 향해 맹폭을 가한다. 얼마 전 가처분 패배 결과를 받아든 이 전 대표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했다. 이는 이 전 대표의 팬덤을 흡수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문제는 당내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비윤 그룹이 유 전 의원에게 힘을 실어줄 지도 관건이다. 또 여당과 반대되는 목소리만 낼수록 당내 충성심 높은 세력에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점이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미 완전히 윤 대통령과 등을 돌린 사이인 탓에 당내 지원을 받기 어렵다. 그는 직전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도 초선 의원에 불과했던 김은혜 홍보수석에게 패배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대통령은 결국 쓰던 사람? 시작도 전에 서로 상처만 당시에도 유 전 의원은 김 수석에게 전체 지지율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에서 유 전 의원을 밀어주는 이가 없었다. 당시 김 수석이 현역 의원이라 5% 감산을 반영한 수치를 반영했음에도 불구하고 유 전 의원은 처참하게 깨졌다. 이런 와중에 국민의힘 당내에서는 전대 룰을 바꾸자는 목소리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현재 비율에서 당원 반영 비율을 늘리자는 방안이 제기됐는데 이는 유 전 의원에게 불리해지는 형식이다. 일각에서는 유 전 의원이 대권주자로서 몸값을 높이기 위해 미리 민심을 확인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 섞인 시선도 가득하다. 이런 탓에 유 전 의원은 원외 보수 세력뿐 아니라 당내 세력을 어떻게 끌어모으느냐가 눈앞에 놓인 숙제다. 당권주자들이 전대 시기가 정해지지도 않았는데도 서로를 물고 늘어지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정치권에서는 아예 다른 인물이 거론된다. 바로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다. 권 장관은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 내홍에 시달리고, 선대위가 폭파됐을 때 선대본부장으로서 임명돼 위기를 극복해냈던 인물이다. 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에도 부위원장을 맡아 윤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그는 신중하고 묵묵한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일 처리 역시 매끄러워 보수 진영 내 대표적인 지략가로 통한다. 성향 역시 중립적 성향으로 소통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평가까지 있다. 또 권 장관이 당권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강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인물인 만큼 권 장관이 직접 등판하는 게 충분히 가능성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차기 당권주자 중 윤 대통령의 입맛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권 장관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호흡을 여러 번 맞췄고, 윤 대통령이 다루기에도 큰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풀이된다. 이 밖에 원희룡 국토부 장관의 차출설도 하마평에 올랐다. 원 장관 역시 대선 기간 윤 대통령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 원 장관도 차기 대권을 노리는 만큼 당권 욕심이 날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는 차기 당 대표 선출을 두고 윤 대통령의 강한 의중이 반영될 것으로 전망한다. 윤핵관 대리전? 한 정치권 관계자는 “차기 당권주자들이 대권을 노리고 있고, 공천권까지 걸린 만큼 앞으로도 사활을 건 물어뜯기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윤 대통령이 이 전 대표와 갈등을 장기간 겪어온 만큼 차기 당 대표는 자신과 일치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을 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언제? 국민의힘의 전당대회 시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내년 초가 거론되고 있으나 현재까지는 정해진 게 없다. 대부분의 당권주자들은 빠르면 올해 말 혹은 내년 초를 원한다. 대체적으로는 내년 2월설이 가장 유력하다. 당권주자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도 첨예한 대립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내에서는 2월보다 더 미루자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와 안보 위기 등이 눈 앞에 펼쳐진 상태에서 당분간은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정진석 비대위원장 역시 이른 조기 전당 대회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그는 TK(대구·경북)를 찾은 자리에서 “아직 조기 전당대회 단계가 아니다”라며 조기 전당대회 개최 가능성을 일축한 바 있다. <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감사원이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고 있다. 윤석열정부 들어 검찰과 함께 정치권, 언론의 주목을 한껏 받는 중이다. 정치적 중립성·표적 감사 등 <일요시사>가 감사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짚어봤다. 언론사 카메라에 포착된 문자메시지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과 윤석열 대통령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서 여당의 내홍이 급속화됐다. 국민의힘 조수진 의원이 송주범 전 서울시 부시장에게 서울시가 동교동 김대중(DJ) 전 대통령 사저를 매입해달라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는 모습이 <일요시사>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독립기관 실제론? 지난 5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의 휴대폰 화면이 통신사 <뉴스1> 카메라에 잡혔다. 사진으로 확인된 메시지 화면에는 “오늘 또 제대로 해명자료가 나갈 겁니다. 무식한 소리 말라는 취지입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유 사무총장이 보낸 메시지로 수신인은 ‘이관섭 수석’으로 돼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으로 추정된다. 문자 내용보다는 수신인과 발신인이 관심을 끌었다. 