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2025.08.21 10:30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외줄 타듯 위태롭게만 보이던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전. 결국 터질 게 터졌다. 론스타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올 때까지 판단을 보류한다는 금융당국의 입장이 발표된 것. 외줄에 한쪽다리만 간신히 걸친 형국이다. 하나금융의 고개는 푹 떨어졌다. 주가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고 투자자들의 반발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다급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즉시 간담회를 열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김 회장은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전력을 다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다. 금융당국, 론스타 대주주 적격성 “법원 판결 나올 때까지” 시가총액 10조8157억에서 9조1994억…1조6163억 감소 외환은행 인수 승인은 지난 3월11일 대법원이 유회원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외환카드 주가조작 혐의에 대해 유죄 취지의 판결을 내리면서 연기되기 시작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이 문제를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 만일 론스타에 유죄 판결이 내려질 경우 론스타는 외환은행 대주주자격을 잃을 수 있어서다. 그러던 지난 12일, 금융당국은 외환은행 인수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한나라당은 4·27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총 사퇴하는 쇄신을 단행했다. 이런 쇄신의 목소리는 원내대표 선거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내 비주류로 분류됐던 황우여 의원이 주류 안경률, 이병석 두 후보를 제치고 원내사령탑에 선출되는 이변이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비주류의 반란’으로 일컬어졌다. 창간 15주년을 맞은 <일요시사>는 취임 후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를 만나 봤다. “국민들이 준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무거운 책임감 느끼지만 최선 다할 것” 황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민들이 한나라당에 준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첫째도 민심, 둘째도 민심이라고 생각하겠다”며 “무엇보다 민심을 파악하고 떠받드는데 모든 정성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항상 초심을 가슴 깊이 새기고 당이 국민의 뜻 가운데 잘 머물러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정책을 강조했다.
요즘 영등포 일대가 시끄럽다. 이 지역을 관할하고 있는 경찰서가 성매매의 뿌리를 뽑겠다며 집장촌을 집중단속 하고 있는 것. 이에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반발하는 성매매 여성들의 시위도 날이 갈수록 격렬해 지고 있다. 이번 시위의 내용과 네티즌들의 반응을 알아봤다. 지난 17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 앞에서 성매매 종사자 모임인 한터전국연합 소속 400여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시위를 벌였다. 벌써 올 들어 5번째 시위다. 이들은 이곳을 관할하고 있는 영등포 경찰서가 약 두 달 전부터 ‘집장촌을 단속 하겠다’ ‘불법 영업 시 입건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나타내며 지난 4월1일부터 본격적으로 순찰차와 타격대를 동원시키는 등 집중 단속을 실시하자 “손님들이 끊겨 업소폐쇄 상태가 됐다”며 집중 반발하고 있는 것. 이번 시위에는 미아리, 천호동 등의 성매매 업소에서 온 여성들도 합세해서 연대투쟁을 벌이며 몸집을 불렸다. 이날 벌어진 시위에는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시위대와 경찰이 격렬히 대치했다. 흰색 소복을 입고 나타난 시위대는 바디페인팅을 한 반나체 상태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용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미래권력을 향한 ‘박근혜 예찬론’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는 가운데 그의 싱크탱크에는 각계인사들의 참여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어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서경클린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 쭉 고수 미래권력 손잡고 싶으면 ‘줄을 서시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조금씩 보폭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 이후 정치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던 그는 작년 말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또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을 맡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MB의 파격적인 ‘대우’로 유럽 3개국 대통령특사로도 활동했다. 박 전 대표는 특사 당시 “내년에는 중요한 선거들이 있고 하니 아무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신뢰와 원칙은
