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통 큰 프로젝트’ 집중해부

근혜공화국 청사진 벌써부터 그리고 있다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조용한’ 그러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미래권력을 향한 ‘박근혜 예찬론’의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는 가운데 그의 싱크탱크에는 각계인사들의 참여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이어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기 위해 ‘서경클린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 쭉 고수
미래권력 손잡고 싶으면 ‘줄을 서시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조금씩 보폭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대선 경선 이후 정치일선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던 그는 작년 말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을 출범시켰다. 또 평창동계올림픽유치특위 고문을 맡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MB의 파격적인 ‘대우’로 유럽 3개국 대통령특사로도 활동했다. 박 전 대표는 특사 당시 “내년에는 중요한 선거들이 있고 하니 아무래도 좀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게 되지 않을까”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신뢰와 원칙은 나의 힘
대권 향해 발걸음 또각또각

박 전 대표는 ‘원칙’과 ‘신뢰’란 이미지로 무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4.27 재보선 패배의 여파로 ‘박근혜 구원투수론’을 애타게 외치며, 그의 ‘발걸음소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난 19일 황우여 원내대표와 가진 비공개 회동에서 정작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역할론’보다 국민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헤아릴 줄 아는 ‘당의 역할론’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이어 한나라당의 현행 ‘당헌·당규’를 개정해 대선주자가 당 대표에 도전할 수 있게 하자는 ‘당권·대권 통합 논의’에 ‘원칙론’을 고수하며, 반대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권·대권 분리는 2005년) 쇄신안에 의해 확정이 됐는데, 선거나 당면 과제가 있다고 해서 그런 철학이나 흐름을 뒤바꾸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전에도 정부가 세종시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히며, 이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다. “세종시는 국회가 국민과 충청도민에게 한 약속이지 개인 약속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정부가 ‘동남권신공항’을 백지화하자, 박 전 대표는 “국민과 약속을 어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이어 ‘동남권신공항’은 자신의 차기 대선공약으로 계속 추진할 것임을 내비쳤다.

이처럼 박 전 대표는 평소 신념이자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신뢰로 일관하며 떠나려는 ‘민심’을 사로잡고자 자신의 면모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대권을 향해 또각또각 ‘차분히’ 그러나 ‘신중하게’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빠져봅시다~ ‘근혜 홀릭’
여기저기서 구애공세 이어져

이런 가운데 박근혜 대세론이 말 그대로 대세를 이루자 ‘원조빠’였음을 자처하는 인사들이 너도나도 ‘미래권력’ 곁으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당 내부에서도 ‘친박계’쪽 의원이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음은 물론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여당의 의원들 역시 내년 총선을 바라보며 ‘당 쇄신 방안’이 마무리되면 ‘공천’을 위해 본격적인 ‘줄서기’가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도 가입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미래연구원은 출범 초기 학계 인사를 중심으로 전직 관료, 기업인 등 78명이 참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200명 가까이 불어났다. 최근에 추가 회원들 역시 각 분야 교수, 전직 장·차관급 인사, 행정부 고위관료 출신들이다. 참여정부 시절 독일대사를 지낸 이수혁 전 국정원 1차장까지 합류했다고 전해진다.

각 분야의 전문가 회원이 고루 포진된 만큼 경제, 외교·안보, 국방, 문화, 재정복지, 언론, 환경, 여성 등 18개 분야로 세분화해 다양한 정책들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표 지지자 모임인 ‘국민희망포럼’도 부산과 제주를 제외한 14개 시도에서 지역별 포럼을 결성했다. 지역단위로 수 천 명의 회원을 확보하며 계속 세를 확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 전 대표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지지율에 탄력을 받아 본격적으로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12월 정기국회 회기 중에 ‘사회보장기본법 전부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었다. 여기서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를 주장해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복지이슈를 선점하는 효과를 거뒀다.

공청회는 70명이 넘는 현역의원과 4백여 명의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져, 박 전 대표의 위력을 다 시 한 번 보여줬다는 평가까지 얻었다.