현직 감사원 사무총장과 대통령실 관계자가 개인적으로 소통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습이 독립성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감사원은 대통령 직속 헌법기관이지만 대통령 간섭이 불가능한 독립기관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치권이 반응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현재 감사원이 감사하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등과 관련해 ‘기획 감사’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윤석열정권 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대통령 비서실과 감사원이 짜고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감사를 시도했고, 아직도 모의 중이라는 방증”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비판을 정치공세로 규정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원내대변인은 “감사원에 대한 민주당의 정치공세가 도를 넘고 있다”며 “감사원과 대통령실의 정상적인 업무를 정치공작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맞대응했다. 감사원 대변인실은 “해당 문자메시지는 오늘 자 일부 언론에 보도된 ‘서해 감사가 절차 위반’이라는 기사에 대한 질의가 있어 사무총장이 해명자료가 나갈 것이라고 알려준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문자메시지 논란 또 터져 대통령실 관계자와 소통? 윤 대통령은 지난 6일, 용산 대통령실에 출근하면서 ‘유병호 사무총장의 문자가 감사원 독립과 배치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감사원의 직무상 독립성은 철저한 감사를 위해 보장되는 장치기 때문에 거기에 굳이 그 정도 관여할 만큼의 시간적 여유도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문자메시지 논란은 감사원이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동안 감사원의 중립성 문제가 계속 불거졌던 상황에서 문자메시지가 공개돼 기름을 부었다는 분석이다. 지난 7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감사원이 대통령 국정 지원 기관이냐’고 묻는 질의에 최재해 감사원장이 “지원하는 기관”이라고 답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여기에 감사원의 표적 감사 논란이 꼬리표처럼 따라 붙고 있다. 문재인정부 관련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는 윤석열정부의 행보에 감사원이 발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탈북 어민 강제북송 사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코로나19 백신 수급 지연, 대선 ‘소쿠리 투표’ 논란 등에 대해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 문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들이다.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북한 선원 2명이 동료 16명을 살해하고 한국으로 넘어와 귀순 의사를 밝혔으나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강제추방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합동조사를 조기에 강제 종료하고 귀순 의사를 밝힌 어민을 강제로 북송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출범 초부터 조짐 보였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은 얼어붙은 현 정국에 이른바 소스를 제공했다.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북한 측 서해상에서 표류 중 북한군에 의해 사살됐다. 문정부에서는 이씨가 월북했다고 발표했지만 윤정부 들어 결론이 번복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이 사건에 관심을 보여왔다.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 통보도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서다. 감사원은 지난달 말 문 전 대통령에게 서면조사를 통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메일과 전화 등을 통해 서면조사에 응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파악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은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며 강하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지난달 30일 문 전 대통령께 감사원 서면조사 관련 보고를 드렸다”면서 반응을 전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감사원이 보낸 이메일을 반송했다. 서면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감사원은 문 전 대통령을 서면조사하려던 계획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이 서면조사 통보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한 만큼 다시 추진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감사원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하는 방안을 거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감사 과정에서 발견한 위법 사항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를 의뢰할 방침이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감사 절차를 무시하는 등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앞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감사 착수 당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감사원은 적법한 절차를 거쳐 감사를 진행했다는 입장이지만 의혹 제기는 계속됐다. 민주당 이탄희 의원이 감사원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윤정부 출범(5월10일) 이후 8월까지 감사원 감사위원회의 정례·임시회의는 모두 12차례 열렸다. 감사원장이 의장을 맡고 6명의 감사위원으로 구성된 감사위원회는 감사원의 감사 정책, 주요 감사계획, 결산, 징계‧문책 처분 등을 의결한다. 문재인정부 아킬레스건 감사원이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감사에 나선다고 밝힌 것은 6월17일인데 직전 감사위원회 회의인 6월16일 회의에서 ‘학교시설 안전관리실태’ ‘순천시·광양시·임실군·구례군 정기감사’ 등 감사보고서 4건만 의결됐다. 이 대목에서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치지 않고 감사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감사원은 “사전에 감사위원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는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감사위 의결 이후 변경사항은 사무처에 위임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문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이 기관장으로 있는 기관에 대한 감사도 추가됐다. 주로 여권 내에서 사퇴 압력을 받고 있는 기관장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국민권익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이다. 