[일요시사=김성수 기자] 기업의 자회사 퍼주기. 오너일가가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줘 ‘곳간’을 채워주는 ‘반칙’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기업일수록 심하다. 시민단체들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지적해 왔지만 변칙적인 ‘부 대물림’은 멈추지 않고 있다. 보다 못한 정부가 드디어 칼을 빼 들었다. 내부거래를 통한 ‘일감 몰아주기’관행을 손 볼 태세다. 어디 어디가 문제일까. <일요시사>는 연속 기획으로 정부의 타깃이 될 만한 ‘얌체사’들을 짚어봤다. 동서프리마, 맥심커피 등 ‘커피명가’로 유명한 동서그룹은 총 8개의 계열사를 두고 있다. 이중 비상장 계열사로 오너일가가 대주주인 ‘성제개발’에 일감을 몰아주고 있다. 계열사와 거래하는 방식으로 실적이 거의 ‘안방’에서 나왔다. 성제개발은 자본금 5000만원으로 1986년 6월 주택 공사와 분양, 주유소임대업 등을 사업목적으로 설립됐다. 1990년 3월 유동개발에서 지금의 상호로 변경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성제개발은 오
소방서가 화재 시 불을 꺼주는 곳이라는 사실은 5세 어린 아이들도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소방서가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먼저 소방서의 업무는 화재·구조·구급 세 가지로 크게 나뉜다. 화재는 말 그대로 불이 났을 때 불을 진압하는 업무를 하고, 구급 분야는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마지막으로 구조는 과거 방송프로그램에서도 다뤘듯이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고에 직면한 시민들을 구조하는 업무를 한다. 예를 들어 맨홀에 빠졌다든지, 자동차 문이 안 열려 갇혔을 경우 119에 신고하면 구조팀이 신속하게 출동해 구조 활동을 펼친다. 이 세 가지 업무 가운데 구급 출동이 가장 많다. 임순영 소방사는 "새벽 구급 출동 전화가 걸려오면 잠결에도 출동을 해야 하는데 바짝 긴장을 하고 나갔다가 장난전화로 판명되면 온 몸에 힘이 빠진다"고 말했다. 장난전화로 인해 정말 긴급 구조가 필요한 사람들의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강동소방서 성내 119 안전센터는 "화재와 구조, 구급 활동 등 다양한 부서에서 시민들의 안
곱상한 외모에 백옥 같은 피부, 큰 키에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의 임순영(24·여) 소방사의 첫인상은 21kg의 방화복과 뜨거운 화재현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지만 인터뷰를 진행 할수록 취재기자는 임 소방사의 똑 부러지는 말투에서 일에 대한 자신감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서울시 최연소 여성 소방관이라는 타이틀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실력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당찬 여성 소방관. 그녀와의 솔직담백한 인터뷰 속으로 들어가 보자. 24세 꽃처녀, 2010년 7월 최종 합격…화제진압 거뜬 스스로 선택한 직업, 적성·흥미에 딱 맞아! 후회 없어 충남 논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임순영(24·여) 소방사는 수학능력평가를 마칠 때 까지만 해도 소방공무원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수능 점수 발표를 앞두고 대학 선택과 진로 결정을 앞두고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임 소방사의 아버지는 "공무원 시험을 치를 수 있는 학과로 진학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운을 띄웠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이 공무원을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생각하듯 임 소방사의 아버지 역시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이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