먼저 박 전 대표는 “현 사회보장법은 서구 국가들이 과거 복지국가를 지향하던 구시대에 만든 틀로 ‘현금급여’ 중심이기 때문에 생애 주기에 필요한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틀로는 사회 안전망 역할도 못하고, 고령화 양극화에 따른 대량빈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한계를 알렸다.

이에 전 국민에게 각자 평생의 단계마다 필요한 ‘맞춤형’으로 갈 것을 강조했다. “바람직한 복지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게 아니다”며 “꿈을 이룰 수 있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 전했다. “핵심은 선제적, 예방적, 지속성을 가진 국민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는 통합적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구나 맡은 바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기초적인 삶의 두려움 없이 죽을 때까지 안전한 삶을 사는 사회적 인프라를 뜻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며 자신이 생각하는 ‘복지론’에 대한 구상을 상세히 밝혔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근혜복지국가 청사진 준비

최근 박 전 대표는 경제와 복지를 연계하는 방안에도 부쩍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최근 유럽 3개국 ‘대통령 특사’ 임무를 마친 직후 곧바로 자신의 자문그룹들과 ‘현안 정책 스터디’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여기서 박 전 대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약점인 빈곤층과 소외층에 대한 배려 부족을 보완하는 방안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박 전 대표는 올해 안으로 안보, 과학기술, 교육, 문화산업 등의 비전을 제시하는 등 다양한 분야의 정책 마련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알려졌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라고 있는 박 전 대표지만 ‘수도권 민심’이 고민거리다. 리얼미터의 최근 여론동향에 따르면 차기 대선주자인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53.1%로 그의 ‘대항마’로 꼽히는 손 대표의 33.1%에 비해 압도적이다. 그러나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의 민심에서는 손 대표와 별반 차이가 없다. 또 당장 내년 총선이 걱정인 것.

최근 한 여론조사 결과에 뜨면 차기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은 야권단일화 후보를 49.4%로 지지한 반면 한나라당은 32.8%의 지지율을 받았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야권단일화 후보가 44.4%의 지지를 받아 한나라당의 34.7%를 크게 앞섰다. 따라서 수도권 지지율과 야권후보 단일화는 박 전대표가 반드시 넘어야할 산으로 보인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실제로 박 전 대표 쪽에서는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기 위한 갖가지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미래연구원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수도권 민심공략 프로젝트는 ‘서경(서울?경기)클린프로젝트’로 알려졌다.

아직 구체적인 명칭이 아니고, 사안들도 미완성 단계이지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서울과 경기를 대략 7~8개의 권역으로 나눈 뒤, 전체로 연결해 하나의 거대한 공원으로 조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공사로 인한 자연 훼손을 막기 위해 기존 자연을 최대한 살려서 이용하고, 여기에 각각 디자인을 가미해 지역주민들의 생활만족도를 높여 수도권 민심을 사로잡겠다는 것.

‘서경클린 프로젝트’로
수도권 민심공략 준비


‘서경클린프로젝트’의 기초적인 사안들을 친박 핵심관계자들에게 슬쩍 보여주자 ‘괜찮다’라는 우호적인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대형사업’임을 감안할 때 그 실현가능성을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좀 더 구체적인 사안이 나오기 전까지 “좀 더 두고 보자”는 조심스런 입장도 있다고 알려졌다.

박 전 대표도 관련 사안들을 보고받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사항들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박 전 대표가 유독 수도권에서 약세를 보인만큼 2012년 대선공약으로 채택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한 정계관계자는 이러한 ‘대형국책사업’을 구상하는 것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재 MB정부 역시 대형국책사업이 많았다. 그러나 ‘백지화’나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국론이 분열되고, 현 정권이 위기를 맞았다”면서 “표에만 급급하지 말고 공약으로 내세우기 전에 실제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비판적으로 봐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파탄 난 ‘서민경제’의 복구”라고 지적했다. “내년은 올해보다 더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면서 이에 “경제적 여건 호전이나 부의 재분배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며 “전?월세와 물가대란 등 지금의 경제 악화된 상황으로 민심이 이반된 만큼 박 전 대표가 MB와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사회현안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청사진을 제시해야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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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