전현희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은 “국민의힘과 검찰, 감사원은 권익위원장 사퇴 압박을 위한 삼각편대 정치공작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밝혔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권익위측 유권해석을 요구하는 국민의힘, 곧바로 감사에 들어간 감사원, 유족 측 검찰 고발이 서로 연결돼 권익위원장 사퇴 압박에 이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 관련 논란은 최 원장이 사무총장으로 유 사무총장을 임명‧제청했을 때부터 예견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 사무총장은 경제성 조작 논란이 불거진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관련 감사를 담당한 바 있다. 이후 지난 1월 비감사부서인 감사연구원장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표적·정치감사 중립성 논란 ‘실세’ 사무총장 그대로 간다? 감사원은 “2020년 10월 공공기관감사국장으로 근무할 당시에 월성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감사를 통해 조직적인 감사증거 은폐 등 관계기관의 감사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국 경제성이 졸속으로 평가돼 조기 폐쇄됐다는 사실을 밝혀 원칙주의자로서의 강직한 면모를 보여줬다”고 인사 배경을 밝혔다. 윤정부 출범 이후 단숨에 감사원 2인자가 된 유 사무총장은 문정부를 상대로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 8월 감사원의 ‘2022년 하반기 감사운영 계획’이 발표되면서 노골적인 표적 감사, 정치 감사라는 비판이 일었다. 당시 계획에는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통계청 가계동향 조사 관련 통계조작 논란 등이 포함됐다. 유 사무총장은 “누가 시킨다고 뭘 하거나 하지 않는다”며 정치 감사, 표적 감사 논란을 일축했다. 지난 8월2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감사원의 공정성과 관련한 질문에 “특정 감사 사항에 대해 외부적으로 너저분한 압력도 분명히 있었다”며 “지금 정부에서 압력은 받아본 적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윤정부가 검찰과 감사원을 ‘원투펀치’로 쓰고 있다고도 말한다. 감사원이 감사를 통해 위법사항을 밝혀낸 뒤 고발하면 검찰이 사건을 이어받아 수사하는 식이다. 과거 월성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 당시 감사원의 감사 결과 발표 이후 검찰 수사가 진행됐다. 2020년 10월 감사원은 “경제성이 불합리하게 저평가됐다”는 감사 결과를 공개했다. 당시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최재형 의원이었다. 이후 국민의힘은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당분간 시끌시끌? 표적 감사 논란에 이어 문자메시지 사건까지 불거지면서 감사원 관련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6일 국감에서 “감사원은 대통령실이 지시한 모든 정치감사를 즉각 중단하길 바란다”며 “정권의 돌격대, 검찰 이중대로 전락한 감사원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jsjang@ilyosisa.co.kr>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교체되며, 당내 의원들의 입지도 대부분 달라졌다. 과거 입지를 공고히 해놨던 ‘친문’ 의원들은 본인 자리를 새로운 주류인 ‘친명’계 의원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중에는 현실을 깨닫고 흔쾌히 양보하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상황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의원들도 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요즘 한국 정치는 심할 정도로 급격히 바뀐다. 한 달 전에 죽일 듯이 싸우던 둘이 어느 날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일은 예삿일이고, 불과 일주일 전에 당 대표였던 인물이 징계를 받아 하루아침에 당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또 당내 권력 이동에 따라 ‘실세’였던 의원이 비주류로 전락하는 일도 다반사다. 화려한 데뷔 시작된 시련 실세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의원이 본인의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세였던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욱 그렇다. 비주류가 된 의원이 과거에 ‘쉽게’ 했던 일들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게 되면, 그제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박범계 의원이 요즘에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전한다. 과거 친문(친 문재인)계 핵심으로 활동했던 박 의원은 정계 데뷔 후 줄곧 굵직한 활약을 펼쳤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판사로 부임해 약 10년간 일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라는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맡기도 했다. 박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정계 데뷔가 이때 정해졌다고들 일컫는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 초 사법연수생원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뽑힌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때의 인터뷰가 박 의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 평탄치 않았던 사회생활에 박 의원은 동질감을 느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돼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않았다. 그 존경심은 2002년 정계 진출로 이어졌다. 2002년 당시 김민석 전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배신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하자 박 의원은 매우 분개하며 법원에 사표를 제출한 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을 도울 뜻을 전했다. ‘노무현 후보 대선캠프’에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박범계 정치’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며 박 의원도 자연스럽게 승승장구하게 됐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참여정부 초기 민정 제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으로 등용되며 청와대의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때 그는 여·야당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약 2년간 청와대에서 일한 박 의원은 여의도 정치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여의도 입성은 청와대 입성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공천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에서 잔뼈가 굵던 고 구논회 전 의원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6년, 구 전 의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해당 지역구가 공석이 됐다. 