[일요시사=유병철 기자] 최근 스스로 목숨을 끊은 MBC스포츠플러스 송지선 아나운서와 두산베어스 임태훈 선수를 둘러싼 루머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그동안 스포츠 스타와 연예인 관련 루머는 끊임없이 퍼져 나왔다. 스포츠계와 연예계에는 여러 명의 실명이 거론되며 여기저기서 쑥덕거리는 소리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2004년 ‘스포츠 톱스타, 유부녀 탤런트와 카섹스 망신’ 핫 이슈 연예인 K양, 모 구단 초청으로 시구 후 상대팀 선수와 하룻밤 스포츠 선수와 연예인 관련 스캔들 중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최고의 이슈는 지난 2004년 모 매체가 ‘스포츠 톱스타, 유부녀 탤런트와 카섹스 망신’ 이란 제목으로 보도한 것이다. 당시 이 매체는 “프로 스포츠 톱스타가 유부녀 탤런트와 한강둔치에서 카섹스를 벌이다 적발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보도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국내 정상급 스타플레이어인 A군과 결혼 2년차 주부 탤런트 B씨가 초저녁 무렵 한강대교 인근 둔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과감하게 정사를 벌이다 마침 이곳을 지나던 한강순찰대 경비대에 의해 발각됐다. 이
96년 애틀란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낸 이봉주. 당시 남아공의 투과니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올림픽 마라톤에서 1위와 2위가 3초밖에 차이나지 않은 것은 처음일 정도로 치열한 레이스를 펼치며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이후 이봉주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출전해 다른 선수와 부딪혀 넘어지는 불운을 겪으며 24위에 그쳤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14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28위에 그치며 메달 획득에 실패한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난 다음 해인 2009년 이봉주는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 후인 2010년 3월 자신의 마라톤 인생 얘기를 담은 자서전 <봉달이의 4141>를 출간한 그는 손기정 기념재단의 이사로 선임되기도 했다. 현재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그는 미국 유학과 함께 지도자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봉주…은퇴 후 학업 및 지도자 준비 심권호…방송 해설자 등 다방면 매력 뽐내 이봉주와 더불어 애틀란타 올림픽 때 국민의 많은 사랑을 받은 또 한 선수가 있다. ‘작은 거인’ 심권호. 크지 않은 몸집이지만 성실한 모습과 부단한 노력으
1996년 제26회 애틀란타 올림픽. 한국은 7명의 선수가 금메달을 따내며 종합 10위의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특히 당시 7명의 금메달리스트 중 유독 주목받는 선수가 있었다. 훤칠한 이목구비와 시원한 경기운영으로 한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사람. 바로 유도의 전기영이었다. 업어치기의 달인 한 게임 빼고 모두 한판승 세계선수권 3연패 쾌거, 동급 최강자 등극 충북 청주 출신인 전기영은 청주 대성중학교 1학년 때 본격적으로 유도에 입문하게 된다. 유도에 타고난 재능을 보인 전기영은 청석고등학교 시절에는 전국대회 6관왕을 달성하며 두각을 나타냈고 경기대학교로 진학한 후에는 동 체급 내 최강자의 반열에 오른다. 국내에 더 이상의 적수가 없던 전기영은 세계무대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그는 1993년 2월 파리오픈 78kg급에서 라이벌이었던 윤동식을 꺾으며 우승해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전기영은 이어 1993년과 1995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의 유도영웅이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요시다 히데히코와 맞붙어 요시다를 두 번 모두 제압하며 세계 최강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금메달 따면 본전 못 따면 이변 이미 두
1996년 프로야구에는 투타에 걸쳐 새로운 기록이 많았다. 당시 ‘괴물신인’로 불렸던 박재홍은 한국 프로야구의 새로운 역사를 썼다. 프로야구 15년 사상 첫 ‘30-30’(30홈런, 30도루) 기록을 달성 한 것이다. 박재홍 최초의 ‘30-30’ 진기록 정명원 PO 최초 ‘노히트 노런’ 현대와 LG의 프로야구 경기가 펼쳐진 잠실구장. 3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현대의 ‘괴물신인’ 박재홍은 여느 때처럼 호흡을 고른 뒤 편안한 마음으로 상대투수 김용수를 응시했다. 김용수의 초구가 날아들었다. 몸쪽 높은 포크볼. 특별히 선호하는 코스나 구질이 따로 없는 박재홍은 그대로 방망이를 휘둘렀다. 딱‘하는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볼은 왼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비거리는 120m. 3점 홈런이자 자신의 시즌 30호 아치였다. 박재홍이 국내 프로야구 사상 첫 ‘30-30클럽’에 가입하는 순간이었다. 한편 마운드에서도 새로운 역사가 쓰여졌다. 현대 유니콘스 정명원이 4사구 3개만 내주고 삼진 9개를 뽑
야구팬들은 1996년의 ‘해태 타이거즈’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즌 전 최약체로 평가됐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저력을 과시하더니 급기야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통합우승을 일궈냈던 것이다. <일요시사>가 태동하던 그 해, 각본 없는 드라마로 피날레를 장식하며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던 이순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을 만나보았다. 최고의 선수에서 비난해설 일인자로 "한 번 더 유니폼 입어보고 싶다" 1982년 출범한 프로야구는 90년대 까지만 해도 ‘해태 타이거즈 천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95년까지 7번의 우승, 하지만 96년도는 판도가 달랐다. 팀의 주축선수인 선동열의 일본 진출과 간판타자 김성한의 은퇴, 군복무중인 이종범과 이대진의 부재로 시즌 전 최약체로 평가됐다. 하지만 김응룡 감독과 선수들은 혹독한 훈련과 특유의 강인한 ‘타이거즈 정신’으로 3년 만에 다시 한 번 팀 우승을 이끌어 냈다. 프로야구에서 통산 14시즌을 뛰며 8번의 우승 감격을 맛봤던 이순철 해설위원은 “4년 연속 우승한 적도 있지만 힘든 시기를
한 중견 연기자는 “연예인들은 대중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인기의 부침에 따라 수입과 위상의 변화가 불가피하는 연예계 속성을 알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인 자세를 견지하는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한다”고 충고한다.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과 연예계를 지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인기를 얻어 성공을 하려고만 할뿐 연예계에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정신적인 태도나 자세 등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는데 이 부분에 대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연예인을 관리하는 연예기획사는 단순히 연예인을 이윤창출도구로만 파악하지 말고 연예인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신속하게 구축해야한다. 연예인을 소비하는 대중들의 문제 있는 태도 역시 개선돼야한다. 근거 없는 악성루머의 유포나 사이버테러는 연예인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연예인들도 정신적, 육체적인 질환에 대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는 등 태도의 변화도 있어야 한다.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엄청난 연예인들이 이미지나 남의 시선을 의식해 병원을 찾아 치료를 받거나 지인
1996년, 그해 1월은 여느 해와는 사뭇 다른 소식이 한해의 출발을 알렸다. 미소년의 외모로 10대 소녀 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틴 아이돌 가수 서지원이 자살했다. 그는 만으로 스물이 되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95년 데뷔해 1집 타이틀곡 ‘또 다른 시작’으로 이름을 알리며 스타로 발돋움한 서지원은 1996년 1월1일 유서를 남긴 채 약물 과다복용으로 팬들 곁을 영원히 떠났다. 서지원은 서울 용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Cahuenga Elementary School, 미국 존버로즈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95년 1집 앨범 ‘Seo Ji Won’을 발표하며 수많은 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 그가 왜 자살이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을까. 2집 성공 중압감 못 이겨 어린 나이부터 받은 뜨거운 관심과 인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으나 정작 서지원 자신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하고 힘든 역경이었다. 서지원은 일기장을 통해 “2집 앨범 녹음을 끝내고 활동을 앞둔 나는 더 이상 자신도 없고 군대도 가야하며 사무실 운영과 가족들을 책임지기에도 너무
양현석… 빅뱅, 2NE1등 가수 발굴 이주노… 댄스 아카데미에서 후배양성 양현석은 현재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연예기획자로 바쁘게 활동 중이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YG엔터테인먼트를 차려 지누션, 원타임, 세븐, 거미, 빅뱅, 2NE1 등 국내 최고의 스타들을 보유한 대형 기획사로 성장시키는 수완을 발휘했다. 지난 2010년 3월 양현석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결혼도 발표했다. 그의 배우자로 알려진 사람은 그룹 스위티 출신의 이은주다. 이은주는 YG 소속 가수로 양현석과는 12살 띠 동갑 차이이며 전 젝스키스 멤버인 이재진의 여동생으로도 알려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양현석은 2010년 8월 이은주와의 사이에 딸을 얻었고 현재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면서 또 다른 스타 발굴에 집중하고 있다. 이주노는 은퇴 후 자신의 특기인 ‘춤’을 살려 댄스스쿨 강사, 댄스 팀을 결성하는 등 계속적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여왔다. 또 90년대 중반 인기 그룹 영턱스클럽을 발굴하며 음반 제작자로도 성공적인 재능을 선보이기도 했다. 현재 이주노는 댄스아카데미인 DM SKOOL을 운영하며 댄서를 꿈꾸는 후배들을 지도하고 있고 최근에는