이 자리에 박 의원은 다시 공천받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금방 포기해야 했다. 여의도 입성 후 승승장구 장관까지 친문 입지 줄자 덩달아 비주류로 당시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후보를 위해 그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시련을 겪은 박 의원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통합민주당 인기 부진 등의 이유로 낙선했다. 또 다시 4년이 흐른 2012년, 박 의원은 제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며 드디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다. 4수 끝에 여의도 데뷔에 성공한 박 의원은 이후 맹활약하며 ‘역대급 초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등 굵직한 자리들을 꿰차며 ‘실세’로 거듭나더니, 2014년 배우 송혜교의 탈세 사건을 밝혀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스타덤에 오른 박 의원은 재선이라는 시험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 상대당 후보였던 이재선 후보를 크게 압도하고 있었고, 선거에서 15%p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여유 있게 국회에 재입성했다. 이때 그는 친노(친 노무현)에서 친문으로 계파 이동을 완료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친노 인사들이 친문으로 분류되던 흐름에 박 의원 또한 탑승한 것이다. 당시 친문 세력은 친노 세력보다 더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당내에서조차 제대로 입지를 세우지 못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친문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국회 내 의석 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민주당은 제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하며 원내 1당으로 발돋움했다. 당의 영향력이 커지자 ‘실세’인 박 의원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졌다. 박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모든 의원이 원하는 법사위원회에 들어가 간사 자리를 차지했다. 보통 법사위 간사는 중진 의원들 맡는 중책이었지만, 친문계에서 입지가 두터웠던 박 의원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재선 때 박 의원의 활약은 더 빛이 났다.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것도,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민주당 의원들의 전략을 진두지휘했던 것도 그의 재선 시절이었다. 제7회 지방선거 당시, 당 안팎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지만, 그는 당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분위기상 충분히 대전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음에도 여의도 정치를 계속 이어나간 것이다. 잊지 못하는 과거의 영광 민주당이 여당으로 바뀐 후인 제21대 총선에 앞서 그는 3선 도전을 선언했다. 이때 박 의원은 단수공천을 받으며 무경선으로 무난하게 3선에 성공했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이 원내 1당이자 여당으로 바뀐 만큼, 그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늘었다. 국회 전반기부터 박 의원은 조용히 활동하며 민주당 의원들의 활동을 측면해서 지원하다가 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측면 공격수로 등장했다. 그는 이른바 추-윤 갈등이 시작됐던 때 국정감사에서 연일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며 그의 실수를 유도했고, 추 전 장관의 입장을 국회 차원에서 전달하며 검찰 조직을 견제했다. 검찰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박 의원은 이후 추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직접 칼자루를 쥐었다. 박 의원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갈등은 주로 검찰 인사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초, 박 의원은 검찰인사를 검찰총장 측이 모르게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인사에 앞서 검찰총장과 검사 인사 논의 차 만난 박 의원은 경청하는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나 정작 정기 검찰인사는 검찰총장 측을 건너뛰었다. 사실상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문정부에 유리한 검찰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성윤·심재철 등 ‘추미애 라인’이라고 불리는 인사는 모두 살아남았고, 이들은 인사 후 자연스레 ‘박범계 라인’이 됐다. 그는 인사 단행 후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한명숙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그가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관련한 의혹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서 심의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 검찰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박범계표 한명숙 구하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박 의원은 임기 내내 문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이어나가려 애쓰다가 올해 5월 퇴임해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처럼 박 의원은 여의도 데뷔 이래 꾸준히 정치력을 늘려나갔고 친노·친문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승승장구했다. 12년 동안 굵직한 일들을 밝혀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권력의 요직에 서며 국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지난 3월 20대 대선에서 정권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 의원이었던 박 의원은 이제 야당 의원이 됐다. 