서태지는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그었다. 1992년 데뷔 당시 한국에서는 처음 접하는 새로운 풍의 음악으로 나타나 한국대중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하지만 4년 뒤 갑작스럽게 은퇴를 선언해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현재는 탤런트 이지아와의 소송문제로 인해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서울북공고 시절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였던 서태지. 이미 데뷔 전 그룹 시나위에서 김종서와 함께 베이스 기타리스트로도 활동하며 탁월한 실력을 인정받았었다. 이후 서태지는 91년 당시 최고의 춤꾼으로 활약하던 양현석과 이주노를 만나게 돼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을 결성, 가요계에 도전장을 내밀게 된다. 당시 한국 가요계에 처음으로 선보인 ‘랩 댄스곡’ 풍의 데뷔곡 난 알아요, 그리고 당시에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현란한 안무로 선풍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혜성같이 가요계에 등장해 큰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 인기에 서태지에게는 ‘10대들의 대통령’ ‘X세대 문화의 상징’ 등 수 없이 많은 수식어가 붙여진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 당시 많지는 않았고 당시 음악관계자들조차
배우 이전의 문성근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8년의 사회 경험 쌓았다. 이것이 ‘영화계 현안’으로 그의 관심을 돌리게 만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스크린쿼터’였다. 처음에는 연기에 몰입할 생각으로 이러한 문제들에 거리를 뒀다. 영화계에서 ‘쿼터’를 지켜야하는 이유에 대해 “문화는 약하니까 지켜달라”는 논리에 그는 펜을 들었다. 그는 쿼터라는 게 수출입과 독과점에 대한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 결국 <씨네 21> 독자투고란에 글이 실렸고, 시위 연단에 오르게 되었다. 이어 올해 3월 초 그는 조선일보사옥 앞에 섰다. 그의 피켓에는 ‘길 위에서 꽃 한 송이 올립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장자연님’ 이라고 적혔다. 시위의 출발선은 ‘스크린쿼터’ 100만 국민의 뜻 모으려 거리로 그는 “한 인간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생명을 끊었는데 우리 사회가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다”며 “이제라도 권력이 감추는 진실을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그는 동료연예인들에게 성상
문성근. 그는 수많은 영화제에서 대상을 거머쥔 ‘명배우’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TV 속의 그는 시사프로그램 진행자라는 이미지가 각인됐다. 이런 그가 최근에는 길거리에서 ‘민주-진보 단일정당’을 외치고 있다. 배우인 그가 이제 아예 정계로 방향을 틀어버린 걸까? 그는 딱 잘라 말한다. “나는 배우다”라고. 그러나 1996년 ‘제17회 청룡영화제’에서 대상을 탄 이후 그의 행보는 여전히 심상치 않다. 유쾌한 민란 도모중인 문성근 100만 서명운덩 주도 아버지 고 문익환 목사 뜻 이어 민주진보진영 단일화 배우 문성근은 1953년 통일운동가였던 고 문익환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8년 동안 평범한 샐러리맨 생활을 하다 1985년 연극배우로 데뷔했다. 이후 그의 첫 영화인 <그들도 우리처럼>으로 제 27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상과 제 1회 춘사영화예술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어 그는 각종 상을 휩쓸며 국민배우로 성장해 나갔고, SBS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도 진행했다. 한참이나 시간
당시 TV에 방영된 아가동산의 생활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종교의식 장면은 교주를 신처럼 받드는 사이비종교의 전형이었다.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 그녀는 행사 때마다 공주를 연상시키는 차림새였다. 신도들에게도 항상 색동옷과 족두리, 원색의 유니폼을 입혔다. 나이든 신도들도 어린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아가동산 신도들이 무대에 앉아있는 교주를 에워싸고 강강술래 춤을 추고 있다. 아가동산의 종교의식은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춤과 노래로 가득 찼다. 종교의식다운 엄숙함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주 김씨의 등장에 신도들은 열광했다.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이다. 손만 잡아줘도 감격한다. 교주와 함께 춤을 춘 소녀들은 눈물을 흘린다. 아가동산 신도들 대부분 사회적으로 소외돼있는 노약자와 부녀자다. 아가동산의 모든 일은 집단적으로 이루어졌다. 하루 16시간의 고된 노동에 이어 밤마다 되풀이되는 행사, 신도들은 교주에게 푹 빠지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당시 탈출 신도는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책을 봐도 눈에 안 들어온다. 워낙 심적 통제가 심하다”고 밝혔다. 외출도 늘 함께였다. 아가동산은 동심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