바뀐 것은 정권만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뛰었던 이재명 대표가 당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친문서 친명으로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는 친문계 후보로 나왔던 이낙연 전 총리를 큰 표차로 따돌리며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이때부터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는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 친노·친문이 주류를 차지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신흥 세력인 ‘친명계’와 젊은 의원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음에도 이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친명계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당 내부 투표 결과가 그 기류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 투표는 대선 직후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는 친명계 박홍근 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박 원내대표가 친문계 박광온 의원을 제치고 당선되자 내부 분위기가 친명쪽으로 확실히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선 패배의 책임을 후보 본인에게 있다기보다 문재인정권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전당대회까지 영향을 미쳤다.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70%가 넘는 득표를 하며 당선됐고 선출직 최고위원 대부분은 친명계가 밀었던 인물들로 당선됐다. 친명계가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자 친노·친문계였던 인물들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당초 이낙연 후보를 밀었던 강성 친문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입지를 전혀 세우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주류가 비주류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비주류가 된 의원들 사이에는 박 의원도 포함돼있었다. 친문 핵심으로 활동한 세월이 긴 박 의원이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당 내부에선 이미 그가 ‘끈 떨어진’ 상태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 의원과 친명계 사이는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면서도 “그러나 전 정권에 몸담았던 인물인 만큼 이쪽(친명계) 사람들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이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가 만든 논란들이 그래서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로 돌아온 박 의원이 장관 임명 전의 국회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함께 전했다. 박 의원이 당내 권력, 더 나아가 다음 총선에서의 입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동훈 스타 만들기 일등공신? 감사원 앞 1인 시위 중 굴욕도 그런 걱정 때문일까. 박 의원은 요즘 과거에 하지 않았던 ‘헛발질’을 매일 하는 중이다. 이것이 관계자가 말한 ‘논란’이다.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헛발질은 지난 7월 있었던 한동훈 장관과의 설전이다. 박 의원은 법사위원으로서 국회 대정부질문에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박 의원은 과한 흥분을 여과 없이 나타내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중과 언론은 그의 흥분된 어투를 차분히 받아치는 한 장관을 높이 평가하며 한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박 의원은 한 장관에게 “이완규 법제처장에게 검수를 받았느냐”며 “한 장관 마음에 들면 검증하지 않고 한 장관 마음에 안들면 검증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과거 박 의원께서 근무했던 민정수석실에선 어떤 근거로 검증했느냐”며 “이 업무는 새로 생긴 업무가 아니라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해오던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본인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면 문재인정부의 인사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며 역공을 펼친 것이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박 의원은 흥분해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한 장관의 역량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박 의원은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를 다시 한번 도와줬다는 당내 비판을 들어야 했다. 헛발질은 최근에도 계속됐다. 박 의원은 최근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실시하자 이에 반발해 지속적으로 감사원을 비판했다. 그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이렇게 예의 없이 바로 시작한다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이라며 “강제 조사할 근거가 없는데 그렇게 할 만큼 하신 분들이 왜 자꾸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직격했다. 문제는 그가 1인 시위를 단행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본인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감사원 앞으로 나가 직접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현장에 해당 사건의 ‘서해 피살 공무원’ 가족인 이래진씨가 함께 등장해 소란이 일었다. 이씨는 박 의원을 향해 “당신들. 국가가 공무원이 적대 국가에 무참히 총살당하고 살해당했을 때 뭐했어?”라며 시위 피켓을 빼앗아들었다. 당황한 박 의원은 몇 차례 언쟁을 주고받다 분위기가 급격히 격앙되자 서둘러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을 두고 박 의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유족들이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는데도, 현직 의원이 이 시점에 1인 시위에 나가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빗발친 것이다. 당내 입지도 휘청휘청∼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어떤 영광을 누렸든 정치인은 미래를 그려나가야만 한다.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반전’을 도모하는 노력을 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아보인다. 그가 헛발질을 반복한다면 그에 대한 당 내부의 시각도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ingyun@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